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영국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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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 | 연합 왕국과 영국 자치령의 왕, 인도의 황제 (King of the United Kingdom and the British Dominions, Emperor of India) | |
이름 | 에드워드 앨버트 크리스천 조지 앤드루 패트릭 데이비드 (Edward Albert Christian George Andrew Patrick David) | |
생몰년도 | 1894년 6월 23일 ~ 1972년 5월 28일 (77세 359일) | |
출생지 | 영국 서리 리치몬드 파크 화이트로지 | |
사망지 | 프랑스 파리 뇌이 쉬르 센 | |
재위 기간 | 영국의 왕 | 1936년 1월 20일 ~ 1936년 12월 11일 (10개월 22일) |
인도의 황제 | 1936년 1월 20일 ~ 1936년 12월 11일 (10개월 22일) | |
대관식 | 없다 | |
장례식 | 1972년 6월 5일 |
이 소년이… | 이렇게 되었습니다. |
조지 5세의 장남. 본명은 에드워드 앨버트 크리스찬 조지 앤드루 패트릭 데이비드.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 윈저 공이 되었다. 이때 왕위를 계승한 사람은 동생인 조지 6세.
흔히 사랑을 위해 왕위를 포기한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1 칭호
즉위했을 때의 공식적인 칭호는 다음과 같았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와 해외 영국 자치령의 왕, 신앙의 수호자, 인도의 황제이신 에드워드 8세 폐하(His Majesty, Edward the Eighth, by the Grace of God, of Great Britain, Ireland, and of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King, Defender of the Faith, Emperor of India)'
다른 국왕들과는 달리 '~ 훈장의 주군'이라는 칭호는 덧붙여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워낙에 재위기간이 짧았던지라 훈장을 수여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
2 생애
2.1 세기의 로맨스의 주인공
단지 이혼녀 심슨 부인(1896년~1986년)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버린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이전엔 바람둥이로 유명했다. 참고로 왕태자 시절, 그가 결혼할 생각을 안 하는 거에 속이 터져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버지 조지 5세가 네놈이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차라리 버티(조지 6세)랑 릴리벳(엘리자베스 2세)이 왕위를 물려받기를 바란다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말로는 한심한 아들의 꼬라지를 보고 저 애는 12개월도 못 넘기고 왕좌에서 내려올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예상은 어떻게 보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다만 이유는 좀 다르게 어긋나서 에드워드 8세는 고작 10개월 22일동안 재위한 다음, 결국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이 없이는 왕의 책무를 다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로 시작하는 세기의 연설을 끝으로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윈저 공이 되었다.[1] 해당 항목에도 적혀있지만, 이때 조지 6세는 기겁을 했다고.
이전 문서에서는 에드워드 8세가 마치 암군으로 묘사되어 있었지만 사실 암군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영국의 왕은 바지사장에 불과하니까. 만약 영국인들이 에드워드 8세가 심슨 부인과 결혼하는 것을 용납했다면 에드워드 8세도 그저 그런 왕으로 남았을 것이다.
2.2 흑역사
에드워드 8세의 흑역사. 히틀러의 키가 173으로 그리 작은 편은 아니긴 하지만 에드워드 8세는 히틀러보다 키가 작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키가 흑역사라는건 아니고
기어이 왕은 군림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의 원칙마저 어기고 왜 자꾸 독일이랑 안좋게 지내려고 하냐. 독일이랑 사이좋게 지내자며 자꾸 외교정책에 간섭하는 바람에 외무장관 앤서니 이든을 식겁하게 만든 게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고종이 일본과 친하게 지내자 하는 꼴인데 이거
그런 탓에 퇴위 후에도 여러모로 영국 왕실에 부담을 주었으며 독일군의 영국 침공을 이용하여 왕위 복귀를 노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독일이 그를 영국으로 보내서 다시 왕위에 올리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영국 해군에서 프랑스 함락전에 부랴 부랴 마운트배튼 경을 보내서 데리고 올 정도였으니. 만약 이 양반이 왕위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영국은 당장 독일과 강화하자는 의견이 우세했을 것이고 2차대전의 향방이 달라지거나 상당한 국론분열을 야기시켰을 것이다. 그 덕분에 개념없는 왕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2015년에는 에드워드 8세가 당시 7살이던 엘리자베스 2세에게 나치식 경례를 시키는 동영상이 발굴되어 또 까이기도 했다. 다만 나치가 써먹기 전에는 로마식 경례에 그렇게 나쁜 의미는 없었기 때문에, 이것까지 뭐라 하는건 너무한 면도 없지 않다.
