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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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의 복합공연장. 홈페이지

1978년 개관 이래 1988년 예술의 전당 음악당이 개관하기 전까지 10년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장의 역할을 했으며, 각종 정부 행사는 물론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1] 등 각종 굵직한 행사와 공연을 도맡아왔다.

그러나 1988년 예술의 전당이 개관한 이후 주요 공연이 모두 예당으로 옮겨가 세종문화회관의 위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2003년 대극장을 대대적인 리모델링하였으며, 이후 소극장을 리모델링하여 세종M씨어터로 개편하였으며, 체임버홀을 추가 건립하였고, 그밖에도 현재 미술관을 가지고 있다.

서울남산국악당[2]도 운영하고 있었으나 2014년에 남산골한옥마을로 운영을 넘겼다.

현재 세종문화회관 산하에 서울시무용단, 국악관현악단, 오페라단, 합창단 등 여러 예술단체가 있다. 다만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경우 이명박이 서울 시장시절 정책적으로 추진하여 별도의 재단으로 출범하면서 세종문화회관에서 독립했다.[3] 대부분의 클래식 공연이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되는 상황에서 서울시향 만이 지속적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여 그나마 세종문화회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으나, 독립 이후에는 음향상의 문제로 챔버홀에서 연주하는 실내악공연만 세종에서 열리고 일반적인 관현악 연주는 예술의 전당에서 대부분 공연하고 있는 상황이다.

2 역사

원래 세종문화회관 자리는 서울시민회관이 있었다.[4] 서울시민회관은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연장이었는데 1972년 12월 2일 화재 사고[5]가 발생하여 서울시민회관이 전소되고 말았다.[6] 당시 우리나라에는 서울시민회관 이외에는 이렇다할 대형 공연장이 없던 상황이었다.[7][8] 때문에 서울시민회관을 대체할 종합공연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결국 서울시민회관 자리에 세종문화회관이 건립되어 1978년에 개관하였다. 시공사는 대림산업이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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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회관(1961년) 밤을 통곡한다라는 영화 제목이 걸린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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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가 발생한 서울시민회관(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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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중인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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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 당시의 모습(1978년)

대강당은 처음에는 4000석 규모로 지어졌다가 곧 3822석으로 줄여 운영되었다. 무대의 전면은 오페라 공연시 오케스트라 피트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시설의 노후화로 2003년 1월 13일부터 전면적인 개보수에 들어가 1년여 후인 2004년 2월 재개관했다. 좌석을 고급화하고 좌석간 간격을 넓혀 객석규모는 3070석으로 크게 줄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권위주의를 상징하던 시설물들을 많이 줄였다. 예전에는 VIP 전용 좌석, 출입문 이런 것들이 잔뜩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대폭 줄였고 지금은 아예 활용하지 않아서 흔적만 남아 있다.[10]

3 건축물

개관 당시 대극장, 소극장, 전시장까지 잘 짓긴 했는데, 문제는 대극장. 박정희 대통령이 남북 통일시 임시 국회의사당으로 써먹으려고 괜히 크게 지었다는 설도 있는데, 세종문화회관보다 몇 년 앞서 완공된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이미 통일을 대비한 규모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 루머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건축물 자체로서는 독재자의 과시욕을 드러낸 거석구조에 무의미한 문화적 상징물의 차용이라는 평과 그래도 도시 중심에 이정도 규모의 문화 시설을 한국 고유의 문화적 상징물들을 잘 섞어서 지은 것 아님?이라는 의견이 대립한다.

어쨌거나 당시 서울시민을 위한 공연예술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던 것은 사실이다.[11]

다만 어느 쪽이든 세종문화회관 중앙의 광장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듯. 명색이 광장인데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12]

대극장이 지나치게 크다든지, 광장에서 계단을 지나지 않고는 들어갈수 없다든지 하는 것은 지은 때가 군사문화의 강압적인 70년대라는 것을 간과한 평가이다. 당시는 그런 것 무시하고 과시하기 위한 거대한 건축물을 짓던 때이고, 미술, 건축, 공연, 음향 등 관련 전문가의 평가보다 시장 장관 대통령 등 정치인의 평가와 지시가 우선되던 때이다. 장애인 배려 같은 게 있지도 않았고. 대극장만 해도 당시엔 너무 크다는 (문화 생활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던 시절이라 객석을 다 채울만한 규모의 공연이 드물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문화를 즐기는 층이 늘어난 지금 보아서는 너무 크다 할 정도 규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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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음향 문제

