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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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말년을 보낸 SK 와이번스 시절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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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본인이 천직이라고 말하는 해설위원!
이름안치용(安致溶 / Chi-young Ahn)
생년월일1979년 2월 23일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미성초-신일중-신일고-연세대
포지션외야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8년 고졸우선지명(LG)
소속팀LG 트윈스(2002~2010.7.27)
SK 와이번스(2010.7.28~2014)
응원가LG 시절: 김아중-마리아[1][2]
SK 시절: 쿨-또 자 쿨쿨[3]
LG 트윈스 등번호 61번(2002~2010)
박철홍(1994~2001)안치용(2002~2010)김선규(2010~현재)
SK 와이번스 등번호 35번(2010)
이명기(2009~2010)안치용(2010)허웅 (2011~ )
SK 와이번스 등번호 23번 (2011~2014)
안치용 (2011~2014)앤드류 브라운(2015~ )

1 소개

LG 트윈스, SK 와이번스외야수. 별명은 밑에서 언급되는 난세영웅, 안쳐용, 치드래곤, 치디 등등.

2 아마추어 시절

고교야구 시절, 강팀 신일고에서 4번을 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었다. 모교인 신일고가 1997년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청룡기 3개대회 동시 석권을 기록할때 중심 타자로써 맹활약 했고 청소년 대표팀에 콜업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8년에 LG 트윈스의 고졸우선 지명을 받았다. 그 해 LG 트윈스는 외야수 신인 농사는 다 지었다고 만족할 정도였다. 그 당시 LG 트윈스가 쓸어담은 세 명이 박용택정현택, 그리고 안치용이었다. 이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선수가 배명고정현택이었고, 그 다음이 안치용, 박용택이 가장 처지는 것으로 평가를 받았으니 아마추어 시절 안치용의 위상을 알 수 있겠다.하지만 프로에는 반대로 박용택, 안치용, 정현택[4] 순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프로 입단 대신 연세대학교의 러브콜을 받아 대학에 진학했고, 신입생임에도 연세대학교 야구부의 클린업 트리오를 꿰어찼다. 그러나 처음 입학때와는 달리 안치용은 끝을 모르게 부진하며 4번 타자로 입단해 9번 타자로 졸업한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3 프로 선수 시절

3.1 2002~2008 시즌

연세대학교 졸업 후 LG 트윈스에 입단, 2002년 5월 12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데뷔하였으나 LG 유망주들이 늘 그렇듯이그냥 그저 그런 성적만 보여주며 1, 2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열심히 훈련을 하던 선수가 아니었기에[5] 구단에선 그를 미련 없이 포기하고 방출하려 하였으나 2006년 LG의 감독으로 부임한 김재박 감독은 도하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과 LG의 1.5군이 가진 연습 경기에서 안치용의 파이팅 넘치는 외야 수비[6]를 보고는 안치용을 더 지켜보자고 구단을 설득하였다.

그리고 2008년 라뱅의 일본 진출, 박용택의 부진, 동수옹의 부상 등으로 중심 타선에 자리 잡은 안치용은 시즌 초부터 맹타를 휘두르며[7] 5월 한때 3할 5푼의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좋은 성적을 냈다. 6월 26일 삼성전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풀 타임 시즌 경험 부족으로 차츰 페이스가 하강, 1군 101경기에 출장하여 0.295의 타율과 7홈런, 52타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 때 얻은 별명이 난세의 영웅. 다만 난세를 평정할 만큼의 힘은 되지 않았는지(…) LG는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다.
시즌 말 트윈스 러브 페스티벌에서 퇴장을 당한다....[8] 물론 연출.

