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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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1983년 9월 1일
유형민항기 격추
발생 위치소련 사할린, 모네론섬 부근
탑승인원승객 : 246명
승무원 : 23명
사망자승객, 승무원 269명 전원 사망
기종Boeing 747-230B
항공사대한항공
기체 등록번호HL7442
출발지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경유지앵커리지 국제공항
도착지김포 국제공항


1982년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에서 찍힌 사고기

1979년 7월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1 요약

1983년 9월 1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거쳐 김포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1] 대한항공 007편(기종 747-230B[2], 등록번호 HL7442)이 사할린 근처 모네론 섬 부근 상공에서 소련방공군Su-15TM 요격기에게 격추당해 추락한 사건이다.

파일:Attachment/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KAL007 3.jpg
당시 소련 측에서 회수한 유품들

대한항공 007편에는 총 246명의 승객과 2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이 중에는 미국 하원 의원인 로렌스 맥도널드가 탑승하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미국과 소련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 역시 소련 정부에 항의하였다. 다만 외교 채널이 없어서 직접 항의하지 못하고 미국을 통해 항의했으며, 사건 당시 정부는 자국민 수백명이 몰살당했음에도 강대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대한항공 007기가 제3국 전투기에게 격추되었다."라고 발표.

또한, 한국 내 항공사고 사상 사상자 1위이며, 세계 항공사고 사망자 12위를 기록, 또한 냉전 사상 최악의 사건이기도 하다.

해당 항공기를 격추한 사람은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 당시 격추지시가 있었고 그 사람은 격추를 반대하였다는 것.

하지만 그 뒤로도 몇 번 비슷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1989년 이란항공A300을 미사일로 격추시키고도 그걸 찬양한 미국은 당시 소련에게 비웃음당하며 피장파장이라고 놀림받았다. 자세한 건 USS 빈센스 함 사건 참고.

당시 미국 측은 KE007편이 소련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것을 소련군 교신을 감청하여 알고 있었음에도 침묵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이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함이었는데, 결국 소련이 계속 격추 사실을 부인하자 감청된 녹음을 공개하였다. 소련 측은 이를 통해 자국의 군사 통신망이 미국에 의해 감청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건이 일단락된 후 군 교신용 주파수를 모조리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미국은 감청을 통한 소련군의 정보수집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 사건 후 대한항공은 사고기의 편명인 007편을 영구결번했다. 대한항공의 뉴욕행 노선에서 007편이라는 편명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후속편명은 KE025/026편을 거쳐 1990년대 후반부터는 KE081/082로 변경되었다. 한편 뉴욕노선의 또 다른 편명도 이 사건 때문에 007대신 KE027/028을 사용했다가 KE081/082편으로 변경된 시기에 바뀐 편명이 KE085/086(...)

007편을 격추한 전투기 조종사인 오시포비치와의 인터뷰 내용 중에 '민항기인걸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는데 아무 죄책감도 없었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오시포비치는 당시 007편 꼬리날개에서 민항기 항법등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찰기인 줄 알고 과감하게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한다. 당시 미군에선 일반 여객기에 여러가지 장비들을 달아 군용 정찰기로 써먹기도 하고, 또 정찰기들을 민항기로 위장시키는 페이크를 자꾸 쳐온터라 격추 당시에는 민항기인 걸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나마나 또 민항기로 위장한 미군 정찰기겠지'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발사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때마침 소련 정보부로부터 '해당 지역에 미군 정찰기들이 자꾸 싸돌아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니 그 지역 방공부대들은 제대로 정신줄 잡고, 걸리는 놈들은 전부 격추시켜버려'라고 지시를 받은터라 확신을 가지고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한다. 후에 사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본인이 격추시킨 비행기가 알고보니 민항기로 위장한 군용기가 아니라 진짜 민항기였음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았다고.

