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

역대 이스라엘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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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왕국
6대 오므리7대 아합8대 아하시야

B.C. 876~854. 성경의 등장인물로 북이스라엘 왕국의 7번째 왕이자, 오므리 왕조의 2번째 왕. 부친인 오므리 왕이 세멜에게 사마리아를 사기 전에 태어났으므로 디르사 출생.

1 왕위에 오르다

선대 왕이었던 오므리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위에 올랐으며, 아내는 페니키아(개역한글판 기준으로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제벨. 열왕기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이스라엘 왕이며, 동시에 구약 내내 가장 비중 있게 까이는 북이스라엘 왕이기도 하다. 실제로 열왕기상 중반부 이후부터는 아합과 엘리야의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열왕기상 17장 28절에 최초로 등장하면서 사악한 왕인 오므리 이상으로 사악한 악의 덩어리라며 아내인 이제벨과 세트로 까이는 왕이지만, 좀 더 파고들면 부왕인 오므리의 뒤를 이어 막장이었던 북이스라엘을 안정화시키는데 공을 들인 나름 능력있는 군주였다.

성경의 내용만 봐서는 이게 무슨 말인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부왕인 오므리가 왕위에 오르기 이전까지만 해도 북이스라엘 왕가는 2대 이상을 넘어간 일이 없었다.[1] 조금만 힘 좀 쓴다 싶으면 곧바로 왕을 끌어내리고 자기가 왕을 해먹던 막장이 바로 이 시절[2]이었고, 이 왕좌의 게임(...)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인물이 바로 아합의 부친인 오므리였다. 그리고 오므리는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천도한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왕권과 내치를 굳건히 하였으며, 아합과 이제벨의 결혼 역시 이 당시에 이뤄진 것으로 역사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실제 이 당시에 북이스라엘은 오므리의 땅이라는 별호로 불릴 정도로 그의 치세가 한 왕조의 창업 군주로서 성공적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는 기록도 남아있다.

아합은 이러한 부친의 정책을 계승하여 북이스라엘을 최대한 안정화하면서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데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종교집단, 즉 예언자들의 대한 견제로 이국의 공주인 이제벨에게 종교 권한을 일임하여 바알(멜카르트) 숭배를 추진했다.[3]

하지만 이 때문에 아합은 당대 예언자들의 대표인 디셉 사람 엘리야를 비롯한 당시 예언자들에겐 악의 축과도 같은 인물이었고, 이들이 남긴 글의 내용이 후세의 가장 거대한 종교경전으로 전해지는 바람에 후세의 기독교인들에게까지 두고두고 까이게 된다.

2 엘리야와의 대결

아합 왕의 바알 숭배를 두고 디셉 사람 엘리야는 왕의 앞에 나아가 가뭄이 들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에 아합과 이제벨은 들은 척도 안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벌어지자 오히려 이제벨은 '이게 다 저놈이 바알을 노하게 해서 그런 거다!'라며 엘리야를 잡아죽이려 하였다.[4] 결국 엘리야는 아합과 이제벨의 마수를 피해 숨어사는 처지가 되었다.

가뭄이 지속되자, 아합은 궁내대신 오바드야[5]와 함께 말먹이풀을 찾아 궁을 나섰는데, 마침 아합과 따로 움직이던 오바드야가 엘리야를 만났다. 오바드야는 엘리야에게 필시 왕이 댁을 죽이려고 길길이 날뛸 테니 빨리 도망가라고 말했지만, 엘리야는 걱정 말고 아합에게 안내하라고 했으며, 아합은 오바드야가 예상한대로 "네놈이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악의 축이구나!’하며 엘리야를 잡아죽이려 했다.

하지만 엘리야는 비범하게도 오히려 "이스라엘을 파탄낸 악의 축은 내가 아니고 당신과 당신의 왕조이다!"라며 되받아치고 당신 아내를 따르는 바알의 사제들과 가르멜 산에서 한 판 붙자고 결투를 신청했다.

결투 방식은 각자의 제단에 각을 뜬 송아지를 놓고 먼저 불이 붙는 쪽이 승리하는 것이었는데, 첫 턴에 바알의 사제들이 한아름 댄스를 추면서 그들의 신인 바알의 이름을 불렀지만 반나절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에 엘리야가 "이야, 욕본다. 좀 큰 소리로 불러보지 그러셔. 자네들 신께서 지금 마실 나갔던가, 아님 졸고 있는 거 아녀?" 라고 이들을 디스하자 이번엔 오기가 생겼는지 아예 각종 흉기로 자신들의 몸을 자해하면서[6] 더 큰 소리로 허공에 외쳤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효과는 전혀 없었다. 자해 대신 자기 해골을 바쳤으면 축복이라도 줬으려나?