참고로 1군과 2군(2003년)에서 모두 사이클링 히트를 해 본 선수는 드문데, 이 선수는 그것을 해봤다는 것이 중요하다. 퓨처스 리그 기록은 기사화 하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드러날 일이 많지 않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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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 지금도 화자되는 봉산탈춤 수비를 선보이기도 했다. 얼쑤! (2009년이었는지 그 전이었는지 확인바람)

3.2 2009 시즌

2009년에도 시범경기에서 연일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난세의 영웅 시즌2를 예고했으나, 대학시절로 돌아간 듯한 극심한 타격부진으로 안쳐용이라는 별명까지 붙어 버린 반면, 부활한 박용택, FA로 들어온 이진영등에 밀려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2009년 성적은 타율 0.237, 5홈런 30타점.

3.3 2010 시즌

2010년에는 기존 주전에다 이병규, 이택근이 또 추가되며 외야의 빅5가 완성되었으니 더더욱 출장 기회도 잡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7월 28일 4:3 트레이드로 권용관, 이재영, 최동수와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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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일 벌어진 LG와의 경기에서 첫 타석에서 2루타를 기록했다. 당장 주전으로는 박재상-김강민-박정권, 백업에는 박재홍, 조동화, 임훈 등이 버티고 있는 SK 외야진을 뚫고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지만, 의외의 선수 기용과 높은 적중률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이 있는 만큼 2007년 김재현, 2008년의 최정에 이은 신데렐라가 될 가능성을 보였으나…SK로 온 지 불과 3일 만인 7월 30일 기아전에서 상대 투수 로만 콜론의 공에 왼손 약지가 골절되어 시즌 아웃되는 비극을 맞았다. 이적 후 끌어올리던 페이스가 언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지가 불투명해졌다.

다행히도 9월 11일 대전 한화전에 1군으로 조기 복귀했다. 당시 인터뷰에서는 "부상은 완치되었다. 문제는 타격감."이라고 하였을 정도로 부상에서 회복한 모습. 이후 대타로 출전하다 17일부터 주전 외야수(우익수)로 출전, 최근 5경기서 .462(13타수 6안타 1홈런)를 기록 중. 우려해오던 타격감은 오히려 절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대수비로, 4차전에 김재현의 대타로 출전하여 1볼넷, 출루율 1.000을 기록한 게 전부였지만, 팀이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하여 생애 최초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3.4 2011 시즌

2011년 SK의 후반기 난세영웅.안치용/2011년 항목으로.

3.5 2012 시즌

개막전부터 팀의 4번타자로 시즌을 시작, 4월 15일 한화와의 문학 홈 경기에서 선발 지명타자로 출장하여 팀이 7:0으로 이기던 2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브라이언 배스를 상대로 마수걸이 매운탕 한 그릇 솔로홈런을 쏘아 올렸고, 팀이 8:2로 이기던 6회말 1사 1, 2루에서는 2012 시즌 첫번째이자 KBO 역대 72번째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달성하며 팀의 11:6 승리를 견인 했다. 이날 3타수 2안타 2홈런 4타점 3득점을 기록.

하지만 이후 끝없는 부진에 빠지면서 결국 4번타자에서 내려갈 타순은 내려간다 대타 요원으로까지 강등, 타격감까지 잃으며 폭풍삼진만 당하다가 결국 5월 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문학 홈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3:2로 지던 8회말 선두타자 대타로 나와 삼진을 당했다. 팀은 9회말 조인성의 대타 끝내기 투런포로 5:3으로 재역전승했지만, 결국 안치용은 그 다음날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으로 내려갈 때의 타율은 0.196, 안타는 11개에 삼진이 25개였다. 작년의 성적이 플루크였다는 소리까지 조금씩 나왔다.

곧 콜업되었고 5월타율은 3할3리로 마감한다. 6월 16일 열린 대 한화 전에서 박찬호에게 3안타를 뽑아내며 박찬호 킬러임을 과시 하기도 하였다. 6월 18일 현재, 타율을 .259 로 끌어 올렸다. 박재상의 부재로 꾸준히 좌익수로 출장 중인데 LG 시절의 봉산탈춤 수비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수비력을 보였다.

