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하메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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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1939년 7월 17일 ~) (78세)

페르시아어: سید علی حسینی خامنه‌ای (세예드 알리 호세이니 허메네이)
아제리어: Seyid Əli Hüseyni Xamenei
영어: Sayyed Ali Hosseini Khamenei

"미국석유를 잡아먹겠다면 미국은 석유의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사실상 현재 이란의 실질적인 지배자이자 독재자. 하메네이는 호메이니1989년 6월 4일 사망한 이후 무려 27년 4개월 간 이란의 최고지도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란 주류 민족인 페르시아인이 아니라 소수민족인 아제리인이다.이는 스탈린이 러시아인이 아니라 조지아사람이듯 말이다[1]

이란 이슬람 공화국 특유의 신정 체제는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독특한 정치구조인데 아야톨라가 대통령보다 높은 지위에 있으며 국가내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알리 하메네이가 엄연히 독재자다[2]. 이것은 다시 말해서 광역 어그로를 끌며 마치 이란의 독재자처럼 보이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를 비롯한 이란의 대통령은 독재자라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한마디로 바지사장

2 생애

하메네이는 1939년 북동부 마을 마샤드에서 태어나 5세 때부터 신학교에 다녔다. 한때 무명의 성직자로서 돈을 받고 기도를 해 주거나 코란을 읽어주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팔레비 왕조 치하에서 그는 이란이 이슬람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며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조했다. 하메네이는 이슬람사원, 대학 학생 모임 등에서 근본주의를 설파했고, 이로 인해 경찰에 체포, 구금되기도 했다. 그렇게 1960년대 초반부터 호메이니를 추종하며 이란 이슬람 혁명에 참여했고, 1981년 당시 이란 대통령 모하마드 라자이(Rajai)가 암살당하자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을 지냈다.

그렇게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이란의 3, 4대 대통령을 지내다가,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하자 호메이니의 뒤를 계승하며 아야톨라로 등극했고, 이때부터 명실상부한 이란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2009년 선거에서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압승했다는 개표 결과가 발표되고 몇 시간 뒤에 하메네이는 "신의 뜻"이라며 아마디네자드의 당선을 추인했는데 이러한 신속한 추인은 이란 내부에서도 뜻밖이라는 반응이 많았는데 왜냐하면 선거관리위원회는 패배한 측에 3일간 반론 기한을 주는 것이 원칙이였는데 이를 무시했기 때문이였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6월 12일은 하메네이가 이란의 역사를 결정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이 선거가 부정선거라는 의혹이 일었다는 거고, 결국 반발한 시민들이 무효를 주장하며 시위에 나섰고 이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그러자 2009년 6월 19일 하메네이는 부정선거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며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개혁파에도 사실상 최후 통첩을 보냈다. 알리 하메네이는 테헤란대에서 열린 금요예배에서 “지난 대선에서 이란 국민은 자신들이 원하는 인물을 뽑았다” “이란의 법은 결코 투표 조작을 허용치 않는다”고 말했으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전체 4000만표 중 2450만표를 얻어 당선됐다"라고 아마디네자드를 옹호하며 시위대를 비난했고 결국 이 시위는 어찌저찌 마무리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허락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하메네이는 2011년 정보장관 인사를 둘러싸고 맞선 뒤 사사건건 대립을 했었다. 그래서 2012년에는 하메네이가 하도 짜증난 나머지 “아예 대통령제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말을 했을 정도다.

그래서 2013년 선거에서는 알리 하메네이가 사실상 선거를 좌지우지 하며 자신의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2013년 선거에서 후보로 나온 마샤이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마샤이는 2009년 대선 당시 야당 후보를 지지하고 미국 등 서방사회와의 관계 회복을 주장했으며, 종교의 정치 개입이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하메네이는 그가 자신의 신정체제를 흔들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로 판단했고, 마샤이를 비롯한 당선이 유력시됐던 주요 후보들이 대선 후보에서 줄줄이 탈락하면서 하메네이와 가까운 보수파 인사들이 최종 후보들만 명단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하메네이와 가까운 사이인 하산 로우하니가 대통령이 되었다.