이윽고 엘리야의 차례가 오자 그는 제단에다 물을 붓고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그 물은 어디서 퍼왔지?그런데 제단에 끼얹은 물 때문에 불이 도저히 붙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기도 한 번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을 화끈하게 불태워버렸다. 그러자 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물론 아합 왕 본인까지 대경실색을 하여, 직후 엘리야가 군중들을 동원해 바알의 사제들을 모조리 도륙내는 광경을 보면서도 한마디도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다가 엘리야가 다독이면서 돌려보낼 정도로 추태를 보였다. 그 과정에서 엘리야가 손수 비를 불러 모으고, 돌아가는 아합의 병거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터보 예언자 엘리야를 보며 이스르엘 땅 앞에서 멍때렸던 건 덤.

이렇게 남편인 아합이 제대로 이미지를 구겨버리자 분노한 이제벨은 어떻게든 엘리야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이스라엘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엘리야는 더욱 더 깊이 숨어버렸다. 덕분에 아합은 잠시 구겼던 체통을 어느 정도 되찾았는지 다시 이제벨에게 종교 활동을 위임하고 기존의 정책을 계속 유지했다.

3 아람#s-2.1과 전쟁

시리아 왕 벤하닷 2세가 휘하의 32명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아합에게 ‘니 전 재산과 니 아내들과 니 예쁜 딸들 다 내놔!’라고 강요하자, 아합은 다 들어줄 테니 군대를 물리라고 요청했다. 예상보다 쉽게 아합이 굴복하자, 벤하닷은 한 술 더 떠서 ‘나한테 들어주는 거 내 부하들한테도 똑같이 해야 하는데?’라고 요구 조건의 강도를 더 높였다. 그러자 아합은 신하들을 불러모아 '얘네들이 지금 우릴 다 벗겨먹겠다는데 어쩌지?'라고 물었고 신하들은 ‘이게 뭔 개소리야!?’라며 죽기 살기로 싸우자고 외쳤다.

아합 역시 마찬가지로 화가 단단히 났던지라 곧바로 벤하닷에게 ‘오냐 한 판 붙자!’라며 최후통첩을 날렸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벤하닷은 '오늘은 한 탕 마시고 내일 저것들 다 쓸어버리자'며 부하들과 거하게 술판을 벌이다가 아합이 조직한 특수부대의 야습[7]에 제대로 걸려서 떡이 되어 측근들과 함께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갔다.

한편 전쟁에서 승리한 아합은 ‘저것들 다시 쳐들어 올 거 뻔하니 대비하십시오’라는 하느님의 예언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군을 재정비하였다. 이윽고 정말로 도망쳤던 벤하닷이 전력을 끌어모아 아벡 평원으로 진군해왔는데, 당시 아람인들은 벤하닷에게 ‘쟤네들이 믿는 하느님은 산의 신[8]이니 산에서 싸우면 우리가 불리함. 그러니까 평지에서 싸우면 우리가 쟤네들 개 쳐바를 수 있소이다!’라는 이유로 평지로 진군했다(...). 그러나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낸 아합의 북이스라엘군은 아벡에서 아람 보병 10만을 몰살시키는 대승리를 거두었고[9] 벤하닷은 측근들과 골방에서 덜덜 떠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결국 벤하닷은 아합 앞에 엎드려서, 빼앗은 영토를 모조리 뱉어내고 다마스커스에 아합 왕의 이름을 딴 고속도로를 까는 조건으로 살려달라며 항복했고, 이를 수락한 아합은 벤하닷을 살려서 돌려보내주었다.

그러나 이런 아합의 결정은 예언자들의 불만을 야기했는데, 한 예언자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부상당한 병사로 변장[10]하고 아합이 지나갈 때에 그를 불러세워서 ‘내가 전장에서 포로를 대신 맡고 있었소. 그런데 제대로 못지키면 내가 목숨을 바치던가 은 달란트를 바쳐야 하는데 내가 볼일 보는 사이 놓쳐버렸는데 어떡합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아합이 ‘야 이놈아, 네가 뻘짓해서 놓쳤으니 네가 책임져야지’라고 대답하자마자, 예언자는 너 잘 걸렸다 라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너도 하느님께서 맡긴 벤하닷 목숨을 놓쳤으니 니 목숨으로 대신해야 할 것이야!"라고 쓴소리를 퍼부었다.

