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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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夫人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손견의 딸, 손권의 여동생, 유비의 아내. 경극에 따르면 이름은 손상향(孫尙香).[1]

어린 나이에 유비와 정략결혼을 했으나, 결혼 기간은 몇 년 되지 않는다. 유비의 경력에 이혼을 남긴 유일한 여인.

2 정사

2.1 유비와 결혼

나이는 분명하지 않으나 손견이 192년에 죽었고 적벽대전이 일어난 208년에 손권이 26세였으니 손부인은 당시 17~26세 사이였다. 대체로 20세 전후로 보는게 타당할 듯. 그리고 유비는 당시 49세(...).

선주전에 따르면 유기가 병들어 죽자 많은 부하들이 유비를 추대해 형주목으로 삼고 공안(公安)을 다스렸다. 손권이 점차 이를 두려워해 여동생을 시집보내 우호를 굳건히 했다.

삼국지집해 선주전에 따르면 석수현 서남쪽의 수림산에서 유비가 손부인을 아내로 맞았다.

법정전에 따르면 당초, 손권은 여동생을 유비에게 시집보냈는데, 여동생은 재기가 있고 굳세고 사나워 여러 오라버니들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손책+손권+손익=손부인?

2.2 유비와 결혼 후

연의로 알려진 이미지와 다르게 실제 손부인은 유비를 싫어했다. 오빠의 권세를 등에 업고 동맹국에서 깽판치는 무개념 공주였던 것. 당연히 유비도 그런 손부인을 꺼려했다.

법정전에 따르면 손부인의 계집종 백여 명이 모두 칼을 잡고 시립하니 유비가 매번 내실로 들어갈 때마다 내심으로 늘 두려워했다. 밀덕후

법정전에 따르면 제갈량이 대답했다.

주공께서 공안(公安)에 계실 때 북쪽으로는 조조의 강성함을 두려워하고 동쪽으로는 손권이 핍박함을 꺼렸으며, 가까이는 손부인이 곁에서 변고를 일으킬까 겁내시었소.

화양국지 유선주지에 따르면 이에 법정은 유비에게 손부인을 오로 돌려보내도록 권하였다.

삼국지집해 선주전에 따르면 잔릉현의 치소는 옛 성이다. 유비의 손부인은, 손권의 여동생으로, 다시 이를 보수했다.

삼국지집해 선주전에 따르면 손부인성은 공안현 서쪽, 잔릉현성 동쪽에 5리에 있으니, 유비의 손부인이 쌓았다. 손부인과 유비가 서로 믿지 않아, 따로 이 성을 쌓고 여기에 거주했다.

2.3 유비와 이혼

유비가 입촉하던 시기에 손부인은 오로 돌아갔다. 거짓 편지 때문에 돌아갔다는 기록은 없고 그냥 손권이 오로 돌아오라고 배를 보내자 냉큼 떠났다.

조운전에 주석으로 달린 조운별전에 따르면 유비가 익주로 들어가며 조운에게 유영사마를 겸하게 했다. 이때 유비의 손부인은 손권의 여동생으로 교만하고 횡포하여 오의 관리와 병사들을 여럿 거느리고 거침없이 법을 어겼다. 유비는 조운이 엄중하니 필시 이를 정제할 수 있으리라 여겨 특별히 내부의 일을 맡겨 관장하게 했다.

목황후전에 주석으로 달린 한진춘추에 따르면 유비가 익주로 들어가고, 오나라는 사자를 보내 손부인을 맞으려고 했다. 손부인은 태자를 데리고 오나라로 돌아가려고 했다. 제갈량은 조운에게 병사를 지휘하도록 하여 장강을 끊어 태자를 남도록 하였다.

조운전에 주석으로 달린 조운별전에 따르면 손권은 유비가 서쪽을 정벌한다는 말을 듣고 배들을 대거 보내 여동생을 영접하게 했는데, 손부인이 은밀히 유선을 데리고 오로 돌아가려 하니 조운이 장비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강을 가로막고는 유선을 구해 돌아왔다.

2.4 유비와 이혼 후

목황후전에 따르면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손부인은 오나라로 돌아갔으므로, 신하들의 권유로 유비는 목황후와 재혼한다. 재혼을 고민할 때 목황후의 죽은 전남편 유모가 자신과 동족이라는 것만 고려하지 손부인의 존재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삼국지집해 선주전에 따르면 이릉대전 이후 오가 화친을 구하고 나서, 오왕 손권은 곧 그의 여동생 손부인을 보내 촉한으로 돌아가게 했다. 난강에 이르니 유비가 죽어, 손부인은 이에 강에 뛰어들어 죽었다. 토박이가 이를 불쌍히 여겨 교기에 대(台)를 쌓아 제사 지냈다. 교기는 무호현 서쪽 7리 강 가운데로, 물가 위에 영택부인사와 영택부인묘가 있으니, 속세에선 유비의 부인인 손권의 여동생 손부인을 이곳에 장사지냈다고 대대로 전한다.

