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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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

히브리어: אלישע (Elisha)
아랍어: اليسع (Alyasaʻ)
그리스어: Ἐλισσαῖος (Elissaîos)
라틴어: Eliseus[2]
영어: Elisha (일라이셔)
프랑스어: Élisée (엘리제)
러시아어: Елисей (옐리세이)

1.1 개요

탈모 갤러리수호성인
오른손 모양이 담배들고있는거 같다

구약성경 열왕기 하권에 등장하는 예언자. BC 9세기경이 생몰연대로 추정된다. 엘리야의 제자이자 후계자로 많은 이적을 벌였으며, 엘리야에게 그의 능력의 2배를 달라고 해서 받았다고 한다. 가톨릭에서는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으며 축일은 6월 14일이다. 이름의 뜻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셨다'라는 의미이다. 디스베 사람으로만 기록된 엘리야와는 달리, 아벨므홀라 출신 사밧의 아들로 기록돼있다.

엘리사의 행동은 다른 예언자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예언자들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잘 따르면 복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엘리사는 엘리야가 배교자라고 미워한 아합 왕가를 전복하기 위한 예후 장군의 쿠데타에 직접 가담하였고, 예후와 그 뒤를 이은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느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막장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민족들의 침입을 여러 번 막아주기도 하고, 죽기 전에는 영토를 늘린다고 축복해주기까지 한다.[3] 적국 아람#s-2.1의 대장군 나아만의 한센병도 고쳐주었다. 나아만이 "저는 지금부터 하느님을 믿겠습니다. 하지만 저의 직책 상 시리아 신 림몬에게 바치는 의식에 참석하여 예를 표해야 하는데 하느님께서 노하지 않겠습니까??"라고 걱정하자 엘리사는 "평안히 가시오."라고 격려해 주었다.

구약의 다른 예언자들과 비교했을 때 물에 빠뜨린 도끼를 건져내 주거나(…) 야생에서 캐온 재료로 끓인 국에 잘못 들어간 독성 식물을 해독하는 등의 생활형(?) 기적들을 많이 베풀었으며, 보리빵과 이삭으로 100명을 먹이는 오병이어와 비슷한 기적도 행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북이스라엘 왕국아람#s-2.1의 여러 고위 인사들과 자주 접촉했으며, 북이스라엘의 왕조 교체에도 관여하는 등, 생각보다 정치권과 상당히 밀접하기도 했던 예언자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영성이 대단해서, 죽은 뒤에 뼈만 남았는데 엘리사의 뼈에 다른 주검이 닿자 되살아났다고 한다.

AD 1세기경의 이스라엘에서도 구약시대의 예언자 중 엘리사는 많은 존경을 받는 네임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는 나자렛의 회당에서 엘리사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낫게 한 이야기를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를 도운 이야기와 함께 인용하면서,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의 정당성을 설명하였다(루카 복음서 4,27).

1.2 행적

1.2.1 엘리야를 계승하다.

엘리야의 승천을 바로 코앞에서 목격했던 그는 엘리야가 떨구고 간 겉옷을 주운 후,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 그대로 겉옷으로 요르단강을 치자,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강이 눈 앞에서 갈라졌다. 엘리사가 갈라진 강을 건너오자 엘리야를 따르던 생도들이 엎드려 절하면서 엘리사를 엘리야의 진정한 계승자로 인정했다.

다만 엘리야의 승천에 대해선 믿기 어려웠던 모양인지, 생도들 중 몇이 엘리사에게 '하느님께서 스승님 데려가시다가 중간에 어느 산이나 골짜기에 떨구셨을 수도 있으니 사람들 풀어서 좀 찾아보면 안될깝셔?'라고 하였다. 엘리사는 처음엔 헛짓거리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바득바득 우겨서 50명 정도가 엘리야를 찾아 나섰다가 사흘동안 헛고생만 하다 돌아왔다. 그리고 '거 봐라 내가 뭐랬냐? ㅉㅉ'라고 빈정거리는 엘리사의 반응은 덤.

생도들이 헛고생하고 돌아오는 동안 엘리사는 예리코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마침 그가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지 예리코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다른 건 다 좋은데 물이 영 좋지가 않아염.'라고 말하며 SOS를 날리자, 엘리사는 그릇에 소금을 담아 수원지에다 뿌리며 '이제 흉작이 들 일은 없을 것임.'이라 말하자 이후 농사가 망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근데 원래대로라면 애초에 성이고 나발이고 없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예리코 성은 그 사이 이미 재건되어 있었다. 단 재건자가 저주를 받아서 아들들을 모두 천벌로 잃었다고 한다.

이후 엘리사가 예리코를 떠나 베델로 가는 길에 아이들 40명이 몰려나와 엘리사를 둘러싸고 욕보이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에 빡친 엘리사가 암곰 2마리를 불러다 아이들 40명을 모조리 찢어죽였다.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견해는 하단 항목 참고. 이후 그는 갈멜산을 들렀다가 사마리아로 돌아왔다.

