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th=50 계열 회사 소속 아티스트 | |||
40px 소속 가수 | |||
강타 | S.E.S. | BoA | 동방신기 |
트랙스 | 천상지희 | 슈퍼주니어 | 장리인 |
제이민 | 소녀시대 | 샤이니 | f(x) |
EXO | 레드벨벳 | NCT |
"저희 슈퍼주니어에게 있어서 팬들에게 "서비스"란 없는 것 같아요. "팬사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이특
슈퍼주니어 (한글) / SUPER JUNIOR (영문)
일반적으로 슈주나 SJ 로 불린다. 우리는 슈퍼주니-어 예요!라는 독특한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있다.
width=250 | ||||||
탈퇴 | ||||||
이특(리더) | 희철 | 예성 | 강인 | 신동 | 한경 | |
성민 | 은혁 | 시원 | 동해 | 려욱 | 규현 | 기범 |
려욱, 규현, 강인, 은혁, 동해, 예성, 희철, 이특, 시원 |
2015년 9월에 발표된 10주년 기념 스페셜 리패키지 앨범 <MAGIC> 활동 당시의 멤버 구성 |
50 음반 대상 | ||||
동방신기 <주문-MIROTIC> (2008) | → | 슈퍼주니어 <Sorry, Sorry> (2009) | → | 소녀시대 <Oh!> (2010) |
소녀시대 <Oh!> (2010) | → | 슈퍼주니어 <Mr. Simple> (2011) | → | 슈퍼주니어 <Sexy, Free & Single> (2012) |
슈퍼주니어 <Mr. Simple> (2011) | → | 슈퍼주니어 <Sexy, Free & Single> (2012) | → | EXO <으르렁> (2013) |
" />?width=50 아시안 뮤직 어워드 올해의 가수상 | ||||
동방신기 (2006) | → | 슈퍼주니어 (2007) | → | 빅뱅 (2008) |
서울가요대상 대상 | ||||
소녀시대 Oh! (2010) | → | 슈퍼주니어 Mr. Simple (2011) | → | 싸이 강남스타일 (2012) |
목차
1 개요
안녕하세요 슈퍼주니어입니다. 우린 슈퍼주니~ 어에요!!!우리는! 엘! 프에요!!![1]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 '아시아의 등용문' 이라는 타이틀로 데뷔했다. 첫 데뷔 무대에 1000명이 넘는 팬들을 운집한 이례적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2005년 11월 6일에 데뷔했다. 데뷔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현역 아이돌 중에서는 원로급이 되었다. 현재 활동하는 2세대 남자 아이돌 중 국내 뿐 아니라 해외 팬덤의 규모 탑 시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 중화권, 동남아를 아우르는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2012년 정규 6집을 발매했을 때 이례적인 음반 판매량[2]을 기록했으며 골든디스크 음반 대상 최다 수상자[3]이다. 특히 유럽권과 범아시아권에서의 인기가 대단한데 해외 팬들은 한국의 특정한 가수만 좋아하기보단 K-POP의 문화 자체를 좋아하는 특성에 반해 이례적으로 코어 팬덤이 빠르고 넓게 형성되었다.[4]
월드투어 SUPER SHOW를 통해 아이돌 최초 콘서트의 브랜드화를 이룩했으며, 2015년 7월 기준으로 총 119회를 기록하고 있다.
