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뉴스

리투아니아어 : Vilnius 빌뉴스
벨라루스어 : Вільня 빌냐
폴란드어 : Wilno 빌노
러시아어 : Вильнюс 빌뉴스 (예전에는 Вильно 빌노로 불렀다)
독일어 : Wilna 빌나
문화어 : 윌뉴스
에스페란토 : Vilno 빌노
billnews라고 쓰는거 아니다

1 개요

Vilnius_river.jpg
리투아니아수도인 동시에 빌뉴스 주의 주도이기도 하며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에서 북동쪽 380km, 벨라루스의 수도인 민스크에서는 북서쪽 180km 지점에 있다. 네무나 강의 지류 빌리야 강 양안에 위치하며 빌뉴스란 이름 역시 빌리야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발트 3국의 수도 중 유일하게 바다와 면하지 않은 수도. 옛 이름은 빌나(Vilna)로 도시의 면적은 401제곱킬로미터이며 인구수는 2010년을 기준으로 560,190명이다. 별명으로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던 시절 붙여진 북쪽의 예루살렘과 리투아니아의 아테네가 있다.

양차대전 사이 폴란드계가 55% ~ 65%(최대 12만명) 가까이 치달은 적도 있으나 2001년 기준으로 리투아니아계가 60%인 반면 폴란드계는 20%로 10만명 전후다.[1] 30~40%를 차지하던 유대계는 거의 사라졌고, 러시아계가 14%다.

2 역사

원래는 발트인 정착촌이었으나 11세기에 유대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12세기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323년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가 성채를 세우면서 교황 요한네스 22세에게 보낸 서한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1387년 폴란드 국왕을 겸하게된 리투아니아 대공이었던 요가일라가 도시자치법에 따른 권리를 부여하였고 이때 빌뉴스는 리투아니아인들 외에도 벨라루스인 폴란드인, 독일인, 유대인들이 모여살고 있던 국제도시로서 문화의 용광로같던 곳이었다. 그리고 이런 영향으로 이 도시에는 가톨릭부터 시작해서 개신교, 정교회, 유대교 교회에 과거 타타르인이 들어왔던 영향으로 이슬람 모스크까지 들어서 있다. 별로 크지도 않은 도시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시설물은 거의 다 모여 있는, 말하자면 교회의 종합전시장.

1503년부터 1522년까지 9개의 성문과 3개의 성탑으로 된 성곽이 세워졌고 1544년에 폴란드 국왕이었던 지그문트 2세가 잠시나마 궁정을 빌뉴스에 두었다. 1579년에는 빌뉴스 대학교가 설립되어 동유럽북유럽 지성의 산실 역할을 했으나 1655년 대홍수 당시 러시아군이 빌뉴스를 함락시켜 약탈과 방화를 저질렀고 그 여파로 많은 주민들은 학살되어 19세기 초까지 성장이 주춤해졌다.

1795년 폴란드 분할 당시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면서 러시아가 설치한 구베르니야의 주도가 되면서 다시 성장하기 시작해 북유럽에서 3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때 1915년에서 1918년까지 독일군에 점령되었다. 1920년 적백내전 당시 소련폴란드에 패하고 새로 독립한 리투아니아에 이 도시를 넘겨주었지만, 10월 9일 루찬 젤리고프스키 장군이 이끄는 폴란드군의 리투아니아·벨라루스 사단이 연출된 쿠데타를 통해 빌뉴스를 장악하였다. 빌뉴스 시와 주변 지역은 '중앙 리투아니아'라는 독립된 국가로 선포했다가 1922년 2월 20일 합병해버렸다. 개버릇 어디 남못준다 이후 리투아니아인들은 폴란드라 하면 이를 갈며 싫어하게 되었다. 리투아니아는 빌뉴스를 정식수도이자 수복해야 할 땅으로 선포하면서 임시수도를 카우나스에 두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당시 독일과 소련이 서로 체결한 비밀조약에 따라 1939년 9월 19일 빌뉴스는 소련이 장악하고 합병하였다. 1939년 10월 10일 소련의 최후통첩을 받은 리투아니아는 빌뉴스를 얻는 대신 소련이 리투아니아 각지에 군사 기지를 세우는 것을 허락하였다. 곧 수도를 카우나스에서 빌뉴스로 이전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미처 끝내기도 전인 1940년 6월 소련이 리투아니아 전국을 점령하면서 빌뉴스는 새로 설립된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하지만 1941년 6월에는 빌뉴스가 독일군에 함락되어 구시가에는 유대인 주민들을 위한 게토가 두 군데 세워졌고 빌뉴스의 유대인 인구의 95% 정도가 독일군과 그들에게 협력한 리투아니아인들에게 살해당했다. 1944년에는 폴란드 향토군과 소련군이 차례로 빌뉴스를 장악하였다. 빌뉴스는 다시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로 소련에 합병되었고, 종전후 소련은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의 폴란드인들을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농촌의 리투아니아인들과 소련의 타 공화국에서 러시아인들이 도시에 이주하면서 전후 빌뉴스는 주민 구성, 문화, 전통이 완전히 바뀌었다.

1990년 3월 11일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회의가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 리투아니아 공화국을 회복시켰다. 이에 소련은 1991년 1월 9일 군 병력을 투입하여 이에 대응, 1월 13일에 국립 라디오·텔레비전 건물과 빌뉴스 텔레비전 철탑을 공격, 그 과정에서 민간인 14명이 죽고 700명 이상 심한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같은해 8월에 소련은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였고, 이후 리투아니아의 수도로써 역할을 해오고 있다.
  1. 그러나 빌뉴스 교외지역에는 지금도 폴란드계가 꽤 많이 산다. 소련 붕괴 직전에는 한때 폴란드인 자치지역을 선포하기도 했다. 빌뉴스 시가지를 포위한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