1.2.2 모압 정벌

북이스라엘 왕 아합이 전사한 후 왕위를 계승한 큰아들 아하시야는 즉위 직후 옥상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한 것도 없이 세상을 뜨고 그 뒤를 이어 아하시야의 동생인 여호람이 왕위를 계승했다. 당시 모압은 북이스라엘의 속국으로 매년마다 조공으로 양털을 이스라엘에 바치다가 아합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모압 왕 메사는 여호람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그러자 여호람은 수도인 사마리아의 모든 병력을 점고함과 동시에 부왕인 아합 시절부터 동맹 관계였던 남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사절을 보내 '같이 모압 조지러 갑시다.'라고 콜을 때렸고, 이에 호응한 여호사밧은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 왕과 함께 모압 정벌에 참전하였다.[4]

그렇게 기세 좋게 3명의 왕이 이끄는 군대가 모압으로 진군한 건 좋았는데...

문제는 물이 없었다.

진군 7일 만에 연합군은 식수 부족으로 전부 퍼져버렸고[5] 하도 갈증이 심각한 나머지 여호람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모압한데 넘기시려는 갑다.'라는 소리까지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여호사밧이 여호람에게 물어볼 만한 예언자가 어디 없냐고 말하자, 여호람의 신하 중 한 사람이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를 추천했다. 그 말을 들은 세 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엘리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엘리사는 여호람을 보자마자 '니네 엄마아빠 말 잘 듣던 예언자들한테나 가봐!'[6]라고 축객령을 내렸지만, 여호람이 사정사정하면서 엘리사의 비위를 맞추자, 엘리사는 여호사밧 얼굴 봐서 특별히 들어준다며 그들을 받아들였다.

엘리사는 악사를 불러와 거문고를 켜게 하여 하느님을 감동케 하고 난 뒤 기도를 올린 후,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고 전달한다. 모압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거라는 예언은 덤. 세 왕은 병사들이 전부 동원해 골짜기에 대운하개천을 파도록 지시를 내리자 엘리사의 말대로 하룻밤 만에 에돔 방면에서 물이 흘러왔고, 비로소 식수 문제가 해결된 연합군은 사기를 회복했다.

한편 모압 왕 메사는 자기를 조지려고 여호람이 연합군을 몰고 온다는 말에 모압에 있는 모든 남자들을 딸딸 긁어모아 영격에 나섰는데, 연합군이 파놓은 개천에 비춰진 붉은 태양을 보고 피로 착각해(…) '쟤네들이 지들끼리 싸우다 자멸했네 ㅋㅋㅋ 우리 털러 가볼까?'하고 방심했다가 마침 기력 회복한 연합군의 밥이 되어 왕창 깨졌고, 그 기세에 밀려 연합군에 의해 모압 전역이 초토화당하자 메사는 궁여지책으로 자기 맏아들을 잡아다 성 위에서 모압의 신 그모스에게 번제를 드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에 이른다. 이 광경을 본 연합군은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냐면서 각자 고국으로 철군해버렸다.[7]

1.2.3 서민적(?)인 선지자

엘리사는 북이스라엘에 머무르며 종교세력의 중추로 활동하는 한편 자신을 따르는 생도들에게 많은 기적을 베풀었는데, 상단에 나와있는 바 대로 상당히 서민적(?)인 기적을 많이 베풀었다. 그 기적들은 다음과 같다.

마르지 않는 기름(왕하 4:1~7)

엘리사의 생도로 일하다 죽은 남자의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왔는데, 큰 빚을 지게 되어 두 아이가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엘리사가 집에 가진게 뭐가 있냐고 묻자 미망인은 기름 한 병 뿐이라고 밝혔고, 엘리사는 이웃에게 그릇이란 그릇은 모조리 다 빌린 후에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고 모든 그릇에 기름을 채우라고 지시한다. 그러자 정말로 기름이 마르지 않고 빌려온 모든 그릇에 기름이 차자 여인은 그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남은 걸로 두 아들과 생활하게 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

수넴 여인 이야기(왕하 4:8~37)

엘리사가 자신의 사환 게하시와 함께 수넴이 머무를 무렵, 어느 부잣집 여인의 집에서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이 수넴 여인에게 잘 대접받은 엘리사는 그녀를 불러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으나 여인은 괜찮다면서 엘리사의 호의를 거절했다. 이에 게하시는 엘리사에게 '다른 건 다 좋은데 아이가 없고 남편은 늙었더래요.'라는 사실을 밝혔고, 엘리사는 다시 그 여인을 불러다 '당신 얼마 뒤면 아들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인은 놀리지 말라며 엘리사의 말을 부정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녀는 정말로 아들을 얻었다.

아이가 자란 후, 하루는 아이가 종과 함께 추수를 하던 아버지를 찾아오자, 아버지는 흐뭇한 아빠미소를 지으며 종을 불러다 아이를 어머니에게 데려다주라고 했고, 아이는 어머니 곁에서 낮동안 어머니와 함께 잘 놀았는데...

뜬금없이 그대로 아이가 죽어버렸다.