개관 이후 전문 클래식 공연장으로는 미흡한 음향으로 까여왔다.[13] 애초에 전문 클래식 콘서트홀이 아닌 다목적홀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음향적인 고려가 미진해 여러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음향상 문제점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잔향 부족이다. 잔향이 매우 짧아 사막의 울림이라는 악평을 듣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의 잔향이 짧은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홀의 구조가 음향학적으로 좋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넓적한 홀의 구조상 홀 측면이 충분한 잔향을 반사히지 못한다. 또 지나치게 큰 홀 규모, 천장의 형태, 거대한 2, 3층 객석계단의 존재 등 여러가지 난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3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면서 대극장에 마이크와 스피커를 이용한 음향보조시설을 설치하여 다소 개선되긴 했지만 홀구조상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근본적인 개선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그놈의 음향상태는 전국구적으로 까이고 있다.

대극장의 파이프오르간이 한국 최대[14][15]라는 건 음향상태 까이는데 묻혔다. 지못미. 게다가 그놈의 음향상태는 새로 지어진 예술의 전당이나 LG아트센터 같은 곳의 우수한 음향상태와 비교되고 있다. 게다가 리모델링하기 전에는 에어컨 소리가 커서 오케스트라가 조용해지면 정적 대신 에어컨 소리가 흐르곤 했다. 고쳐도 문제면 그냥 포기하는게 어떨까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클래식 공연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실정이다. 오케스트라 공연의 경우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은 정말 공연 악단과 공연의 질부터 넘사벽 수준으로 차이가 난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단체였던 서울시향[16]만 꿋꿋이 세종문화회관을 지켰지만, 정명훈이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이후 서울시향도 대부분의 공연을 예술의 전당에서 소화하고 있는 실정이 되었다. 정명훈 상임지휘자는 서울시향의 전용홀 건립을 지속적으로 주문해왔다. 현재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전문 오케스트라 공연은 일년에 한번 정도 열리는 서울시향 공연과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를 제외하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오페라 공연 역시 국립오페라단 등 대다수의 공연이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고 있고, 역시나 서울시오페라단만 꿋꿋이 버티고 있다. 오페라의 경우 전용 오케스트라 피트 등 시설 상의 이유로 더욱 예술의 전당이 선호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뮤지컬의 경우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하기 때문에 악기와 육성만 사용하는 클래식, 오페라 공연에 비해서 그나마 좀 낫다지만, 역시나 광활한 객석 덕분에 소리가 울리고, 무대가 보이질 않으니 뮤덕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세종에 올라가는 뮤지컬은 주로 아이돌 위주의 캐스팅이라 카더라

설상가상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전문 공연장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예술의 전당에 이은 옵션으로서의 입지도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순수 클래식 공연장으로는 최신 시설이 갖추어짐은 물론 파이프오르간까지 설치되어있는 롯데콘서트홀과 수도권 지역의 고양 어울림누리나 성남아트센터 등이 뛰어난 음향으로 정평이 나있어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유치하고 있는 실정이고, 뮤지컬 공연장 역시 LG아트센터 등이 뛰어난 시설과 음향으로 각광받고 있다.

다만 2000년대에 새로 지어진 체임버홀은 규모도 작은데다 음향에 신경써서 지었기 때문에 소리가 좋은 편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향만 해도 정기연주회는 절대 세종 대극장에서 하지 않고 예술의전당에서 소화하지만, 단원들의 실내악 연주회 시리즈 만큼은 거의 모든 연주를 이곳 체임버홀에서 소화한다. 또한 예전의 소극장이었던 M씨어터 역시 리모델링 이후 음향이 괜찮은 수준이다.

