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50 음반 대상 | ||||
god <길> (2001) | → | 쿨 <진실> (2002) | → | 조성모 <피아노> (2003) |
한국의 혼성 댄스그룹으로 1994년에 데뷔했으며 그룹명은 쿨 재즈의 쿨에서 유래했다. 혼성그룹 중 최다 앨범판매량[1]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 활동 내역
2.1 1·2집 : 쿨의 시작
1994년 7월에 이재훈, 김성수, 故 유채영, 최준명 4명의 멤버로 시작했을 때는 위에 말한 쿨 재즈풍의 음악을 일었던 1집 활동에서는 파워풀한 댄스 그룹 컨셉인 '너이길 원했던 이유'로 10위 권까지 진입하는 등 선전했으나 이 때는 신인 시절이라 그룹 이름처럼 쿨하게 삭발한 유채영의 헤어스타일만이 꽤나 신선하다는 반응을 들었을 뿐 곡 활동은 조용히 묻혀버렸다.[2]
그 후 유채영, 최준명이 빠지고 유리가 새로 들어오는 멤버 교체가 이루어진 2집(1995년)에서는 '작은 기다림'과 그룹 마로니에의 멤버 최선원이 부른 곡을 리메이크한 '슬퍼지려 하기 전에' 라는 곡으로 활동했으며 이 때에도 10위 권 안에 들 정도로 큰 선전을 했다.[3][4]
2.2 3집 <운명>, 3.5집 <해변의 여인> : 쿨의 완성, 전성기의 시작
그들의 멋진 운명을 만들어 준 리즈 시절
여름철 지상파 방송 메인뉴스 고정 등장곡 "해변의 여인"
와! 여름이다!!
199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댄스 그룹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3집에서는 'Destined The Best'라는 곡으로 활동했으며, 이 곡이 쿨을 최상위 가수로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6년 11월 말에 발매되어 그 겨울 내내 활동한 타이틀곡 '운명'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당시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최고의 아이돌 가수 H.O.T.의 '캔디#s-3'와의 3번 대결 끝에 가요톱텐에서 첫 1위를 차지했으며 그 기세를 이어서 가요톱10에서 골든컵 뿐만 아니라 지상파 3사 가요 차트 최고 타이틀을 모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5] 이 때 COOL이 H.O.T.를 이기면서 일종의 언어유희를 느낀 사람도 적지 않다고(...) 또한 2집 이전에는 거의 립싱크 무대로 꾸몄다면 3집부터는 라이브 무대의 비중을 늘렸는데, 당시 1위 경쟁 상대였던 H.O.T.의 캔디의 경우 활동 내내 립싱크를 하면서 몇몇 언론에서는 '실력으로 이겼다'는 비교를 받았다.
특히 3집부터는 윤일상과 이승호의 히트곡 제조팀 덕분에 인기를 끌 수 있었는데, 고풍스러운 컨셉을 표방하던 쿨이 판매부진으로 해체위기에 놓였을때, 한국의 비치 보이스를 생각하며 쿨의 컨셉을 발랄하게 바꾸면서 쿨을 인기가수로 올려놓았으며, 해변의 여인과 애상이 대표적인 예시다.[6]
1997년 1~2월 내내 커리어 사상 첫 차트 1위를 독식하며 큰 인기를 누린 이후, 후속곡 '루시퍼의 변명'이 1위 후보에 여러 번 오를 정도로 역시 탄력을 받고 고공행진을 하기 시작했으며, 1997년 말까지 비공식 100만장 음반을 판매하면서 밀리언셀러 톱 가수의 반열에 오르는 큰 성과를 이루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90만장 이상) 이때까지는 여름에 주로 활동하는 가수가 아니었으나 4집(1998년) 사이의 공백기간에 낸 3.5집(1997)의 '해변의 여인'[7]도 히트를 치면서 여름 가수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고 후속곡인 발라드곡 '송인'도 가요톱텐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정규 앨범이 아님에도 50만장 이상을 기록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8]
'해변의 여인'은 역대급으로 영원히 남을 수준의 경쾌한 명곡으로 여름 해수욕장 인파를 보도하는 모든 방송사 메인 뉴스(!)에 무조건 삽입된다. 한국 한정으로는 '벚꽃좀비엔딩'의 원조격이나 다름없다.[9]
2.3 4집 <애상> :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최절정기
4~6집 시기는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1996년 별들의 전쟁 이후 또다른 춘추전국시대로 볼 수 있는[10] 90년대 후반~2000년대 극초반 때는 최정상급의 독보적인 임팩트까지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왔다 하면 1위는 매번 찍고 들어가는 정상급 인기가수들 중 하나' 수준은 되었다. 또한 매년 10위 안에 들어가는 훌륭한 음반 판매량과 가요 차트를 유지했으며 윤일상과 이승호의 곡들을 통해 1위 후보 및 1위 자리에 여러번 오르는 등 크게 선전했다.
운명, 해변의 여인 연타석 히트로 얻은 부담없이 친근한 이미지가 이 시기에 극대화되어, 발랄하고 신나는 멜로디에 연인들간의 여러 상황과 감정을 컨셉으로 잡아 티격태격하면서도 재밌는 무대 연출로 10~20대층, 특히 커플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998년 4월에 발매된 4집의 타이틀 곡 <애상>. IMF로 축축 처진 분위기 속에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고 권태기의 미묘한 감정을 잘 풀어낸 이 곡으로 슬럼프는 커녕 오히려 더욱 탄탄한 입지를 다졌고, IMF의 힘든 모습을 그대로 곡 속으로 옮겨 커플들의 경제적 문제를 곡 속에 녹여낸 후속곡 '변명'까지 큰 인기를 얻었다. 경제 불황 속에서도 80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3집 다음으로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이어갔고,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운명, 해변의 여인과 더불어 초기 히트곡 3대장 중 하나로서 2011년에는 10cm가 리메이크해 어린 층에게도 알려질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 곡이 되었다. 쿨로 활동했던 맴버들 모두 수많은 히트곡들 속에서도 가장 큰 애착을 보이는 곡이다.
