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론(가수)

파일:Attachment/클론(11 zeussr1.jpg

[1]

SBS 가요대상 대상
1995년1996년1997년
룰라클론H.O.T.
날개 잃은 천사꿍따리 샤바라행복
서울가요대상 대상
1995년1996년1997년
룰라클론H.O.T.
날개 잃은 천사꿍따리 샤바라We are the future

1 소개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댄싱듀오
90년대 1차 한류스타
90년대 후반기를 대표하던 남성 듀오 그룹[2]
1996년 별들의 전쟁의 최종 승리자

Clon[3]

90년대에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남성 댄싱 듀오. '꿍따리 샤바라'를 히트시켜 승승장구의 길을 걸어 한 때 해외까지 진출했던 듀오다.

2 경력

2.1 데뷔

1996년 5월 데뷔. 데뷔한지 한 달만에 '꿍따리 샤바라'로 대박히트를 쳤다. 강원래,구준엽 2인조 댄스 듀오.



경기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였던 강원래와 구준엽이 결성한 듀오로 이 둘은 당시 학교와 인근 지역에까지 알려진 소문난 춤꾼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서로 춤을 추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으며, 이태원의 나이트 클럽들을 돌아다니면서 당시 서울에서 잘 나가던 춤꾼들 사이에서도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고교 졸업 이후 이들은 댄스경연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4]한 것을 계기로 이수만에게 발탁되어 1990년에 현진영이 주축이 된 현진영과 와와에서 와와 1기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상황에서 군입대 크리를 겪으며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5] 제대 후에 구준엽은 1993년 이탁과 '탁2준2'[6]로 활동했고, 강원래 역시 유명가수들의 백댄서 생활을 하다가, 클론 결성 1년 전인 1995년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에 객원 랩퍼로 등장해 주목을 받으며 가수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1990년대 중반 김건모를 키웠던 히트 제작자이자 작곡가인 김창환에게 발탁된 두 친구는 당시 김창환 사단의 간판이자 당대 최고의 음반판매 깡패였던 김건모가 김창환과의 불화로 라인뮤직을 떠나면서, 대스타를 잃으면서 흔들린 라인뮤직을 다시 살릴 필요가 있었던 이유로, 곧바로 음반준비를 하며 데뷔할 기회를 잡았고 <꿍따리 샤바라>라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가사와 중독성있는 리듬감, 독특한 이름의 곡으로 1996년 여름에 전격 데뷔하게 된다.

2.2 1996년 별들의 전쟁의 승리자

1996년에 그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느냐 하면 당대 최고의 가요프로 가요톱10에서 조용필 이후 4년 연속으로 정규앨범 4장 연속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 김건모의 4집곡 '스피드'가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골든컵을 수상하는 것을 저지시킬 정도였다. 그것도 김건모의 5주 연속 1위를 눈 앞에 둔 시점에. 당시 김건모가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던 솔리드, R.ef, 신승훈 등과의 경쟁을 뚫고 4주 연속 1위를 하고, 5주 연속 1위에 도전하던 것을 사실상의 신인가수였던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가 저지를 시킨 것이다. 첫 등장에서는 30위 권에 든 곡이 아무런 홍보도 없었고,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방송된 이후 3주 만에 1위 후보곡에 올랐다면 믿겨지겠는가? 요즘에는 소속사만 잘 만나면 1위를 단숨에 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옛날에는 한국 가요계 최고의 사건이다.

만약에 김건모의 '스피드'가 골든컵 수상에 성공했다면 김건모는 가요톱10 1990년대 처음으로 4년 연속 골든컵, 정규앨범 4장 연속 골든컵 수상곡 배출[7]이라는,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8]을 수립했을 것이다. 그 대기록을 막아낸 클론은 가요톱10 첫 1위가 확정되자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야구로 비유하자면, 상대팀 투수의 퍼펙트 게임이 될 경기를 9회말 2아웃부터 역전 만루홈런을 쳐서 이긴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반면, 대기록 수립을 눈앞에 둔 김건모는 바로 전년도까지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라인음향(김창환사단) 소속의 클론이 1위를 하는 것을 겉으로는 축하했지만, 속으로는 아쉬움을 참아내는 기색이 역력했다.

급기야 김건모 선배의 대기록을 저지시킨 클론은 그 여세를 몰아 '꿍따리 샤바라'로 골든컵을 수상했다. 1996년의 한국 가요계는 유례없는 대혼전[9]으로 1996년 그 해 골든컵 수상곡이 단 2곡 밖에 없었는데[10]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꿍따리 샤바라'다. 나머지 한 곡은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인데, 슬픈 언약식은 1995년 9월[11]에 나온 음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996년에 발표된 음반 중에선 해당 곡과 97년에서 골든컵을 수상한 의 운명(앨범 발매는 1996년 11월) 두 곡 뿐이다.