여담으로 에드워드 8세를 끝까지 지지한 것은 다름아닌 윈스턴 처칠. 그는 이 사건때문에 정치계에서 안 그래도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완전히 매장당했다.[2]
전쟁 당시에는 왕실의 강요로 바하마 총독을 역임했다. 영국본토가 폭격당하고 주변 식민지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가장 편안한 지대에서 지루하게 전쟁기간을 보냈다.
그리고 인종차별을 저지르기도 했다. 일본의 히로히토가 왕자이던 시절에 영국을 방문하였을 때, 역시 왕자였던 에드워드와 같이 가서 정장을 맞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이 끝나고 히로히토가 일본으로 돌아가자 에드워드는 자신의 친구와 함께 일본인 노동자의 복장을 입고 파티에 참석했다. 요컨대, 일본의 왕자가 유럽인을 흉내내서 양복을 입는 것이나 영국 왕자가 일본의 하층민을 흉내는 것이나 똑같이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또한 에드워드는 애인에게 쓰는 편지에서 히로히토를 고급 원숭이라고 지칭했고, 일본인들이 토끼처럼 빠르게 번식한다고 적었다. 히로히토: 내가 원숭이라니! 그런데 당시 더글라스 맥아더와 찍은 사진 보면 무시당할 만 하다
3 기타
홍콩 MTR의 역 프린스에드워드역이 에드워드 8세에서 유래했다.[3]
3.1 창작물에서의 에드워드 8세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는 가이 피어스가 연기. 심슨 부인한테 휘둘리다 못해서 아버지의 임종을 접하고도 애인 타령이나 하거나, 말을 더듬는 동생을 조롱하는 등, 제대로 찌질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체역사소설 당신들의 조국에서는 독일이 2차대전에서 승리하여 영국 왕위에 복위하고 독일의 충견 노릇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조카 엘리자베스 2세는 캐나다로 망명하여 캐나다 국왕을 칭하고 있다.
반면에 독일군이 1차대전에서 승리한 배경을 다룬 대체역사 MOD 카이저라이히 에서는 캐나다에서 대영제국의 국왕으로 즉위한다. 게임 상에서는 잔존 협상국의 수장으로서 생디칼리스트들에게 빼앗긴 본토 수복의 결의(...)에 불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3.2 시대를 앞선 패션 감각의 소유자
개념과 패션 센스의 등가교환
왕으로서의 능력은 바닥을 쳤지만 이와는 별도로 당시 시대를 앞서간 패션의 선두주자이자 선구자였다. 실제로 윈저 공은 남성복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로 연구되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윈저노트라는 넥타이 매는 법을 창시했으며 윈저 공이 입은 스타일과 같은 격식있는 정장 스타일을 '윈저 공 스타일'이라고 부른다.[4] 정장 셔츠 스타일 중에서도 칼라가 넓게 벌어져있는 스타일의 셔츠를 '윈저 칼라 셔츠'라고 부른다.
이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실제로 윈저 공의 키는 168cm로 단신이었다.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옷을 입는데 엄청난 공을 들였다고. 그 덕에 구글에 윈저 공 혹은 에드워드 8세를 쳐보면 잘 입은 사진이 주르륵 쏟아진다.
미국 방문 당시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복장을 하고도 사진을 찍었다. |
수트. |
노년의 모습 |
- ↑ 사실 귀천상혼의 형식으로 결혼하는 방법으로 왕위를 유지하기를 희망했으나, 의회에서 거부했다.#
- ↑ 물론 그를 구해주고 위대한 정치가로 만들어준건 다름 아닌 2차 세계대전이다.
- ↑ 정확히는 원래 있던 도로 이름을 에드워드 8세에서 땄고, 나중에 그 도로에 지하철역이 생기면서 도로 이름을 딴 것이라 에드워드 8세와 지하철역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 ↑ 에드워드 8세 스타일이라곤 하지 않는다.
- ↑ 제2차 세계대전 때 주로 인도에서 지상전 위주의 전선을 지휘했기 때문에 육군 장성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으나, 그는 해군 장성 즉 제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