단적으로 MBC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슬퍼지려 하기 전에'와 이 곡을 공연했고, 각종 행사와 콘서트에서도 무조건 이 노래가 빠지지 않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활동 당시의 히트로 따지면 운명이 더 많은 인기를 얻었고, 해변의 여인도 만만치 않게 롱런했던 데다 골든디스크 대상을 안겨준 '진실', 여름 가수로 완전히 자리잡게 해준 Jumpo mambo, 쿨 발라드 명곡으로 응칠을 통해 재조명된 All for you, 아로하 등이 있음에도 매 무대마다 애상을 고집하는 건 쿨 맴버들에게 매우 뜻깊은 의미가 담긴 곡으로 현재까지 가장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담으로 <애상> 뮤직비디오에 개그맨 윤정수가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이재훈과의 친분이 쌓이면서 <변명> <미절> <해석남녀>까지 뮤직비디오에 연달아 출연하고 심지어 음악방송까지 같이 나오는 등, 사실상의 제 4의 멤버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쿨을 알게된 몇몇 사람들은 윤정수가 가수 데뷔했다고 착각했을 정도로 쿨과의 협업이 많았다.
2.4 4.5집 <미절>, 5집 <해석남녀> 슬럼프와 재기
4집으로 메가히트를 친 이후, 정확히 1년 뒤인 1999년 4월 발매된 4.5집의 타이틀곡인 미절은 당시 ARS MVP 형식이었던 뮤직뱅크에서 한 번 MVP 자리에 올랐다. 이 시기가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이었기에 많은 활동을 하지 못했고, 두 곡을 더블 타이틀로 내세워 집중도도 떨어져 3~4집 기간의 폭발적인 화력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주춤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즈 시절의 스티브유 유승준[11], 리즈 시절의 핑클[12]과의 경합을 뚫고 비정규 앨범으로 1위를 거머쥐었다는 것은 그룹 자체의 대중적인 지지도가 탄탄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였다. 음반판매량은 34만장으로 적당히 선방했다.
하지만 맴버들에게는 데뷔 이래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전 소속사와의 마찰로 소송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서 기획사를 옮기고 준비한 5집이 이 소송문제 때문에 기약없이 미뤄지는 판국에 쿨의 메인 프로듀서이자 사실상 쿨이란 그룹의 이미지를 만들어준 작곡가 윤일상이 본의 아니게 뒤통수를 치는 사태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곡을 쓸 때부터 타이틀로 내정한 상태에서 녹음까지 마친 Love letter라는 곡이 5집 발매가 하염없이 미뤄지게 되자 그새를 참지 못하고 신인그룹 문차일드에게 태양은 가득히라는 제목으로 다시 팔아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문차일드 데뷔앨범이 쿨 5집보다 일찍 발매되면서, 한 곡이 두 가수에게 들어가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13]. 결국 쿨은 앨범 발매 후 벌어질 논란을 피하기 위해 타이틀 곡을 바꾸게 되었고, 그렇게 나오게 된 것이 해석남녀였다.
이 곡은 뮤지컬 풍의 재즈 리듬이 빠르게 이어져 기존의 쿨 히트곡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분위기를 띈다. 거기에 비트가 매우 잘게 쪼개지는 현재의 댄스곡들과 비슷한 패턴의 노래인데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통통 튀는 느낌이 있어 정규앨범임에도 이전 히트곡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Love Letter가 기존 쿨 스타일에 훨씬 잘 맞는 곡이었고 여름의 시원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어, 쿨 팬들은 이 곡이 타이틀이 되지 못한 것에 무척 아쉬워해서 윤일상과 문차일드에 약간의 앙금이 생겼다. 이에 대해 윤일상은 쿨과는 정상적인 로열티를 지불받은 상태에서 곡을 주었고, 이쪽(GM기획)에는 제대로 된 로열티 계약을 맺지 않고 협의 단계에서 곡이 무단으로 사용되었다고 발표했다. 즉, 후속곡으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은 것은 문차일드 쪽이지만, 실제로는 쿨 쪽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곡을 취입했다는 것. 결국 문차일드는 앨범을 발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 문제 때문에 폐기처분한 다음 곡의 제목을 Click에서 태양은 가득히로 바꾸고 가사를 완전히 들어낸 다음에야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악재를 극복하고 2000년 4월 발매된 5집 <해석남녀>는 상기했듯이 이질적인 요소를 등에 업은 곡이었지만 남자와 여자가 각자 생각하는 서로의 이성관을 노랫말에 재밌게 대입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남녀 양쪽에서 모두의 공감을 얻으며 1위 후보까지 오를 정도로 크게 히트했다. 지금 들어도 통통 튀는 신나는 분위기에 재밌고 공감가는 가사로 유쾌한 쿨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 할 수 있다.
