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지희 The Grace

(천상지희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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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예능 MC
강타S.E.S.BoA신동엽강호동전현무
동방신기트랙스천상지희이수근김병만류담
슈퍼주니어 장리인제이민장동혁김태현한석준
소녀시대샤이니f(x)오정연장위안김경식
EXO레드벨벳 NCT홍록기
배우
이재룡유호정김민종황신혜강예원김하늘
이연희설리루한김수로장동건김시후
우이판문가영정소민윤소희
프로듀서 송재림공다임이학주
민희진Kenzie유영진백현김미정이경화
Hitchhiker이성수심재원이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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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지희 The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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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CSJH The Grace (영어)
天上智喜 The Grace (한자)
출신국가22px-Flag_of_South_Korea.svg.png대한민국
소속SM엔터테인먼트
데뷔2005년 5월 1일 싱글 1집 'Too Good'
장르아카펠라, 발라드, 댄스
수상2007년 Mnet KM 뮤직 페스티벌 댄스 음악상 
2007년 제14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그룹부문가수상 
관련링크> 사이트
공식
팬클럽
160px [1]

1 소개

天上智喜 The Grace 하늘의 지혜와 기쁨

실력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한 그룹

천상지희의 몰락에 관한 요약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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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 선데이, 린아, 스테파니로 구성된 4인조 아카펠라 팝 걸그룹. 특별히 리더가 정해진 팀은 아니다.
2005년 5월 1일, SBS 인기가요에서 'Too Good'으로 데뷔하였다.
동방신기의 여성형으로 결성된 그룹으로, 동방신기처럼 데뷔 초창기에는 각 멤버 이름앞에 '천무', '상미', '지성', '희열' 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었지만 2006년에 삭제되었다.
2009년 일본에서의 1st Live Tour 'Dear...'를 끝으로 현재까지 활동은 중단한 상태이다. 해체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술하는 것처럼 완전체 컴백은 사실상 힘들게 됐다.해체한 그룹들보다도 4명이서 모인 완전체 모습을 보기가 더 힘들다(…)

1.1 공식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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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 이름은 샤플리[2]이고, 공식 풍선 색깔은 파스텔로즈였지만 2006년 '더 그레이스'로 개명하고부터는 펄핑크를 대신 사용했다.

2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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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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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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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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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

2.1 스테파니/Staphanie

스테파니/Stapha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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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987년 10월 16일
본명김보경, Stephanie Kim
신체167cm, 혈액형 O형
가족무남독녀
특기발레, 재즈댄스
경력2004년 제7회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
노래짱 대상 수상
학력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

2.2 린아/Lina

린아/L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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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984년 2월 18일
본명이지연
신체168cm, 혈액형 A형
가족2녀 중 둘째
배우자장승조
포지션2002년~2003년 이삭 N지연으로 활동.
특기노래
종교개신교
학력명지전문대학교 실용음악과

2.3 선데이/Sunday

선데이/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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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987년 1월 12일
본명진서윤(구 본명 진보라)
신체160.8cm, 49kg 혈액형 O형
가족2남 2녀 중 셋째
과거
활동
2004년~2005년 일본에서
솔로 가수 활동.2장 싱글 발매
특기일본어, 그림그리기, 노래
경력2001년 제1회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
노래짱 대상 수상
종교개신교
학력중앙대학교 연극학과

2.4 다나/Dana

다나/D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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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986년 7월 17일
본명홍성미
신체171cm, 48kg 혈액형 O형
가족2녀 중 장녀
과거 활동2001년 솔로 앨범 1집 [DANA] 데뷔,
2집까지 발매
특기노래, 일본어, 모창
종교개신교
학력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 학사

3 활동 역사

3.1 결성 과정과 데뷔 초창기 활동~일본 진출

2000년대 초반, SM 엔터테인먼트S.E.S.를 이을 걸그룹으로 밀크(걸그룹), 신비 등을 배출시켰으나 미흡한 마케팅과 안습한 시기등으로 처참히 실패했었다. 밀크는 2집을 준비하던 중에 공중분해 되었고, SM은 밀크를 해체시킨 뒤 새로운 걸그룹을 기획하는데, 2001년 솔로가수로 데뷔해 논스톱으로 유명세를 탔으나 2집이 부진한 상황이었던 다나를 필두로, 2002년 데뷔해 2004년 해체됐던 이삭 N 지연[3]의 멤버였던 지연(후에 상미린아로 개명)과 일본에서 키워지려던 보라(후에 지성선데이로 개명), 2004년 청소년 경연대회(Teen Best Competition)'에서 대상으로 입상했던 연습생 스테파니 킴을 모아 4인조 걸그룹을 기획한다.
이 그룹은 천상지희(天上智喜)라는 이름으로 2004년 초여름 쯤 결성 얘기가 오고갔고 본래에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기획되어 이후 계속 활동을 할것인지에 대해 확정됐던 상황은 아니었다. [4] 천상지희는 중국에 진출했던 다나, 일본에서 가수를 준비했던 선데이, 미국에서 자란 스테파니, 한국에서 활동한 린아가 함께 모여 아시아권에서 활약하고 나아가 전세계에서 인정받을 걸그룹으로 탄생되었으며 실제로 멤버 모두 SM에서 특출난 실력으로 인정받은 엘리트 연습생만 모인 구성이었다. 이에 따른 SM내에서 기대도 매우 컸던것으로 알려진다.
한때 천상지희는 김경욱이 기획한 걸그룹이라는 얘기가 돌았는데, 시기상으로는 데뷔 시기가 김경욱이 집권할 당시는 맞지만 데뷔후 얼마안가 김경욱은 해임됐고 기사상으로는 이수만이 직접 프로듀싱했다고 밝혔었다. 정확한 기획자가 알려지지 않은 팀이기 때문에 섣부른 추측은 하지 않는게 옳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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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지희의 첫 공식석상 모습. 2004년 12월 경)

