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의 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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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nt of Byzantium.
1987년에 나와 1994년 재발매된 미국인 소설가 해리 터틀도브의 처녀장편 대체역사소설.[1]

아이작 아시모프가 추천사를 써준 바 있다.

역사상의 가정이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들 중 그나마 알려진 유스티니아누스 1세(527~565)의 이탈리아 수복전쟁이 비잔티움의 국력을 쇠퇴시키지 않았고, 7세기 거센 파도가 된 이슬람의 개조開祖 무함마드동방정교회로 개종해 이슬람 자체가 생기지 않았고, 대신에 정교회의 부흥을 이끌었다[2]는 주요한 2개의 가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실 이 작품은 아이작 아시모프 매거진에 연재된 단편 Departure의 세계관에서 출발한다. 이 단편은 사산조 페르시아그노시스파 기독교를 전파시켜 비잔티움을 위협하는 시기의 수도원을 그리고 있으며 수많은 성가를 작사, 작곡한 성인이 결국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한다는 스토리.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그 성인이 무함마드라고 밝혀진다(....)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몇편의 독립적 연대기 단편을 서술한게 바로 이 작품인 비잔티움의 첩자이다.[3]

원래는 비잔티움에 어두운 그림자가 슬슬 드리워질 무렵인 서기 1300년대 초 (작품 내에서는 세계력 6814년)를 시작으로 약 15년에 걸쳐 주인공 아르길로스의 행적을 따라 당대의 중요한 역사적 발견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과학혁명과 르네상스가 없이도, 심지어 다른 유럽 지역이 야만[4]의 시대로 남아 있었다고 하더라도 역사 발전상 과학의 진보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소설에서 사용되는 연호는 서기력이 아닌 그리스인들이 계산한 우주창조기원인 기원전 5509년 9월 1일을 기점으로 세계력(에토스 코스모우)이 사용되며, 서기로 환산하면 1305년 9월부터 1320년에 해당한다. 실제 역사상의 비잔티움 제국은 이 무렵 오스만 제국을 비롯한 여러 투르크계 공국들에게 소아시아 지역을 조금씩 잠식당하던 안습한 상황이었지만[5] 여기서는 갈리아 북부와 브리타니아를 제외한 고대 로마의 영역 전부를 수복한 상황. 앞에서 말했듯 이 세계에서는 비잔티움 제국 이외의 유럽 국가는 다 야만족의 나라처럼 취급받고 이탈리아는 비잔티움 제국의 서부 속주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스토리는 다뉴브 강에서 야만족에 맞서 싸우던 군인 바실 아르길로스가 렌즈를 이용한 망원경을 획득한 공로로 마지스트리아노스라는 집행관[6]에 임명되어, 비잔티움 제국 각지 [7] 에서 활동하면서 천연두를 예방하는 우두 접종, 파로스 등대, 신형 흑색화약 폭탄, 금속 활자, 증류주 등에 대한 지식을 하나하나 얻어가는 것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아르길로스는 마지스트리아노스가 된 뒤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살면서 가족을 갖지만, 천연두로 처자를 모두 잃은 뒤 독신으로 살다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첩자인 미라네와 엮이면서 결국 그녀와 이어지는 듯한 암시를 준다.

주인공 아르길로스의 활약 자체보다는, 15년에 걸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떤 이에 의한 우연스러운 과학적 발전의 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흥미롭다.

비잔티움의 첩자에서는 1300년대인데도 몽골 제국의 흔적이 전혀 없다. 다만 중간중간에 몽골로이드 계통으로 추정되는 유목민족들이[8]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를 괴롭히는데 아마 이 세계에서는 몽골이라는 단일 정체성이 아닌 각개 약진의 형태로 간게 아닐까 싶다. 아마 호라즘 왕국이 없다보니 다굴 깔 적이 없어서 흩어진건 아닌가...