후속곡 <맥주와 땅콩>은 본격적인 여름 그룹으로서의 시작을 알린 노래가 되었다. 처음 시즌송을 발표한 것은 1997년 해변의 여인이지만, 이 곡의 꾸준한 인기와 그룹 이름의 아이디어에서 착안하여 후속곡부터 본격적으로 여름을 타깃으로 노리고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 이후로 모든 정규앨범이 7월 초에 맞추어 발매되기 시작했다. 쿨의 여름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잇기 시작한 곡이 바로 맥주와 땅콩인 셈이다. 다만 원래 타이틀로 쓰려던 Love Letter라는 노래 역시 여름을 타겟으로 하여 만들어진 곡인 만큼, 굳이 맥주와 땅콩이 아니었어도 여름을 타겟으로 하는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활동 종료 이후에는 가사가 개사된 후 시트콤 뉴 논스톱의 로고송으로 채택되어 노래의 인지도가 더 확대되었다. 음반 판매량은 68만장으로 그해 음반 차트에서 6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5 6집 <Jumpo Mambo> : 발랄한 노래, 파격적인 가사
다음해인 2001년 7월, 베트남에서 촬영한 자켓으로 6집을 발매했다. 촬영 장소에서 알 수 있듯 이 앨범으로 본격적인 '여름 가수'의 컨셉을 확정짓고 여름에 컴백하는 구도가 완전히 자리잡았다. 타이틀 곡 <Jumpo mambo>는 5집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그 해 여름을 UN의 파도와 양분하여 각종 시상식에서 본상을 모두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59만장으로 판매량은 다소 하락했지만 연간 순위는 그대로였다. 이맘때쯤부터 인터넷망의 발달로 소리바다나 벅스뮤직을 필두로 mp3 음원 공유가 많아지면서, 우리나라 앨범판매량이 서서히 저하되가기 시작된 시점이므로 당연히 낮은 판매량은 아니다. 여담으로 곡이 발표된 직후 약간의 논란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커플간의 동거'가 메인 컨셉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원래 노래제목도 '동거'였는데 곡이 발표되고 나서 맞을 후폭풍을 의식하여 점포 맘보라는 제목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쿨의 히트곡 중에 거의 유일하게 영어로 된 제목이 되었다. 지금도 동거라 하면 세간에 부정적인 인식이 대부분인데, 이 당시에 정직하게(...) 제목을 달고 나왔다면 작곡가와 그룹이 얻을 이미지 타격이 만만치 않았을 테니 탁월한 결정이라 할 수 있었다.
6집 1번 트랙인 '좋은 세상 만들기'는 잭슨 파이브의 'I want You Back'를 샘플링한 곡이며 샘플링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표절 관련 구설수에 억울하게 언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규 앨범이 나온지 불과 다섯 달 만인 2001년 12월, 쿨표 발라드 앨범으로 꽉꽉 채워진 6.5집이 발매되었다. 너무 잦은 활동에 의한 피로감으로 딱히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타이틀곡 '아로하'가 고백송으로 알려지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그동안 쿨 앨범에 수록된 발라드들을 좋아했던(작은 기다림, 송인, 친구에서 연인이 되기까지, All for you 등등) 많은 팬들에게 맞춤형 선물이 되었다. 이 앨범의 히트로 이후 3년 동안 같은 컨셉으로 여름에 정규 댄스앨범, 겨울에 비정규 발라드앨범으로 발표되어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2.6 7집 <진실> : 혼성그룹 유일 대상, 제 2의 전성기
1996년 운명~1998년 애상 이후 명실상부 쿨의 제 2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시기이다. 이전 앨범과 마찬가지로 여름을 컨셉으로 잡고 2002년 7월 발매되었다. 월드컵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상황[14]에서 7집으로 활동한 타이틀곡인 <진실>이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연속으로 휩쓸면서 그 해 가장 많이 음반을 판매한 가수가 받을 수 있는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얻었다. 2002년부터는 가요시장이 음반에서 음원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도 65만장[15]이나 팔리면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 앨범에서 가문의 영광 OST로 쓰인 <숙아>로 겨우 2주 정도로 매우 짧게 후속곡 활동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이 어느 정도 알려지면서 간간히 인기를 얻은 쿨의 숨은 명곡으로 꼽힌다. 또한 맴버들의 솔로곡이 모두 수록된 첫번째 앨범으로 예나 지금이나 쩌리 취급받는 겉절이 맴버(...) 김성수의 솔로곡도 있을 정도이다.
또한 인기가 많아지면서 2003년에 KBS 2TV 자유선언 토요일의 한 코너로 방영했던 프로그램인 매직스쿨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가수 쿨이 직접 메인 마술사가 되어 다양한 마술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쿨의 이름을 건 만큼 쿨 멤버 세 명과 함께 작사가 장대성 씨가 진행하였고 이 프로그램에서 신입 아나운서였던 강수정이 크게 이름을 알려 '여걸파이브' 등 예능을 거쳐 나중에 프리 선언을 할 수 있게 한 단초가 되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마법이나 마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던 당시의 흐름을 노리고 기획한 예능이라서 그런지 프로그램 초반에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마법학교 호그와트 교장 덤블도어 선생님이 편지를 써서 보내는 등 해리 포터적 냄새가 강하게 배어있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의 의의는 종전의 그리고 지금까지도 마술 프로그램에서 유명 마술사 초청 및 관람 또는 조수로서의 참여에 국한된 한계를 넘어서 연예인이 직접 메인 마술사가 되어 마술을 진행하는 것에 있다. 특히 이재훈은 블록버스터급의 고난도 마술에 도전하기도 한다(수중 탈출마술, 자동차 마술 등). 이를 계기로 쿨은 예능 출연이 잦아지게 되었고 김성수는 거의 예능인으로 전업하게 되었다.
다만 제 2의 전성기라고는 하지만 이 앨범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맴버들간의 불화가 조금씩 생기면서 앨범 자켓을 따로 찍기 시작한 것이다. 6집 이전의 부클릿을 보면 맴버들 모두가 모여 자연스럽게 촬영한 컨셉 사진이 많은데, 7집 이후로는 각자 각개전투하여 따로 찍은 사진들을 합성한 부클릿밖에 없다. 또한 이 때부터 앨범 자켓이 대놓고 코믹으로 가면서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이는 김성수의 예능 활동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2004년 이후 쿨 활동이 뜸해짐과 동시에 NRG, 컨츄리꼬꼬, 코요태의 김종민이 이쪽 포지션을 가져가면서 쿨의 우스꽝스러운 예능 이미지는 거의 희석되었으나, 쿨 전성기의 막바지인 2002~2003년 당시에는 지금 들여다봐도 확실히 친근한 느낌치고는 조금 과하다 싶은 이미지였다. 김성수로 대표되는 '개가수' 이미지에 이재훈과 유리는 상대적으로 반감을 보였다고 하는데, 아마 이것이 쿨의 불화에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8집에서는 음악 방송 활동보다 예능 출연이 더 잦아졌으며, 9집부터는 아예 앨범을 발매하고도 음악 방송 출연을 하지 않고 멤버들 각자 예능만 돌 정도로(...) 불화는 심해지게 된다.