여인은 남편에게 엘리사를 만나러 가려고 종과 나귀를 달라고 요청했고, 남편은 초하루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닌데 왜 예언자를 만나러 그곳까지 가냐고 만류했지만 그녀는 끝끝내 나귀를 타고 엘리사를 만나러 그가 있는 갈멜 산으로 향했다. 수넴 여인이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본 엘리사와 게하시는 여인에게 그녀의 상황을 전해 듣고는 게하시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준 후, 만나는 사람을 아는 척도 하지 말고 그대로 곧장 수넴까지 달려가 그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에 놓으라고 지시했다. 그 이후, 엘리사가 뒤따라 와서 상황을 확인했지만 아이가 깨어나지 않자, 엘리사는 방문을 닫고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자기 입을 아이의 입에ANG???, 자기 눈을 아이의 감긴 눈에, 자기 손을 그 아이의 손에 대고 그 아이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이가 살아 돌아오자 여인은 엘리사의 발 앞에서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갔다.||

독이 들은 국(왕하 4:38~41)

엘리사가 길갈에 머무를 무렵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생도들이 굶주림에 시달리자, 엘리사는 사환을 불러다 솥에 물을 부어 국이라도 끓이라고 지시했다. 마침 생도 중 한 사람이 들에 나가 각종 채소와 덩굴을 캐오자 그거라도 넣어서 국을 끓였는데 하필 그 덩굴 중에 독초가 섞이는 바람에 졸지에 사람이 못 먹을 국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엘리사는 가루를 가져와 그걸 국에 뿌리게 하였는데 가루를 뿌리고 나니 독이 사라진 것은 물론 매우 맛있는 국이 되어 생도들은 굶주림을 해결했다고 한다. ||

보리떡과 채소로 100명을 먹이다(왕하 4:42~44)

바알살리사에서 온 누군가가 엘리사에게 보리떡 이십과 채소 한 자루를 보냈는데, 엘리사는 자기 사환에게 이르러 이걸 생도들에게 먹이라고 내어줬다. 그러자 사환은 '에이 농담마시졈. 지금 생도가 100명인데 이걸로 성이나 차겠심?'라고 말하자, 엘리사는 까라면 까 잔 말 말고 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정말로 100명이 다 먹었는데도 보리떡과 채소는 남아 있었다. ||

레알 오병이어의 원조

도끼 자루가 떠오르다(열하 6:1~7)

엘리사와 그의 생도들이 머물 장소가 너무 좁자 엘리사는 생도들과 함께 요단에서 나무를 베어 새로 거점을 마련하기로 했다. 생도들은 크고 아름다운 새 거점 마련에 신이 나서 나무를 베던 중, 하도 도끼가 낡았는지 자루가 쑥 빠져서 물 속에 풍덩 빠져버렸다. 그 생도는 엘리사를 붙들고 '님하 도와주셈요, 저거 빌린 거란 말이에염 징징.'거렸고, 엘리사는 나무가지 하나를 꺾어서 빠졌다는 물웅덩이에 던지자 놀랍게도 도끼자루가 둥실 떠올랐다.

산신령 의문의 1패

1.2.4 나아만의 문둥병

엘리사의 기적은 북이스라엘인 뿐만 아니라 적국인 아람(시리아)인에게도 향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이야기이다.

나아만은 아람 왕 벤하닷의 총신으로 한때 아람을 구원한 전적이 있는 전쟁 영웅[8]이었지만 문둥병자였다. 당시 신의 저주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답이 없던 이 병에 걸리자 나아만 본인은 물론 그의 아내까지 큰 근심이었는데, 마침 북이스라엘과의 전쟁 중 포로로 끌려와 나아만의 종이 되어 수종을 들던 이스라엘 소녀가 엘리사의 이야기를 꺼냈고, 이를 들은 나아만은 아람 왕 벤하닷 2세에게 이러이러하니 자신을 이스라엘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아람 왕은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에게 '내 총신인 나아만을 댁한테 보내니 문둥병을 꼭 고쳐주쇼.'라는 내용의 서신을 나아만에게 전했고, 나아만은 은 10달란트와 금 육천, 의복 열 벌과 아람 왕의 서신과 함께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에게 향했다.

하지만 여호람 입장에선 그야말로 답이 없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신의 저주라는 타이틀이 붙은 문둥병을 고치는 건 말 그대로 자신의 능력 밖이었고 이는 필시 이를 구실로 북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위한 계략이라고 판단[9], 자기 옷을 찢으면서 통곡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는 여호람에게 사람을 보내 '거 괜히 쇼하지 말고 그 양반을 나에게 보내라.'라고 왕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나아만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엘리사의 집 앞에 당도하자 엘리사는 그를 만나보지도 않은 채 사자를 보내 "요르단강에서 7번 씻으슈."라는 이야기를 전하자, 나아만은 "아니 나는 위엄쩐다고 소문난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그 야훼라는 신께 대단히 제사 지내고 기도하며 내 병을 고쳐 줄 줄 알았는데. 고작 요단강물에 씻으라는 소리나해? 내가 어디 몸 씻을 강물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는줄 알아!? 굳이 여기까지 안와도 우리 동네도 깨끗하고 시원한 강물은 많아!!!"라고 성을 내며 떠나려 했으나, 그의 부하들이 "명색이 예언자가 딴 것도 아니고 그냥 씻으라고 한 거 뿐인데 속는 셈치고 한 번 해보시져. 아니 솔직히 오실때만해도 더 어려운것을 시켜도 기꺼이 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오시지 않았습니까."라고 간언한 끝에 엘리사의 말대로 요르단강에서 7번을 씻자 문둥병이 말끔히 나았다.