한편 그는 외교에서 현실적이라 계속 적으로 선포했던 미국과도 화해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란 핵협상 과정에서도 그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간의 물밑 서신외교가 이란 핵협상 타결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2014년 10월 제네바에서 핵협상이 시작될 시점에 오바마는 하메네이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협상타결에 최선을 다하자는 뜻을 전했으며, 하메네이 역시 답신을 보내는 등의 물밑 교감을 이어왔다고 한다. 기사

2015년 9월 4일에는 이란 핵합의안의 의회 승인 절차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기사

메카 인근 미나에서 성지순례(하지) 도중 발생한 압사사고에 대해 알리 하메네이는 “사우디 당국의 실수와 부적절한 대응이 재앙을 낳았다”면서 “참사의 책임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반드시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고로 이란은 자국민 131명이 사망하고 6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기사

2014년 9월 6일에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전립선 수술을 받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수술은 잘 끝났고 평범한 수술이였다고 하메네이가 연설도 했다. 기사

하지만 2015년 12월 14일에는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후계자에 대해 “전문가 회의 내에 후보자를 검토할 그룹이 설치됐다”며 후보자 인선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기사 사실 체력에 무리가 갈 정도로 나이가 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 75세를 넘긴 고령이며, 2019년에 그의 나이가 80세가 되기 때문이다. 건강 또한 좋지못해 수술을 받을 정도가 되었다.

2016년에는 시아파의 지지를 받던 알님르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형당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시아파 맹주인 알리 하메네이는 "탄압받았던 순교자의 피가 뿌려졌다. 신의 분노가 사우디 정치인들에게 내려질 것"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장했으며, 이란 외무부도 "사우디가 테러리스트와 극단주의자를 지원하면서도 국내에선 압제와 처형으로 비판 세력에 대응한다. 이런 정책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현재 이란사우디아라비아는 서로 국교를 단절한 상태다.

3 그가 가지는 영향력

현재 이란은 12명으로 구성된 가디언카운슬이 국가운영을 하는데 이것을 알리 하메네이가 총괄하며 감독하고 있으며, 하메네이는 정부가 통과시키는 어떠한 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실제로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대통령 인준과 해임권 그리고 군사령관 임명권 등을 갖고 사실상 모든 국가정책을 최종 결정한다. 이 이야기는 이란의 대통령도 하메네이가 용인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는 사실상 이란의 실제 통치자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2009년 초에 선정한 각국의 최고 권력자 명단에서도, 이란의 권력자로 뽑힌 인물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아니라 하메네이였다. 뉴스위크는 선정 기준을 "국가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로 삼았다고 한다.

현재 신정 체계인 이란의 최고 권력자인 하메네이는 직접 정책을 입안하거나 추진하지는 않지만 이슬람 최고 성직자 회의(Assembly of Experts)에서 선출된 그의 승인 없이는 어떤 결정도 집행되지 않는다. 그의 글과 연설은 이란의 국내외 정치 목표와 행동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 한다.

그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2000년 8월에 하메네이가 보낸 서한 한 통에 의회에서 논의되던 언론개혁법안이 철회됐으며, 2003년 6월 개혁파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자, 하메네이는 "적(미국)의 사주를 받는 용병들에게는 일말의 동정의 여지가 없다"면서 시위 진압을 지시했는데 고작 한 마디만에 모든 이란 내의 정부조직들이 긴밀하게 움직였다.