이 때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 '진실'이라는 노래가 쿨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메가 히트곡임에도 활동 직후에는 맴버들 입에서 언급이 전혀 안 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쿨이 여러 지방 행사를 활발하게 다니기 시작했고 코요태와 합동 공연을 펼치는 등 꾸준히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애상, 슬퍼지려 하기전에, 해변의 여인, 운명은 거의 단골손님이며 간혹 2000년대의 히트곡이 언급이 될 때에만 나타날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이 때문에 활동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으며 음악 방송 1위를 독식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20대 초반 이하의 층에서는 거의 인지도가 없는 곡이기도 하다. 90년대의 히트곡에 가려져 2000년대의 히트곡이 잊혀져가는 경향이 큰데 이 중 가장 심한 것이 쿨 7집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2.7 8집 <결혼을 할거라면> : 황혼기의 화려한 불꽃
제 2의 전성기를 찍고 혼성그룹 유일의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한 7집 이후, 겨울 앨범 시즌 2인 7.5집을 발매했다. 타이틀곡보다 '산책'이라는 미디엄 템포 댄스곡이 더 잘 알려진 이 앨범 역시 방송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많은 사랑을 받으며 3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그리고 역시나 다음해인 2003년 7월, 정규앨범 8집이 발표되었다. 타이틀곡은 <결혼을 할거라면>. 동일 앨범의 'One Summer Drive'와 치열한 경쟁 끝에 타이틀 자리를 거머쥔 이 곡은 나오자마자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여러번 차지하는 성과는 거두었으나, 7집의 대성공을 너무 의식한 곡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앨범 자켓에서부터 맴버 각자가 코믹 컨셉으로(7집은 폭탄머리, 8집은 슈퍼맨+원더우먼+스파이더맨 컨셉) 찍은 것부터 7집의 향기가 물씬 풍기더니, 여전히 코믹한 느낌의 뮤직비디오 컨셉, 방방 뛰는 전 타이틀곡보다 분위기는 다소 차분해졌지만 여름치고는 축축 쳐지는 리듬감 때문에 여러모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팬들 사이에서도 진실의 하위호환같은 타이틀곡보다는 따스하면서 경쾌한 느낌의 One Summer Drive가 낫다는 의견이 성토했고, 그 결과 이전 앨범들의 인기에 간신히 체면치례 하는 정도의 성과에 그쳤다. 음반판매량은 25~26만장[16] 정도에 그쳐 전작은 커녕 직전에 발매된 7.5집의 33만장에도 미치지 못했고, 연간 차트에 10위권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정도(음반산업협회 기준 2003년 9위. 다만 8월 이후 미제출로 2003년 총결산에는 빠졌다.)에 그쳤다.
다만 방송과 음원 차트 1위를 휩쓸면서 활동 당시 경쟁 상대가 없었을 정도로[17] 많은 인기를 얻어서, MBC 음악캠프에서 4주 1위, SBS 인기가요에서 3주 연속 뮤티즌송 트리플크라운을 차지해[18] 사실상 공중파 1위를 완전히 싹쓸이했다.
이처럼 체감인기도 예전보다 나쁘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만, 상대적으로 부진해 보이는 이유는 음반시장 불황에 직격탄을 맞아 급감한 판매량과 활동기 내내 역대급으로 비만 내리고 서늘했던 2003년 여름의 저주받은 날씨가(...)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여름을 타깃으로 활동한 그룹이기 때문에 그들의 인기는 음악성보다는 날씨와 사회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02년 여름에 대히트를 쳤던 것은 기존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뽕끼, 레게 등의 장르를 적절히 조합한 음악성도 있었지만, 2002 월드컵의 열기가 식지 않아 사회 분위기가 매우 긍정적으로 뜨거웠던 이유가 한 몫 했다. 반면에 2003년에는 매우 서늘하고 장마만 지속되는 우울한 여름이었기에, 휴가를 가는 사람들이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관광지에서 무조건 틀어대던 쿨의 노래를 접하기가 예전보다 어려웠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후속곡 One Summer Drive로 2~3주 정도의 짧은 활동을 끝내고 9월 20일경 8집 활동을 공식적으로 접었다. 활동곡 두 곡 모두 이전보다 다소 차분한 분위기를 띄고 있는데, 타이틀곡은 곡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코믹한 느낌을 안고 갔다면, 후속곡 One Summer Drive는 코믹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진지하게 접근했다. 비교적 차분하고 달달한 분위기 속에서 여름의 시원한 느낌이 묻어있는 이 후속곡은 쿨의 숨겨진 명곡으로 이후로도 길거리에서 간간히 들리는 명곡으로 사랑받게 된다. 확실히 이전의 발랄한 느낌보다는, 이제 30대에 접어든 이재훈의 성숙한 모습을 음악적으로 풀어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곡이다. 이 노래 뿐만이 아니라 8집 곡들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해져 앨범 자켓과는 매우 이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때문에 팬들이 유독 타이틀곡 선정에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이 시기부터 불화가 겉잡을 수 없이 심화되어 팬들 사이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불협화음을 내는 모습이 카메라에 몇 번 잡히기도 했다.
이 때가 재결합 이전까지 완전체로 활동했던 쿨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며, 이 이후로 무려 네 장의 앨범이 나올 동안 쿨은 그룹으로서의 공식 활동을 일절 하지 않고 개인 활동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따라서 재결합 이전까지 쿨을 좋아했던 팬들에게는 애증이 가득한 앨범으로 남아있다.