이들은 2004년 SM TOWN 여름음반에 다나의 2집 수록곡 '바램'을 4인 체제로 재녹음하여 싣으면서 데뷔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이외에도 이누야샤 5기 오프닝/엔딩주제가 '장난스런 키스'를 녹음하여 수록하기도 했다. [6] 2004년 9월 24일, SM 쇼케이스로 첫 모습을 드러낸 천상지희는 본 무대에서 '바램'을 퍼포먼스 한다. 또 린아는 화요비의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보아요'를 커버했고, 선데이는 자신의 일본 데뷔곡 'リラの片想い (리라의 짝사랑)'을 부르며 개인 무대도 함께 가졌다. 이 후 12월 경, 중국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데뷔를 알린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멤버 한명을 추가로 영입해 데뷔한다고 밝혔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7] 이 때 SM측에선 천상지희를 '여성판 동방신기'로 소개하면서 이 점이 카시오페아들의 심기를 건드려 역효과 크리를 맞게 된다. '여성판 동방신기'에 걸맞게 각각의 멤버 이름 앞에 '상미', '희열', '지성', '천무'라는 괴상망측한 단어가 붙어 무(天舞)스테파니 미(上美)린아 성(智聲)선데이 열(喜悅)다나 라는 더욱 이상한 예명이 붙여지면서 더 비난을 받았다.

거기다 팬클럽 이름이 북두칠성이라는 둥, 활동 내내 S.E.S.의 노래를 리메이크 할 것이고 풍선 색깔 역시 이들의 상징색인 펄보라를 사용할것이다, 혹은 신화창조의 주황색을 사용할것이다 등의 헛소문이 돌면서 데뷔초부터 각종 팬덤에게 찍혀 많은 안티를 끌어들였다. 그러면서 등장했던 여론이 '재활용 그룹'이라는 것이었는데, 사실 멤버 구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말이 많은 부분이다. 이미 10대층에선 인지도가 있었던 다나와 지연(린아)의 합류를 비롯해 약 2년간 일본에 머무르면서 데뷔를 준비하던 선데이가 갑자기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던 상황[8]등이 그룹 결성 자체가 성급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테파니는 SM에 입사한지 1년도 안돼서 데뷔가 결정되기도 했고. 어쨌든 이들은 2004년 11월부터 녹음 작업에 돌입해 그 해 말쯤에 타이틀 곡으로 내정됐던 '부메랑'의 M/V와 자켓 촬영등을 모두 끝마치고 2005년 3월, iLikePop 사이트에 '부메랑'과 수록곡 'Can't Help Falling in love'의 미리듣기를 공개했다. 하지만 여기서 SM이 또 병크를 저지르는데 타이틀곡 선정을 팬투표로 결정한다면서 타이틀곡이 '부메랑'에서 'Too Good'으로 갑자기 바뀌어 버리는 사태가 벌어진다. 'Too Good'은 '부메랑'과는 완전히 다른 발라드 곡이었고 당연히 댄스곡보다 임팩트가 현저히 떨어지는 노래였다. 당시 우스갯소리로 안티들이 일부러 'Too Good'을 투표한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을 정도. 당시 천상지희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가창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발라드 곡으로 노선을 바꾼것이다라고 보는 추측과 발라드곡으로 시작한 뒤 댄스곡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서였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것이 타이틀곡 선정에 합당한 이유로 보기엔 적절하지 않다. '재활용 그룹'으로 욕을 먹고 있던 상황이었던 그들에게 'Too Good'은 다나 위주로 만들어진 노래였으며 신인이었던 스테파니를 필두로 해서 '재활용 그룹'이라는 인상을 지워도 모자랄 마당에 이미 알려진 다나를 필두로 만들어진 'Too Good'을 타이틀로 민것부터가 미스였다. 타이틀 곡이 급하게 변경되면서 수록곡후속곡으로 예정됐던 'The Club'이 트랙리스트에서 누락되었고[9] 부랴부랴 'Too Good'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진행되었다.

