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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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독교의 구원론에 관한 신학적 이론 중 하나이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에 따라 선택받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칼뱅주의(개혁주의)의 대표신학자 장 칼뱅의 대표적인 신학적 입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장로회(개혁주의)의 기본적인 구원론의 입장이다. 구원의 시작이자 조건 은총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예정설은 단순한 구원뿐만 아니라 은총에 대한 기본입장이 되기도 한다.

2 역사

2.1 기원

세계사 교과서에서도 등장하는 신학이론으로서, 칼뱅파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신학이론이다. 그러나 방대한 세계사 내용에서 여러가지 배경 이야기들을 일일히 설명하기 어려운 세계사 교과내용 덕분에 예정설이 칼뱅파가 만들어낸 작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 이 예정론의 시초가 되었던 건 다름아닌 가톨릭에서 4대교부 중의 한명으로 성 아우구스티노라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1] 애초에 신학자들은예정설을 예정설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으로 불렸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매우 갼략하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 강조 했는데 이 바탕에는 비관적인 인간관이 깔려있다. 자신의 경험과 성서의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데 인간의 원죄로 이미 타락하였으며 자유의지는 악에 물들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죄에서 해방되는것은 인간의 자력으로 불가능 한데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로지 하나님의 값 없는 선물인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

펠라기우스(Pelagius)[2]는 이러한 주장에 반발했다. 철저한 금욕주의와 도덕주의를 주장하는 펠라기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이 신도들의 도덕성 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얻고 숙명론에 물들게 될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사실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느정도는 의견이 일치했는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래 신도들이타락하였고 신도들의 도덕성 회복이 중요하다고 보긴 했다.)

펠라기우스의 인간관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에 반대하며, 인간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대로 선함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에겐선악을 구분할 이성과 선과 악을 선택할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인간은 전적으로 행동으로 하나님 앞에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간에겐 선악을 구분할 이성이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도덕적 타락은 온전히 인간의 책임이며 인간은 행동을 바탕으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는것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논리를 떠나 경험적으로도 인간이 '자유의지'에 따라 선한 행동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물고[3], 무엇보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성서해석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4] 따라서 한때 '인간은 행동으로 평가 받는다'는 주장은 헬라 철학과 로마법의 기본적인 원리였기 때문에[5] 기존 로마인들에겐 합당한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한때 큰 인기를 끌었으나 카르타고 지역 공의회 이후 이단으로 선고 되었고 펠라기우스주의와 아우구스티누스주의를 섞어 보려는 반(半,semi)펠라기우스 주의 또한 이단으로 선고받았다.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 자유의지 은총에 대한 성서해석은 가톨릭의 공식적인 교리 해석이 되었다.

예정설의 기원은 이처럼 원죄에 대한 이론, 자유의지 논쟁과, 은총에 대한 이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2.2 종교개혁과 예정설

아우구스티누스가 정리한 교리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에서부터였다. '믿음으로부터 의로움을 칭함 받는다'(이신칭의), 또는 의로움을 인정받는다. 즉 구원에서의 은총의 역할을 가장 강조한 로마서가 루터를 비롯한 개신교 신학자들에게 각광받으면서 예정설이 다시 강하게 주목받았다. 또한 더 이상 가톨릭교회에서 강조하는 선한 행위들이 구원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한 개신교 신학자들은 믿음, 은총과의 관계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정리한 예정설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었던 마르틴 루터에서부터 기존 중세시절 가톨릭의 스콜라 철학 은총론

(즉 원죄에도 불구하고 이성과 자유의지는 죄에 물들지 않고 스스로 이성과 자유의지로 인간이 신을 찾으려는 행동을 하면 그 보답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

을 반박하며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취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보다 더 강경한 아우구스티누스주의를 내세웠다. 인간관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 사상에 매우 철저히 입각해 '원죄로 타락한 인간은 완벽하게 타락했기에 선을 실천할 능력은 없으며, 타락 이후에는 강렬한 자기만족과 자기중심주의만을 추구한다고 논증했다. 루터는 스콜라 철학의 은총론은 아우구스티누스 시기 도나투스파와 펠라기우스 주장인 자격주의,윤리주의, 능력주의, 공로주의로 변질 되었다고 비판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의 같은점이라면 인간에게 자유의지 있으나 자유의지는 악으로 향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둘의 다른점이라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의지는 선과 악 중에 악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었다는 것이고 루터는 자유의지는 완전히 악으로 타락하였다인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에게 약간이라도 선한면이 있다고 본점이 다르다.