2.8 8.5집, 10주년 BEST, 9집과 10집 : 조용히 떠나가는 쿨
2003년 8집이 내리막을 보이면서 활동을 접은 영향인지, 같은 해 12월 발매된 8.5집은 전작(6.5, 7.5) 비정규와 비슷한 겨울 발라드 앨범이었지만 인기를 전혀 얻지 못하고 조용히 묻히게 되었다. 대한민국 음악 시장이 발라드 위주로 재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한 것. 이전보다 훨씬 줄어든 홍보에 타이틀곡 '떠나야만 했나요'부터 뮤직비디오도 찍지 않고 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 사실 히트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런 악재 속에서도 11만장을 팔면서 '대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쿨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해인 2004년 4월에는 쿨의 10주년 기념 BEST 앨범이 발표되었다. 총 2CD로서 1CD에는 댄스곡, 2CD에는 발라드곡이 수록되었는데 히트곡과 팬들의 선호도가 높았던 명곡을 적절히 조합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15만장을 판매하여 음반시장 불황에도 한터차트에서 두 달 가까이 TOP5에 드는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이처럼 쿨을 지지하는 많은 팬들이 있었기에, 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도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판매량을 꾸준히 올렸다. 이렇기 때문에 2003년의 일시적 부진을 하락세라고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2004년 7월 발매할 9집에서도 사람들은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역시 쿨은 음악적으로는 대중과 팬의 기대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나 방송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줄거란 기대를 저버리고 9집 때에는 음악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현재의 나얼이나 박효신, 이수처럼 특별한 계기가 있어 모든 방송 활동을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었고, 예능은 잘만 나왔다(...). 게다가 예능에서마저 홍보해야 할 앨범 언급은 일절 없고 그냥 웃기기만 하고 있으니, 팬들은 무척 실망하면서 이전부터 느끼던 이상한 낌새를 확신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앨범 내놓고 음악방송 활동이 없고 개인 활동에만 치중해서, 이 때부터 해체설이 솔솔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9집 앨범의 타이틀곡은 4.5집과 마찬가지로 더블 타이틀인 <친구찾기>와 <아가씨와 건달들>이었다. 앞 곡은 애상과 비슷한 분위기, 뒷 곡은 해석남녀와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로서 방송상으로는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아가씨와 건달들을 더 많이 밀어주었고 방송 차트에서도 저 노래로 순위에 올랐지만 친구찾기라는 곡이 더 많은 호평을 받고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세 앨범 연속으로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 앨범 수록곡들은 쿨의 앨범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반으로 버릴 곡이 없다고 평가받으나, 대중적인 인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인지 존체 자체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10만장을 넘기면서 '역시 쿨'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 팬들이 아쉬워 할만한 것은 너무도 당연지사...
8.5집의 (상대적) 실패와 불화가 깊어지면서 9.5집은 발매되지 않았고, 곧바로 다음해 7월 해체 직전의 마지막 정규앨범 10집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을 발매하자마자 공식 해체를 선언했고, 한 달 후에 기자회견을 통해 '쿨은 더이상 없음'을 알렸다. 11년이라는 기나긴 활동에 여러 기억을 떠올린 맴버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지만, 해체의 원인은 전혀 언급하지 않아 해체에 대한 여러 소문이 정설처럼 퍼졌다. 대표적으로 이재훈과 유리가 사귀면서 김성수를 왕따시켰다는 루머 같은 것들. 불화의 경우 맴버들이 사실로 인정했지만 이런 루머들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한 적이 없으니, 다시 재결합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재까지도 해체의 원인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은 맴버들 밖에 없다.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가 도래해서 쿨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미 쿨의 최전성기가 1세대 아이돌 시대와 함께 했기에 올바른 평가는 되지 못한다. 쿨 뿐만 아니라 점차 비아이돌계 가수나 그룹의 인기가 크게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일찍 잡아도 2007년 원더걸스의 Tell Me가 터질 무렵이고 2003~2007년 사이에는 오히려 아이돌 가수가 전멸한 아이돌 암흑기였다. 보이그룹의 경우 신화가 최전성기를 누리고 동방신기가 톱의 반열에 올랐지만 다들 알다시피 남자 아이돌은 대중성이 넓기보다 강력한 팬덤에 의한 그들만의 리그이다. 특히 이 당시에는 활발한 예능과 솔로 활동으로 대중성을 얻은 신화를 제외하면, 방송에서만 1위와 대상을 휩쓸지 대중적으로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SS501의 곡은 커녕 가수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태(...)가 빈번했을 정도로 아이돌 세계는 대중들과는 크게 이격되어 있었다. 여성 그룹은 아예 찾아볼 수 없던 암흑기 중의 암흑기로 차라리 발라드와 알앤비로 장르 대세가 넘어가면서[19] 타격을 입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다만 대중성의 끝판왕으로 나올 때마다 큰 인기를 얻고 정규 8집까지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롱런했던 쿨이라서 쿨의 인기 하락은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노출되어 쌓인 피로감 외에는 내부적인 곳에서 원인을 찾을 수가 있다. 7집부터 불화의 조짐이 보이고 8집을 끝으로 아예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3집부터 8집까지 1위 후보곡들을 배출해 내다가 이 시기에 급격하게 내려간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
2005년 7월에 발표된 10집 타이틀곡 <이 여름 Summer> 역시도 방송 활동은 전무했지만, 해체라는 큰 충격에 쿨의 마지막 곡이라는 사실이 제법 알려지면서 이전 9집보다는 대중적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거리에서 가끔씩 들을 수 있는 곡이다. 하지만 음반판매량은 5만장으로 전작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고, 아홉 장 연속으로 10만장을 돌파했던 대기록이 여기에서 깨졌다.[20]
2.9 해체 이후 ~ 재결합까지
해체 이후 이재훈은 CCM <사랑합니다>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2007년 초에는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그 해 여름에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디지털 싱글 <오아시스>에 참여하며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쿨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윤일상 작곡에 완전한 쿨 스타일의 노래여서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노래보다는 사실상의 쿨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성수는 무한도전의 전신 <무모한 도전> <목표달성 토요일> 등의 예능에 활발하게 출연하며 예능인으로 자리를 잡는 듯 싶었지만, 뜬금없이 개인 사업과 연기자 전업에 집중하면서 잘 나오던 예능까지 끊겨버리며 심각한 슬럼프를 겪게 되었다. 홍일점 유리는 룰라 출신 채리나와 함께 2006년 <걸프렌드>를 결성하고 1집 <Maybe I love you>를 꽤나 히트시켰으나, 이듬해 나온 정규 2집이 실패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이 시기에 백지영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을 열고 각자 나름대로 개인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이재훈의 <사랑합니다>, 사실상 쿨의 연장선이었던 <오아시스>와 걸프렌드의 <Maybe I love you>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성과를 보여준 활동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한계를 느꼈는지[21], 2008년에 3년만의 재결합을 선언하고 쿨-윤일상의 유쾌한 조합으로 이전 컨셉을 그대로 유지한 10.5집 <사랑을 원해>로 5년만에 방송 활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컴백을 했다. 예전만큼 폭발적인 인기는 없었지만, 아이돌 시장으로 바뀌어가는 와중에 오랫동안 활동이 없었던 데뷔 14년차 중견그룹치고 각종 음원차트, 방송차트에서 10위 안에 들어가는 성과를 올리며 쿨이 건재함을 알리는데 성공했다.[22] 하지만 이듬해 2009년 여름에 발표된 11집 <보고보고>는 아이돌 열풍에 처참히 묻히면서 쿨의 대중적인 그룹 인기도 사실상 끝이 나는 막심한 타격을 입었다. 이 때 경쟁 상대는 무려 소원을 말해봐, I Don't Care, Abracadabra, Heartbreaker, 미스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대 아이돌 시대에 의한 타격은 이 때가 처음이었지만, 보고보고의 곡 퀄리티가 이전보다 현저하게 떨어졌고, 이미 40대에 진입한 맴버도 있을 만큼 상당한 연령에도 불구하고 예전 인기를 답습하는 유치한 컨셉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성공하기에는 너무 실망스러운 곡 퀄리티와 컨셉 때문에 많은 인기를 얻기에는 사실 무리가 있었던 것.
