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대한민국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에 대해 다루는 항목이다.

1 개요

2015년부터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이정철 감독이 팀을 지휘하고 있다. 전임 감독제로 운영되는 남자팀과 달리 여자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전과, 2012년 런던 올림픽 정도만 제외하면 프로팀 감독이 겸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반적으로 V-리그 이전 시즌 우승팀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맡았지만, 그러면 리우 국대 감독은 이 분? 이정철 감독의 경우 2015년 선임 당시부터 올림픽까지 쭉 감독직을 맡을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는데 2016년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올림픽에는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11번 참가하였다. 이 중 최고 성적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획득한 동메달로, 이는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다. 이어서 1972년 뮌헨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4위를 기록한 것이 다음 가는 성적이다. 아시안 게임에는 1962년 자카르타 대회 이후로 매번 참가하여 2006년 도하 대회 흑역사를 제외하면 모두 메달을 획득하였다. 1994년 히로시마 대회와 2014년 인천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 최고의 성적으로, 첫 금메달 이후 20년이 걸렸다. 올림픽 다음으로 권위있는 세계대회인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980년대 이후에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는 못하고 있는데,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과 같은 종합 대회에 비해 그 중요도를 낮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1] 2016년 7월 기준 FIVB 세계랭킹은 9위.

2 주요 대회 성적

2.1 올림픽

연도순위감독엔트리
1964 도쿄6위장경환오청자, 최돈희, 홍남선, 정정은, 윤정숙, 곽룡자, 이근수, 서춘강, 문경숙, 유춘자, 오순옥, 김길자
1968 멕시코시티5위문경숙, 김영자, 이은옥, 이향심, 박금숙, 김외순, 황규옥, 서희숙, 양진숙, 곽룡자, 안경자
1972 뮌헨4위최이식김은희, 김영자, 이인숙, 윤영내, 유경화, 조혜정, 이정자, 이순복, 유정혜, 이경애, 이경숙
1976 몬트리올동메달김한수이순복, 유정혜, 변경자, 이순옥, 백명선, 장희숙, 마금자, 윤영내, 유경화, 박미금, 조혜정, 정순옥
1980 모스크바보이콧으로 인해 불참
1984 LA5위이창호박미희, 이운임, 한경애, 이명희, 김옥순, 이은경, 김정순, 임혜숙, 이영선, 제숙자, 진춘매, 윤정혜
1988 서울8위이창호박미희, 임혜숙, 김경희, 윤정혜, 김윤혜, 지경희, 유영미, 박복례, 선미숙, 김귀순, 문선희, 남순옥
1992 바르셀로나출전권 획득 실패
1996 애틀란타5위김철용장윤희, 홍지연, 정선혜, 박수정, 김남순, 이수정, 최광희, 이인숙, 장소연, 강혜미, 유연경, 어연순
2000 시드니8위김철용장소연, 최광희, 정선혜, 어연순, 강혜미, 김귀현, 구기란, 구민정, 이명희, 이윤희, 박미경, 박수정
2004 아테네5위김철용구민정, 이정옥, 강혜미, 김사니, 최광희, 남지연, 장소연, 김미진, 박선미, 정대영, 한송이, 김세영
2008 베이징출전권 획득 실패
2012 런던4위김형실김사니, 이숙자, 정대영, 한유미, 임효숙, 김해란, 한송이, 황연주, 김연경, 하준임, 양효진, 김희진
2016 리우데자네이루5위이정철김연경, 이효희, 남지연, 김해란, 황연주, 김수지, 배유나, 양효진, 염혜선, 김희진, 박정아, 이재영

1964년 도쿄 대회에서 첫 출전하였다. 6팀의 풀리그로 진행됐던 이 대회에서 대표팀은 5팀에게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고 올림픽 첫 도전을 마무리해야 했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는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메달로, 이 대회 레슬링 종목에서 광복 이후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된 양정모와 함께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A조 4팀과 B조 4팀, 총 8팀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대표팀은 B조 2위로 준결승에 진출하였으나, 일본에 0-3으로 패하며 3-4위전에 진출한다. 3-4위전에서 헝가리에게 3-1로 승리를 따내며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대표팀은 비록 순위를 8위로 마감했지만, 몬트리올 대회 이후 메달 획득의 절호의 기회였다고 여겨진다. 총 12개팀이 참가한 조별예선에서 대표팀은 B조 3위로 준준결승에 진출하여, 당시 다크호스였던 미국과 일전을 하게 된다. 세트 스코어 2-2로 팽팽하게 경기가 진행되던 5세트에서 대표팀은 매치 포인트를 선점하였으나, 이후 1점을 결정짓지 못하고 14-16으로 마지막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당시 대표팀 세터였던 강혜미는 그로부터 9년 뒤 인터뷰를 통해 미국전에서 패하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허탈감이 심했다고 회상하였다.[2]