파일:RRs0FAI.jpg싱글 1집 'Too Good' 2005.04.29 발매

2005년 5월 1일 SBS 인기가요 데뷔 무대

약 1년여간의 준비끝에 2005년 4월 29일, 중국 CCTV의 음악 방송 '중화정'을 통해 데뷔 무대를 가진다. 곧이어 한국에서도 5월 1일, SBS 인기가요를 통해 데뷔한다. [10] 데뷔무대에서 선보인 탄탄한 가창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타이틀 곡 선정 미스 약 한달 반간의 짧은 활동 후 원래 타이틀 곡으로 사용하려던 '부메랑'으로 후속곡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때 스테파니의 독무가 화제가 되면서 이 같은 반응에 힘입고 스테파니는 각종 예능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하며 천상지희의 이름을 알린다. 뒤늦게 반응이 오기 시작한것이었다. 아직까지도 X맨에서 보여줬던 스테파니의 댄스 영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테파니의 활약으로 인지도가 상승한 천상지희는 초반의 분위기보단 수월하게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큰 성과를 내진 못했고 절반의 성공 정도로 끝난다.

부메랑 (Boomerang)

사실 천상지희는 2000년대 초중반 SM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계속 욕심을 부리던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만들어진 그룹[11]이라 데뷔 초부터 중국 활동을 병행했다. 이미 다나는 2002년 중국에 진출해 중국어 실력도 어느정도 갖추어졌었고, 인지도 또한 조금이나마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Too Good'이 아닌 '부메랑'을 밀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팬들은 중국으로 활동 반경을 잡은것으로 예측하고 있었지만 2005년 10월, 천상지희는 뜬금없는 일본 진출을 선언하며 갑자기 일본으로 가버린다뭥미? 2006년 1월, '부메랑'을 일본어로 번안해[12] 데뷔 싱글을 발매한 천상지희는 일본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데뷔 싱글은 오리콘 첫진입 110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한다. 그리고 무대위에서 선보인 개념 쌈싸먹은 코디로 컨셉은 더욱 안드로메다로(...)

파일:BRIihDG.jpgKorea-Japan 2nd Single 'The Club'

What U Want(스테파니 솔로곡) + The Club (feat. 비)

2006년 3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두번째 싱글 'The Club'을 발표하며 컴백한다. 본래 이 곡은 한국 데뷔싱글에 수록되려던 곡이었으나 취소되고 두번째 싱글로 발매된다. 한국어 버전엔 비가 피쳐링을, 일본판에선 'SEAMO'가 피쳐링을 맡았다. 'The Club'은 '부메랑'을 잇는 파워풀한 댄스곡이었고 이 곡에서도 역시 스테파니의 화려한 독무 파트가 존재했다. 그리고 스테파니의 솔로곡도 수록되었다. 발매와 동시에 한국에서는 좋은 반응을 이끌어 히트를 예감했으나 정말 어이없게도 일본 활동을 위해 활동을 2주만 계획하면서 수많은 팬들을 분노케 했다. 그렇다고 일본에 돌아가서 이렇다할 성적을 낸것도 아니었다. 이 후 일본에서 'Sweet Flower', 'juicy LOVE', 등 총 2장의 싱글을 발매하지만 모두 저조한 성과를 기록했다. 다만 이 시기 일본에서 멤버 네명이 함께 지내면서 싸우기도 하고 서로 많은걸 알아가면서 팀워크가 더욱 단단해졌고 각종 이벤트 활동을 통해서 라이브 실력도 쌓았다. 약 9개월간의 일본 활동을 잠시 정리하고 가을 께 한국에서의 새로운 음반 활동을 위해 귀국한다.

3.2 天上智喜에서 The Grace로, 한일 양국에서의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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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오랜만에 돌아오면서 팀에 몇가지 변화가 생겼는데 팀명을 천상지희에서 '천상지희 The Grace'로 개명하면서 각 멤버들의 괴상망측했던 한자명+이름 형식도 멤버명+The Grace 형식으로 새롭게 바꿨다. ex) 린아 더 그레이스, 스테파니 더 그레이스(...)사실 이쪽도 괴기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희열다나보단 낫다! 분명히! 스테파니는 천무가 더 나은거 같은데? 참고로 The Grace는 은총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본래 팀 색깔인 아카펠라 팝 그룹 이미지를 더 살리기 위해 붙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영어권 국가에선 천상지희라는 이름을 발음하기가 어려운지라 일본어 발음의 앞글자를 딴 CSJH 혹은 병음 앞글자를 딴 TSZX같은 준말 표기 대신 The Grace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동방신기의 TVXQ는? 통칭은 사라지지 않는다 근데 왠지 TVXQ!는 멋있다 느낌표의 중요성?

한국으로 복귀한 천상지희는, 약 7개월 만에 3번째 싱글 '열정 (My Everything)'으로 컴백한다.

열정 (My Everything)'[13]

타이틀 곡 '열정'은 일본에서 쌓아온 라이브 실력과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주기에 적절했던 발라드곡으로 활동 기간동안 멤버들 모두 가창력 포텐이 폭발해 팬들은 이들의 복귀를 매우 기뻐했다. 비록 히트를 친건 아니었지만 평단의 호응도 괜찮았다. 수록곡중엔 윤상과 작업한 'The Final Sentense'와 'IRIS (할 말이 있어요)'등이 팬들 사이에서 사랑 받았다. 2007년 초에 세번째 싱글 활동을 마감한 천상지희는 드디어첫 정규 앨범 작업을 시작한다.