007편 격추과정에는 불운한 우연도 겹쳤다. 오시포비치의 전투기가 007편을 추격하면서 경고사격을 했지만, 야간이었는데다가 오시포비치의 전투기에 때마침 예광탄이 없었던 관계로 007편에서는 이를 전혀 알아치리지 못한 상태에서 고도를 3만 5천피트로 올렸으며, 이 때 속도가 조금 떨어졌기 때문에 소련 전투기가 바로 옆까지 따라붙었다. 이렇게 경고사격 이후에 고도를 올린 것은 경고사격을 알아차리고 반응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므로, Su-15TM의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007편이 자신을 인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격적 행동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고도를 높이며 속도를 줄이는 것이 공격적 행동이 되는 이유는, 전투기가 그렇게 느려진 속도에 맞춰서 같은 거리를 두고 추적하려고 하면 실속에 빠져서 추락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즉 전투기의 추락을 의도한 지능적 행동일 뿐만 아니라 전투기의 비행특성까지 인지한 군의 전문가가 조종하고 있는 비행기이지 민항기일 리가 없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다만 그런 우연이 없었다고 해도 007편이 오시포비치의 전투기를 무시(실제로는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지만)하고 도주를 계속하는 이상 격추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소련 방공망의 대응이 그다지 신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시포비치의 전투기가 007편과 조우한 것은 이미 007편이 소련군 기지 주변을 지나서 공해로 빠져나가려는 시점이었다. 격추시키지 않으면 눈 뜨고 그대로 놓치는 수밖에 없는데다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2 영공 침범 원인

1988 서울 올림픽을 통해 대한민국과 소련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고 1991년 소연방 해체 후 비로소 대한항공 007편의 블랙박스가 한국으로 전달되었다.[3] 이후 블랙박스는 ICAO에 제출됐고 남은 유품은 유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ICAO는 이 블랙박스를 제3국이었던 프랑스의 항공당국에 제출하여 분석했고 그 결과를 기본으로 하여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최종 보고서는 블랙박스 기록에 의거하여 조종사가 이륙 후부터 격추시까지 방위각 모드에서 유도 모드로 변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NGC 항공사고수사대에서 관련 내용이 다루어진 적이 있는데 해당 방송에서는 소련이 격추라는 극단적인 대응을 한 이유를 당시 미국 정찰기가 근처 공역에서 활동중이었고 이를 오인했다는 의견을 내놨다. 실제로 다큐멘터리에는 미국이 사건후 007편의 비행항로가 담긴 극비 첩보자료를 조사단에 제공했다고 나온다.

3 영향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군사용으로만 사용될 예정이던 GPS를 민간에게도 제공할 것을 공표하였다.[4]

대한항공은 보잉사와 공동으로 새로운 기체 도색을 고안하여 현재까지 하늘색 도색을 사용하고 있다. 이전 도색이 사실 JAL 짝퉁이기도 했고. 다만 하늘색 도색이지만 조금씩 변경은 있다. 대표적으로 '대한항공'이라는 파란 글씨가 기울임체에서 정체로 바뀌었고 도색 색상도 조금씩 바뀌었다.

이 당시 새로운 도색으로(현 대한항공 도색) 처음 도입된 747기는 대한항공이 1983년에 운용을 시작한 보잉 747-300버전인 HL7468이다. 하지만 이 항공기는 14년 후 대형참사를 일으킨다. 그리고 같이 도입한 747-300이 2대 더 있는데 당연히 오리엔트 타이 등으로 매각했다. 97년 사고 당시에도 이미 노후기체였고 항공기관사가 필요했기 때문. 또한 747-400이 1989년 도입되었다.

3.1 대중매체에서 다루어진 사례

길창덕 화백의 고집세에서는 이 사건때문에 소련을 이기자는 뜻으로 우량아 선발대회를 하는 에피소드가 삽입되었다. 우생학??

KBS에서 방영중인 SF 인형극에서는 갑툭튀한 외계인 집단이 지구의 여객기를 격추시키고 항의하는 지구인들에게 그 여객기는 우리를 정찰하려는 지구방위군의 스파이였다고 오리발 내미는 에피소드가 긴급 편성되기도 했다.