여담으로 1996년 하면 떠오르는 아이돌 스타였던 H.O.T.는 1996년 당시 가요톱텐에서 1위를 하지 못했는데, 전사의 후예는 1996년 11월 초부터 10위권에 진입했으나, 표절시비로 인해 곡을 바꿨고, 12월 하순경에 캔디가 1위 후보로 올라섰으나, 성탄절/신정 특집을 거치는 바람에 H.O.T.가 가요톱텐에서 첫 1위를 한 날은 1997년 1월 8일[12]이다.

2.3 2~4집

그 후 1집의 후속곡인 <난>도 1위 후보에 오르면서 입지를 탄탄히 다졌으며, 1997년 여름에 쿵따리 샤바라처럼 여름 바캉스 곡인 <도시탈출>을 선보였다. 이 곡도 <쿵따리 샤바라>처럼 큰 인기를 누렸으나, 이 때 임창정이 <그 때 또 다시>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라서 항상 1위 후보에 오른 거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2집 후속곡인 <빙빙빙>도 가요 순위 상위권에 오르면서 선전했으며 이 인기로 인해 나중에 대만 쪽으로 프로모션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길이 시작되었다.

3집에서는 객원맴버인 <김태영>과 같이 활동했으며, 테크노 리듬과 펑키 리듬을 접목한 <돌아와>, <funky tonight>, <사랑과 영혼> 등의 곡을 히트시켰다. 4집에서는 야광봉춤 컨셉인 <초련>과 <거짓말>이라는 곡으로 활동했으며, 3년 만에 다시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여러번 수상하게 된다.

2.4 대만 진출

성공적인 1집 데뷔 후 여름을 대표하는 남성듀오로 인기를 얻으며 '난', '도시탈출', '초련', '사랑과 영혼' 등의 각종 히트곡을 쏟아낸 것은 물론(펌프 잇 업 게임 때문에 Funky Tonight도 꽤 인지도가 있는 편.) 그 인기가 국외까지 퍼져 아시아권의 원조 한류가수라고도 불린 바 있다. 대만에서는 '빙빙빙'이란 노래를 히트치면서 당시 故마이클 잭슨급의 인기[13]였다고 하니... 지금도 클론을 기억하는 대만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대만 활동내용들이 대만 신문 1면을 장식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중 구준엽의 인기는 대단해서, 몇년 연속으로 대만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위에 선정되며, 대만 톱스타 '서희원'(대만판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과 사귀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98~99년 당시 대만의 구준엽은 추후 일본의 배용준보다 더한 인기를 가지고 있었던 슈퍼스타였다고 보면 된다.[14] 2000년도에도 대만에서 초대형 콘서트를 준비 중에 있었으나 후술하는 강원래의 안타까운 교통사고로 인해 결국 무산되었다.

여담인데 대만에서는 이 둘이 사귄다는 소문까지 자자하여 클론이 어이를 날렸다고 한다.

2.5 교통사고로 인한 예기치 못한 잠정 활동 중단

2000년 강원래가 오토바이를 타던 도중 (현재의) 신논현역 사거리를 좌회전하는 과정에서 불법 유턴한 차량과 충돌, 하반신을 쓸 수 없는 몸이 되는 사고[15]를 당한다. 이 사고 때문에 강원래가 더 이상 춤을 추지 못하게 되면서 일차적으로 클론 활동이 전면 중단되었고, 그의 하반신이 영구 장애 판정을 받게 됨과 동시에 댄스 가수 활동 역시 불가능하게 되어 자연스레 클론은 해체가 되고 만다.

이후 2005년 휠체어를 이용한 안무를 만드는 강원래의 투혼으로 5집을 내고 '내사랑 송이'라는 타이틀곡으로 컴백해 휠체어 댄스를 보여주며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5집을 마지막으로 둘은 클론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강원래는 라디오 DJ로, 구준엽은 'DJ KOO'란 이름으로 솔로 가수 및 클럽 DJ로 활동 중.

그래도 4년에 한번 월드컵 시즌이 되면 TV에 함께 얼굴 정도는 비춰주며 월드컵 시즌에 만들어진 응원가들은 각종 대회에 나오면 울러 퍼질 정도로 인기가 좋다.

지금봐도 세련된 파워풀한 댄스와 터프한 퍼포먼스를 앞세워 큰 인기를 구가했다. 대한민국 댄스 역사에서 도 파워풀한 남성안무의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그룹으로, 남성다운 선이 살아있는 멋있는 안무를 잘 만들었으며 그런 안무가 돋보이는 대표곡인 <난>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솔로 댄스가수인 MKMF에서 구준엽과 함께 특별무대를 만들기도 했다.

특히 강원래는 이주노, 박철우, 양현석, 현진영 등과 함께 대한민국에 흑인음악, 흑인댄스를 도입한 이태원 춤꾼 1세대로 당시 개인 댄스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 가요계의 유명 아카데미 단장들이나 댄스 스승들은 강원래 밑에서 시작했던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3 여담

신승훈, 김건모, 박미경 등과 함께 라인음향 소속으로 90년대 초중반 가요계를 휩쓴 김창환 사단의 일원이다.