얼핏 보면 적당히 전쟁을 정리한[11]

아합의 결정을 우유부단하다면서 까는 예언자가 전쟁광스러워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 벤하닷은 약속과 달리 빼앗은 영토들을 내놓지 않고 버텼기에 결국 아합은 직접 영토를 되찾기 위해 시리아와 다시 전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그 전쟁에서 정말 자신의 목숨으로 벤하닷의 목숨을 대신하고 말았다.

4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다

시리아와의 전쟁이 끝난 뒤 얼마 뒤, 아합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자네 포도원이 내 궁이랑 가까운데, 나한테 그걸 팔게. 원한다면 더 좋은 포도원을 주고 돈도 달라는 대로 다 줄테니’라며 후한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포도원 사장인 나봇은 자신의 포도원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곳이라 자기가 넘기고 싶어도 함부로 넘길 수 없다며 단번에 거절했고,[12] 이에 심통이 난 아합은 침대에 틀어박혀서 식사조차 하지 않고 앓아누웠다.

이걸 본 이제벨이 뭔 일 있냐고 남편에게 묻자, 아합은 나봇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이제벨은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 걱정말고 밥이나 먹으라"면서 "곧 당신에게 나봇의 포도원을 선물로 드리겠다"고 호언장담하였다.

이제벨은 곧바로 나봇이 사는 지역의 장로들과 사람들을 편지로 다 불러모아놓고 나봇을 세워다가 재판을 벌였는데, 죄목은 바알과 왕을 모독했다는 것.[13] 당연히 나봇은 그런 적 없다고 항거했지만, 이제벨이 미리 보낸 사람들이 증인으로 나서면서 위증을 하여 나봇을 나쁘게 몰아붙였고, 결국 나봇은 명예훼손죄+신성모독죄 판결을 받아 돌에 맞아죽었다. 그리고 죄인의 재산은 즉각 왕에게 귀속되는 법에 따라 당연히 나봇의 포도원 역시 아합에게로 넘어갔다.

아합은 희희낙락하면서 나봇의 포도원을 보러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숙적이나 다름없던 예언자 엘리야가 그를 찾아왔다. 그가 아합에게 '너랑 아내는 이세벨은 개의 먹이가 될 것이고 니네 집안은 폭삭 망할 것이다!'이라고 예언하자 아합은 내가 한게 아니고 다 내 마누라가 시켜서 한 거라며 싹싹 빌었고, 엘리야는 재앙이 "너의 아들 아하시야 때에 찾아올 것" 거라면서 집행유예 예언을 했다.

5 라못 길앗에서의 전사

시리아와의 전쟁 이후 3년 뒤, 여전히 시리아가 영토를 돌려주지 않자 마침 친선 차 방문했던 유다 왕 여호사밧[14]과 함께 공동 전선을 펴서 길르앗 라못을 침공할 계획을 짰다. 이때 여호사팟은 선지자들의 조언을 한 번 들어보자고 아합에게 조언했는데 아합은 예언자 4백 명을 불러 모아다가 라못 길앗에 대한 침공 여부를 물었다. 대답은 YES.

하지만 여호사팟이 혹시 결석한 예언자 없냐고 재차 아합에게 묻자, 아합은 '미카야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걔는 맨날 부정적인 말만 골라서 하는 인간이라 일부러 뺐다'고 실토한다. 여호사팟은 그런 말 말고 걔한테도 한 번 조언을 들어보자며 그를 불렀고, 이렇게 해서 찾아온 미카야는 역시나 "님 가면 거기서 뒤짐요. 지금 여기 모인 애들 전부 님한테 구라치고 있음"이라면서 아합은 물론 그 자리에 모인 다른 선지자들까지 디스하였다. 그러자 예언자 대표인 치드키야는 빡쳐서 이놈이 어디서 약을 팔어?!라며 미카야에게 싸닥션을 날렸고, 아합은 미카야를 끌고가 ‘이 자식 내가 승전보를 울리며 돌아올 때까지 빵에 가둬두고 있어!’라고 명령을 내린 뒤 여호사팟과 함께 라못 길앗으로 진군했다.

전투에 들어가기 앞서, 아합은 여호사팟에게 "난 변장하고 참가한다" 말해놓은 뒤 자신은 마부로 변장하여 전투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적들이 여호사팟을 이스라엘 왕이라 생각하고 공격했다가 ‘어, 얘는 이스라엘 왕이 아니네?’하며 몇 번 착각을 일으켰고 정작 변장한 아합은 몰라보았다. 그런데 전투 도중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 하나가 아합의 어깻죽지를 뚫었고, 아합은 화살을 맞은 채로 시리아인들과 싸우다가 이날 저녁에 전사하는데, 피가 병거 바닥에 고일 정도였다고 한다.