아기공룡 둘리에서는 둘리가 우리 여객기를 격추한 소련 조종사를 잡겠다며 온갖 말썽을 부리다 얼떨결에 한강에 잠수정을 타고 침투한 간첩을 잡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계속된 말썽에 고길동에게 크게 혼난 둘리는 벌을 받으면서 "코나 깨져라." 라고 말하고, 둘리의 초능력에 의해 소련 파일럿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미끄러져 코가 깨지는 엔딩. TV판 애니메이션에선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으로 바꾸면서 소련이 아닌 북한 관련으로 다르게 나온다.

신문수 화백의 신통방통이에서는 외계인들이 지구로 와서 소련군 전함을 날려버리고 바다에 가라앉음에도 무사한(?) 007편 여객기(당시에는 칼(KAL)기라고 불렀는데 이 만화에선 카알 기라고 부른다)를 구해준다. 그러나 알고보니 방통이의 아시발꿈.

이 사건 이후에 관련 반공동화(...)들이 양산되었는데 대부분은 소련을 비난하는 어린이들의 분노를 담아낸 세미 다큐멘터리 동화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 할아버지에게 소련에 대한 복수를 해달라는 편지와 레이건 할아버지, 낸시 할머니에게 사건 처리를 감사한다는 어린이들의 편지 모음집도 있었다.(....)

록 뮤지션 게리 무어는 이 사건을 소재로 Murder in the Skies라는 곡을 만들었다. 이 곡은 1984년 발표된 앨범 Victims of the Future에 수록되었다.

1988년에 미국에서 TV 영화로 돌아오지 않는 KAL 007(비디오 제목/원제는 Shootdown)이 방영되었다. 이 영화는 1991년에 KBS에서 토요명화로 방영하려다가 방영금지된 바 있다.

줄거리는 이 사고로 아들을 잃은 제시카 아줌마과부 안젤라 랜스베리가 사건 관련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음모를 밝힌다는 내용인데 처음 설정으로는 부기장이 CIA의 에이전트로서 실수를 가장한 소련 영공 침투 시험을 했다는 것인데... 당연히 비난을 받았고 약간 바꾸어 한국인 비행사들이 뚜렷한 이유없이 소련으로 넘어가려는 듯한 설정을 보여서 기장의 유족들이 반발했다.

당시 로드쇼 기사에 의하면 방송위에서는 고인(조종사) 명예훼손 및 한국에 대하여 부정적인 면이 커서 방송불가를 했다고 나왔다. 영화적 완성도는 범작 수준... TV 방영은 당연히 금지되었지만 대우비디오를 통해 VHS 비디오로는 출시되었고 케이블에서도 가끔 틀어준다. 다만 사고 재현 부분은 꽤 긴박감이 있어서 한국 TV 뉴스시간에 소개될 정도였다. 극중 미국 뉴스 화면으로 당시 한국에서 소련을 규탄하는 시위 실제 현장을 잠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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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모형 메이커 트럼페터에서 발매한 1/48 스케일의 Su-15TM 키트의 박스 아트가 이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실제 오시포비치의 기체 번호는 17번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동료기였다거나 일부러 번호를 바꿨다는 등의 의견이 난무했다. 사실 해당 킷 모델인 Su-15만 그려도 되는데 저 멀리 민항기로 보이는 기체를 그려넣을 필요가 없지 않냐는 게 가장 큰 의문이다.

영국의 TV시리즈 셜록(드라마)의 시즌2 에피소드1 벨그레이비아 스캔들에서 추락 예정이던 민항기는 007편이었다. 대한항공 사건서 미국이 소련군 교신의 감청을 통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감청 사실을 숨기기위해 처음에는 이 사실을 숨겼다는 음모론 또한 드라마와의 유사점. 다만, 셜록은 대한항공 사건이 아닌 코번트리 음모론을 언급한다.