3.3 정규 1집 한번 더, OK? (One More Time,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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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해온 천상지희는 데뷔 2년만에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14] 첫 앨범이니 만큼 그동안의 싱글 타이틀 곡들도 보너스트랙으로 함께 수록됐는데 데뷔곡 선정 미스를 인정이라도 하듯 'Too Good'은 미수록무시되고 '부메랑'만 수록되었다. 타이틀 곡은 Kenzie가 작곡한 '한번 더, OK?'[15]로 SM 걸그룹으로서는 처음으로 강도 높은 섹시 컨셉을 시도한 곡이었다. 그리고 19금딱지가 붙었다. 다소 난해하지만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곡이다. 참고로 이때 공식적이진 않지만 또 한번의 개명이 있었는데 각 멤버 이름 뒤에 붙어있던 '더 그레이스'가 암묵적으로 삭제되고 그냥 '다나', '스테파니', '린아', '선데이'로 불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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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년만에 첫 1위를 수상했을 당시 모습

한번 더, OK?
엠카운트다운 1위
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

'한번 더, OK?'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2년간 한일 양국에서 쌓아온 라이브 실력과 뛰어난 곡 퀄리티, 퍼포먼스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는 곧 대중들의 호응으로 이어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결국 6월 7일 Mnet M! Countdown 에서 데뷔 2년만에 처음으로 1위 수상의 영광을 안았고 곧 이어 SBS 인기가요에서도 뮤티즌송을 수상하며 정상에 올랐다. 당시 순위제를 운영하지 않았던 음악중심에서는 걸그룹으로는 몇년만에 엔딩 무대를 장식했고 뮤직뱅크에서도 남자 가수들이 뽑은 최고 인기 여성가수상을 수상했다. 그 당시 이렇다할 걸그룹이 없었던 상황에 천상지희는 가장 인기 있는 걸그룹으로서 활약했고, 멤버 개개인의 인지도도 급상승하여 선데이는 일명 초대 꿀벅지로 유명세를 탔고 린아 역시 보이쉬한 스타일로 여성팬이 크게 증가했다. 스테파니는 이전에도 가장 주목을 많이 받았었는데 '한번 더, OK?'때는 제대로 포텐이 터져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봉춤등이 크게 화제가 되었다. 다나 역시 이 시기 다이어트에 성공해 비쥬얼의 정점을 찍었다.배바지는 욕먹었지만 음반 판매량 역시 이전의 싱글 판매량에서 큰 폭으로 상승했으며 이 시기 공식 팬카페 회원수도 10만명에 육박하며 데뷔 2년만에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활동 중반에는 다나가 드림콘서트 무대에서 발목을 삐끗해 잠시 3인 체제로 활동했다. 다나가 없는 3인 체제로 오른 인기가요 무대에서 뮤티즌송을 수상했었는데 이때 스테파니가 '다나 언니 빨리나아!'라고 외쳤다. 이 후 다나가 복귀했을때 스테파니 덕에 빨리 나을수 있었다고 얘기하며 훈훈함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이렇게 잘나가던 상황에 '한번 더, OK?'와 수록곡 'Tonight in On Me'의 가사 일부가 문제가 되어 19금 미만 청취 금지 처분을 받고 결국 1집 음반은 19세 이상만 살 수 있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음반 판매에 적지않은 타격을 입었다. 타이틀 곡 활동을 급 정리하고 후속곡으로 '女友(그녀들의 수다)'가 결정되어 활동했지만 겨우 2주간의 짧은 활동으로 끝나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래도 당시 팬들은 천상지희가 인기 가수로 성장했다는거 만으로도 큰 감동을 했던 상황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이 노래가 국내에서 활동한 마지막 노래가 될 줄 당시엔 아무도 몰랐겠지 활동 후반부가 흐지부지 되어 아쉽게 마무리 된 상태에서 천상지희는 다시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팬덤은 멘붕. SM은 천상지희한테 억하심정이 있는게 분명하다

일본으로 넘어간 사이 팬들 사이에서 강력한 후속곡으로 지지받았던 'Dancer in The Rain'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고, 8월 경 뜬금없이 Mnet M! Countdown에 출연해 이 곡을 부르고 돌아갔는데...여기에서 레전드를 탄생시켰다

아직까지도 걸그룹 레전드 라이브로 통하는 전설의 Dancer in the Rain 무대

그냥 불러도 힘든 이 노래를 안무와 동시에 라이브로 소화해냈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반응은 역시나 폭발적이었고 팬들은 두번째 후속곡으로 활동해달라고 외쳐댔으나 그런거 없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그놈의 일본 활동 하지만 이번엔 그전과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일본에서도 반응이 오기 시작한것이다! 오오일본에서도 약 1년만에 발표된 싱글 'Piranha'가 오리콘 주간 차트 50위를 기록하며 바로 직전 싱글 이었던 'juicy LOVE'의 최고 순위였던 162위에서 무려 100단계 이상이나 상승한것이었다. 이 노래는 국내 음원 사이트 J-POP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는데 국내에서 발표했어도 인기를 끌었을거라는 의견이 많다.

