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1 개요

박건호 작사, 김재일 작곡

(1절)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드는 산과 들
우리의 마음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2절)

도시엔 우뚝솟은 빌딩들 농촌엔 기름진 논과 밭
저마다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곳
도시는 농촌으로 향하고 농촌은 도시로 이어져
우리의 모든 꿈은 끝없이 세계로 뻗어가는 곳

(후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부르네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2 배경

1980년대 초반, 가수들은 앨범을 낼 때마다 앨범 마지막에 건전가요를 한 곡씩 의무적으로 실어야만 했다. 제5공화국이 '사회 정화 업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강요한, 어느 나라에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관제였다. 이른바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자는 뜻이었다. 이를 관할하는 곳이 이른바 사회정화위원회라는 데였다. 이 위원회는 1983년 '국민들에게 주인의식을 고취시키자'는 사뭇 거창한 의도 하에 한국방송공사와 함께 건전 가요만으로 옴니버스 앨범을 제작키로 했다. 박건호 씨 등 중견 작사, 작곡가들이 곡을 만들고, 가수도 직접 추천하는 등 앨범 제작 실무를 맡았다.

이렇게 해서 83년 여름에 '즐거운 우리들의 노래'라는 부제를 가진 건전가요 모음집 '아! 대한민국'이 발표가 된다. 타이틀인 '아!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이후에 정수라의 음반에도 수록이 된 '우리의 땅' 등 여러 건전가요들이 들어 있다. 이 음반에서 '아! 대한민국'은 정수라가 장재현이란 남자 가수와 함게 부른 듀엣 곡으로 담겨 있다. 작사가 박건호가 생전에 밝힌 바에 따르면 의뢰에 충실하게 만든 것은 '우리의 땅'이며 '아! 대한민국은 이런 외부의 영향을 배제하고 자신의 바람을 담아 만들었다고 한다. 목적의 순수함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건전가요들과 태생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3 히트

건전가요들은 으레 음반의 맨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쳐넣었기 때문에 히트했다 말았다 할 것도 없이 천덕꾸러기 신세였지만 '아! 대한민국'은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것은 정책적으로 밀어 준 것 외에 정수라의 1집에 수록이 된 사실 또한 크게 작용을 했다. 대중가수의 정식 앨범에 건전가요가 메인 트랙으로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건전가요 모음집보다 앞서서 발매가 됐던 정수라의 오리지널 1집에는 이 곡이 없다. 나중에 1집을 '바람이었나/아! 대한민국'의 타이틀로 재발매 하면서 B면의 타이틀로 '아! 대한민국'을 추가한 것이다. 여기에 실린 곡은 정수라의 독창 버전이며, 정수라의 매니저가 손을 써서 원래 같이 불렀던 장재현을 배제 했다는 후문이 있다.

정수라의 곡은 이듬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당시에 가장 공신력이 있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인 KBS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골든컵을 수상할 정도로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되었다.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 때문에 골든컵 제도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이후로 얼마나 더 해먹었을지 모를 일이다.

상업적으로도 약 4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정수라는 이 인기를 바탕으로 마침내 84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당당히 10대 가수의 반열에 들 수 있었다. 수년 후 다가올 커다란 국제행사들을 앞두고 들떠 있던 국내의 분위기 속에서 이 노래는 정부의 독려가 더해져 각종 행사에 쓰이고 운동 경기의 응원가로 불리는 등 여러 해 동안 끊임없이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관공서에서는 공적으로 제작한 건전가요 모음집을 많이 사용했으므로 일반 공연이 아닌 행사에서는 주로 장재현과 함께 부른 듀엣 버전이 사용이 됐다.

지금에 와서야 '아! 대한민국'이 정수라의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앞서 밝혔듯이 장재현과 듀엣으로 부른 것이 처음이다. '아! 대한민국'은 발표 시기에 따라 처음은 정수라-장재현 듀엣 버전, 그 다음은 김현준-민해경 듀엣 버전, 마지막으로 정수라의 솔로 버전 순이 된다.

참고로 정수라보다 먼저 대중가요로 불렀던 가수는 김현준이었다. 그는 민해경과 듀엣으로 부른 곡을 자신의 음반에 실어서 발표했다. 그런데 일명 '요정 사건'이라 불리는 불미스런 일로 방송 출연을 금지 당한 민해경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묻혀 버려서 아는 이 조차 드물다.

김현준이란 가수의 불운은 이 뿐만이 아니다. 데뷔곡의 제목이 '순자야 문 열어라'였는데 얼마 후 전두환이 대통령이 돼서 바로 금지곡이 됐다. '아! 대한민국' 이전에 역시 민해경과 듀엣을 했던 '내 인생은 나의 것'은 대단한 인기를 얻었지만 청소년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이 곡은 엄연히 김현준의 음반에 있던 곡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는 지명도 높은 민해경의 곡으로 알려져 있다.