5 기타

여담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3.1운동 관련 연설을 여기서 하지 않았다고 조선일보에서 박정희 죽이기 및 유서깊은 건물을 무시한다고 주장하다가 동아일보에선 이 건물의 노후화를 기사로 써서 충분히 낡았으니 노무현 대통령이 그럴만하다"는 투로 기사를 쓰며 이런 낡은 시설에서 연설 안 한다고 뭐라던 조선일보를 은근히 까버린 적이 있다. 조중동 이러지만 은근히 서로 원수지간입죠

2013년에 동아일보와 SPACE가 선정한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에 선정되지 않았다. 양 측 모두 20위까지 세는데 두 곳 모두 21위에 선정됐다고.(...) # 다행인 건가 그거?

2015년 3월 5일에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2016년 2월 17일자 sbs 뉴스에 의하면 어처구니 없는 갑질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어처구니가 없다. 갑질/무전취식

이승엽 사장 사과문
  1. 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번스타인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 충무로역 근처에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 안에 위치한 전통음악 전용 공연장이다.
  3. 그래도 서울시향 사무실과 연습실이 세종문화회관에 상주하는 등 아직도 밀접한 관계는 지속하고 있다.
  4. 1956년 건설 당시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회관으로 지으려고 했으나 반발에 부딪혀 서울시민회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참고로 시공사는 극동건설이다.
  5. 상당히 큰 화재사고로 사망 51명, 부상 7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날 MBC 10대가수 청백전이란 가요 프로그램 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기둥이 건물 두 배 높이로 솟아올라 서울 사대문 안에서 다 보였으며, 길 건너 정부종합청사까지 열기가 느껴졌다 한다. 이 때 일화로, 당시 '맹인 가수'로 유명했던 가수 이용복 씨는 화재가 발생하기 직전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도우미와 함께 행사장을 나왔는데, 이용복이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6. 여담으로 이 화재때문에 새로지어졌기 때문에 더이상 불이 나지 말라는 뜻에서 고전에서 화재를 막아준다는 뜻으로 쓰였던 박쥐 문양의 장식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 벽면 곳곳에 일부러 만들어 넣었다.근데 그 의미를 잘 설명하지 않아서 개관작으로 슈트라우스의 오페테라 박쥐를 공연해서 넣었냐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7. 때문에 화재가 일어난지 몇개월 후인 1973년에 내한한 아바도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렸는데, 당시 열악한 공연장 시설 때문에 아바도가 상당한 불만을 가졌다고 한다.
  8. 이 당시면 장충동 남산자락에 국립극장이 한참 건립 중이었고, 73년 10월에 개관하였다.
  9. 짓는 동안은 일제시대 부민관이었던 건물을 임시로 시민회관으로 다시 사용하였으며, 세종문화화관 완공 후에는 별관으로 쓰다가 현재는 서울시 의회 건물로 사용 중이다.
  10. 대표적인 예로 대극장 로비에 전시된 백남준 작품 뒤쪽을 감싸고 계단이 있다. 이게 원래 VIP룸으로 가는 전용 계단인데 지금은 VIP룸 자체를 안써서 가는 사람도 없고 계단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11. 1973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내한했을 때는 서울에 제대로 된 공연장이 없어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공연했는데 당시 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공연장 시설에 대해 크게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12. 미켈란젤로의 카피톨리노 광장은 언덕으로 올라간다는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계단을 최대한 완만하게 짓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쪽은...
  13.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을 했던 쿠르트 마주어는 음향상태를 보완하기 위해서 오케스트라를 최대한 앞으로 당겨서 배치했고, 그래도 마음에 안들어 공연 당일날 1악장이 끝나고 갑자기 퇴장해버리기도 했다.
  14. 세종문화회관 개관 당시에는 동양 최대였지만, 1987년에 중화민국 타이베이 국가음악청의 오르간에게 기록을 빼앗겼다.
  15. 독일 칼슈케사에서 제작하였으며 설치에서 조율까지 13개월이 소요되었다. 또한 독일인기사1400명을 포함하여 연인원4000명이 투입되었고 파이프만 8098개 건반은 6단이며 높이 11m, 폭 7m, 무게는 45t이다
  16. 현재는 재단으로 독립했지만 여전히 사무실과 연습실이 세종문화회관 내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