Piranha (a-nation 07)

일본에서도 레전드 무대를 만드는데, 이 무대 역시 Dancer in the Rain 무대와 같이 아직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라이브 무대이다. 당시 현장 준비된 CD 물량이 모두 매진되는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스테파니는 당시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코다 쿠미와 닮았다며 비교 되기도 했다. 11월에는 일본에서도 첫 정규 앨범 'Graceful 4'를 발매한다. 타이틀 곡은 한국 1집과 동일하게 '한번 더, OK?'가 일본어로 번안되었다. [16]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던 천상지희는 2007년 연말 시상식을 참석하기 위해 한국으로 잠시 돌아온다. 1집 활동의 히트를 인정받아 Mnet MKMF에서 댄스음악상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연예예술상에서 여자그룹 가수상을 수상했다. 2007년은 팬들에게도 천상지희 멤버들에게도 뜻깊은 해였는데, 한국에서는 2년만에 (다나와 린아는 데뷔 6~7년만에) 정상에 올랐고 일본에서도 드디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하이라이트 시기이기도 했다.

3.4 일본에서의 활동과 스테파니 활동 중단

'I'll Kiss You' (天上智喜 Graceful Party Vol.1 중에서)

해를 넘어와 2008년, 천상지희는 3월 20일과 23일 2회에 걸쳐 일본에서 첫 콘서트 《天上智喜 Graceful Party Vol.1》를 개최하는데 전석 매진을 기록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5월에는 추가 공연까지 결정하며 이 공연 역시 매진사례를 이루었다. 한일 양국에서는 처음으로 열었던 콘서트였기 때문에 더욱 값진 공연이었다. 마지막 곡 'I'll Kiss You'를 부를때 그동안 해온 고생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는지 멤버들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Stand Up People

7월에는 6번째 싱글 'Stand Up People'이 발매되는데 발매 첫주 25위를 차지해 전작 'Piranha'의 피크 순위를 2배 이상 뛰어넘은 성적을 내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일본에서도 점차 반응이 오기 시작한것이다. 10월에는 영화 '홈리스 중학생'의 주제가인 일본의 힙합 유닛 'CLIFF EDGE'과의 협작 'Here'을 발매하면서[17] 오리콘 데일리 차트에 12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피크는 11위였으며, 위클리 차트에서는 18위. 그리고 데뷔후 처음으로 먼슬리 차트에도 등장하며 일본에서의 나름대로 첫 히트곡이 되었다. 일본 최고 권위의 음악방송인 '뮤직스테이션' 출연권까지 따내진 못했지만 메이저 급 음악 방송인 Hey! Hey! Hey!'나 기타 여러 음악 방송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도 꽤 상승했고 당시 일본 언론은 '현재 침체된 여성그룹 시장에 주목할만한 한국에서 온 실력파 걸그룹이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Here (feat. CLIFF EDGE)'

'Here'의 소소한 인기를 힘입어 2009년에 일본에서의 정규 2집 'Dear...'를 발매하지만 아쉽게도 그리 큰 반응을 얻진 못했다. 그러나 일본의 한 유명 평론가가 이 앨범을 호평해 하루 판매량이 급상승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 걸그룹으로는 최초로 일본에서의 첫 전국 투어가 결정되었다. 당연히 멤버들과 일본 스탭 모두 감격스러운 마음에 이 공연을 위해 많은 것을 계획했고 노력을 쏟아부었다. 특히 멤버 전원이 안무는 물론, 무대 연출까지 직접 참여하며 심혈을 기울였고 특히 스테파니는 솔로 무대를 위해 하루 11시간 씩 킬힐을 신고 연습하는 강행군을 했다. 그러던 중 스테파니의 허리에 이상이 생겨 어느날 아침 갑자기 일어나는 것 조차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한것이다. 결국 스테파니는 활동을 중단하고 치료를 위해 부모님이 계시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천상지희는 일본 프로야구 개막식 참가 행사때부터 스테파니를 제외한 3인 체제상지희로 활동해야 했고 전국 투어 역시 3인 체제로 개최했다. 투어는 오사카를 시작으로 나고야, 도쿄, 후쿠오카 총 4개 도시에서 이루어졌다. 본 투어에서 신곡 '凍える太陽 (얼어붙은 태양)'[18]을 공개하기도 했다. 노래는 여기서 들어볼 수 있다. 투어 직캠 음성이라 음질은 기대하지 않는게...

