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시(구축함)

가게로급 구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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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카제이소카제하마카제타니카제노와키
아라시하기카제마이카제아키구모

1 개요

USS Arashi일본 해군의 가게로급 구축함이자 역사를 만든 군함. 그리고 조선해방함

2 함생

함생 부분은 아래에 링크된 영어 위키백과일본어 위키백과에 더 자세히 나오니 참고하자.

2.1 초기

마이즈루 해군공창에서 1939년 5월 4일에 기공, 1941년 1월 27일에 취역한 후 제4구축대의 일원으로 제4 수뢰전대(기함 나카)에 소속되어 남방작전을 지원했고, 다수의 상선과 미군 건보트 애쉬빌을 격침시키는데 조력했다.

2.2 역사를 만들다

나구모 함대의 일원으로 미드웨이 해전에 참전했으며, 나왈급 잠수함 SS-168 노틸러스가 나구모 함대를 공격하려는 것을 발견하고 폭뢰 공격을 가해서 쫓아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본대에서 뒤쳐진다. 그래서 본대와 합류하기 위해 서두르다가 크고 아름다운 항적을 남기는데…

미군이 이걸 봤다!

나구모 함대를 찾고 있던 미군 급강하폭격기 편대의 지휘관인 C.웨이드 멕클러스키 소령은 이 항적을 발견하고 아라시를 추적, 나구모 함대를 발견했다. 더 극적인 것은 연료가 아슬아슬했기 때문에 맥클러스키 소령도 "마지막으로 남서쪽이나 한 번 둘러보고 없으면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왔다가 아라시의 항적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마침 나구모 함대를 엄호하던 A6M들은 미군 뇌격기들을 추격하느라 수면 가까이로 내려온 상태였고, 하늘이 텅 빈 걸 본 멕클러스키는 공격명령을 내린다. 그 뒤는 그 유명한 운명의 5분으로 이어졌고, 아카기카가는 박살났다. 겨우 살아남은 히류가 요크타운을 대파시켰지만 위에서 언급된 바로 그 급강하폭격기들이 히류를 덮쳤고, 히류와 야마구치 다몬도 죽었다. 운명의 5분 당시에 요크타운 소속의 급강하폭격기들이 소류를 격침시킨 것을 제외하면 나구모 함대의 모든 항공모함이 아라시 때문에 격침된 것이다. 이 패배로 전쟁의 주도권은 미국에게 넘어갔고, 일본의 모든 전략은 무너졌으며 일본은 최강의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잃었다. 아라시는 태평양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것이다.

여기까지만 했다면 아라시는 일본 제국을 멸망시킨 훌륭한 군함으로 찬사(?)를 받을 수 있겠지만.

2.3 포로 학살

6월 4일의 전투에서 나구모 함대를 날려버린 후, 아라시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다. 비행기가 추락해서 바다에 표류하던 미국 제3뇌격비행대대의 웨줄리 프랭크 오스무스(Wesley Frank Osmus) 소위를 포로로 잡은 후에 심문해서 미국의 함대가 항공모함 3척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 6월 5일 오후에 갑판 위로 오스무스 소위를 끌어내서 소방용 도끼로 뒷목을 가격했다. 당연하게도 오스무스 소위를 처형하려고 이렇게 한 것이며, 오스무스 소위는 충격으로 배에서 떨어졌으나, 난간을 붙잡고 가까스로 매달린 걸 다시 한번 쳐밀어서 바다에 생으로 수장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연하게도 이런 짓은 전범행위이며, 아라시의 함장인 와타나베 유스마사(渡辺保正) 중좌는 일본이 패전한 후 미국이 전범 재판에 피고인으로 올리기 위해 찾다가 전사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중지했다. 그리고 아라시의 생존자들은 포로 살해의 책임자로 와타나베 함장과 마츠우라 츠토무(松浦勉) 포술장을 지목했다.#1#2#3

2.4 최후

아라시는 이후 과달카날 전투에 참전하였고, 1943년 8월 7일에 솔로몬 제도에서 벌어진 벨라만 해전에서 격침된다.

3 평가

역사를 만든 구축함

미드웨이에서 일본침몰급 삽질을 저지른 탓에 아라시는 일본 패망의 원흉 중 하나가 되었다. 아라시가 삽질만 안했어도 멕클러스키의 급강하폭격기부대는 나구모 함대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거나, 바다에 빠졌을 가능성이 컸다. 아라시 때문에 일본이 이길 전쟁을 패한 건 아니지만, 아라시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패배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고 미드웨이 해전이 워낙 중요한 해전이었으니(...)

아라시에 탑승하고있던 생존자로 구성된 아라시 전우회는 아라시는 항공모함 아카기의 호위임무를 맡고있어서 옆에서 한치도 떨어진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일본 측의 기록에서는 잠수함 '노틸러스'를 아라시가 공격 한 것은 오전 6시 10분부터 30분에 걸친 시간이고, 공습을 받기 전인 오전 7시(공습은 7시 20분 이후)에는 기함 아카기의 호위에 복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기록은 최소한 두개의 부대가 언급한 것이 공통적으로 일치하며, 굳이 거짓증언을 해서 얻을 이득도 없고, 아라시가 없었다면 나구모 함대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으므로 미국쪽 증언의 신빙성은 높다. 게다가 아라시의 입장에서는 미국 기록을 인정하면 패전의 직접적 원인을 불러왔다는 불명예를 가져오기에 당연히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할 강력한 이유가 존재하므로 일본쪽 증언의 신빙성은 낮다.

2016년 3월의 일본어위키 아라시 항목에서는 아라시 승조원들의 증언을 소개하고 있지만,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 일본군에 그런 멍청한 배가 있을 리 없다능!

미국에서는 당연히 아라시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행한 공로를 첫 번째로 소개하며, 영문위키 아라시 항목에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vital role(치명적인 역할)을 했다"고 소개한다. 포로학살에 대해서도 분명히 언급하고 있으나, 미드웨이에 대해 다룰 때는 포로학살보다는 운명의 5분 쪽이 강조되는 편이다. 사실 포로학살만 안했어도 대통령 표창을 받을 수훈을 세운 터라(...)

4 기타

미드웨이 해전 당시, 제4구축대의 사령관을 맡았던 아루가 코사쿠는 나중에 야마토급 전함 1번함 야마토 최후의 함장을 지냈다.

5 대중매체의 아라시

역사상의 활약(?)에 비해 유명하지 않아서 대중매체에 자주 나오지는 않는다.

엔터프라이즈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배틀 360' 2화에서 주연으로 등장하며, 토네와 치쿠마의 정찰 실패가 언급도 되지 않는데 비해 아라시의 행적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된다. "함대의 운명을 결정지었다"는 나레이션이 나올 정도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해전 이후 벌어진 아라시의 학살극은 나오지 않으며, 구축함 마키구모가 벌인 포로학살만 소개된다.

전함소녀에서 미드웨이 이벤트의 키 플레이어로 등장. 아라시(전함소녀) 참조.

함대 컬렉션에도 등장한다. 관련 내용은 아라시(함대 컬렉션) 참조.

6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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