아합의 시신은 사마리아에서 장례가 치러졌고, 그가 타고 있던 병거는 사마리아 연못에서 씻겨졌는데 이 때 병거에서 흘러나온 그의 피를 개들이 핥았다.[15] 성경의 서술에 따르면 이는 위에 적힌 나봇의 포도원 강탈사건 직후 엘리야가 아합에게 내린 저주가 실현된 것이라고 한다. ㅎㄷㄷ... 참고로 아내 이제벨에게 내린 저주는 '개들이 이스르엘 들판에서 이세벨을 뜯어먹을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는데 이 또한 예후가 이제벨을 살해한 직후 그대로 실현되었다. 두개골과 발과 손바닥을 빼고 모조리 먹어치워 남아있는게 없었다고...

그리고 계속 빵에 갇혀 있던 미카야 역시 잊혀졌다 지못미(...)

덤으로 유다 왕 여호사팟도 이 패전에서 군사력을 모조리, 그것도 초대형 스케일로 날려먹었고 그 이후로 유다는 약소국으로 전락한다.[16]

6 그 이후

아합의 뒤를 이어 아하시야가 오므리 왕조의 3대 왕으로 즉위했는데, 이 녀석은 뭔가 제대로 한 일도 없이 옥상에서 떨어져(...) 끙끙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동생 여호람(혹은 요람)이 다음 왕으로 즉위하였다. 한편 영원한 숙적 엘리야는 수제자인 엘리사의 앞에서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하였고, 이후 엘리사는 장군 예후[17]를 사주하여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남유다 왕 아하시야[18]를 비롯한 이제벨과 오므리 왕가를 모조리 도륙낸다.

7 평가

전체적으로 보면 조금 쪼잔한 성격과 아내인 이제벨한테 잡혀 사는 공처가 기질이 있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치적이 있는 유능한 군주였다. 실제로 아합은 건국 이래 내란과 반역이 끊이지 않았던 북이스라엘 왕국 역사를 통틀어 안정된 치세와 강력한 왕권을 누린 얼마 안되는 군주 가운데 하나였다. 외교적으로는 북쪽의 페니키아와 남쪽의 유다 왕국과 결혼 동맹을 맺어 국제관계를 안정시키고 무역으로 왕국의 부를 축적했으며,[19] 군사적으로도 전대 왕 시기에 복속된 모압에 대한 지배를 계속 이어나가는 동시에 시리아(아람)와 아시리아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20] 또 선지자들을 실질적으로 탄압한 것은 아합 왕 본인이 아닌 당시 종교 정책을 맡고 있던 아내 이제벨의 행적이기도 했고... 그러나 하필이면 주인공이 아합이 아니라 엘리야였기 때문에 항상 엘리야 앞에서는 처절하게 박살나는 이미지가 성경을 통해 굳어져 있다(...).

다만 아합을 공처가라고 탓하기엔 뭐한 게, 그 당시 중동의 뉴욕이라 일컬어질만큼 엄청난 부를 소유했던 페니키아의 공주라는 신분의 이제벨을 상대로 막 대하기 힘들었던 탓도 있고, 까딱 잘못하면 국제문제로 번질 수도 있으니 그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지도 모른다. 신학자들 역시 아합의 공처가 기질은 여기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 그러나 여자를 많이 밝혀서 자식과 손자가 70명이라는 말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로 훗날 자식 중 아들 아하시야와 요람(여호람)은 북이스라엘 왕, 외손자인 아하시야는 남유다 왕, 딸 아달랴는 남유다 여왕이 되었다. 다만 나중에 이 후손들은 남유다 장군 예후가 일으킨 쿠데타에 의해 죄다...

참고로 이세벨 왕후는 카르타고를 건설한 디도 여왕의 왕고모라고 한다.