한류의 인기를 해외에서 개척한 그룹이라는 수식어는 과장이 아니다. '슈퍼주니어'는 단순한 그룹을 뛰어넘은 하나의 명품 브랜드 가치로 성장했다. 동남아권 뿐만 아니라 특히 중화권에서는 역대 최고의 임팩트를 가진 전국구 가수. 한국에서 H.O.T.가 콘서트를 하는 날에는 조퇴 금지령을 내렸던 것처럼 중국에서는 슈퍼주니어가 콘서트를 하는 날에는 도로 통제령을 내렸다. 단독 콘서트가 아닌 게스트 출연만으로 8만명에서 10만명의 현지 팬들을 운집하는 파워를 가진 유일한 한국 그룹. 현재도 콘서트 암표 가격의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으며 중화권에서 중화권과 한국의 가수를 통틀어 신인상과 대상을 함께 수상한 최초의 가수다. 이는 전무후무한 기록인데 일부 한국 가수들도 중화권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신드롬' 으로 부르는 경우는 처음이었고, 시상식은 자국에서 활동하는 중화권 가수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2014년 들어서는 중국의 최초 음악 순위제 프로그램인 '방상방'에서 한국인 멤버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유닛 슈퍼주니어-M이 미니앨범 'Swing!'으로 2회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5][6] 의외로 한국에서는 슈퍼주니어의 아성이 굉장히 축소되고 저평가되고 있다. 심지어 일주일에 해외에서 상을 6개나 받았는데도 기사도 쓰지 않았으며 월드투어의 다양한 신기록은 언플조차 없다. 하지만 팬들은 최고와 대세는 다르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슈퍼주니어는 동방신기로 대표되는 2세대 아이돌[7]과 샤이니, 2PM으로 대표되는 3세대 아이돌의 간극을 연결한다. R&B와 소몰이 발라드가 유행했던 2005년 데뷔해 멤버들 간의 유대, 예능 출연, 충성도 높은 팬층, 해외에서의 인기로 살아남았으며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했다. 이수만 대표는 이에 대해 '이렇게까지 잘 될 줄 몰랐는데 놀랍다.'고 한다.
멤버들이 잘 까불고 활기가 있어 그룹명에 슈퍼를 넣었다고 한다. 규현이 슈퍼주니어에 합류해 정규 그룹으로 전환되었을 때 13명이었고 모든 멤버들의 이름은 2글자이다. 대형 그룹이라 멤버가 많기 때문에 2글자가 기억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팬클럽은 엘프(E.L.F.)이다.
원래는 일본의 로테이션 제도를 한국에 적용한 그룹으로 기획되었으나 팬들의 반발로 2006년에는 새 멤버 규현의 영입 후 정식 그룹으로 전환하였다. 1년마다 멤버 전원을 교체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등용문 같은 그룹이었다고 밝혔다.[8] 모든 멤버들이 참여하는 건 어렵지만 전원이 무대에 나오면 모든 멤버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댄스가 장관이다. 강인의 입대로부터 시작된 멤버들의 로테이션 활동 방식과 한경의 소송 등으로 13명이 13명의 완전체로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한경의 소송 이후 중국에서의 행보로 인해 한경의 탈퇴를 인정하게 되면서 13이란 숫자보다는 슈퍼주니어에 집중하자는 이야기도 대두되었다.
'동방신기 데뷔 후 SM이 연습생 2군을 정리하기 위해 한방에 내보낸 그룹'이라는 설이 한동안 정설에 가깝게 받아들여졌을 정도로[9] 멤버들 하나하나의 면면은 솔로로 데뷔해 대박을 낼 정도의 완전체라고 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예능에서 필사적으로 쌓아올린 '가끔 사고도 저지르는 친근한 옆집 형/오빠'의 이미지와 함께 멤버들 간의 시너지가 어울려 롱런하는 그룹으로 자리잡았다.
팬들 사이에선 슈퍼주니어에 덜 미친 녀석은 있어도 안 미친 녀석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멤버들도 인정하는[10] 현직 가요계 최고의 비글 그룹. 특히 희철은 슈퍼주니어라는 미친 녀석들 중에서 최고로 미친 녀석이라고 할 수 있다. 숙소 침대 외의 장소에서 잠들면 물벼락을 맞은 뒤 "상쾌해요"라고 외쳐야 하는 벌칙을 받는 게임과 데뷔 5년차에 후배의 대기실로 직접 찾아가 90도로 인사하며 신인 가수로 코스프레를 해야 하는 게임 등을 직접 개발해서 놀았던 일화도 유명하다. 휴가를 보내놨더니 슈퍼주니어 멤버를 수영장에 던지면서 본인들끼리 예능을 찍는 등 자타공인 최고의 비글미를 자랑한다. 이는 같은 소속사 선배였던 신화의 계보를 연결한다. 각종 예능에선 게스트가 없어도 멤버들끼리 던져놓으면 레전드 영상을 생성하지만 회사는 데뷔 초를 제외하곤 방송국에서 제의가 들어와도[11] 그 흔하다는 단체예능 출연, 단독 리얼리티 편성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간 아이돌에 출연했을 당시에는 토크 부분만으로 뒤에 코너를 촬영할 필요도 없이 분량을 충분히 뽑았다. 분량 충분히 뽑았으니 이제 가라는 말에 벌써 끝났냐며 게임하고 가고 싶다고 아쉬워했다.