이 때의 타격으로 해체보다 더 긴 4년간의 공백이 생겼다. 다시 찾아온 암흑기 동안 쿨은 간간히 완전체로 지방 행사를 다니며 개인 활동과 병행했고, 2013년 8월에 무려 4년만에 '이별 앞에 서다'라는 노래로 디지털 싱글을 발표했지만 이 때는 다시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고 기사 한 줄 보기 힘든 미흡한 홍보로 인해 수준급의 곡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얻는데 실패했다. 이 싱글이 발표된 직후, 유리는 결혼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리는 미국에 삶의 터전을 잡고 출산, 육아와 같은 개인의 삶에 전념하면서 사실상 쿨 활동을 종료했고, 2014년 이후로는 남자 멤버 둘에 여자 객원 보컬을 그때그때 충원해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7월, 2년만에 발표한 '한 여름 밤의 고백', 같은해 9월에 나온 '다 잘될 거야', 2016년 2월 발매된 리마스터링 앨범에서 모두 유리는 불참했고, 코요태와 함께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쿨요태'에서도 유리가 맡았던 부분을 신지가 대체하고 있다.
- 2012년 10월 17일 새벽 멤버 유리가 술집에서 폭행당해 사망했다고 노컷뉴스에서 전해졌는데 이투데이에서는 유리 본인과 통화했다고 하며 지인 안선영의 소식 전달로 확인사살로 오보임이 판명났다.
노컷뉴스는 그냥 죽었어 아주유리는 삼성동 자택에서 자고 있었고 절친 채리나만 지인들과 강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폭행사고가 나서 누군가가 변을 당한 것을 노컷뉴스가 지레짐작으로 유리로 판명, 기사를 쓴 것으로 기자 아무나 한다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되었지만 아주 연관 없다 하기도 아니게 된 것이 사망한 사람이 김성수의 전 부인[23]이다.
- 김성수는 2014년에 '트로트엑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이후에 트로트 가수로 데뷔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전에 트로트 열풍이 불었을 때에도 곡을 낸 적이 있었지만 결과는...
- 이재훈은 1년에 1~2차례 싱글을 발표하는 등 가수 활동은 이어나가고 있으며 현재는 논현동에서 고깃집을 운영중인 듯. 2014년 나 혼자 산다에 육촌인 가수 이정[24]이 출연했을 때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정보다 먼저 제주도에 내려와 생활하고 있었고 이정이 제주도로 오는데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방송으로는 통 보기 힘들었으나 2014년 JTBC 히든 싱어 3 2회 출연을 시작으로 KBS 우리 동네 예체능-테니스 편, JTBC 마리와 나,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2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특히 2016년 9월에는 복면가왕에 여보시계 노래나 하시계로 출연하여 뛰어난 가창력과 예능감을 보여줬다. 또한 10월 8~9일 서울을 시작으로 단독 소극장 콘서트 전국투어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 출연했으며 육아 문제로 유리는 나오지 못하고 김예원이 대신 참여했다.
- 히든 싱어의 2015년 추석특집인 도플싱어 가요제에 오랜만에 완전체로 출연했다.
- 2016년 2월부터 알수없는 어른의 사정으로 멜론, 엠넷, 네이버 뮤직 등의 사이트에서 1집 ~ 4집까지 리즈시절 음반들의 음원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유통권을 가지고 있는 지니는 정상 서비스 중. 벅스, 소리바다에서도 정상 서비스되고 있으며 베스트 음반 역시 정상 서비스 되고 있다.