그러나 9월7일 있었던 KIA와의 경기에선 김광현vs.윤석민의 빅뱅이 예고되었으나, 안치용이 명불허전 쓰레기 같은 예능수비를 작렬하여 필요 이상의 점수를 대량으로 허용함으로써[9] 결국 김광현은 멘붕하며 무너졌다. 타석에선 1타석 1볼넷을 골라내었다.

3.6 2013 시즌

시즌 초반 2군에서 시작해서 1군으로 콜업된다. 하지만 포지션이 겹치는 김상현이 KIA에서 오면서 5월 9일부로 2군행, 오랜기간 2군에 머물다가 9월 엔트리 확대시 1군으로 복귀해서 9월 3일 LG전에서 복귀 첫타석 대타로 나와 역전 안타를 치며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3.7 2014 시즌

1년 내내 2군에서 머물렀고, 1군에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10월 21일 이호준의 인터뷰로 뜬금없이 까였다. 이호준은 준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하던 최경철을 칭찬하며 "SK 시절 안치용과 함께 살던 최경철은 훈련이 끝난 뒤에도 동네 놀이터에서 항상 1시간씩 타격 연습을 한 뒤 돌아왔다. 때문에 안치용은 항상 기다렸다 1시간 늦게 최경철과 식사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최경철이 연습할 동안 안치용은 쉬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이 기사의 베댓은 안치용을 까는 내용이 다수였다. 집에서 부랄 긁던 안치용 어벙벙행 까였다고는 하나 아직 그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그리고 2015년 새해가 밝은 지 12일 만인 1월 12일, 은퇴 결정을 했다.

4 야구 해설자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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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조성환 해설위원과 함께 찍힌 사진근데 어찌 인상이 경호원인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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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코치와 대화 나눈 사진형사아찌 같다.

은퇴 선언과 동시에 해설자로서의 변신을 선언한다.[10]

KBS N 스포츠에서 해설자 데뷔를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언변이 뛰어나다보니 시청자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유머도 있고 목소리도 괜찮아 듣기 편하다는 평. KBS N 스포츠가 2015년에 영입한 의 새로운 해설위원 중 가장 낫다는 평가이다.사실 한 분만 빼면 다 괜찮긴 하다 다만 조성환 해설이 성장세를 보여주고 본인은 언변에 비해 전문성에서는 좀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같은 방송사 송진우-이용철 위원이 워낙 자격미달이라 반사이익을 보는 것 아니냐는 재평가 여론도 조금 있었다. 그래도 몇몇 팀에 대한 편파논란만 빼면 대체적으로 불호가 심하지 않는 합격점의 해설자로 평가받고 있다.일단 삼용철-송셀린보다야

한편 은퇴를 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야구장비를 남김없이 전부 다른 선수들에게 줬다는 후문이 있다. 이 소식을 들었던 SK 와이번스 스태프들은 정말 독하다는 말을 했었을 정도.

단, SK 경기를 중계할 경우 분위기적인 편파 해설이 심하다는 의견이 있다. 아무래도 본인이 은퇴전까지 선수생활을 했던 팀이라 애정도 있겠지만,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공식적인 정보 이외의 별로 알려지지 않은 성격이나 습관 등 사적인 정보들 역시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2015년 4강이 어느 정도 결정되고 5위 싸움이 치열하던 무렵 전 방송사 해설자들의 5위 예측발언이 주목된 적이 있었는데, 다들 롯데나 한화, 기아 등으로 할때 안치용 혼자 "저는 SK가 5위가 될 거 같다"며 SK를 한달 넘게[11] 5위 후보로 주목하며 튀는 행보를 보였는데, 정말로 SK가 5위를 함으로써 안치용 혼자만[12] 예측이 맞게 되었다.