투어가 종료된 후 라디오 '천상지희의 치키(天上智喜☆チキ!)'를 진행하며 활동을 이어가는듯 했지만 어느 시점부터 일본에서 활동을 완전히 중단했고 '凍える太陽 (얼어붙은 태양)'의 발매도 무기한 연기되어 이후 활동이 불투명 해졌다.도대체 왜

少しでいいから, 천상지희 4인으로써의 현재까지는마지막 P/V

돌연 활동 중단 이유에 대해선 크게 두가지 설로 갈리는데, 첫번째는 2009년 한국에서 'Here'을 한국어로 번안하여 컴백할 예정이었지만 'Here'은 천상지희의 단독 명의가 아닌 '천상지희/CLIFF EDGE' 였기 때문에 CLIFF EDGE 측과의 저작권 문제로 컴백이 무산되었고 여기에 스테파니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완전체 활동이 계속 연기 되다가 자연스럽게 팀 활동이 중단됐다는 설, 그리고 동방신기-JYJ 사태로 인해 일본 기획사였던 에이벡스와 SM 엔터테인먼트간의 갈등으로 일본 활동이 불투명 해지면서 활동이 중단됐다는 설로 나뉜다. 한국 컴백 무산에 관한 이야기는 해당 싱글과, 곡이 수록된 일본 정규 2집 'Dear...'이 국내에서 라이센스 발매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신빙성 있는 추측이다. 하지만 엄연히 두 얘기 모두 설에 불과하며 소속사측에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팬들은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 밖에는... 그리고 무려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다른 이유로는 소녀시대의 활동을 들수가 있을 것이다.천상지희가 스테파니의 활동 중단으로 인해 한국활동과 앨범이 무기한 연기됨에 되었고 그사이 소녀시대의 정규2집이 2010년에 발매함에 따라 실질적으로 선배가수인 천상지희 복귀가 더욱 어렵게 되어버렸다. 여기에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을 하는 것이지만 sm엔터테인먼트는 아이돌의 멤버를 교체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즉 탈퇴와 영입이 자유롭지 않은 보수적인 회사의 전형이다. 스테파니의 부상으로 탈퇴시키고 새 멤버 영입이 어려운 회사라는 것이다. 또한 이런문화는 2010년대 들어서 아이돌들에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즉 그전까지는 아이돌 중 한명이라도 탈퇴 문제가 생길 경우 활동을 종료 시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그런회사에서는 만약 소녀시대가 3집활동을 천상지희가 2집활동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다.

3.5 다나 & 선데이, 현재 상황

이 후 천상지희는 해체설, 불화설을 반복하다 멤버들이 SM 엔터와의 계약이 종료됐다는 루머, 스테파니 왕따 루머 등 근거없는 소문이 커지면서 소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졌고 여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데뷔 이전부터 함께 해온 공식 팬카페 드리밍이 어느 날 매각되기에 이르며 국내 팬덤은 공중분해 되었다. 팬카페 양도사건은 SM 이수만 회장 역시 크게 충격받은 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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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2010년 SM TOWN 콘서트에 린아, 다나, 선데이 3인 체제로 뜬금없이 등장하면서 팬들은 컴백에 대한 희망을 가질수 있었지만 스테파니 복귀에 대해서는 대부분 반쯤 포기 상태였다. 스테파니가 미국에서 치료를 받고난 후 한예종에 입학했고 본교에서는 학생들의 연예 활동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가 갈수록 불투명해지던 천상지희 활동 계획은 2011년이 되서야 비로소 구체화되면서 이들의 복귀 소식이 들려오자 컴백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려온 팬들은 크게 열광했다. 하지만 린아와 스테파니가 없는 다나와 선데이 2인 체제 컴백으로 결정되어 완전체 컴백을 기다리던 팬들은 아쉬워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자세한건 천상지희 다나&선데이참고.

다나&선데이 활동에 불참했던 린아는 2011년 4월 선데이와 함께 뮤지컬 '젊음의 행진'에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이 후 뮤지컬 '늑대의 유혹' 여주인공 역할에도 캐스팅되었다. 2012년엔 사극 '대왕의 꿈'에 출연했으며 이 후 뮤지컬 '머더 발라드', '해를 품은 달'등에 출연하며 큰 호평을 받았으며 뮤지컬 배우로서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던 2014년 11월, 뮤지컬 배우 장승조와 결혼했다!

그리고 4명 중 가장 활동 가능성이 없던 스테파니도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와 미디어라인의 김창환과 손잡고 솔로로 컴백했다. 당초 스테파니가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미디어라인으로 이적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오보로, SM과 미디어라인이 제휴를 맺어 이루어진 컴백이라고 정정되었다. 2012년 10월 싱글 'GAME'으로 컴백한 스테파니는 여전한 댄스 실력을 뽐냈지만 김창환 특유의 촌스러운 곡 퀄리티로 인해 흥행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가수 복귀 조차 불가능해보였던 스테파니가 국내 활동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팬들은 아주 기뻐하고 있다. 2014년 7월에 두번째 싱글로 컴백한다고 밝혔지만 당시 제휴사였던 마피아 레코드에 문제가 생겨 잠정보류되었다. 그러다가 2015년 8월이 돼서야 1년만에 다시 컴백 소식을 전했다. 2015년 8월 12일에 컴백한다. 참고로 해당 기사와 그간 밝혀진 티저 등등에서 파격적인 수위를 보여주며 우려와 시선을 끌었는데 정작 결과물이... 곡과 안무의 완성도와 별개로 역대급 월척을 낚았다.