대부분 모르는 사실이지만 1993년 발매된 '삶 사람 사랑'[5] 1집 수록곡 중 '할머니와 비행기'라는 곡이 이 사건을 소재로 한 곡이다.
노래의 내용은 미국에 계신 할머니가 손자의 선물로 줄 야구장갑과 모자를 사서 한국으로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시신을 못찾아 결국 할머니의 옷을 묻고 묘를 꾸몄고, '(내가 기다리던) 야구장갑과 모자는 이제는 잠기어 저 바다속 어디에 있겠지 할머니가 사주신 나의 것 보고싶어 어째 손자는 할머니보다 선물을 바랐던 것 같다'라고 생각하며 할머니와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하는 내용. 가사가 가사다 보니 노래 자체도 암울하고 어둡다.

김진명의 소설 한반도(10.26으로 개칭)에서도 잠깐 언급된다. 주인공이 근무했던 에이펙스 로펌의 대표 케렌스키가 정보원을 통해 수집한 CIA의 기밀문서 중 하나로 이 사건 관련 문서가 소개되는데, 그 내용은 미국이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영공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항공기가 어떻게 되나 지켜보고 있었으며[6], 소련측의 (정당한) 요격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이용해 소련을 악의 축으로 규정짓는 정보공작을 펼쳤다는 것이다.

4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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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007편의 실제 비행항로와 비행 예정항로, 일본 상공을 통과해 서울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 점선이 비행 예정항로였고 007 뒤에 이륙했던 015편의 항로이기도 했다.미사일 피격 144초후의 비행 데이터

5 음모론

냉전의 와중에 벌어진 사건이고 적국 영공에서 벌어진 일인지라 당연히 음모론이 따라오게 되었다. 일단 고의 정찰설, 미국 방조설[7]등이 주요 음모론이다.

사망한 탑승객중 미국의 로렌스 맥도널드 하원의원#[8]이 있었던 것도 음모론의 근원인데 1983년이면 한국전쟁 휴전 30주년이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미국 상원의원 대표단이 한국방문을 하려고 했다. 다행히 10분뒤 출발하는 다음편 항공기를 대표단이 탑승하는 바람에 주요 의원 몰살이라는 비극은 피했지만 하필이면 맥도널드 의원이 문제의 항공기에 탑승했으니... 그래서 어떤 높으신 분[9]들의 암살작전이라는 게 음모론의 요지이다. 음모론 총정리

추락이 아니고 사실은 캄차카에 착륙했고 탑승객들이 전원 살았으며 맥도날드 의원은 루뱐카에 나머지 승객들은 시베리아 굴라그에 수용되어서[10] 사망했다는 음모론도 미국에서는 꽤 퍼져있다. 이에 따르면 해상에서 발견된 파편은 소련이 비슷한 기체를 고의로 폭파시켰고 블랙박스는 소련이 당연히 입수해서 처리했다는 논지인데, 위에 서술한대로 보리스 옐친이 블랙박스를 한국 정부에 넘겨주었고 그것에 따른 분석자료가 나와 있는 현재는 거의 폐기된 음모론이다. 물론 디씨 등에선 보리스 옐친이 블랙박스를 조작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사실 공개된 블랙박스는 불시착 또는 추락 이후 탑승객들의 사망이나 생존 유무를 식별하는 단서가 될 수가 없다.

불쏘시개 음모론 저서인 쩐의 전쟁화폐전쟁에서는 세계정부의 실체를 밝히려던 맥도날드 의원을 암살하기 위해 비행기를 폭파시켰다는 음모론을 제기했지만.... 화폐전쟁의 신빙성 자체가 안드로메다이니...