슈퍼주니어-M의 정식 멤버인 헨리와 조미에 대한 이야기들이 팬들 사이에서의 뜨거운 감자다. 오랜 세월 헨리와 조미가 슈퍼주니어-M으로써 같이 활동해오고 SUPER SHOW 4를 시작으로 점차 콘서트에서의 참여지분도 높아졌으며, 헨리가 솔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팬덤 내부에서 헨리와 조미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멤버 교체의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 확실히 이 기회에 정리할 것인가, 예전과 상황이 달라졌으니 헨리와 조미를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12][13]
기획 당시의 취지에 맞게 MC, 개그, 연기, 뮤지컬 등 여러 방면으로 나가고 있는 멀티플레이 댄스 그룹이다. 멤버 수가 많다는 점을 강점을 살려 최초로 유닛 형태의 활동을 시도하기도 했다. 트로트 유닛을 시도했던 슈퍼주니어-T, 중화권을 노린 슈퍼주니어-M, 보컬에 특화된 유닛인 슈퍼주니어-K.R.Y, 멤버 은혁과 동해가 함께 하는 슈퍼주니어-D&E 행사 전문 유닛 슈퍼주니어-Happy 등 다양한 유닛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사건사고는 주기적으로 터지지만 오랜 생명력을 이어가며 팬덤의 규모는 줄어들지 않고 그룹의 충성도는 더 높아진다.
기획사가 의도한 바와 달리 스스로 생존하고 발전하는 잡초같은 생명력의 그룹. 10년차인 2015년까지 정상 장기집권 중이다. 다만 5인 시절의 동방신기의 2군으로 기획되었던 초기 콘셉트 때문인지 '보이그룹의 1인자' 나 'SM 내 1인자' 의 이미지보다 2인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는 H.O.T.와 신화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그러나 SM 매출의 공로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2013년은 앨범을 발매하지 않았고 콘서트 투어만 진행했지만[14] SM 실적 1위에 올랐다.# #
백댄서가 필요 없는 대형 인원이 한꺼번에 칼같이 움직이다가도 시시각각 변하는 안무 대형이 특징이다. 데뷔곡 'Twins'부터 'Sexy, Free & Single'까지 절도 있는 군무를 보면 독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요즘은 나이가 나이인지라 안무 중에 힘에 부쳐보일 때가 있지만 여전히 퍼포먼스 탑 시드 그룹이다. 'U' 안무 영상은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르며 화제를 낳기도 했다.#[15]
신비주의형 아이돌과는 다른 이 전략은 기획사의 의도보다는 멤버들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생명력을 얻었으나 이미지 소비를 통해 친근하고 쉬운 이미지와 살아남기 위해 예능에서 자극적인 면모로 사건사고 많은 그룹의 이미지에 가볍고 말실수가 잦은 이미지도 덧씌워졌다. 또한 신인 시절 뿐만 아니라 정상에 올라선 지금까지도 그를 이용한 PD와 연출자들의 자극적 프로모션에 희생양이 되고 있다.
데뷔 초기에는 TV를 틀기만 해도 나온다고 할 정도로 미디어 노출이 잦고, 공중파 및 케이블의 예능 및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했으나 예능라인[16] 멤버들의 군 입대를 기점으로 미디어 노출도 2012년을 기점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명실상부 예능돌과 MC돌의 면모가 드러난다.
