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묘소. 조선왕조 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과 배우자 거창군부인 신씨가 안장되어 있다. 사적 제362호.
조선왕조 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이 재위기간 동안의 실정으로 인해 관민의 원성과 반발을 사게 되면서 결국 1506년 9월 중종반정으로 축출되어 폐주가 되었고, 군(왕자)의 신분으로 강등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귀양을 가서 2개월 후인 그 해 11월 사망하게 되면서 그곳에 묻혔다가 1513년 부인 신씨의 청이 받아들여져 경기도 양주군 해동면 원당리[1]에 안장되었다.
부인인 거창군부인은 1488년 왕세자 신분이던 연산군과 혼인하고 나서 1494년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연산군이 폐출당하면서 그녀도 거창군부인으로 강등되었고, 1537년에 사망하고 나서 연산군묘 옆에 안장되었다.
역대 임금과는 달리, 재위 도중 반정으로 폐위되었고 '군(君)'으로 강등됨에 따라 재위한 임금임에도 불구하고 묘소 명칭을 '능(陵)'이 아닌 '묘(墓)'로 지정하였다.[2][3]
따라서 대군의 예우로 묘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통상적인 능침의 형태보다 소략한 것이 특징으로, 봉분과 담장, 묘비 각 1쌍, 혼유석과 망주석 각 1쌍, 장명등 1쌍, 향로석 1좌, 재실은 갖추어져 있으나, 능에 세우는 병풍석, 석양, 석마, 사초지, 문인석 등은 없다. 연산군의 묘비 앞면에는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무덤이 만들어진 연월인 '정덕팔년이월 이십일장(正德八年二月 二十日葬)'이라 새겨져 있다. 부인 신씨의 비석 앞면에는 '거창신씨지묘(居昌愼氏之墓)'가 새겨져 있다.
역대 임금이 안장된 왕릉들과는 달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문화재에는 등록되지 않았다.[4] 묘 앞에 작은 관리소가 있고 관람료는 무료.
이 묘 주변에는 북한산 둘레길 코스가 조성되어 있고 주변은 주택가이다. 또한, 묘역 앞에 크고 아름다운 은행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수령이 8백년이 넘었다고 한다. 연산군 내외가 여기에 묻히는 것까지 지켜본 나무인 셈.[5] 그리고 연산군묘의 근처에는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 가족의 묘와 김수영 문학관이 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서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에 왕릉이 훼손된 묘는 선릉(성종)과 정릉(중종)인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허나 당시 연산군묘는 폐위된 왕이었기에 한양 밖 외지에 있어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이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선릉(성종)과 정릉(중종)의 묘가 임진왜란 당시에 왜군에 파헤쳤다고 기록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