Game (스테파니 솔로 데뷔곡)

선데이는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보컬 트레이너로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고 알려졌으며, 이외에도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나는 KBS 단막극 '이태원 레인보우'에 출연할 예정이고 독립 영화에도 출연해 배우로서 활동을 할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네명 모두 솔로 활동을 하고 있다. 다나는 네이버 프로필에서 소속그룹 '천상지희'가 삭제된 상태라 팬들은 멘붕분노하고 있다. 물론 '더보기'를 클릭하면 상세 프로필에서 소속 그룹이 나오긴 한다(...) 그리고 2011년 이후로는 다나와 선데이, 린아와 스테파니로 나뉜채로만 교류하는것으로 보여져 팬들은 걱정하고 있다. 거기다 린아의 결혼식에는 다나가 불참하기도 했고 멤버간 모두 SNS 팔로우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라 불화설이 자주 대두되지만 2012년 솔로 컴백 당시 스테파니가 인터뷰를 통해 불화설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고 스테파니가 아이스버킷 챌린지 지명을 할때도 천상지희 멤버들을 지목했기 때문에 불화라기 보다는 활동이 없는 상태기 때문에 특별히 교류가 없는것으로 보인다. 2016년 현재 천상지희 멤버 전원이 아직까지 SM 엔터테인먼트의 전속 가수로 계약되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완전체 컴백의 희망이 아예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2016년 5월 16일 스테파니가 S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끝내고 제휴사였던 마피아 레코드로 완전 이적#함에 따라 완전체 컴백은 사실상 힘들게 됐다.

4 평가,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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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지희는 걸그룹계에서 가창력으로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스피카등과 함께 최고로 뽑힌다. 오히려 R&B 그룹으로 시작했던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무대 퍼포먼스가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스피카와 달리 천상지희는 댄스, 보컬, 퍼포먼스 모두 소화가 가능했다. 춤추면서 라이브를 완벽하게 소화하는게 천상지희의 가장 큰 장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그룹이 장점만 있고 모든 걸그룹중에 가장 뛰어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만큼 단점도 분명히 있다. 네명다 모두 실력이 좋기 때문에 모두 따로 노는듯하는 느낌이 있고 라이브 무대에서 으르렁대는거 처럼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룹으로서 조합도 그닥 좋은편은 아니라는 평가도 일부 있고.

가창력의 문제를 굳이 뽑자면 일단 개개인의 가창력이 너무나 뛰어났다는 것(...) 흉성 벨팅을 활용한 선 굵은 가창력을 가지고 있던 그룹이지만 소몰이창법에 가까울 정도로 과도하게 굵은 목소리로 부르는 부분은 2005년 당시에도 '부담스럽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창법은 대형 뮤지컬을 연상시킬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극적인데 정작 노래는 무난한 팝 댄스곡이나 발라드인지라... 차라리 소울을 시도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평. 한편 무작정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 만 모아놓아서 비슷비슷한 음색의 보컬들이 충돌하며 오히려 서로의 개성을 깎아먹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19] 노래의 기-승-전-결이 없이 전-전-전-전인 느낌.

어쨌든 노래를 너무 잘해 지적을 받을 정도의 보컬 능력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걸그룹이 가뭄이었던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해 시기적인 운도 따라주지 못했고, 활동 기간도 턱없이 적어 그마저도 회사에선 삽질만 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대박을 이뤄내지 못한건 당연한일이었다. 대부분의 대중들한테 천상지희는 실력 있지만 잘 안된 그룹, 혹은 실력이 있어도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사실 천상지희는 S.E.S.소녀시대 사이에 애매하게 등장한 그룹이었던 터라, 1집으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을 당시에 SM내에서 수년간의 정성을 들여 제작한 소녀시대를 푸쉬하기 위해 일본으로 돌려보냈다는 말이 있다. 1집 앨범 발표 초창기 인터뷰에서는 분명 활동을 5개월 정도 할거라고 얘기했지만 실제 활동은 2달 남짓이었다. 후속곡으로 활동할 예정으로 알려졌지만 단 한번의 무대로 끝나버렸던 'Dancer in the Rain' 역시 멤버들이 굉장히 애착이 많았던 노래라 준비 기간도 길었고 안무도 자주 바뀌었다고 알려진다. 원래는 의자를 이용한 안무도 있었다고.[20] 하지만 어찌된 이유에선지 이들은 한국에서 어렵게 얻은 인기를 뒤로하고 일본으로 가야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 [21] 사실 천상지희의 일본 활동은 소녀시대 일본 진출 성공에 좋은 밑거름이 된건 맞는 얘기다. BoA의 일본 진출 성공에 S.E.S.의 일본 진출로 겪은 시행착오가 도움이 되었듯이. 천상지희의 국내팬들은 그들의 활동이 실험용으로만 이용됐다고 보는 경우도 많다. 한일 양국에서 대박을 이루지 못한것도 어쩌면 SM에서는 천상지희를 크게 키우기 보다는 천상지희를 통해 경험과 노하우를 얻고자 했다는 분석도 있고. 그동안 해온 기행들을 보면 납득이 간다