메인보컬 3인방(예성, 려욱, 규현)[17]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차례로 1위를 석권하며 실력파 보컬로써의 입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예성의 부활 '사랑할 수록', 규현의 김동률 '기억의 습작' , 려욱의 '봉선화 연정' 은 주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대중들에게 큰 화제를 낳았다. 또한 복면가왕에도 출연해 자신들의 보컬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간 정규앨범의 타이틀곡은 유영진과 작업해왔으나, 7집 리패키지를 시점으로 그가 손을 뗀 뒤 나오는 곡들의 평가가 훨씬 좋아졌다.
특히 처음으로 유영진의 타이틀곡 참여가 없었던 10주년 기념 스페셜 앨범 타이틀곡 'Devil'은 소위 말하는 후크송의 느낌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타팬이나 일반인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2015년 11월 1일, 정규 5집 'Mr. Simple' 뮤직비디오를 통해 SM 남성그룹 최초로 1억을 돌파했다.링크
2 SM의 무성의한 매니지먼트
슈퍼주니어의 팬들이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에 제기하는 불만점으로 다음과 같은 점들이 있다.
2.1 중국 프로모션
슈퍼주니어 05의 데뷔 카피 '아시아의 등용문'과 슈퍼주니어 전 멤버 중국인 한경, 2008년에 만다린이라는 대놓고 중화권 시장을 노린 이름을 가지고 출범한 슈퍼주니어-M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BoA와 동방신기가 일본 시장 현지화를 노린 그룹이었다면, 슈퍼주니어는 그 시작부터 최초로 중화권 시장의 현지화를 노린 그룹이었다.[18] 그리고 그게 아주 잘 먹혀 들어가 단순히 '한류' 인기 그룹이 아닌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현지 그룹'으로 성장했다. 1집 미라클 때부터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해서 2008년쯤 중화권에선 이미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아이돌 그룹이었던 슈퍼주니어의 정식 멤버가 중국인이라는 것에 중화권 시장에서의 한경에 대한 인기는 치솟았다. 2008년 4월 8일 정식 데뷔를 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으며 '신인상'과 그 해 '대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물론 슈엠의 중국활동이 마냥 순항선을 탄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SM은 중화권 공략에 대한 체계나 지원이 부족했는지 멤버들은 마치 코디가 없는 것 처럼 같은 의상을 늘어지도록 입기도 하고, 헤어도 제대로 관리받지 못해 내내 머리를 기르는 등 고생을 했다. 또한 어느 정도 회화가 가능한 시원을 제외한 나머지 한국 멤버들은 언어의 장벽에 부딪쳐야 했고, 교통사고 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규현은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고생 속에서 몇 년간 시행착오를 통해 슬슬 SM 차이나가 운영에 대해 감을 잡음과 동시에 역대급 퀄리티로 돌아온 Super Girl 활동은, 2009년 연말 골든디스크 시상식 10일 후 소송을 걸고 잠적을 탄 한경의 행보로 인해 중단되었고, 소송 과정에서 치솟았던 중화권 내 언플과 혐한의 기류 때문에 남아있는 스케줄을 소화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소송 취하 과정 중 모종의 합의로 인해, 향후 활동은 중국 본토가 아닌 대만에서 하게 되었는데 [19], 같은 중화권 활동이기는 하나 본거지를 잃어버린 셈이 되었다. 그 후, 2년의 긴 공백 끝에 드디어 정규 2집 발매로 중국 본토 활동을 알렸으나, 회사는 더 이상 슈퍼주니어-M의 포지션을 중화권을 노리는 현지화 그룹이 아닌, 투어를 새롭게 하기 위한, 팬 미팅 형식의 활동으로 전락시켰으며 의상, 앨범 발매, 음원 발매, 활동 프로모션 등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음원은 공언한 시간을 한참 넘기고서야 발매되었고 점입가경으로 음원 발매 한 달 후에 앨범 발매일이 잡혔으며 2주 남짓한 중국 활동 (그것도 스케줄이라고는 음악방송이 전부인) 후 이벤트성 한국 활동을 몇 번 하고는 활동을 마무리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차트 1위 석권과 더불어 바이두 검색 차트 신기록, 연말 대상 최고 인기상 등을 거머쥐었지만 말이다. 