이에 대한 가설로는 설정상 사산조 페르시아가 (이슬람 제국의 발흥에 의해)멸망하지 않아서 라고 해석되고 있다. 페르시아와 로마 두 노제국이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던데다 페르시아가 지속적으로 유목민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견제하고 있기 때문. 설사 몽골족이 존재하고 칭기즈 칸이 존재해도 쳐들어갈 구실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호라즘 왕조가 중동을 갈아버린 몽골족을 불러들인 장본인이란 얘기(…). 실제 역사에서도 동로마 제국과 사산 왕조의 이란 제국은 서로를 최대의 적수로 인식하고 있기도 했지만, 약탈을 선호하는 사막이나 초원의 유목민에 대한 대응에서는 서로 협력하여 공동대응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경제적으로 여유있던 동로마가 아예 페르시아 제국에게 방어분담금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이 점을 생각해 본다면, 두 제국이 동유럽과 중근동의 패자로써 세력 균형을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주변의 유목민들을 견제하여 분열시키고 영향권 내에 포섭하는 것 역시 충분히 가능하리라 예상할 수 있는 일이며, 실제로 작중에서도 다뉴브 강에서 코카서스까지 (통일 제국은 이루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목민 세력들이 포진하고 있음이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위 주장도 문제가 있는데, 사산조가 몽골고원까지 유목민들을 견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만약 칭기즈칸이 등장했다면, 혹은 어떠한 이유로 몽골이 통일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주변이 아닌 너무 먼 거리라 사산조가 있든 말든 별 소용이 없고, 그냥 그대로 몽골 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소설에서 그렇게 몽골 통일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말했다시피 너무 먼 거리라 그 통일몽골이 사산조 근처에 오기까지 사산조가 견제할 수가 없다. 당연히 로마와의 공동견제 또한 불가능하다. 그리고 당시 칭기즈 칸은 호라즘 위의 서요를 반드시 침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9]를 가지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사산조는 몽골이 통일 되었다면, 사산조는 몽골을 알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그냥 저 소설에선 사산조의 견제 유무와 상관 없이 단지 몽골통일이 칭기즈칸에 의해 -또는 아니더라도-이루어지지 않은 세계라 볼 수밖에 없다.

작가인 해리 터틀도브는 이 작과 반대의 세계관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이슬람에게 초기에 망해버린 세계를 가정해서 불가리아 왕국[10]을 무혈점령하는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성직자의 논쟁을 그린 대양의 섬들이라는 단편도 낸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불가리아가 이슬람을 택하면서 동방 기독교계는 사망 플래그

여담으로 본 작품을 읽은 독자 중 한 명이 아이작 아시모프 앞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책 내용은 재밌었지만 결국 겉표지 그림의 인물이 등에 짊어지고 있는 라이플이나 손에 끼고 있는 탐지기 같은게 나오지 않는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고. 표지 삽화가가 낚시 저자인 터틀도프나 출판사가 아닌 아시모프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이 책을 구매한 이유가 아시모프가 추천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라고.

  1. 사실 단편은 그 전에도 꽤 많이 썼다. 가지 않은 길같은 작품이 대표적.
  2. 그 유명한 "알라는 위대하시며 무함마드는 그분의 예언자다!"가 "주님은 위대하시며 그리스도는 그분의 아들이시다!" 가 되었다!
  3. 중간에 나오는 언급에 의하면 성자 무함마드는 나중에 히스파니아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4. 이라기 보다는 정확히는 프랑크 왕국 풍의 수십, 수백 개의 제후국들. 흑색 화약도 이들이 먼저 사용한다. 비잔티움 제국의 손에 넘어간 순간 활용성이 더욱 높아졌긴 했지만.
  5. 13세기 중엽쯤 되면 아예 소아시아를 통째로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당시나 전성기 때나 비잔티움에게는 발칸 반도의 영토보다 소아시아 영토가 경제적으로 훨씬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후 만성적인 재정 부족에 시달리며 시망.
  6. 일종의 황제 직속 정예 수사관이자 비밀 첩보원이라 생각하면 된다
  7. 알렉산드리아, 북이탈리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카프카스 까지
  8. 다뉴브 강 유역과 코카서스 지역까지 진출해있다. 작중 비잔티움과 사산조 페르시아가 서로를 제외하고 가장 경계하는 대상들로 나와 있으며 이쪽에서는 비잔티움과 사산조 페르시아가 워낙 강력하게 세력을 구축하고 있기에 있기에, 아마도 중앙아시아-동유럽 쪽으로만 진출한게 아닐까 싶다. 바꿔서 말하면 이 세계에서도 러시아는 유목민의 치하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작 중 명칭이 주르첸이라는걸로 보면… 여진족?! 하지만 11세기에 들어 페체네그, 우즈같은 유목민족들도 다뉴브 강을 자주 넘어 비잔티움 영역에 들어왔고, 이 시기에 다뉴브 유역부터 키예프까지 러시아와 위와 같은 유목민이 공존했던 시기가 상당히 길었던 것을 보면 오히려 그 쪽에 가까운 묘사일 수 있다. 다뉴브 유역의 유목민과 코카서스의 유목민이 동일한 세력권이라는 묘사도 등장하지는 않는다.
  9. 나이만 족
  10. 엄밀히 말하면 '불가리아 제국'. 보다 정확히 하면 '1차 불가리아 제국(First Bulgarian Empire)' 이라 하는 것이 옳다...만,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편집자가 추가한 각주임을 고려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