1990년대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들이 2004년 아테네 대회를 기점으로 은퇴를 선언하면서, 대표팀은 강제로 세대교체를 진행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후 10년여동안 세대교체만 했다고 한다 많은 배구팬들이 암흑기로 꼽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전에서는 주축 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엔트리 구성에 어려움을 겪으며 결국 2승 5패로 부진[3], 카자흐스탄에 세트 득실률 차이로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내주는 굴욕을 맛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본 찍고 유럽 무대를 평정하여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난 김연경을 위시하여 김사니, 이숙자, 정대영 등 베테랑 선수들이 조화를 이뤄 출전한 2012년 런던 대회 조별예선에서 미국, 브라질, 세르비아, 중국, 터키와 함께 죽음의 B조에 편성되었다. 당초 조별예선 통과도 어려우리란 예상이 많았으나, 세르비아와 브라질에는 완승, 터키와 중국에 풀세트 패배를 기록하며 승점제의 최대 수혜자 8강전에 진출하였다. 8강전에서는 A조 2위 이탈리아를 3-1로 물리치고 36년 만에 4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는 김연경과 양효진의 화력을 앞세워 다시 한 번 메달 획득에 도전하였으나 8강에서 네덜란드에게 일격을 당하며 대회를 마감하고 말았다. 리우 올림픽 대표팀의 자세한 활약 모습은 여기에서 확인바람. 그리고 올림픽 이후 고등학생 위주로 출전한 AVC컵에서는 개최국 베트남에게도 패하며 6전 전패로 마감했다(...). 솔직히 베트남에게도 지면 그냥 배구 접어야 한다 아무리 고등학생 위주로 나갔다지만 너무했음 협회가 감독도 한 달 전에야 뽑고 연습을 열흘 밖에 못했는데 뭘 바라나

2.2 아시안 게임

연도순위감독엔트리
1962 자카르타은메달주방자, 김군자, 이춘일, 김주환, 김영봉, 최명자, 서춘홍, 이재순, 이영자, 조동령, 유명자, 유춘자
1966 방콕은메달김군자, 문경숙, 양진수, 유명자, 유춘자, 이근수, 이춘일, 서희숙, 최정숙, 허수옥, 홍남선, 황규옥
1970 방콕은메달서현숙, 서한숙, 이경선, 김경자, 김혜숙, 최덕경, 강미화, 이순복, 양진수, 조혜정, 윤영내, 이인숙
1974 테헤란은메달석태환이경선, 이순복, 이경숙, 이효순, 조혜정, 노창희, 유경화, 유정혜, 박정혜, 정순옥, 최은희, 박인실
1978 방콕동메달이창호윤영내, 유경화, 김화복, 곽선옥, 심순옥, 김애희, 백명선, 변경자, 임해숙, 양순덕, 김인숙, 신상순
1982 뉴델리동메달전호관김영숙, 이은경, 김정순, 김송은, 정금선, 남명례, 한경애, 이운임, 이영선, 곽선옥, 박미희
1986 서울동메달전호관이은경, 곽선옥, 이운임, 김정순, 이영선, 이명희, 유애자, 임혜숙, 제숙자, 김경희, 지경희, 선미숙
1990 베이징은메달이창호박미희, 장경희, 문효숙, 지경희, 염정미, 김경희, 주선진, 남순옥, 김귀순, 장윤희, 유연수, 강주희
1994 히로시마금메달김철용이도희, 강혜미, 장윤희, 주순란, 정은선, 정선혜, 홍지연, 장소연, 김남순, 박수정, 이진영, 오윤경
1998 방콕은메달김형실정선혜, 장윤희, 박수정, 홍지연, 구민정, 장소연, 박미경, 정은선, 강미선, 이명희, 강혜미, 김창헌
2002 부산은메달류화석정선혜, 구민정, 최광희, 장소연, 박미경, 정대영, 강혜미, 김사니, 구기란, 김남순, 이명희, 김미진
2006 도하5위김명수김사니, 김세영, 정대영, 한유미, 남지연, 김해란, 한송이, 김지현, 황연주, 김연경, 한수지, 배유나
2010 광저우은메달박삼용김사니, 김세영, 정대영, 한유미, 남지연, 한송이, 임명옥, 황연주, 이소라, 김연경, 오지영, 양효진
2014 인천금메달이선구김연경, 이효희, 남지연, 한송이, 김해란, 백목화, 배유나, 양효진, 김희진, 박정아, 이재영, 이다영

여자 배구는 1962년 자카르타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첫 대회에서는 6인제와 9인제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대표팀은 두 종목에서 모두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1966년 방콕 대회부터는 현재의 시스템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1974년 테헤란 대회까지 4개 대회 연속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콩라인?