이에 나아만은 자신의 모든 부하들과 함께 다시 엘리사를 만나서 크게 감사를 표하고 하느님만을 믿겠다고 신앙고백을 하며, 상단에서 말했던. '전 아람 왕의 부하인지라 림몬 신의 제단에 참배해야 하는데 그거 괜찮을까요?'라는 말에 엘리사는 평안히 가라고 축복까지 해주었다. 나아만은 자신이 들고온 예물을 전부 엘리사에게 바치려 했지만 엘리사는 거절하면서 나아만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슬그머니 욕심이 생긴 나머지 나아만을 뒤따라 가서 엘리사의 이름을 팔아 나아만에게 은 1달란트와 옷 2벌을 챙겼는데 이걸 감추고 엘리사에게 돌아왔지만 엘리사는 게하시가 나아만에게 삥땅친 걸 눈치 채고 '너 이 새퀴, 나아만의 문둥병이 너랑 네 자손에게 영원히 이를 것이야!'라고 저주를 하자 그 즉시 게하시의 피부에 문둥병이 눈처럼 발하였다고 한다.

1.2.5 시리아와의 전쟁

여호람의 예상대로(...) 시리아 왕 벤하닷 2세는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는데, 그의 생각대로 전쟁이 쉽사리 풀리지 않자 처음엔 첩자의 소행이라고 판단하여 신하들을 윽박질렀다. 그러자 신하들은 '이게 다 엘리사가 맵핵 켜서 우리 작전 계획을 죄다 알아채고 이스라엘 왕에게 불어서 그래요.' 라고 대답. 벤하닷 2세는 그럼 엘리사부터 조지자고 판단하여 그가 머물고 있던 도단 성을 공략하기로 결정한다.

이윽고 시리아군이 도단 성을 물샐틈 없이 포위하자, 엘리사의 종이 벌벌 떨면서 우리 이제 어떻게 하냐고 엘리사에게 고하자, 엘리사는 '풉 걱정 마라. 우리 편이 더 많다.'라며 종의 눈을 열게 하자 그의 눈에 수많은 불타는 말과 불병거가 엘리사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엘리사가 기도를 올리자 마침 공성을 시작하려던 시리아군의 눈이 엘리사가 쓴 태양권에 의해(...) 전부 멀어버렸다. 갑작스레 눈이 멀어버지라 시리아군은 혼란에 빠졌는데 그 사이에 엘리사가 그들에게 나아가 내가 길을 안내해줄 테니 따라오라고 지시를 하자 마침 정신이 없던 시리아군은 엘리사의 말을 덜컥 믿고 그대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피리 부는 예언자(?)

그리고 엘리사가 기도를 올려 시리아군의 눈을 다시 밝히게 하자 아니나 다를까, 어느 새 자신들이 적국의 수도인 사마리아성 한복판에서 꼼짝없이 제발로 포로가 된 상황. 여호람이 엘리사에게 이 녀석들 전부 다 죽일까요? 라고 묻자 엘리사는 오히려 떡과 물을 줘서 시리아군을 먹이고 고향으로 돌려보내게 했고, 구사일생한 것도 모자라 배불리 먹고 마신 시리아군은 다시는 이스라엘 땅을 밟지 않았다고 한다.

한 편, 엘리사에게 제대로 엿을 먹은 시리아 왕 벤하닷 2세는 다시 군대를 일으켰는데 이번에는 사마리아 성을 겹겹이 에워싸 보급로를 모두 끊어서 사마리아 성을 말려죽이기로 한다. 벤하닷의 계획은 성공적이었고 어느새 사마리아 성의 물가는 미칠듯이 폭등하기 시작했다.[10] 오죽하면 두 여인이 굶주리다 못해 자기 자식을 서로 잡아먹기로 하다가 싸움이 난 걸 여호람 왕 앞에서 호소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이 사태에 대해 여호람은 극도로 분노하여 이게 다 엘리사 탓이라며 자신의 군대장관을 보내 엘리사를 잡아다 죽이라고 명령했는데, 마침 장로들을 모아 회의를 하고 있던 엘리사는 여호람이 지시를 딱 내리던 시기에 '풉, 이 살인자의 자식이 누가 누굴 잡아다 죽이겠다고?'라고 빈정거리며 문을 잠가버렸다. 그리고 이윽고 그 군대장관이 엘리사를 죽이려고 찾아와 문을 두드리니, 엘리사는 창문을 열어 그를 내려다보면서 내일 이맘때면 고운 가루 1스아에 1세겔, 보리 2스아에 1세겔[11]을 할 거라고 예언을 하자, 그 신하는 '하느님이 하늘에 창문을 내도 그런 일은 없을꺼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엘리사는 요놈 봐라? 다시 한 예언은 '넌 그걸 보겠지만 먹지는 못할거야. ㅉㅉ'