물론 회사는 그 부분에 대해 조용했으며 두 번째 미니앨범 활동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슈주는 회사에서 기대치가 적었다고 공언한 바 있는 그룹이고, SM의 대대적인 언플에서도 비껴선 그룹이었지만, 슈엠은 조금 달랐다. 슈엠은 에셈의 중화권 공략의 실마리였고 그 계획이 구체화된 그룹으로 비록 대대적 언플을 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시장 진출의 메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아직도 넘사벽의 인기를 자랑하는 성장 가능성이 농후한 유닛을 방치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중국 시장 진출의 메인이며 현지화를 위한 중국 멤버들도 앞세웠으니 회사 입장에선 세대교체를 꾀함과 동시에 새로운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두 번째는 한경의 소송 여파와 더불어 연차가 있는 한국 멤버들의 군 입대 시점이 가까워지자 투자비용을 줄이고 손쉬운 캐시카우 중화권 분점만을 삼는 방식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사의 5년간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중화권 내 콘서트 수익 및 화제성 1위, 연말 시상식 대상을 휩쓰는 등 그 어느 팀보다도 막강한 기세를 자랑하고 있지만 슬프게도 그 성과에 비해 프로모션은 전무하므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2.2 단독 콘서트→SM TOWN 콘서트
해외 k-pop 열풍의 시초이자 중심에 서 있던 3집 'SORRY SORRY'의 흥행 이후, 슈퍼주니어를 보고 싶은 전 세계 각국 팬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특히 유럽 - 남미 - 북미에서는 서명 메일과, 각국 팬 페이지에서의 수요조사, 플래시 몹 등으로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슈퍼주니어의 단독 콘서트를 요청하고자 유럽 전역의 슈퍼주니어 팬들 수백 명이 개최한 플래시 몹은 황당하게도 같은 회사 여자 아이돌 그룹 이름으로 기사가 났고, 팬들의 요청과는 다르게 슈퍼주니어의 단독 콘서트가 아닌 소속사 식구 전체가 출연하는 SM 단체 콘서트가 개최되었다. 북미와 남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꾸준히 서명과 플래시 몹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단독 콘서트 요청을 했다. LA에서는 헐리우드와 센트럴 파크에서 슈퍼주니어의 콘서트를 요청하는 플래시 몹을 벌였으나[20] 또한 LA 역시 슈퍼주니어의 단독 콘서트가 아닌 SMTOWN 단체 콘서트가 개최되었다.
2.3 팬 사인회
07년도 이후 단 한 번도 단체(앨범 참여 전체 멤버) 팬 사인회를 개최해 준 적이 없으며, 그 마저도 적게는 2명 많으면 절반도 안 되는 인원인 5명으로 횟수도 타이틀-후속곡 활동에 거쳐 총 6 ~ 8번에 그쳤다. (그마저도 드물었으며 거기다 초동기간엔 잡아주지도 않았다.) 6집 활동 시기에 전설로 남은 신촌 팬 사인회는 유명한 일화.[21]
2.4 2014년 골든디스크
정규 7집 'MAMACITA (아야야)'가 2014년도 정규 음반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였으나...#[22] 이게 왜 소속사의 문제냐면 골디 측에서 명백한 오류를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속사는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 해 대상은 EXO가 수상했다. 소속사 입장에선 이미 인정받은 고참격인 슈퍼주니어가 아닌 신인격 EXO에게 상을 준다는데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2.5 외면받는 언론 관리
지난 2010년 강인 사건과 관련해, 수많은 찌라시 언론사들이 앞 다투어 조회수를 높이고자 악성 루머를 날조해 확인되지 않는 추측성 기사를 내보냈으나 경찰 기자회견 직전까지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가 '억울한 면이 많다. 진실이 아니다'라는 기사 하나를 내고선 입을 다물었다. 되려 진상규명과 목격자 정황 인터뷰를 소속사가 아닌 연예가 중계, 아침마당에서 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졌으며. 폭행 무혐의 판결에 관해서도 입을 닫았고 그 결과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확히 밝혀진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악성 루머와 기사들이 잔재한다.