2014년,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에 본인들의 노래 「쿵따리 샤바라」의 피쳐링으로 참여하였다. 이 때 사용한 이름은 클론.

한국 음악사에 댄스로 이름을 날린 그룹이었지만 강원래는 지저분한 사생활과 대인관계때문에 그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진 동료 연예인이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이하늘에겐 원수와도 다름이 없으며, 이하늘의 여자친구를 강제로 뺏어갔던 이야기를 DJ DOC 7집에 디스곡으로 발표하기도 했고, 이후 라디오 스타 클론,박미경 편[16]에서 강원래가 이 내용을 발언하며 이하늘과 대립각을 세우는 등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다만 나중에 런닝맨에서 밝힌바에 의하면 현재는 앙금을 풀었으며 구준엽과는 친하게 지낸다는 듯 하다.

개그맨 지상렬염경환이 개그 콤비 듀오로 "클놈"이라는 이름으로 패러디를 하기도 했다. 이에 클론 측에서는 자신들을 희화한 패러디를 보면서 클놈에게 너 고소를 시전하려고 했으나, 자세히 지켜보니까 개그 컨셉이 너무 재미있어서 결국은 고소를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입었던 의상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중국 가수 서희옥이 클론의 <도시탈출>을 <환상적이야>라는 곡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1]
  1. 참고로 상단의 사진은 1996년 난(Nan)이라는 곡의 MV에서 사용된 장면중 하나를 캡쳐한 것이다.
  2. 90년대 전반기는 자타가 공인하는 듀스가 있다.
  3. 다른 동음이의어와는 달리 e가 빠진 표기를 쓴다.
  4. 강원래가 1위, 구준엽이 4위였다고 한다.
  5. 이들을 대신해 후속으로 들어온 와와 2기 멤버들이 다름아닌 이현도김성재로, 추후 듀스라는 그룹으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한다.
  6. 그룹 이름 때문에 탁재훈과 같이 한걸로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완전 잘못된 정보로, 실제로는 현진영과 음악적으로 관계가 깊은 '이탁'과 함께 활동했으며 그룹명도 당연히 그의 이름에서 따온것이다.
  7. 1993년 1집 첫인상, 1994년 2집 핑계, 1995년 3집 잘못된 만남 골든컵 수상
  8. 골든컵 제조기인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도 3집 앨범에서는 1위 곡을 배출하지 못했다.
  9. 2월엔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했으며 5월에는 김건모의 4집과 신승훈의 5집이 발매되어 대결 구도가 잡혀가고 있었고 R.ef vs 솔리드 vs 터보의 3파전도 쟁쟁했었다.
  10. 5주 연속 골든컵 제도에서의 공식적인 역대 최소 골든컵 수상 연도.
  11. 1996년 상반기 가요계는 1995년 9~12월에 쏟아진 명곡들이 1위곡을 비롯한 10위권을 점령했으며 1995년 10월에 나온 음반이 1996년 6월에도 10위권 이내에 있었던 걸 감안하면 이 때는 크게 롱런한 곡들이 많았다는 이야기. (1996년 1월 3일~ 5월 15일 방송분 내내 1위를 차지했던 곡 모두가 1995년 발매곡이며 설운도의 '쌈바의 여인'(1995년 7월 발매)은 1996년 10월 말까지 30위권 안에 있었다.)
  12. SBS TV가요20에서는 1996년 12월 15일, MBC 인기가요베스트50에서는 1996년 12월 28일이며 이 두 가요프로그램에서 모두 명예졸업에 성공했다.
  13. 당시 마이클 잭슨이 대만에 방문했을때 공연료가 당시 클론과 같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단지 안타깝게도 당시 수익배분체계가 잘못되어 있던 것 때문에 공연을 중개하던 연예 기획사들이 중간에 많이 가로챈 영향으로 클론 멤버 두 사람은 배분을 별로 못 받아서 큰 돈을 벌지 못했다.
  14. 물론 일본보다 대만의 연예시장 자체가 작았던 영향도 있었을 것이지만 어찌되었건 각국 단기간 연예계 서열에서 정점은 분명 구준엽이 위였다.
  15. 이 이야기는 스펀지에서 380회에서 소개되었으며 사고 당시, 사고를 목격한 행인이 도로 한 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강원래를 추후 있을지 모를 사고를 대비하여 인도로 옮겼다고 한다. 이로 인해 부러진 뼈가 신경을 건들게 되었고, 만일 행인들이 그를 옮기지 않고 놔두었다면 하반신 마비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척추나 경추 다친 사람을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길 복판에 내버려 두었다면 2차 사고로 사망했을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던 상황으로 볼 수 있다.
  16. 2010년 3월 17일 179회, 3월 24일 180회 방송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