3 멤버 구성
3.1 현재 멤버
쿨의 멤버 | ||||
이재훈 | 김성수 | 유리 |
3.2 이전 멤버
4 음반 목록
번호 | 앨범명 | 리드 싱글 | 발매 연도 | 판매량 |
1집 | 1집 | 너이길 원했던 이유 | 1994.07. | 10만장(추정) |
2집 | Love Is…Waiting | 작은 기다림/슬퍼지려 하기 전에[25] | 1995.10. | 30만장(추정) |
3집 | Destined The Best | 운명/루시퍼의 변명 | 1996.11. | 107만장(비공식) |
3.5집 | Summer Story | 해변의 여인/송인 | 1997.07. | 52만장(추정) |
4집 | 애상 | 애상/변명 | 1998.04. | 798,296장 (5위) |
4.5집 | Misery | Misery/십계 | 1999.01. | 339,570장 |
컴필레이션 | 1020Remix | - | 1999.05. | 75,589장 |
5집 | Cool 5 | 해석남녀/맥주와 땅콩 | 2000.04. | 680,294장 (6위) |
컴필레이션 | IMV2000 | - | 2000.07. | 58,851장 |
6집 | 6ix | Jumpo Mambo | 2001.07. | 588,226장 (6위) |
6.5집 | First Whisper | 아로하/그래서 행복합니다 | 2001.12. | 374,451장 |
7집 | 7even | 진실/숙아/sad cafe | 2002.07. | 647,052장 (1위) |
7.5집 | Second Whisper | 백설공주를 사랑한 일곱번째 난장이/작년, 오늘/산책 | 2002.12. | 325,714장 |
8집 | 8IGHT | 결혼을 할 거라면/One Summer Drive | 2003.07. | 253,352장 (9위) |
8.5집 | Third Whisper | 떠나야만 했나요 | 2003.12. | 112,000장 |
베스트 | very best album of cool 1994~2003 Third Whisper | 어떡해 | 2004.04. | 148,000장 |
9집 | Let's See What's Happening Now | 친구찾기/아가씨와 건달들 | 2004.07. | 82,346장 |
10집 | Forever | 이 여름 Summer | 2005.07. | 44,451장 |
10.5집 | Cool return's | 사랑을 원해 | 2008.07. | ? |
11집 | Cool 11 | 보고보고 | 2009.07. | ? |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단일 앨범 기준 최고 음반판매량은 혼성그룹 중에서 룰라 2집 다음으로 쿨의 3집이 2위이고,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차트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총 음반판매량 역시 650만장 이상으로, 역대 혼성그룹들 중 압도적 1위이다. 그 뒤를 이어 룰라-코요태-마로니에-샵 순으로 이어지는데, 2위 룰라와도 약 2배 가까운 차이가 날 정도로 압도적인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2002년에는 그 해 가장 많이 앨범이 팔려 골든디스크를 수상했다. 혼성그룹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대상이었으며 이 해 장나라, 보아, 싸이, 코요태, 체리필터, 베이비복스 등이 돌풍을 일으키고 브라운아이즈, 왁스, 박효신, 성시경, 박정현 같은 신성 발라드 가수들이 크게 활약했던데다, S.E.S., 핑클, 신화, god(는 활동하지 않았지만)가 건재했던 때임을 생각하면 매우 대단한 기록이다.
4.1 기타
번호 | 앨범명 | 리드 싱글 | 발매 연도 |
솔로 | 이별 앞에 서다 | 이별 앞에 서다 | 2013.09. |
20주년 콘서트 | 안녕들 한가요? | 안녕들 한가요? | 2014.09. |
솔로 | 한여름 밤의 고백 | 한여름 밤의 고백 | 2015.07. |
솔로 | 다 잘될 거야 | 다 잘될 거야 | 2015.09. |
5 여담
쿨의 영어 표기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Cool' 이 아니라 'ku:l' 이며 영어 Cool의 발음 표시인데 일부러 그렇게 쓰는 듯. 옛날 뮤직비디오 등에서도 저렇게 표기한다.
쿨의 최전성기인 4집과 4.5집 시기에는 코미디언 윤정수가 객원멤버 비슷하게 같이 활동했다. 다만 별도의 출연료는 받지 못했으며 이재훈에게 선물로 받은 신발이 전부였다고.
2003년 SBS 애니메이션 포트리스 1기의 오프닝곡 'The Power NO.1' 과 엔딩곡 'Dream' 을 불렀다.
쿨의 '슬퍼지려 하기 전에'라는 곡은 DJ처리와 함께 아자아자에서 '캔슬되려 하기 전에'로 리메이크되어 불러졌다.
항상 발랄하고 익숙한 멜로디를 들고 나와서 가볍게 보기 쉬운데 은근 곡의 완성도는 높을 뿐더러 메인보컬 이재훈의 가창력도 상당히 좋은 편. 방송에서는 코믹한 이미지였던 이재훈을 보고 노래방에서 쿨 노래 선곡했다가 피 본 사람이 좀 있다 카더라. 먼 훗날이 되어도 대표곡 '해변의 여인' 의 도입부 "와! 여름이다!" 는 방송에서 계속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 전에 나오는 비틀즈의 'This Boy' 무단 사용을 누가 신고하면 엄청난 배상을 해내야 할 것이다.
2010년대 들어 '운명', 'All for you', '애상' 등이 후배 가수들에 의해서 리메이크 되었으며 2013년 8월 KBS 불후의 명곡 2의 전설로 출연하여 많은 이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히트곡이 많아서 노래방 책에 수록된 곡 수가 전체 가수 중 2위이며 1위는 나훈아.
혼성 그룹이다보니 노래의 가사 전개가 대화형인 곡들이 꽤 있다. 쿨표 댄스곡의 경우 진지한 로맨스보다는 커플들이 일상적으로 티격태격할 법한 상황을 그린 유쾌한 가사로 이루어진 것도 많으며 대표적인 예로 '칼로리', '또자쿨쿨', '밤', '바람의 왕자', '해석남녀' 등이 있다. 또한 주요 히트곡들 대부분이 경쾌하고 발랄한 멜로디와는 달리 가사를 자세히 음미해보면 가사가 시궁창인데다 대부분 시대 상황치곤 과감하거나 막장급 시추에이션들이라는 것들도 특징.
운명 - 양다리 해변의 여인, 눈속의 여인[26] - 여친이랑 놀러가서 바람을 피웠는데 여친도 바람 피움(...) Love Letter[27] - 스토커 환타지 십계 - NTR[28] 미절[29] - 얀데레 애상 - 어장관리[30] Jumpo Mambo - 혼전동거 조장[31] |
- ↑ 누적 앨범판매량 기준. 단일 앨범 기준이면 룰라의 2집 '날개 잃은 천사'가 해당한다.