한때의 루터의 지지자이며 옹호자였던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 당시 개혁진영과 기존 가톨릭교회 양쪽의 비판과 압력에도 중립을 지켰는데 결국 가톨릭 교회의 압박에 의해 루터에 반박하는 글을 쓰는데 자신과 루터의 견해와 큰 차이점이었던 <자유의지론> 이었다.[6] 루터와의 신학적 차이인 자유의지론에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제를 딴 제목인 노예의지론(De Servo Arbitrio)이란 책을 써서 반박했을 정도였다. 루터는 노예의지론에서 후대 루터주의 신학자들과 달리 이중예정설을 견해를 폈다.[7]

그러나 비슷한 시기 독일농민전쟁이 발발하여 루터는 예정설에 대한 견해를 적극적으로 펴기 어려웠다. 농민들을 이끈[8] 토마스 뮌처가 산상수훈을 근거로 고난 받는 백성이 선택받은 백성이다라고[9]설교하여 민란이 독일 남부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루터는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을 받느나, 고난받는 백성이 모두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며,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지는 그분만이 아신다라며 농민반란군의 선민의식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터가 내세운 이신칭의는 동시대 개신교 신학자 필리프 멜란히톤과 마르틴 부처에 영향을 주어 각자 독창적인 칭의론 연구에 영감을 주었고 필연적으로 예정과 소명의 개념을 동반했기 때문에 종교개혁 시작부터 예정설 논란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 세대 후 장 칼뱅은 선배학자들의 연구를 집대성하고 독자적으로 논리적 신학적으로 정리하여 '구원은 오직 하느님의 주권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고, 따라서 구원의 은총은 하느님께서 미리 구원받을 영혼들을 하느님 주권으로 선택된 사람들에게 내려졌으며,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선택에 대한 결과이고, 나머지 믿지 않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믿지 않도록 예정한 것이며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이른바 이중예정론(Double-Predestination)을 주장하였다.[10]

가장 강력한 근거는 역시 로마서, 그 중에서도 '에서(에사우)'와 '야곱'의 비유와 토기장이의 비유를 든다. 즉, 에서와 야곱 중 이유없이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미워하였으며 토기장이가 그릇을 자신의 마음대로 만들고 그릇은 결코 거기에 반박을 제기할 수 없는 만큼 구원 역시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불린 사람들이며, 나아가서는 이 사람들은 결코 구원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라는 개신교 교리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 외에도 요한복음 6:37~44, 에베소서 1:4~6, 테살로니카 전서(데살로니가 2서) 2:13, 잠언 16:4 등, 꼭 로마서에만 등장하는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루터사후 순수루터주의 신학자[11]들은 이러한 이중 예정론을 반대했는데 하나님은 저주를 예정하지 않으셨다는 것.

3 다양한 교파들의 입장

사실 은총론적 측면에서는, 애초에 믿음의 기원이 같은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양자 모두 예정설적인 입장들이 많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익히 알려져 있듯이 예정론은 단순히 칼뱅이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기존에 교회에 믿고 있던 은총구원론을 좀 더 다른 각도로 이해한 것이었다. 실제로 가톨릭교회에서도 구원은 은총으로 이뤄지며 은총은 값 없이 주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교회의 7성사 역시 유효한 사제가 한다면 사제의 성덕 혹은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상관없이 그 성사가 주는 은총은 유효하다고 가르치는 것 역시 은총은 무상으로 주어진다는 교리를 잘 설명하고 있다. 다만 오로지 믿음만으로 은총을 받는건 아니라것 역시 강조한다. 2006년 루터교회, 감리회와 '의화일치선언'까지 했다.(그러나 모든 루터교와 감리교 교파들이 이 선언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정설은 하느님의 은총이 절대적인 하느님 주권 하에 있으며 그 은총이 값 없이 주어지며 인간의 행위나 교만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예정설 문제는 현재 루터주의와 개혁주의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성만찬 논쟁도 있었지만 종교개혁시기만큼 격렬한 논쟁은 아니며 루터파에서도 절충적의견에 공감하는 입장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예정설, 단일 예정설과 이중예정설의 논쟁은 종교개혁시기는 물론 현대에 까지 개신교 신학에서 아직도 활발한 주제이다.

현대 장로회에서 이야기하는 '예정설'은 장 칼뱅의 '이중예정설'과는 달라졌다. 이중예정설은 '초(超)칼빈주의' 또는 '하이퍼칼빈주의(hyper-calvinism)'이라고도 불리는 데, 이 이중예정설에서는 대칭적 예정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면, 구원 받지 못할 사람과 구원 받을 사람 모두를 창세 전부터 하느님이 예정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현재 장로회에서 이야기되는 '예정설'은 비대칭적 예정으로, 하느님이 구원 받을 사람만 예정하였다고 이야기한다. 구원 못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둘이 비슷해보이나, 이중예정설은 하느님이 구원 받지 못한 사람까지 예정하여 죄의 근원이 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한편 예정설은 개신교(장로회)인들의 선민의식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나 별 근거는 없다. 개신교 신학자중에 당신은 선택받은 백성이니 맘껏 자부심 가지고 우월감을 가져라 주장하는 이는 한명도 없다. 사실 개신교 신학과정에서 예정설을 겉핥기 만큼 배웠다면 어느목사라도 신학대 꼴등으로 졸업한 목사라도 선민타령하며 우월감 느끼라고 하는 그런 설교는 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주장을 가진 신학이나 목회자는 거의 예외없이 이단논쟁에 휩싸였고, 개신교의 칭의론을 잘못 알거나 개신교 신학의 역시 중요한 주제인 중생, 성화 과정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런 비판을 하는 가톨릭 신도들이 대부분. 역지사지로 장로교에서 가톨릭에 대해 행위구원론 드립 치는것과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그런 우월 의식을 가진 사람이있다면 원래 인격이 그 모양이거나, 소속장로회가 국내서 교세가 큰편이라 우월감 내지 소속 집단의 과도한 유대감을 가졌을진 모르나 신학과는 상관이 없는일이다. 또한 반기독교 진영이나 카톨릭에서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소위 말하는 예수쟁이짓은 예정설이 아니라 오히려 알미니안주의와 더 관련이 깊다.[12] 이와 별개로 미국 남부나 남아공에서 저질러진 인종차별을 이중예정설과 연관짓는 주장도 존재하나 이것도 신학을 엉터리로 이해한, 사실상 이단에 가까운 주장이 개척민 사회에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이다.[13] 예정설 자체는 오히려 인종, 계급, 성별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으면 구원 혹은 유기받는다는 주장이다.