유비에게 오만하게 굴었으면서 유비가 죽자 강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교기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의 신빙성에 대해서 학자들이 진지하게 키배를 벌였다. 노필은 손부인의 절개와 죽음을 어떠한 사서에서도 싣지 않았지만 민간에서 전해져서 참되었다고 했다. 고염무는 손부인이 오로 돌아간 후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니 교기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망령되었다고 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정사와 다르게 유비를 진심으로 사랑한 여인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손견의 딸이지만 손책, 손권과는 배다른 남매다. 언니 오국태의 동생인 동생 오국태의 딸.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름이 손인(孫仁)으로 나오지만, 사실 이건 손권의 이복동생인 손랑의 별명이다. 연의에서 잘못 알고 집어넣은 듯하다.

손권과 주유는 손부인과의 결혼을 핑계로 유비를 오나라로 데려와서 죽이거나 억류하려고 했다. 유비와 조운이 오로 향하기 전에 제갈량이 조운에게 중요할 때 펼쳐보라고 주머니 3개를 건네준다. 여우누이? 조운은 결정적일 때마다 주머니를 열어서 계책을 사용하고 주유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다만 이 부분은 대부분 창작으로 오국태와의 연회장으로 쓰인 감로사도 뒤에 만들어졌다. 유비와 손권이 소원을 빌며 각각 칼로 내려쳤다는 시검석도 연의의 창작. 그런데 현재 진강 감로사 초입에는 그 시검석이 현존한다(...). 당연히 낙봉파처럼 나중에 만들고 갖다 붙였을 것이다.[2]

손부인은 괄괄하고 기가 센 성격으로 무장들인 오빠들 사이에서 커서 자신도 이를 따라해서 시녀들을 무장시키고 병정 놀이를 즐겨했다고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유비가 시녀들이 칼차고 다니는 것을 두려워하자 평생 전장에서 산 남자가 잠자리에 칼이 있는 것을 무서워하냐고 웃으면서도 유비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시녀들의 무장을 해제시킨다.

마지막에는 암살자들을 보내서 죽이려 하지만 조운의 무력이 워낙 뛰어난데다가 그 사이에 유비에게 홀딱 반해버린 손부인이 "니들이 감히 내가 남편 따라 가는 길에 방해를 해?"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대실패. 낚시하려다가 여동생만 털린 손권만 지못미 수준이 되어버렸다(...).

유비가 입촉하자 손권은 형주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그 전에 인질처럼 되어버린 여동생을 되돌려 받기 위해 계략을 써서 어머니 오국태가 아프다는 거짓 편지를 보낸다.

손부인은 어머니의 병문안을 하러 오나라로 떠나는데, 하필 이 때 장래에 촉한을 구하기 위해서 유비의 아들인 유선을 오로 데려가려고 한다. 그러나 눈치 없는 조운장비가 나타나 가로막은 탓에[3] 재앙거리 유선만 도로 돌려보내고 혼자 오나라로 가버렸다.

몇몇 판본에서는 조운이 이 장면에서 손부인의 시녀들을 상대로 무위를 떨치는데, 그래도 여자라서 그런지 시녀들을 칼이나 창으로 참살하는 장면은 없으며 몸싸움을 벌이는 수준이다.

오로 돌아간 뒤에 유비를 기다리다가 유비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오로 쳐들어오자 누구보다 유비의 건업 입성을 바랐으나 이릉대전 뒤에 유비의 사망 소식을 듣자 장강에 투신자살한다.

4 기타

손부인과 유비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불임일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부부 사이가 나쁜게 원인으로 추정된다.

사실 손부인이 애를 낳았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데, 감부인은 사실상 본처 역할을 하긴 했지만 명목상은 이라 유선이 즉위한 뒤에야 정처로 여겨지고 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손부인이 유비의 아들을 낳았다면 동오 측에서는 "아두는 서자니까 무효고, 손부인이 낳은 아이가 적자이므로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고 촉한에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진짜 이랬다면 차라리 유선같은 멍청이가 황제 안되니 야! 신난다~ 사실 동오로서는 정처로서 손부인을 시집 보냈으니 그 자손을 후계자로 해야 한다는 정도는 충분히 정당성이 있는 요구이며 동오의 이익에도 부합된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손부인이 애도 안 낳고 그냥 이혼해서 돌아간 것이 촉한에게 크나큰 불행 다행이였다.

5 미디어 믹스

  1. 하지만 이 이름은 후대의 창작으로 실제 그녀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2. 참고로 중국에는 시검석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오왕 합려가 칼을 시험하기 위해 내려쳤다는 돌이고 다른 하나는 유비와 손권의 것.
  3. 물론, 농담이니 취소선을 그어놓은 것이다. 조운과 장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주군의 유일한 혈육이니까 반드시 지켜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