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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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대 국왕
52대 효공왕 김요53대 신덕왕 박경휘54대 경명왕 박승영
시호신덕왕(神德王)
박(朴)
경휘(景暉) / 경휘(景徽)
생몰년도음력? ~ 917년 7월
재위기간음력912년 ~ 917년 7월 (6년)

1 개요

신라의 제53대 왕. 신라 초기의 마지막 박씨 왕이었던 아달라 이사금의 머나먼 직계후손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선성대왕 예겸(乂兼 또는 銳謙)이고, 어머니는 정화부인(貞花夫人)이다. 예검은 의부이고 친아버지는 흥렴대왕(興廉大王)으로 추봉된 각간 문원(文元)이라고도 한다. 비는 헌강왕(憲康王;재위 875-886년)의 딸 의성왕후(義成王后) 김씨이다.

2 즉위

아달라 이사금이 죽고 728년만에 신라에서 박씨 왕이 다시 즉위한 것인데, 참고로 이 시간차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즉위 ~ 위키러가 이 문서를 보는 2016년 사이의 간극보다도 백 년이나 더 긴 시간이다.

신덕왕이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헌강왕의 사위로 경문왕가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신덕왕은 효공왕의 처남이기도 하다. 즉 그의 아버지 혹은 의부로 보이는 예겸의 딸이 효공왕의 왕비로 들어갔다. 한마디로 과거 석탈해나 김미추가 왕위에 올랐던 과정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대체 뭘 했는지 알 수 없는 후삼국시대의 신라 왕들 중에서는 나름대로는 선전했던 모양으로, 견훤대야성 침략을 막아내기도 했다(916). 하지만 그것뿐(…). 뭐, 사실 이 때 신라는 영토가 더욱 작아져 나라 꼴만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었으므로 능력이 웬만큼 있어봤자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신라가 현 경상남도 일대인 강주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반증이지만 불과 4년 뒤인 경명왕 때 낙동강 이서지역이 죄다 털린다(...)

특이한 이변으로, 914년 6월에 참포(槧浦, 현 포항시 흥해읍의 곡강(曲江) 추정)의 물과 동해의 물이 서로 부딪쳐 물결의 높이가 20장(丈) 쯤이나 되었는데 3일만에 그쳤다는 기록이 있다. 쓰나미 참포는 당시 신라사독의 하나로, 국가에서 제사지내는 중요한 하천이었다. 그 외에도 915년 10월에 큰 지진이 났다는 기록도 있다. 일반적으로 백두산 폭발에 따른 영향으로 추정하는 듯.

슬하에 승영(昇英)·위응(魏膺) 등이 있었는데, 승영은 54대 경명왕이 되었고 위응은 55대 경애왕이 되었다. 4남 1녀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상 아달라 이사금의 바로 옆에 묻혔고 나중에 아들도 옆에 묻혀 지금의 배동 삼릉이 됐다.

3 삼국사기 기록

一年夏四月 신덕왕이 즉위하다
一年夏五月 아버지를 추존하다
一年夏五月 아들 승영을 왕태자로 삼다
一年夏五月 이찬 계강을 상대등으로 삼다
二年夏四月 서리가 내리고, 지진이 일어나다
三年春三月 서리가 내리다
三年春三月 궁예연호를 정개로 고치다
四年夏四月 참포의 물과 동해의 물이 서로 부딪치다
五年秋八月 견훤대야성을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다
五年冬十月 지진이 일어나다
六年春一月 태백이 달을 범하다
六年秋七月 이 죽다

자연재해에 관한 이야기와 궁예, 견훤 이야기를 제외하면 아버지 추존, 아들을 태자로 삼은거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