천상지희는 애초에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진 그룹으로시작은 누구나 그랬듯 거창했다 과거 S.E.S.가 멤버 별로 담당한 국가가 있었듯이 천상지희 역시 그런식이었고 국내에서 성공하고 차례대로 일본과 중국에서도 사랑받은 다음 최종적으로 팝 시장에도 진출하는것이 목표였던걸로 보인다. 2007년 당시 인터뷰에서도 미국시장 성공 가능성 긍정적으로 본다며 미국 진출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스테파니가 활동을 중단하고 일본 측 기획사와의 문제 등 갖가지 이유로 인해 활동재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때, 2년전 후발주자로 등장해 급속도로 성장한 같은 회사의 소녀시대가 해외 진출에 더 밝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건지 SM은 그대로 천상지희를 방치시킨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운도 지지리 없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안타까운 팀이다. 차라리 데뷔 시기가 2~3년 정도 빨랐거나 활동 후반부에 몇가지 문제만 없었더라면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그룹이다.

한번 더, OK? mr 제거 영상
아카펠라 모음

아직까지도 천상지희의 가창력을 넘어선 걸그룹은 나오지 않고있다. 물론 이들의 매력을 뛰어넘은 그룹은 있다 쳐도.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팬들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가창력 때문이다. 이들의 mr제거 영상은 아직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5 디스코그라피

천상지희 The Grace/음반 목록

6 여담

SM엔터테인먼트의 남녀남녀 아이돌 데뷔순은 실질적으로 동방신기이 걸그룹부터 정착된 시스템이다. 그전에도 H.O.T., S.E.S.등이 있었지만 정착 되었다고 보기에는 뒤에 데뷔한 가수들의 데뷔는 그렇게 체계적이지 않았다.
비록 다른 SM 가수들에 비해 뜨지는 못했지만 현재 SM 여자아이돌의 구체적인 틀을 갖추게 한 그룹이다.

7 외부 링크

7.1 팬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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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지희 갤러리

  1. 현재는 카폐 폐쇄되었다.
  2. '천년에 한번씩 뜨는 별'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3. 이쪽도 SM 암흑기에 등장했던 여성듀오다. Fly To The Sky 여성판을 자칭하며 등장했으나 역시나 실패
  4. 원래 다나는 당시 3집 발매를 계획하고 있었다.
  5.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이너스의 손으로 불리는 김경욱이 기획해 망해가던 천상지희를 이수만이 손대면서 대박을 냈다"라는 얘기가 많지만 이건 전혀 근거도 정황도 없는 이야기다.
  6. 이 곡은 다나 솔로곡으로 알려졌지만 잘 들어보면 네명의 목소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천상지희가 불렀다고 발표된건 아니지만 팬들은 모두 그렇게 추측중이다.
  7. 중국인 멤버를 추가해 천상지희화(天上智喜華)로 데뷔할 예정이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8. 심지어 선데이는 천상지희 데뷔 10일 전에 일본에서 두번째 싱글을 발매하기도 했다.
  9. 이 때문에 발매일이 일주일 연기됐었다.
  10. 첫 데뷔는 4월 29일이지만 공식 데뷔일은 국내 데뷔일인 5월 1일로 친다.
  11. 크게는 아시아 전역에서 활동하기 위한 글로벌 그룹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12. SM 측에서도 타이틀곡 선정 미스를 시인하는 듯하다.
  13. 뮤직비디오에는 슈퍼주니어의 기범과 연습생이었던 소녀시대 윤아가 출연한다
  14. 타 sm아이돌들에 비해 상당히 늦어진 부분이다.
  15. 원제는 Nasty였다.
  16. 일본판 제목은 One More Time, OK?이고 편곡과 애드립이 부분 수정되었다. 일본어로 번안된 곡들은 대부분 새롭게 편곡되었다.
  17. 원래는 봄에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CLIFF EDGE쪽의 기획사와 저작권 문제로 여러가지 플랜이 수정되면서 가을에 발표되었다.
  18. 투어 종료 후 싱글로 나올 예정이었던 곡이다. 2015년 현재까지도 정식 음원은 미발표 상태.
  19. 일 년 뒤에 데뷔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경우 정통파 파워보컬 제아를 중심으로 미성의 나르샤와 속삭이는 톤의 가인이 균형을 맞추며 서로의 음색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성공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도 데뷔 당시에는 소몰이를 했지만.
  20. 2007년 6월 경 방송된 Mnet Making of Star Watch에서 멤버들이 'Dancer in the Rain'을 벤에서 립싱크하면서 노는 부분을 보면 다나 파트에선 9월 엠카 무대에서는 없던 굉장히 격렬한 안무를 하고 있다.
  21. 추측하건데 이건 동방신기와 관련이 깊다.천상지희가 활동하던 2007년 당시에는 동방신기가 국내활동이 아닌 일본 활동에 올인하던 시점이다. 동방신기의 일본 현지화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천상지희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일본활동만 하게 되었다.한마디로 동방신기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한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