2015년 9월 16일 SK와 삼성의 경기를 중계하던 중 카메라에 나바로의 가족이 나오자 까매서 누가 동생이고 아버지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뒤 아차 싶었는지 급히 사과를 했다. 다행히 크게 이슈는 되지 않고 묻혔다.

5 응원가

LG시절에는 동요 "빙고"를 개사한 곡을 부르다가, 김아중의 마리아를 개사, 안치~용~ LG 안치용~ 으로 불렀다. 그 응원가는 안치용이 이적한 이후, 정의윤이 쓰게 된다.

SK에서는 의 "또자 쿨쿨"의 전주부분을 개사, 와이번스 난세영웅 와이번스 안! 치! 용! 으로 부른다. 공교롭게도 정의윤은 SK에 이적하고 나서도 안치용의 응원가를 물려받게 되었다. 가사에서 난세영웅 대신 파워히터지만.+[13]

6 여담

안치홍과 자주 헷갈린다. 팀 동료였던 정근우안치의 응원가를 부르면서 놀리기도 했다.(…)SK의 안치용 안치용 안타치고 도루하고 해설위원으로 데뷔하고 시즌 시작 전 스팟 영상을 찍었는데 이름이 비슷한 안치홍의 이름을 이용한 드립을 스스로 쳤다.안치'용'입니다. 안치'홍'은 군대갔어요.
  • 선수복장차림을 하지않았을 평상시에는 외모가 범상치 않아보여서 그런지 형사로 오해받을 때 있고, 정장차림으로 입으면 경호원으로 오해받곤 했다.지못미
  1. 안치용이 떠나고 이후 정의윤이 물려받았..으나 결국 정의윤도 SK로 왔다.
  2. 가사는 안치용~ LG 안치용~ 안!치!용! 무!적!L!G! 안!치!용!
  3. 우리같이 안! 우리같이 치! 다같이 용! 와이번스 난세영웅! 와이번스 안!치!용! 와이번스 난세영웅! 와이번스 안!치용!
  4. MBC 청룡, LG 트윈스 역사를 통틀어 게으르고 불성실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멘탈이 심각하게 개판이었다. 2군에서 햇빛에 얼굴이 타기 때문에 낮경기를 못하겠다며 경기 출장을 거부한 일화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결국 코칭스텝에게 단단히 찍혀서 쫓겨나듯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당연히 빛을 보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하였다.
  5. 본인이 회상하는 자신의 프로선수 시절, 여담이지만 안치용은 SK 시절에도 김성근의 훈련을 피해 대놓고 땡땡이를 쳤던 용자였다. 본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6. 우익수로 선발 출장 하였는데, 관중석으로 넘어갈 외야 플라이 타구를 전력 질주해서 잡는 멋진 호수비를 하였다.
  7. 2002년에 데뷔했으나, 통산 첫 홈런은 2008년에 기록.
  8. 아마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일 것이다......만 원조는 이쪽,그렇다고 홍성흔이 따라한건 아니지만,정말 둘의 동작이 비슷했다.
  9. 이상하게 KIA타자들이 칠 때마다 타구가 좌익수 안치용 쪽으로 계속 갔다.
  10. 몇년 전 인터뷰에서는 뛸 수 있을 때까지 뛰겠다고 말했다.
  11. 그가 처음 아이러브베이스볼에서 예측을 말하던 당시에는 SK가 7위였고 한동안 5위를 하지 못한채 6위와 7위를 오갔었다. 심지어 SK팬들조차 5위를 어렵다고 봤던 시기. 그러나 안치용은 계속 5위 예측을 바꾸지 않았다.
  12. 물론 추후 SK가 종료 2주 정도를 남기고 5위를 하자 그때부터는 5위가 SK일 거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많이 나왔다. 예측 철새?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예언한 사람은 분명 안치용 혼자였다.
  13. 사실 임시응원가였고,2015년 8월 30일 현재는 이문세의 붉은노을을 개사한 응원가를 쓰고 있다.와이번스 정의윤 이세상은 너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