2015년 D&E 유닛 활동 당시에는 스페셜 에디션 음원을 기사 한 줄 없이 조용하게 발매하면서 미친듯이 까였다. 당시 동해의 은혁의 SNS에도 관련 게시글이 올라오지 않았던 것을 보면 멤버들도 몰랐던 듯.
3 Label SJ
문서 참조.
4 멤버들의 병역 이행 및 컴백 시기
여느 아이돌에 비해 비교적 데뷔가 늦었던 83~85년생 멤버들로 인해 2012년을 기점으로 30대를 맞이하는 멤버들이 점차 생겨나면서 2010년 강인의 입대를 기점으로 5년 동안 입대하는 멤버와 전역하는 멤버가 교대하는 로테이션 활동을 벌인 바 있으나 2015년부터는 과반수 이상의 멤버들이 병역을 행하게 되거나 입대를 앞두고 있어 2019년 5월부로 멤버들이 모두 병역을 마치게 되며 2016년 현재 그룹 활동도 사실상 휴지 중에 있다.[23] 현재 은혁, 동해, 시원과 려욱은 병역을 이행 중에 있다. (2024-11-03 00:31:33 기준.)[24]
이후 컴백 시기는 려욱과 규현의 군 전역 이후인 2018년에서 2019년 사이로 추측되었으나 2016년 초, 이특이 슈퍼주니어의 2017년 하반기 컴백을 선언함으로서 공백기가 예상보다 축소될 듯 하다. 쉽게 말해 86년생 멤버들의 전역 후 바로 컴백한다는 뜻. 그도 그럴 것이 동방신기와 더불어 SM의 평균 연간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책임지는 팀인 덕에 수입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전략이었던 듯 하다.[25]
슈퍼주니어가 예정대로 2017년 하반기에 컴백하게 되면 이특, 희철, 예성, 신동, 성민[26], 은혁, 시원, 동해 등 이하 8명의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리드보컬 라인인 려욱과 규현의 부재로 인한 보컬 밸런스를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하는 점도 팬덤 사이에서 상당히 주목받는 요소.
5 멤버
데뷔 당시 12명으로 출발하여 2006년 규현의 합류 이후 13명의 이미지가 강했으나 한경의 소송 이후부터 13명을 중시하는 듯한 인식은 많이 약해진데다 멤버 두 명이 사실상 탈퇴한 현재 정식 멤버 수는 11명이다.
6 이전 멤버
7 음반 목록
- 슈퍼주니어/음반 목록 문서 참조.
8 유닛 활동
- 슈퍼주니어-T (이특, 희철, 강인, 신동, 성민, 은혁) : 아이돌 최초 트로트 음원을 발매한 유닛. 슈퍼주니어-T의 T는 보다시피 TROT의 T에서 유래했다. 어르신 공략용 트로트 유닛 이었으나 젊은 층에서 반응이 더 좋았다.(하지만 출범 후 '아이돌이 무슨 트로트냐' 며 대차게 까였다.) 대표곡인 '로꾸거'는 2007년 대선 당시 선거 송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전 무대를 라이브로 소화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초반에는 반응이 조용했으나 점점 중독성과 세미 트로트의 발랄함 버프를 받아 4월 첫째 주 1위 후보로 올랐으나 교통사고# 로 멤버 이특이 중상, 신동과 은혁이 경상을 입어 활동이 중지되었다.
- 슈퍼주니어-M
- 슈퍼주니어-Happy
- 슈퍼주니어-D&E
9 솔로 활동
10 수상경력
슈퍼주니어/수상 경력 문서 참조.