그리고 그날 밤 시리아 군대에 병거 소리와 말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벤하닷 2세는 '아, 이스라엘이 틀림없이 헷 사람과 이집트 왕에게서 용병을 고용했구나!'라고 지레짐작하고 모든 물자를 버린 채 그대로 도주해버렸지만 그걸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성 밖으로 쫓겨나 쫄쫄 굶주리고 있던 문둥병자 넷이 '야, 이대로 굶주리지 말고 그냥 시리아 군에 가담해서 배불리 먹고 죽자.'라는 마음에 시리아군의 진영으로 갔다가 텅 비어버린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윽고 문둥병자들에 의해 이 소식을 접한 여호람 왕은 조심스레 정탐을 보냈다가 이게 사실이라는 것이 확인되자마자 성 안에 굶주린 백성들이 모조리 몰려나가 시리아 진영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성문을 지키고 있던 그 군대장관은 꼭지가 돌아버린 백성들을 통제하다가 그만 밟혀죽고 말았다. 엘리사의 말대로 정말 곡식 값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았으나 그걸 먹지는 못하게 된 셈

1.2.6 예후의 역성혁명

벤하닷 2세와의 전쟁 이후,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과의 사이가 벌어진 엘리사는 본격적으로 여호람을 비롯한 오므리 왕조의 일가들을 모조리 숙청할 계획에 돌입하게 되는데, 먼저 그는 다마스커스에서 머물던 도중 시리아 왕 벤하닷 2세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마침 엘리사가 다마스커스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벤하닷 2세의 신하 하사엘이 예물을 들고 찾아와 왕의 병이 나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엘리사의 반응은 이러했는데

열왕기하 8장 11-13절(공동번역성서)

그리고 나서 하느님의 사람은 하자엘이 어리둥절해 할 정도로 얼굴을 굳히며 탄식하다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어찌하여 우십니까?" 하고 하자엘이 묻자 엘리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그대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장차 어떤 악한 일을 할지 그것을 알고 이렇게 우는 것이오. 그대는 이스라엘 요새에 불을 지르고, 젊은이들은 칼로 쳐죽이고, 어린아이들은 메어쳐 죽이며, 임신한 여인의 배를 가를 것이오." 하자엘이 "소인은 개보다도 나을 것이 없는 몸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자 엘리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야훼께서 보여주신 환상 가운데서, 그대가 시리아의 왕임을 보았소."


이 말을 들은 하사엘은 그 즉시 벤하닷 2세에게 돌아가 왕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 뒤, 이튿날 이불을 물에 적신 후 왕의 얼굴에 덮어서 벤하닷 2세를 암살하고 스스로 시리아 왕에 등극한다.

새로이 왕위에 오른 하사엘은 시리아의 세력을 크게 키우면서 북이스라엘 침공에 더욱 박차를 가했는데, 길르앗 라못에서 시리아의 계속된 공세를 막던 여호람(요람)은 부상을 입게 되었고, 장군 예후에게 전권을 위임한 채 이스르엘로 물러났다. 이 당시 남유다의 왕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북이스라엘 왕 여호람과는 동명이인)[12]의 아들이자,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로 여호람에겐 조카였다. 그는 삼촌인 여호람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 차 이스르엘로 찾아왔는데, 엘리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길르앗 라못에 주둔하고 있던 예후에게 자신의 시동을 보냈다.

시동은 예후를 은밀히 만난 뒤 기름을 부으며 이렇게 말한다.

열왕기하 9장 7-10절(공동번역성서)

내가 이세벨의 손에 죽은 예언자들뿐 아니라 나의 모든 종들의 원수를 갚으리라. 그러니 너는 네가 섬기던 아합의 가문을 쳐부수어라. 내가 아합 가문에 속한 사내 녀석들은 종이든 자유인이든 씨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리리라. 그리하면 아합의 온 가문이 망하리라. 나는 아합의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이나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처럼 만들리라. 이세벨의 시체는 묻어주는 사람이 없어, 이즈르엘에 있는 제 땅에 버려져 개들이 뜯어먹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젊은이는 문을 열고 도망하였다.

즉, 엘리사는 오므리-아합 왕조의 몰살을 북이스라엘의 새 왕, 예후에게 지시한다.

이 사실을 모여있던 자신의 측근들에게 밝히자 그 즉시 측근들은 자신의 옷을 벗어서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면서 예후를 왕으로 모시며 오므리 왕조 토벌에 적극 지지한다. 예후는 즉시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있던 이스르엘로 회군위화도 회군???하였는데 예후가 갑자기 군을 이끌고 회군하자 이게 무슨 일인지 확인하러 여호람과 아하시야 두 왕이 직접 병거를 타고 그를 맞이하러 나갔다.

하지만 이미 반역을 천명한 예후에게 있어 두 왕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게 웬 떡이냐!'를 외쳤고 그 즉시 활을 쏴서 여호람을 쏘아 맞췄다. 여호람을 관통한 화살은 그의 염통을 뚫고 나왔으며 병거 위에서 그대로 즉사했다.[13] 거기에 멋모르고 숙부 따라 나온 남유다 왕 아하시야는 식겁하여 도망쳤지만 역시 예후에 손에 의해 따라 잡혀서 척살당했다.