대표팀이 아시안 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서였다. 이 대회를 위해 실업리그 최강이었던 호남정유의 감독 김철용과 주전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엔트리를 구성하였다. 오른쪽에서 큰 공격을 맡아주었던 한일합섬의 김남순을 제외하면 호남정유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랬던 호남정유가 지금은? 6개 팀이 참가하여 풀리그로 진행되었는데, 당시 태국·대만·몽골 대표팀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중국 대표팀에게만 승리를 따낸다면 사실상 금메달이 확정된다고 볼 수 있었다. 2경기 중국전에서 1·4세트를 내주고 2·3세트를 따낸 대표팀은 마지막 5세트에서 정선혜의 연타 공격이 성공하며 21-19로 경기를 가져온다. 당시 배구 규칙은 지금의 랠리 포인트제가 아닌 서브권을 가지고 있는 팀이 득점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혈전이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 4경기 일본전에서는 1·2세트를 내주고 내리 3·4·5세트를 따내며 리버스 스윕 성공. 5경기 대만전이 남아있었으나 사실상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아직도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는 대회이다.

그러나 상술하였듯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주축 선수들이 은퇴하면서, 대표팀은 암흑기를 맞게 되는데 기점이 바로 2006년 도하 대회였다. 8강전에서 다크호스 태국에게 1-3으로 패하며 아시안 게임 도전 역사상 최초로 메달 획득에 실패한다. 직전 열렸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대만에게 당한 패배와 함께 엄청나게 까였다.[4]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일본은 2진을 파견하였고,[5] 중국은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였기에 1진이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바로 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아시안 게임의 전초전이었던 세계선수권 1차 예선에서 대표팀은 김연경황연주의 활약 속에 중국에게 3-0 셧아웃 승리를 기록했기에 기대감이 높아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중국에게 먼저 1·2세트를 따내고도 3·4·5세트를 내주며 다시 한 번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특히 5세트 14-12로 먼저 매치 포인트를 가져왔음에도 오지영의 통한의 서브 리시브 범실로 듀스를 허용한 것이 컸다.

그리고 2014년 인천 대회에서는 중국과 일본 모두 아시안 게임에 2진을 파견하며 금메달 무혈입성이 예상되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앞서 열린 AVC컵에서 펼쳐진 두 번의 맞대결에서는 중국 2진에게 모두 0-3 완패를 당하며 모두를 걱정시켰다.[6] 그러나 정작 본 대회에서는 무실세트 우승을 차지하며 히로시마 대회 이후 20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주장 김연경은 물론이고 마무리 득점을 한 김희진이 경기를 지배했으며, 5-11까지 밀렸던 3세트에서 이효희와 교체 투입된 이다영의 겁없는 토스와 블로킹도 볼만한 부분이었다. 금메달과 함께 김치찌개도 획득하였다고 하더라[7]
  1. 일례로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는 일정이 대부분 겹쳐서, 중국과 일본은 세계선수권에 1진을, 아시안 게임에 2진을 파견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일찌감치 쿨하게 세계선수권 출전을 포기하였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더라 당시 아시안 게임이 인천에서 개최되었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2015년 FIVB가 리우 올림픽 최종예선전 출전권을 세계랭킹 순으로 배분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세계랭킹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다. 남자팀을 보자
  2. 2009년 9월 16일 네이버-엑스포츠뉴스 강혜미, "한국 여자배구의 전성기는 다시 온다"
  3. 엔트리에 비해서는 잘 싸웠다는 의견도 있다.
  4. 대만 팀은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 1차 예선에서 우리 대표팀과, 일본·폴란드를 차례로 꺾으며 5승으로 2차 예선에 진출하였다. 비록 2차 예선에서는 전패를 기록했지만, 이 기세를 몰아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런데 그 후로 세계 대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2006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5. 1진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 입상
  6. 사실 중국의 경우 1진과 2진의 실력 차이가 그리 크지 않으며, 이 때 주전으로 뛰었던 딩샤, 장창닝, 옌니가 다음 해에 모두 1진으로 올라와 월드컵 우승 멤버가 되었고 리우 올림픽에도 출전하였기에 1.5진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듯 싶다.
  7. 대한배구협회가 20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한 대표팀에게 김치찌개 회식을 하게 하여 대차게 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