11 콘서트
투어 기간 | 콘서트 명 | 관객 수 | 비고 |
2008.2.22~2009.3.7 | SUPER SHOW | 86,500명 | 첫 해외 투어 |
2009.7.17~2010.4.10 | SUPER SHOW 2 | 165,500명 | |
2010.8.14~2011.5.7 | SUPER SHOW 3 | 280,000명 | |
2011.11.19~2012.5.27 | SUPER SHOW 4 | 437,000명 | 첫 프랑스 단독 콘서트 |
2013.3.23~2014.2.22 | SUPER SHOW 5 | 500,072명 | 첫 남미 투어 |
2013.12.28~2013.12.29 | SMTOWN WEEK | 16,000명 | SMTOWN WEEK 마지막 챕터 - Treasure Island |
2014.9.19~2015.7.12 | SUPER SHOW 6 | 513,760명 |
12 팬클럽
E.L.F. 문서 참조.
13 트리비아
- 성인 가수들에게도 평가가 좋다. 방실이가 질병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슈퍼주니어는 방실이를 가장 많이 문병을 왔다.# 이 덕에 방실이가 슈퍼주니어가 TV에 출연해 노래하는 것을 자주 시청하며 방실이와 슈퍼주니어가 서로 안부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이로 인해 슈퍼주니어는 예의바르고 배려심있는 아이돌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슈퍼주니어-T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첫차' 피처링이 큰 인연이 된 듯.
14 사건사고
- 2006년 8월 10일. 희철은 같은 멤버 동해의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한 후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매니저의 시야확보 실패로 인해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게 된다. 대퇴부 골절 판단을 받고 철심 8개를 다리에 박는 대수술 끝에 재활에 돌입했으나[30] 장애 판정을 받았고 향후 슈퍼주니어 안무에서도 격한 동작은 제외해 활동하기 어려웠다. 희철은 군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공익근무를 이행했다.
- 2007년 4월 19일. 규현, 이특, 신동, 은혁은 스케줄을 마치고 숙소로 가던 도중 차량 전복 사고를 당한다. 차량은 완전 파손되었다. 신동, 은혁은 경상을 입었고 중상을 입은 이특과 생사의 기로에 선 규현은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며 향후 활동이 모두 정지되었다. 특히 상태가 심각했던 규현은 살아남기 위해 수술을 선택하면 성대가 잘려나가 가수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기로에 놓였지만, 서울 성모병원에서 새로운 수술방법을 시도하여 성공했다. # 규현 문서 참조.
- ↑ 슈퍼주니어가 구호를 외치면 엘프들이 화답을 한다.
- ↑ 가온 기준 한 달 판매량 335,744장 -2012 연간 판매량 480,622장- 2014년 기준 509,224장으로 하프밀리언 달성
- ↑ 공정한 절차에 따랐다면 골든디스크 음반대상을 5회 수상하는 것이 맞다. 아쉽게 놓친 2010년 골든디스크 대상을 기리기 위해 중화권 팬들이 한화 1억 3천만 원 상당의 순금 트로피를 준 일은 유명한 일화
- ↑ 특히 월드투어 브랜드 'SUPER SHOW'는 K-POP 가수들 가운데 투어의 규모가 가장 크고 넓다.
- ↑ 중화권의 국민가수인 조비창을 누르고 이뤄낸 쾌거이다.
- ↑ EXO-L이 '시기가 안 맞아서 그렇지 EXO가 1위를 달성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어떤 투표에서 3시간 만에 100만 표가 차이가 났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 ↑ SS501, 천상지희, 버즈, 파란 등
- ↑ 실제로 데뷔했을 때 홍보용 카피는 '아시아의 등용문'이었다고 한다.
- ↑ 이 시기에 80년대 초반 출생 연습생들을 정리했으며 최고참 연습생이었던 이특, 희철 (83년생) 등이 데뷔하게 된다.
- ↑ 슈퍼주니어의 매니저들이 '이런 신화 같은 놈들!' 이라는 욕을 하며 화를 낸 것은 당사자들도 알고 있는 유명한 일화.