한편 그 당시까지 살아있던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여호람과 아하시야를 죽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히 창 아래에서 예후를 내려다보며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느냐.'라고 쏘아붙였는데 이는 오므리 왕조의 창건자이자 아합의 부왕인 오므리의 손에 의해 7일 만에 권좌에서 내쳐진 반란자, 시므리에 빗대어 예후를 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후는 "내 편이 될자 누구냐! "라고 외치자 이세벨의 곁에 있던 내시 두어명이 이세벨을 붙들고 그대로 창문 바깥으로 집어 던져버렸고, 그 피가 담벼락과 말에게 튈 정도였다. 예후는 이세벨의 시체를 짓밟아 훼손시킨 후 이스르엘 땅에 매장했는데, 매장될 때 이미 이세벨의 두개골과 손바닥 외엔 남는 게 없었으며, 매장된 시체마저 개들에 의해 뜯어먹히는 바람에 그 시체가 이세벨이라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예후의 숙청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예후는 아합의 아들 70인을 모시던 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이 모시던 왕자 70인의 목을 바치게 하였고, 남유다왕 아하시야의 형제들 또한 하나 하나 찾아내서 참살함으로서 오므리 왕조의 일가를 모조리 청소했다. 그리고 이세벨이 추진하고 있던 페니키아 계의 사제 집단 역시 모조리 잡아 숙청함으로서 오므리 왕조의 흔적 역시 말끔하게 지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후는 바로 엘리사였다.

1.2.7 역성혁명 그 뒤...

예후는 오므리 왕조를 척결하고 엘리사를 비롯한 예언자 집단의 지지를 받아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예후의 신앙은 과거 여러보암이 추진했던 금송아지 신앙의 회귀였고, 이는 엘리사의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그와는 별개로 예후의 집권은 불안정했는데, 마찬가지로 엘리사가 세운 시리아왕 하사엘이 여전히 세력을 확장하면서 시시각각 북이스라엘의 존망을 위협하고 있었고[14], 남유다 역시 살아남은 아합 왕의 딸 아달랴가 여왕이 되면서 북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적대관계로 돌아서 버렸다.

결국 위아래로 고립되어 버린 예후는 시리아 북방의 강국인 아시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는데, 과거 아합과 벤하닷 2세가 공동전선을 펼쳐서 막아낸 적이 있던 아시리아 왕 살만누아사리두는 예후의 SOS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에 예후는 아시리아를 상국으로 섬기며 조공을 바치게 되었는데[15], 이는 후일 북이스라엘과 시리아 모두 아시리아에게 먹히는 날을 앞당기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이리하여 예후의 북이스라엘과 시리아는 또 다시 오랜 세월동안 전쟁 상태에 들어갔으며, 이는 예후 뿐만 아니라 예후의 아들인 여호아하스, 그리고 손자인 요아스(여호아스) 대까지 이르렀다.

1.2.8 엘리사의 죽음

예후의 손자 요아스가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어 자리에 눕자, 요아스가 직접 엘리사를 만나 눈물을 흘리면서 안쓰러워하자, 엘리사는 왕에게 활과 화살을 취해 동편 창문 너머로 활을 쏘라고 지시, 그가 엘리사의 말 대로 따르자 '그건 왕이 시리아를 아벡에서 크게 무찌를 거라는 뜻임.'이라 해석한다. 그리고 다시 화살을 잡고 땅을 치라고 지시하자, 요아스는 화살을 잡고 가볍게 3번만 툭툭 쳤는데 이 광경을 본 엘리사는 크게 화내면서 '적어도 대여섯번은 쳤어야지! 그럼 시리아를 멸망시킬 수도 있었는데! 세번만 쳤으니 님 시리아를 3번만 쳐서 이길 거임.'이란 말을 남긴다.

한편 시리아 왕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 3세가 왕위에 오를 무렵, 아시리아의 살만누아사리두가 죽고 잠시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나 BC. 805년 아다드니라리 3세가 권좌에 오르면서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는다. 그 공세는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만 힘을 너무 소모한 탓에 아시리아는 시리아 정복을 완수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공세로 인해 시리아 왕 벤하닷 3세는 거의 재기 불능의 타격을 입고 휘청거리고 있었는데 이 틈을 타 북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이 3차례 거병하여 과거 하사엘이 빼앗은 땅을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 와중에 비탄에 잠긴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지켜보는 앞에서 선지자 엘리사는 세상을 떠났다.

엘리사의 유해는 묘지에 묻혔는데, 이후 해가 바뀌고 시리아군에 의해 사망한 어떤 한 사람을 장의사들이 수습해 엘리사의 묘에 합장했는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마자 곧바로 회생하여 일어서는 일이 있었다.

엘리사 사후 그에 비견되는 예언자 집단의 수장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이후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은 급격히 쇠퇴하면서 북이스라엘 왕국이 망할 때까지 이렇다 할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1.3 논란

그의 행적 중 가장 괴이하고 논란이 되는 것은 다음 부분이다.