- ↑ 사실 1~2집 때는 거의 이재훈의 독무대였다.
- ↑ 가요톱텐 기준으로 '너이길 원했던 이유'는 8위, '작은 기다림'은 최고 5위, '슬퍼지려 하기 전에'는 9위까지 랭크되었다.
- ↑ 이때까지만 해도 쿨은 발라드 그룹이었다.
- ↑ 참고로 지상파 최초 1위 기록은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997년 1월 15일 방송분이며, 가요톱텐 수상은 그로부터 이틀 뒤이다.
- ↑ 사실 비치 보이스는 혼성그룹도 아니었고 락 밴드였으며, 당연히 쿨과는 음악적 성향도 매우 다르다.
- ↑ 그 뒤 1999년에 '눈속의 여인'으로 리메이크했으며, 배경과 가사가 바뀐 걸 빼면 모두 동일.
- ↑ 비록 임창정의 '그 때 또 다시' 전성기 시대여서 1위는 8월 13일 가요톱텐에서 차지한 게 전부이긴 했지만.
- ↑ 비할바는 못되지만 윤종신의 팥빙수도 비슷한 케이스. 당시 작곡가 이규호는 윤종신의 작사가 가미된 곡상태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으나 당시에도 니름 히트를 쳤었고 후에 여름마다 저작권 수익이 꽤 짭짤해 고마움을 느꼈다한다.
시즌송하나 잘만들면 평생을... - ↑ H.O.T.의 대박 이후 수많은 아이돌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이며, 아이돌 외에도 다양한 장르와 타입의 인기가수들이 1위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다.
- ↑ 열정이란 곡으로 뮤직뱅크 6주 1위, 그 해 음반판매량 3위를 기록하며 메가히트를 했다.
- ↑ 영원한 사랑으로 걸그룹 시장을 제패하며 그 해 음반판매량 5위, 서가대 대상을 받는 히트를 기록했다.
- ↑ 여담으로 문차일드는 이런 사태를 훗날 제법 겪게 된다. 엠씨더맥스로 이름을 바꾼 후에...
- ↑ 한일 월드컵이 2002년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열렸는데, 쿨은 월드컵 종료 직후인 7월 4일에 앨범을 발매했다.
- ↑ 정확히 647,052장
- ↑ 정확히는 출시 다음달인 8월까지 253,355장. 그 뒤로는 음협에 제출을 안해서 기록이 남지 않았는데, 7월에 비해 8월 판매량이 낙폭이 매우 컸다. 시즌송으로 여름에만 활동했던 패턴의 한계 때문에 6집부터 이런 경향이 강해져서, 이후 판매량이 제출되었어도 추이를 봤을 땐 26만장을 넘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 ↑ 당시 활동한 주요 인기가수로는 보아, 임창정, 플라이투더스카이, 쥬얼리 정도가 있었지만... 보아는 타이틀곡 활동이 끝나고 교통사고로 잠시 앨범 활동을 쉬고 있었고, 임창정은 은퇴 파문으로 활동이 상대적으로 짧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약간 어긋났다. 결국 제대로 경쟁한 상대는 플라이투더스카이, 쥬얼리 정도였다. 하지만 플라이투더스카이는 장르가 달라 비교대상과 소비층이 미묘하게 달랐고 절대적인 인기에서 쿨에 미치지 못했다. 같은 컨셉의 쥬얼리는 당시만 해도 겨우 이름만 알려진 위치였기 때문에 가수나 곡의 인지도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단순 음반판매량만으로도 거의 7배 차이가 날 정도.
- ↑ 이 당시 KBS 뮤직뱅크는 순위제를 운영하지 않았다.
- ↑ 2001년부터 시작된 발라드와 알앤비 열풍은 브라운아이즈, 박효신, 화요비, 휘성, 빅마마, 거미, 린, 테이라는 걸출한 가수들을 남겼고 2004년 데뷔한 SG워너비의 소몰이 열풍으로 전국을 울보로 만드는 사태에 이르렀다. 공교롭게도 SG워너비, 버즈로 통일된 2005년에 쿨은 해체했다.
- ↑ 10집의 마지막 곡이 'End... And' 라는 곡인데 이재훈의 솔로 보컬이 아주 절절하다.
- ↑ 그 이전에 과거 해피선데이 코너였던 불후의 명곡에서 완전체의 모습으로 촬영을 했던 것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 ↑ 참고로 이 때 쿨의 <사랑을 원해>의 경쟁 상대는 <하루 하루>, <U-Go-Girl>, <So Hot>, <신데렐라> 등 막강한 곡들이었고 이 때는 아이돌들의 전성기가 열린 시대이다. 3년 동안의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치열한 곡들 사이에서 10위 안에 든 것을 보면 대단한 셈.
- ↑ 영화배우 공형진의 처제이기도 하다.
- ↑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했을 때 밝혔다.
- ↑ 1993년 최선원의 곡을 리메이크함
- ↑ 해변의 여인의 겨울판 버전
- ↑ 문차일드의 '태양은 가득히'와 가사만 다르고 음악은 똑같은 곡이지만 가사 내용도 비슷할 거라 오해하면 안 된다.(중간에 혼성그룹 속성 때문에 여성파트, 랩파트 편곡을 했지만)
- ↑ 곡명이나 가사에서 대놓고 간음을 암시
- ↑ 제목이 미절이라고 되어있는데 뭐 말할 것도 없이 미저리다.
- ↑ 이 노래가 어장관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데 그 내용 및 결과가 어떤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많다. 여자가 어장관리 한 것이 맞느냐/아니냐, 여자가 남자를 진짜로 좋아하는 첫사랑 드립은 맞느냐/아니냐, 마지막 가사는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등. 이런 짧은 대화식 가사로 생각할 것을 많이 만든 것 때문에 이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 ↑ 원래 제목도 동거였다가 방송 심의를 의식해 바꾼거라고 한다. 지금도 인식이 개선되었다지만 동거 경력이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더라도 좋은 이미지까진 될 수 없는데, 당시는 사회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상황이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