6 기타

▲KE007 격추 사건 위령비.
  • 홋카이도의 최북단이자 일본의 최북단인 소야 곶(宗谷岬)에 위치한 공원에 이 사고로 인한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인 추도의 탑(祈りの塔)이 설치되어있다.
  • 월간조선이 이 사건에 대해서 르포를 여러 번 냈었다.[11] 분석을 상당히 예리하게 했었는데, 2003년에는 비행기를 격추시켰던 오시포비치와 인터뷰까지 했었다. 요지는 나는 잘못 없고 007기는 미국 CIA의 지시를 받고 소련내 정찰을 하는 스파이 행위가 맞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을 자세히 읽다 보면 군인으로서 임무는 충실히 수행해 자랑스럽지만, 자신이 격추시킨 항공기가 여객기였다면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적었고, 언제든지 한국에서 진상 규명을 위해 초청하면 언제든지 가서 이실직고하겠다라고 말했다.
  • 1991년 3월 24일자 동아일보에는 희생자의 유해 일부로 보이는 사람의 잘려진 팔뚝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흠좀무. 혐오 주의[12] 그런데 이 기사를 보면 오시포비치는 KAL기가 민간기라는 것을 알고 격추했다고 하는데, 1997년 동아일보 인터뷰와 2003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는 몰랐다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 항공 사고 수사대 인터뷰에서는 아예 나는 아직도 007기가 스파이기였다고 믿는다는 뉘앙스의 말을 남겼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일단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 나온 전문가들은 자신이 수백 명의 죄 없는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어서 자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전세계 외신에서 대서특필된 사건이지만 놀랍게도 한국 TV에서는 당일 탑뉴스가 아니였다. 모든 TV 방송은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 했기 때문에 무엄하게 자국민 수백명이 죽은 KAL기 피격 사건 따위가 전두환 각하의 뉴스보다 먼저 올 수 없었다. 이에 사건이 발생했던 당일에도 9시 뉴스(KBS 9뉴스, MBC 뉴스데스크)에서 "오늘 전두환 대통령은"하며 시작하여 '각하'께서 서울 어느 거리에서 빗자루를 들고 환히 웃으며 조기청소 하는 모습을 비추었다. # 그 소름끼치는 영상
  • 2014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 플심으로 재현한 영상
  • 동년 1월 8일 007편은 폭탄 테러 미수를 겪은 적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기장이 나리타 국제공항에 긴급 착륙했으며, 샅샅이 수색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폭탄은 없었고, 범인은 정신이상 중국인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

7 관련 항목

7.1 유사 사건[13]

7.2 그 외

7.3 외부 링크

  1. 당시 한국에서 미국 동부 지역으로 가는 여객기는 공산 국가였던 소련의 영공을 통과할 수 없었을 뿐더러, 부족한 항속거리 때문에 그나마 거리 손실이 낮았던 알래스카앵커리지 국제공항을 중간 기착지로 삼아 연료 보급, 승무원 교대가 이루어졌다.
  2. 루프트한자의 자회사인 콘도르 항공에서 중고로 들여온 여객기이므로, 이쪽 항공사의 고객 코드(BCC)를 따른다. 루프트한자도 BCC가 30번이다.
  3. 이 때 당시 대통령이던 보리스 옐친이 직접 노태우 대통령에게 전달하였다.
  4. 하지만 이는 후일 9.11 테러의 간접적 원인이 된다.
  5. 015B의 베이시스트 조형곤과 그의 형 조형민이 만든 그룹. 참고로 이 앨범은 희귀판이다.
  6. 후술할 음모론에서 소개되는 미국 방조설이다.
  7.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영공침범을 알았는데도 소련 방공 시스템의 정확도나 신속성을 테스트하고자 고의로 놔두었다는 이야기. 설마 격추까지는 안 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는데..
  8.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소련에 대한 강경노선을 펼쳤고 미국의 극보수 단체의 회장까지도 역임했다. 심지어 대선 출마까지도 고려했다는데
  9. 대부분은 소련이라고 하지만 일부 음모론에서는 미국을 지칭하기도 한다
  10. 냉전 종식후 냉전 시대에 자유진영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굴라그에 수용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나름 공개되었다. 특히 1970~1980년대 소련 영공에서 격추된 미 정찰기 관련 인사들의 이야기는 유족들이 소련의 매장지에 방문할 정도인데, 굴라그 관련 서적에도 KAL기 생존자 관련 증언은 없다. 물론 음모론자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를 들어서 어린이를 포함한 생존자의 이야기를 실어주기도 한다
  11. 이 르포 작성자 중에는 조갑제도 있다.물론 편집장 때가 아닌 기자 시절에.
  12. 여담이지만 당시 이 기사를 썼던 이낙연 특파원은 국회의원을 거쳐 현재 전라남도 도지사로 재임중이다.
  13. 무기에 의한 민항기 격추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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