열왕기하 2장 23-24절

엘리사는 그 곳을 떠나 베델로 올라갔다. 그가 베델로 가는 도중에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 "대머리야, 꺼져라. 대머리야, 꺼져라." 하며 놀려대었다. 엘리사는 돌아서서 아이들을 보며 야훼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 그러자 2마리가 숲에서 나와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였다.

왠지 이 문서의 이 부분만 캡쳐되어 짤방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서양화[16]
탈모갤러 엘리사
우리는 여기서 대머리를 놀리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아니면 야훼도 곰은 불러낼 수 있어도 탈모는 치료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얼핏 보면 빼어난 예언자라는 사람이 자신을 대머리라고 놀렸단 이유만으로 순박한 아이들을 저주해서 무참히 죽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말이 많다.

일단 그 아이들이 정말 어린 '아이들'이 맞는지 혹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는데, 우선 '아이들'로 번역된 '느아림크 타니임'이라는 말은 5~6살짜리 꼬마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15~16살된 청소년을 가리키는 말로, 20살 무렵의 솔로몬이나 17살 시절의 요셉처럼 건장한 청년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실제로 영어 성경에서는 'youths'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다른 영어 성경에서는,

King James Version (KJV): little children
New International Version(NIV): youths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NRSV): small boys
New American Bible, Revised Edition (NABRE): little boys, children
라며 주로 '아이들'로 번역되고 있는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히브리어 판본 Westminster Leningrad Codex로 봐도 23절의 וּנְעָרִ֤ים קְטַנִּים֙는 혹시 youth로도 번역될 수도 있겠지만, 24절의 יְלָדִֽים(옐라딤)은 주로 어린이로 번역된다.

23절의 히브리어 단어, נַעַר (Strongs H5288) 구약성경에 238 번 나타나며 위에 언급된 KJV 에서는 그 중 young man 으로 76번, servant 으로 54 번, child 로 44번, lad 로는 33번... young (15x), children (7x), youth (6x), babe (1x), boys (1x), young (1x) 번역되었다.
24절의 יֶלֶד (Strongs H3206)는 89 번 나타나며 그 중 child는 72번 번역되지만, 상황에 따라서 young man은 7번 young ones 3x), sons (3x), boy (2x), fruit (1x), apostate Israelite 등 다양한 번역이 있다. 그러니까 진실은 저 너머에(...).

일단 이 가설을 따라 youths, 즉 10대 중후반, 현대의 중고등학생 나이의 무리들이었다고 생각해보면 이는 엘리사가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당장 엘리사는 대머리(…)였던 것으로 보아 젊지는 않았다. 게다가 곰에게 죽은 youths의 수만 해도 42명이었다면, 최소 42명의 껄렁껄렁한 중고딩들이 아저씨 1명을 둘러싸고 놀리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당장 뒷골목에서 고딩 3명만 담배 피우고 있어도 쫄지 않고 가서 혼낼 수 있는 어른은 많지 않다[17]

물론 엘리사를 조롱한 이들을 어린이가 아니라 청소년으로 바꾼들, 좀 덜 황당해질 수는 있을지언정 역시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잔인한 건 맞다. '대머리'라고 부르며 위협한 중고딩의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끔살시킨 아저씨가 좋은 소리를 들을 수는 없으니. 근데 따지고 보면 구약에서 잔인한 장면 많이 나오는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다만 그 뒤에 붙은 "꺼져라"라고 의역된 말은 원문은 "올라가라"에 더 가까운데, 즉 엘리야의 승천을 가리키는 말로 추측된다. 그런데 엘리야의 승천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며 순식간에 온 이스라엘에 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한 일이었다. 이 말은 곧 "네가 정말 하느님의 선지자면 어디 네 스승처럼 하늘로 승천해봐라"라는 의미인 것이다. 결국 짧아보이는 말이지만 한번에 엘리사와 엘리야는 물론 엘리야를 승천시킨 하느님까지 모욕하는 것이므로, 구약의 분위기[18]로 보면 곰한테 맞아죽어도 싼 일(…)이라는 주장이 있다. 사실 이런 야만적인 일은 구약이 쓰여질 당시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시대적 한계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걸 '예언자의 행적'으로 미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

더욱이 해당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성경에 남은 기록 상으론 별다른 설명이 없고 역사서들의 기록의 전후 맥락을 파악해야 알 수 있는 점이지만, 엘리야, 엘리사 사제라인이 활약하던 시절 남북 이스라엘은 야훼 신앙과 이교신앙의 종교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아 상대방에 대한 공격도 왕왕 일어나던 더더욱 험악한 시절이었다. 당장 스승인 엘리야만 봐도 야훼 신앙을 가진 사제들이 몰살당하자 몸을 피해 광야로 도망가기도 했고, 아합 왕 앞에서 바알을 모시는 사제들을 역관광보내면서 몰살시키기도 했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엘리사도 단순히 젊은이들이 자기를 놀렸다고 그런게 아니라 바알 추종자인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자기를 집단린치할 분위기가 되니까 그런 게 아니냐... 정도의 짐작이 있긴 하다. 위 문단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들이 하느님을 모욕한거 보면 정황 상 이교도인 것도 확실해보이고.