4 샤리아에 의한 폭정과 독재

하지만 그 역시 악랄한 독재자다. 하메네이는 이란 내의 언론자유를 탄압하며 이란의 반정부 기자들을 고문하도록 명령하며 동성애자들에 대한 처형을 명령할 정도로 강력한 독재를 펴고 있는데 실제로 현재 이란에는 수많은 언론인과 유명한 여성운동가, 수많은 학생과 민간단체 회원들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2009년에 경제난과 실업, 신정정치로 인한 억압에 분노한 이란 국민들이 벌인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하여 전 세계에 비난을 받았다. 독일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 도이칠란트(FTD)에서도 장기 집권으로 인권을 탄압하는 `2012년에 물러나야 할 지도자`로 북한의 김정은과 함께 하메네이를 지목할 정도다. 2008년 워싱턴 포스트에서도 세계최악의 독재자로 선정될 정도. 한편 2014년 들어 이란에서는 하루에 3명 꼴로 처형이 이뤄질 정도로 사형이 늘었는데, 그 중에는 범죄자도 있지만 상당수가 양심수이거나 정치범이라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 에바디가 증언했다. 현재 이란에서는 샤리아로 인한 인권 유린이 가장 심각하게 일어나고 상황이며, 특히 여성에 대한 인권 탄압이 심각하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한번은 이란의 오케스트라 공연이 공연 시작 15분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금지되었는데, 그 이유가 오케스트라에 여성 연주자가 포함돼 있다는 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기사

게다가 이란의 대통령들이 아무리 개방적이라 해도 실권자인 하메네이가 수꼴이다보니 그의 결정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어 이란 대통령들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들이다. 오죽하면 이란에서는 대통령 당선보다 하메네이의 승인이 화제가 될 정도다. 특히 하메네이는 악명높은 광신자라서 뭐든지 신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 합리화랑 저지르는 폭정을 정당화시킨다. 하메네이의 친위대라 할수 있는 이란 혁명수비대와 종교경찰들은 광신과 인권침해 범죄를 저질러대는 것으로 악명높다.

미국을 증오하지만 미국이 무서운 상대라서 욕만 하지 함부로 맞설 생각은 하지 않으나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는 포기하지 않아 틈만나면 이스라엘을 갈아먹겠다며 도발하는 언행을 한다. 특히 팔레스타인에게 우호적이라서 파타와 하마스 대표가 오면 성대하게 대접한다. 그중에서 이스라엘의 골칫거리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과 레바논 헤즈볼라의 공식 후원자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의 하마스를 족칠때도 하메네이 본인이 앞장서서 하마스와 가자지구 주민들을 도와준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테러단체 후원자로 비난하고 이스라엘에게선 악의 세력 통치자로 증오받는다.

5 기타

그는 국제 테러단체인 알카에다 등의 사상적 기초를 마련한 이슬람학자 사이드 쿠틉(이집트인)의 저서를 페르시아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물론 지지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런 위험한 사상이니 조심하라고 하기 위해서인데 정작 그도 방향만 다른 비슷한 이슬람 극단주의자이니 뭐이병. 대부분의 반근대 국가 지도자들이 그렇듯이 여러 개의 국어를 하고 교육도 충분히 받은 엘리트임은 확실하다.

독재자들이 항상 그렇듯이 그도 약 100조 원대에 달하는 거대 비밀기업 ‘세타드’를 운영하며[3]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돈을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는데, 세타드의 총자산 규모는 약 950억 달러(약 101조7450억 원)으로 이는 한해 이란 석유 수출액의 40%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라고 한다.기사
  1. 아제리인은 투르크족의 일파로 아제르바이잔의 주 민족이다. 대략 비유하자면 중국의 국가 주석이 한족이 아닌 조선족이거나 일본 총리가 일본인이 아닌 아이누족인 셈. 물론, 이란 내 아제리인의 비중은 중국의 조선족이나 일본의 아이누족과는 비교불가로 크며, 이란은 페르시아인 이외의 무슬림 계열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탄압이 크지 않은 편이다.그러나 분리독립을 시도한 쿠르드족은 아니다.
  2. 물론 따지고 본다면 하메네이도 (간선제) 선거로 선출된 인물이기는 하다. 문제는 이란의 선거제도가 위낙 개떡같이 짜여져있다보니 중간 심사과정에서 개혁파 후보들이 떨어져나가기 일쑤이고 이걸 견제할 수단이 별로 없기 때문에 민심반영이 별로 못된다. 테헤란 등 대도시 지역이나 젊은층에선 하메네이에 대한 지지가 낮은 편이지만 하메네이가 독재자에 가까운 권력을 휘두를수 있는 것도 이 때문
  3. 왜 비밀이냐면 이슬람 교리상 성직자는 재물을 탐내선 안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대놓고 돈밝힌다는 표시를 할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