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정종철?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 (좌측이 이만수, 우측이 김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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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 정근우가 열심히 구르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신다(...)
KIA 타이거즈 No. | |
쇼다 고조(正田 耕三) | |
생년월일 | 1962년 1월 2일 |
국적 | 일본 |
출신지 | 와카야마 현 와카야마 시 |
학력 | 와카야마 상업고등학교 |
포지션 | 2루수 |
투타 | 우투양타 |
프로입단 | 1984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 2순위 지명 |
소속팀 | 신일본제철 히로하타 경식 야구부(1981~1984)[1] 히로시마 도요 카프(1985~1998) |
지도자 | 히로시마 도요 카프 1군 수비 & 주루코치(1999)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1군 수비 & 주루코치(2000~2004) 한신 타이거즈 코치(2005~2007) SK 와이번스 2군 종합코치/1군 타격코치(2009) 오릭스 버팔로즈 1군 타격코치(2010~2011)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2015) 한화 이글스 육성군 수비코치(2016)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2017~현재) |
1 소개
현재는 KIA 타이거즈 1군타격코치로 활동하고 있고 김성근감독이 맡았던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에서 타격코치 및 육성군 수비코치를 맡았었다. 선수 시절에는 오랜 기간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2루를 지킨 프랜차이즈 선수였고, 은퇴 뒤에는 여러 프로 팀에서 지도자로 활동했다.
2 현역 생활
고교 졸업 후 일본의 사회인야구팀인 신일본제철 히로하타 경식 야구부에서 활약하여 1984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출전, 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1984년 드래프트 2위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하여 주전 2루수를 차지한다. 프로 3년차인 1987년에는 시즌 최고 타율인 3할 3푼 3리를 기록하여 타격왕 타이틀을 기록 하지만 이 해 홈런은 단 한 개도 치지 못했다! 이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유일한 무홈런 수위타자 기록이다. 히로시마가 그때 쓰던 홈 구장인 시민구장의 작은 크기[2]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며, 컨택과 빠른 발을 앞세운 그의 플레이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이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3할 4푼의 시즌 최고 타율을 기록하면서 2년 연속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989년 34개의 도루를 기록하여 데뷔 후 처음으로 도루왕에 등극했고, 1988년과 1989년에 2년 연속 베스트 나인에 선정, 1987년부터 1991년에는 5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998년에 통산 1546안타, 146도루, 2할 8푼 7리의 타율, 44개의 홈런을 기록하여 현역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3 지도자 생활
이듬해인 1999년에는 친정팀에서 타격 코치를 지냈다. 2000년 ~ 2004년에는 오사카 긴테츠 버팔로즈의 수비 주루·타격 코치를 지냈고, 2005년부터 3년간 한신 타이거즈의 타격 코치를 지내는 등 현역 은퇴 후 여러 팀에서 코칭 스태프로 활동했다.
2008년에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고, 같은 해 가을에는 한국 프로 야구인 SK 와이번스의 추계 캠프에 임시 코치로서 참가, 이듬해인 2009년부터는 2군 코치로 취임했다. 이후 1군으로 승격하여 코치로 활동하다가 2009년 시즌 종료 후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이 이끄는 오릭스 버팔로스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2011년 8월 26일에 팀의 타격 침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고. 본부장보를 맡았다가 2014년에 11월에 김성근의 부름을 받고 한화 이글스와 계약하였다.
여름에 2015년 8월 한화 타선이 극도로 식물화되자 어느 정도 비판받은 건 있으나, 한화로 부임한 이후 팀의 타격 성적을 보면 확실히 나아졌다. 특히 팀 사사구 갯수가 리그 독보적인 1위로 뛰어올랐는데, 여태까지의 한화 타선에서는 볼 수 없었던 타자들의 인내심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얘기. 덕분에 낮은 팀 타율과 적은 홈런 갯수에도 불구하고 팀 OPS는 시즌 초부터 꾸준히 중위권을 유지중이다.
이같은 성과 때문인지 니시모토 다카시 투수코치, 후루쿠보 겐지 배터리코치 등 자신과 함께 한화에 입단한 대다수의 일본인 코치들이 이임되는 와중에도 한화에 남아 2016년에도 코치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1군 타격 코치가 아닌 육성군 수비 코치라는 다소 의아한 보직을 맡았다.
그런데 총액 130만 달러에 영입한 외국인 타자 윌린 로사리오가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육성군 코치였던 쇼다를 곁에 붙여줬다. 관련기사. 그리고 5월 들어 로사리오가 약점으로 지적받던 변화구에 대한 대처능력이 나아지는 기미를 보이더니, 6월 이후 타격이 대폭발하면서 한화 이글스에서 6년 만에 나온 30홈런 타자이자, 송지만 이후 14년만에 나온 30홈런 100타점 타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사진은 화제를 불렀던 빨간 의자 노란 밴드 훈련.
시즌 후반기부터 김성근 감독이 살려조 문제와 성적 부진으로 거센 비판을 받는 가운데, 콘무원이라 불리는 김성근 사단 가운데 쇼다 코치는 비교적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런데 2016 시즌이 끝난 뒤 재계약하지 않고 바바 토시후미, 오키 야스시 코치와 함께 팀을 떠났다.
단순히 코치 한둘의 이탈이 아닌 김성근 사단이라 불리는 이들이 일제히 사의를 표하면서, 시즌 내내 불거진 김성근 감독의 독단적인 팀 운영에 회의를 느끼고 떠났다는 기사가 떴다. 관련 기사 당연히 한화 팬덤은 발칵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