김현준은 솔로로 뜨지 못하고 밤무대의 그룹 활동 등으로 무대를 옮겼으며 2007년에 비운의 가수라는 것을 부각시키면서 음반을 하나 냈지만 무명에 가까운 옛날 가수에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었으며 지금은 사실상 묻혀버린 상황이다.

4 내막

1983년 만들어진 이 노래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온 국민의 감정을 하나로 승화시켰다. 이른바 '관제 노래'임에도 <아! 대한민국>이 이처럼 히트를 치게 된 것은 상당 부분 당시의 사회 분위기 탓이기도 했다. 5공 독재가 무르익던 1983년, 1984년 무렵에는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북한의 남침용 땅굴 발견사건 등 메가톤급 사건들이 연거푸 터지면서 국민들에겐 어느 때보다 반공의식이 고조되었다. 이런 와중에 <아! 대한민국>의 탄생은 불안한 국민감정을 하나로 묶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방송사에서도 정책적으로 이 노래를 꾸준히 내보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때도 한국선수가 금메달 받으면 이 노래만 지겹게 나와서 관중들이 지겹다고 야유하고 신문조차도 틀 노래가 그리도 없었냐는 컬럼이 나올 정도였다. 오죽하면 당시 현장에 본 한 관중이 1988 서울 올림픽때도 이거만 틀거냐고 비아냥거린 인터뷰가 한 스포츠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5 패러디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을 폭력으로 진압하고 성립한 제5공화국 정권은 정통성이 취약한데다 이 노래의 태생(정권 홍보용 관제 가요)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고, 따라서 이에 대한 패러디가 안 나올 수 없었다. 정수라의 곡 '환희'도 2005년 싸이에 의해 리메이크되었으며 싸비를 제외한 모든 부분의 가사가 바뀌어 거침없이 패러디되었다.

1980년대에 유행하던 풍자적 노가바에서는 이 노래의 가사를 변형해 불러 사회에 대한 냉소적 반응을 표시했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 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 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 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이 땅
식민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 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 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1990년에는 정태춘도 동명의 노래인 <아, 대한민국>을 불렀으며 문장부호에 주의. 정수라가 부른 건 느낌표(!), 정태춘이 부른 건 쉼표(,). 농촌 총각은 장가갈 색시가 없어서 쩔쩔매는데, 특급 호텔에는 매춘 관광의 창녀가 득시글거린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심한 빈부격차, 범죄자는 날뛰는데 치안 보다는 시위 진압에 힘을 쏟는 경찰, 변절하거나 부패한 민주투사 출신 정치인들 등을 까는 내용.

당연히(...) 정식으로 앨범을 발매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전심의 ㅈ까!어둠의 세계를 떠돌아야 했다. 물론 이 앨범은 <92년 장마, 종로에서>와 함께, 헌법소원에서 승리한 1996년에 정식으로 복각된다.

2004년에는 N.EX.T가 <아! 개한민국>을 통해 다시금 패러디했다.

참고로 노바소닉도 <어! 대한민국> 이라는 노래로 패러디했다. 스펙을 쌓았는데 잉여가 되어 있는 자신과,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회를 한탄하는 곡. 10년 후 대한민국을 정확하게 예언했다.

6 후일담

이후 이 노래를 패러디한 아티스트들은 좋은 의미에서 더 유명해졌다. 정태춘, 박은옥 부부는 이후 '포크의 본좌' 지위를 굳건히 하였으며, 넥스트는 원래 유명했으며, 노바소닉은 지금은 해체되었으나 멤버들이 한국음악계에서 본좌 세션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환희'를 리메이크한 싸이가 제일 유명하다. 그 외에도 2006년에 마야가 락 버전으로 '아! 대한민국'을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정작 원곡을 부른 정수라는 이후 현대그룹 정주영과 관련된 악성루머가 터져서 비호감 이미지로 추락했고 이후에도 여러가지 루머 등으로 인해 가요계에서 현재 완벽하게 묻혀버렸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행사 활동을 알음알음 하고 있기는 하지만... 망했어요. 거리의 시인들이나 이은하도 그런 경우다.

요즘 '아! 대한민국'을 부른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상당수가 이선희라고 대답할 정도로 정수라는 묻혔으며 아마 사람들이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노래와 헷갈리는 듯하다.

7 기타

클론이 2000년에 내 놓은 4집에 수록된 <신세계>라는 노래가 아! 대한민국과 비슷하다. 노래 내용은 새로 다가올 21세기의 정보화사회를 희망차게 노래하는 곡이다. 참고로 21세기는 2001년부터 시작되었다.

대만에서는 아! 대한민국과 비슷한 위치의 중화민국송이라는 노래도 있는데, 그 노래의 가사에서 나오는 곳은 아! 대한민국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식의 가사가 아니라 중국 지명 중 일부와 중국 역사를 찬양하는 가사로 되어있다.

신입사원 토오루군을 국내반입하면서 마개조했는데 그게 바로 배경음악을 이 노래로 바꾼 것이다.

8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