- ↑ 콘서트 축하 쌀 화환, PD SNS의 대놓고 섭외 요청, 멤버들의 인터뷰 내용 근거.
- ↑ 단 '받아들인다.'의 의미에 대해 입장이 달라 팬들을 나누는 분점도 확실하지 않다.
- ↑ 하지만 국내 팬들의 대립이 계속되자 SUPER SHOW 5 싱가포르 콘서트에서 은혁이 공연장에 계신 팬분들께 한국에 있는 팬들이 볼 수 있게 찍어달라고 부탁하며 "조미와 헨리는 슈퍼주니어-M의 멤버이며 슈퍼주니어의 정식멤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 ↑ 참고로 SM의 현재 매출구성은 음반 10.27%, 음원 9.50%, 출연료 39.40%, 광고 13.88%, 초상 외 26.95% 정도이다.
- ↑ 하지만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안무 영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 ↑ 주로 이특, 희철, 강인, 신동, 은혁을 말한다.
- ↑ 슈퍼주니어-K.R.Y. 슈퍼주니어의 보컬 유닛으로 팬들은 크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 그래서 조미와 헨리를 투입했고 슈퍼주니어-M의 멤버들은 오랜 기간 중국 현지를 거점으로 하여 중국어를 사용하여 방송했다.
- ↑ 한경의 부재를 메울 새로운 멤버인 은혁과 성민을 투입
- ↑ 프랑스에서의 피드백을 보고 희망을 가진 팬들은 더욱더 열심히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꾸준히 피드백이 없었던 회사...러시아는 아직까지도 답을 해주지 않았으며 남미는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3년도에서야 SUPER SHOW 5를 통해 남미 4개국 투어를 개최하였다. - ↑ 이례적으로 6명의 멤버가 참여 한다고 공지가 뜨자 팬들은 미친 소떼처럼 몰렸고 '응모권'만 1만 6천명 이상 배부되었다. 준비한 6천장의 물량이 순식간에 매진되어 응모권이 동나 자필로 응모권을 만들고, 선 결제 후에 앨범은 예약으로 받는 등 헬게이트가 열림.
- ↑ 2014년 음반 판매 순위 1위 슈퍼주니어, 2위 EXO-K 3위 EXO-M.
- ↑ 그룹에서 핵심적 댄스 담당을 하는 은혁과 동해, 비쥬얼 담당인 시원의 부재로 인해 활동에 큰 제약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은혁 왈 : 제가 메인 멤버이다 보니까 제가 빠진 'SUPER SHOW'를 상상할 수 없지 않겠어요? - ↑ 동해와 시원은 의무경찰 복무 중, 은혁과 려욱은 육군 현역 복무 중.
- ↑ 좀 더 내부적인 사정으로 들어가보면 본래 2016년 6월에 입대 예정이었던 려욱을 제외한 5명의 멤버들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SUPER CAMP 미주투어가 강인의 음주운전 사고크리로 인해 당초 계약된 멤버 인원 부족으로 일부 취소되면서 려욱의 입대 시기가 연기됨에 따라 공백기가 더 길어질 수 있는 점도 염두해 둔 듯 하다.
- ↑ 2014년 결혼으로 인한 일련의 사태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 강인과 더불어 탈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전역 후 앨범활동 참여 여부는 멤버들의 공식상에서의 언급 빈도로 미루어 보아 과반수 이상으로 점쳐진다. 게다가 성민에게 비교적 관대한 해외 팬들의 지분까지 감안하면 섣불리 탈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통해 실질적으로 SM과의 계약을 무효화시켰으며, 앞으로 앨범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은 없다.
- ↑ 2015년 8월 20일에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종료하며 슈퍼주니어 활동도 마무리했다. 관련 기사
- ↑ 사실상 밴드 콜라보 유닛 구성이기 때문에 노래는 희철이 전부 부른다.
- ↑ 이후 방송에서 농담조로 '공항 게이트 검문할 때 마다 다리의 철심이 반응해 로봇이 된 기분이었다.' 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