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朴興奎
1912년 09월 15일 ~ 1997년 03월 10일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정치인이다. 호는 수암(守庵)이다.
1912년 전라남도 광주군(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광주경신중학교,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후기부터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전라남도경(현 전남지방경찰청) 과장, 광산군청 내무과장, 광주시청 총무과장, 전라남도청 사회과장, 광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산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서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필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정치정화법에 묶여 정치활동이 금지되다가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 해금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박종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