8 창작물에 준 영향

모비 딕의 등장인물인 에이허브 선장의 이름은 이 사람에게서 따왔다. 보다시피 기독교 문화권에선 악역인데도 이 이름을 붙인 이유는 에이허브 선장의 부모가 무식해서다.
  1. 그리고 4대를 지속한 오므리 왕조와 5대를 지속한 예후 왕조 외에 2대 이상을 넘긴 북이스라엘 왕가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2. 그리고 오므리 왕조와 예후 왕조가 끝난 이후 이 막장 상황은 다시 시작되어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된다.
  3. 이는 과거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이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금송아지 숭배를 추진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추정된다.
  4.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녀는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상대로 학살을 자행했다.
  5. 이제벨이 예언자들을 학살할 때 그 중 100명을 몰래 숨기고 쉴 곳과 양식을 제공한 인물로, 이제벨의 종교 정책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던 고위층 인사였다.
  6. 바알 신앙에서 사제들이 바알에게 크게 기도드리는 방식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는 우가릿 신화에서 엘이 바알을 부활시키기 위해 자신의 몸에 큰 상처를 내었기 때문이다.
  7. 이 야습에서 하느님의 예언자들 역시 어느 정도 아합 왕을 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평소에는 으르렁거리던 처지였지만 국가 위기 때는 최소한 힘을 합칠 정도의 관계는 유지하고 있던 모양. 실제로 이들 뿐만 아니라 엘리야의 수제자인 엘리사 역시 오므리 왕가를 극도로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과 아람과의 전쟁에서 북이스라엘을 몇 번이나 위기에서 구했다.
  8. 실제로 모세십계명을 시나이 산에서 받았다.
  9. 여기에 추가로 전투에서 살아남아 도망치던 아람군 패잔병 중 2만 7천명이 무너지는 아벡 성읍에 깔려 죽었다.
  10. 주도면밀하게도 자기 친구더러 자기를 겁나게 패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첫 번째 친구는 내가 어떻게 친구를 패냐고 거절했다가 사자 밥이 되었고(...) 2번째 친구는 씁 어쩔 수 없지라며 선지자를 애정을 담아 존나 패버렸다(...).
  11. 실제로 당시 시리아는 아시리아를 견제하고 있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시리아와 전투를 벌이게 됐는데, 아시리아의 살만누아사리두 대왕이 남진정책을 펼치자 아합이 시리아의 벤하닷 2세 및 다른 동맹국들과 연합을 결성, 카르카르 전투에서 아시리아의 대군을 막는데 성공하였다. 아시리아의 기록에도 이때의 패배에 대해 "적장 '아하부' 때문에 우리가 패했다"라고 기록할 정도로 아합의 역할이 컸으나, 성경에 이 일이 누락되는 바람에...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시리아와의 잦은 전쟁에서 야기된 국력 약화로 아시리아의 성장을 막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12.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을 각 지파에게 배분하였고, 각 지파들은 또 각 사람들에게 땅을 배분해 주었다.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땅을 하느님께서 직접 준 땅으로 여겼기에 함부로 팔거나 양도하지 않았다.
  13. 성경에선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죄로 잡아들였다고 하나 당시 이제벨이 펼친 정책을 보면 하느님의 이름만 나와도 잡아 가두는 세상이었으니 바알과 왕을 모욕했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14. 남유다의 4대 왕으로, 야훼 신앙에 헌신적이었지만 현실주의자였던지 오므리 왕가와 잦은 친교를 맺고 군사 활동도 종종 함께 했다(이것 때문에 함께 참전한 라못 길앗에서 군사력을 모조리 날려먹어버린 건 덤). 그리고 심지어 며느리로 아합의 딸을 맞아들이는데, 이 딸이 바로 훗날 남유다의 6대 왕인 아하시야의 어머니이자 훗날 자신이 여왕이 되겠다고 다윗 왕가를 몰살시키려고 했던 아달랴 여왕.그 어머니에 그 딸내미 참고로 아달랴는 재위 6년만에 여호야다 사제가 주도한 혁명으로 폐위되어 칼에 맞아죽고, 유일하게 몸을 피해 살아남았던 다윗 왕가의 핏줄 요아스가 새롭게 왕위에 등극한다.
  15. 게다가 그 연못은 이전부터 창녀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다.
  16. 물론 역대기의 기록에 따르면 절반만 날려먹고, 그 다음 아들대에 반란 때문에 나머지 절반을 날려먹었다(...). 이후 중흥기가 여러번 왔지만 이때만큼의 국력을 유다는 결국 회복하지 못한 채 이집트와 아시리아, 그리고 신바빌로니아에게 휘둘리다 결국 멸망한다.
  17. 텔론의 이명이 아닌 이스라엘의 왕 중 하나.
  18. 두 사람 모두 아합 왕과 이세벨의 혈족들이었다. 즉, 이 당시에는 사실상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오므리 왕가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19. 그러나 아합 사후 예후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모든 오므리 왕가 일족과 그 주변 인물들을 잔혹하게 살육하면서 페니키아-남유다와의 동맹관계도 깨지게 된다.
  20. 모압은 아합 사후 그의 아들인 요람 왕 시기에 이스라엘에게서 독립한다. 한편 이웃 왕국 에돔은 여호사팟 통치기까지 남유다에 복속되어 있다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시기에 반기를 들어 역시 독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