더구나 엘리사는 적국인 아람 장군의 문둥병을 고쳐줬다라거나 이교 신앙을 받아들여 속을 썩이던 왕들에게 기적을 내리거나 축복을 해줬다는 기록들을 봐도 엘리사는 단순히 이교 신앙을 가졌다고 막 사람 쳐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상똘아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고대의 막장성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한다 다만 그의 일화들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한 성깔 한 인물이었다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처음부터 시점을 달리해서 비기독교적/무신론적 관점에서 이 사건을 보자면, 그냥 길을 가던 엘리사에게 버릇없는 아이들이 모여들어 놀려대었고(물리적인 위협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여기에 우연히 지나가던 배고픈 곰이 점심을 해결하러 달려들었으며, 어찌어찌 살아남은 엘리사가 '이 사건은 예언자를 모욕한 무례한 아이들에게 신벌이 내린 것'이라고 주장한 것을 이스라엘측 사람 누군가가 기록했다가 바이블에도 실리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좀 자연스러울 것이다. 애초에 사람이 무슨 수로 야생 곰을 불러다 다른 사람을 죽이게 조종하겠는가. 비스트 마스터? 근데 왜 엘리사는 공격을 안했을까? 많이 잡아먹어서 배불렀나보지…

2 핀란드/에스토니아의 통신사

핀란드의 이동 통신사
엘리사소네라DNAAnvia

파일:Attachment/엘리사/elisa.jpg

공식 홈페이지

핀란드, 에스토니아 국적의 유·무선 통신사 및 인터넷 회사이다.
  1. 바이오웨어의 RPG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에서 인간 귀족 여성으로 선택시 이 디폴트네임으로 설정된다.
  2. 많은 라틴어 이름이 그러하듯이, 탈격으로 '엘리세오'라고 하기도 한다.
  3. 화살로 땅바닥을 치라고 북이스라엘의 왕 여호아스에게 시키는데, 여호아스가 성의없이 3번만 치고 그만두자 "왕께서 열심히 쳤으면 아람(시리아)을 멸망시켰을 텐데 3번만 쳤기 때문에 3번만 승리할 것이오."라고 말했다(열왕 하 13:18, 19). 미리 말해줘야지(…).
  4. 여호사밧이 속국이었던 에돔을 동원한 것은 과거 아합이 전사한 길르앗 라못에서 군사력을 크게 말아먹은 것도 있었지만, 북이스라엘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모압 북부가 아닌 에돔과 마주한 모압 남쪽 방면으로 군사를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5. 연합군이 선택한 에돔 방면은 수원 공급이 쉽지 않은 광야 지대인데다, 뭣보다 그나마 근처에 있는 수원이 다름 아닌 사해.
  6. 여호람의 아버지는 아합 왕,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이세벨로 둘 다 엘리사의 스승인 엘리야와는 앙숙 중의 앙숙이었다.
  7.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설이 있는데, 그 중에는 자신의 신에게 번제를 바친다는 것은 즉 자신의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했고, 신에게 번제를 드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던 연합군 역시 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철군했다는 설이 있다.
  8. 이 때문에 유다 전승 중에는 과거 길르앗 라못 전에서 북이스라엘 왕 아합을 쏘아 맞춘 인물이 바로 이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그게 진실인지는 불명이지만.
  9. 이후 벌어진 사건을 보면 여호람의 의심은 틀린 게 아니었다.
  10. 어느 정도였냐면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 합분태 4분의 1 갑에 은 5세겔로, 오늘날로 치면 고기 중 가장 쓸모없어서 소세지나 만들 부위가 최고급 스테이크 가격으로 훌쩍 뛰어오른 셈이다!
  11. 예를 들자면 1,500원짜리 포카칩 1봉지가 300원 정도로 뚝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12. 참고로 여호사밧이 죽고 이 사람이 등극하자마자 에돔이 반기를 들었다. 이후 에돔은 이 양반의 증손자인 아마샤 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남유다에 복속된다.
  13. 아이러니하게도 여호람이 죽은 곳은 다름 아닌 그의 부친인 아합이 나봇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포도원이 있던 곳이었다. 죽은 여호람의 시체는 본보기로 그 포도원에 던져졌다. ㅎㄷㄷ
  14. 길르앗 라못에서 회군한 탓에 갓 지파, 르우벤 지파, 므낫세 지파의 땅인 아로엘과 길르앗, 바산 일대가 모조리 시리아에게 넘어가 버렸다.
  15. 이 내용은 아시리아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으며 성서에서는 나와 있지 않은 사실이다.
  16. James Tissot, 1836-1902, 뉴욕 유대 박물관 소장 중
  17. 그런데 저 나이는 지금이나 고딩이지, 당시 시대를 감안하면 한 사람의 장정, 즉 완전히 성장한 성인 취급을 받는 나이다. 쥐어짜도 나올 사춘기물조차 없는 만18세부터 성인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건 근대부터였다.
  18. 안식일에 나무하러 갔다는 이유로 사람을 돌로 쳐죽이고, 결혼한 다음 여자가 처녀가 아니어도 돌로 쳐죽이고, 여자가 강간을 당할 때 비명을 지르지 못하면 간통으로 보고 여자도 돌로 쳐죽이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