3.1 가톨릭의 은총논쟁

사실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관심 대상은 비슷하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 역시도 개신교의 예정설 논쟁과 비슷한 논쟁이 있어왔다. 이를 은총논쟁이라 한다.

전술했다시피 아우구스티노는 펠리기우스의 행위 구원론을 디스했다. 이 후 이 논쟁은 잠잠해지는 듯 했으나(...) 중세에 다시 논쟁이 불붙었다. 우선 베네딕토회의 고트샬크(Gottschalk of Orbais)는 극단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를 주장하다가 라바노 마우로(Rabanus Maurus)의 비판을 받았고, 아벨라르도(Aberlardus)가 펠라기우스의 자유의지를 고집하다 베르나르도의 비난을 받았다.

또한 사실 이중예정설은 이미 가톨릭에서 9세기 마인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선포된 것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848년에 당시 아우구스티노를 연구하던 신학자 고트샬크(Gottschalk; 810?~869)가 예정에 대해 쓴 글이 그의 전 수도원장 라바누스 마우루스를 격분하게 했고, 이로 인해 이단으로 판명되어 초주검이 되도록 매질을 당했다. 그 이후에 그는 오빌레르 수도원에 감금당했으며 그는 그곳에서 정신착란을 일으켜 868년에 죽을 때까지 풀려나오지 못했다. ( 출처 『기사도의 시대』 中) 또한, 로마서의 이러한 내용은 은총을 외부에서 주입시키는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보아 로마서를 제외한 나머지 성서에서 반박하는 구절도 숱하게 볼 수 있다 [14]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스콜라 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아우구스티노를 옹호했고 드디어 이 논쟁은 아우구스티노 주의의 승리로 끝나는듯 했으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럽 대륙에서 개신교가 출현하면서 이 논쟁은 재점화되었고, 상기했다시피 루터와 칼뱅이 이 문제를 건드리면서, 이들과 주로 논쟁을 벌이던 가톨릭 신학자들 역시도 이 문제를 건드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톨릭 안에서도 2개의 수도회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주장이 나오게 된다. 공교롭게도 첫번째 수도회는 이단에 대한 논박과 설교가 주특기이며 최고 수준의 신학자들이 모인 도미니코회였고 2번째 수도회는 對 개신교 특수부대(…)이자 떠오르는 신학의 신성 예수회였다. 몰리나(Louis de Molina, 1535~1600)를 중심으로 한 예수회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인간의 자유와 동의를 통하여 초월자의 '철회되지 않는' 절대적 은총이 약속된다고 하였다.

몰리나가 이 주장을 하자, 바네즈(Domingo Banez, 1528~1604)를 대표로 한 도미니코회가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도미니코회는 "너희들 펠라기우스?"라고 비판하였고, 이에 맞서서 예수회는 도미니코회보고 "당신들은 칼뱅스럽네?"라고 반박하였다.


이 두 수도회의 격렬한 논쟁에는 다른 수도회의 수도자들과 주교들까지 개입하여 토론하였고 결국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은총의 도움 회의>를 소집하여 결론을 내려 했다. 그러나 1598년부터 1607년까지 이 회의는 거듭 소집되었음에도 이렇다할 결론은 내지 못했고, 결국 교황 바오로 5세가 "앞으로 교황 동의 없이는 이 떡밥으로 저서 출판 금지"라고 선언하여 이 논쟁은 일단 멈추게 된다. 역시 편집제한이 최고다

다만 토론이 흐지부지 되긴 했어도, 이후 가톨릭교회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잠정적인 결론 정도는 어느정도 나왔다. 우선 은총논쟁에 있어서 극단적인 해석법을 피할 것. 따라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초월자의 은총을 단지 '인간 자유의 결과물'로 떨어트리거나, 혹은 은총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인간의 구원이 모조리 기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기계적 결정론으로 빠지지 말자는 암묵적 결론이 나왔다.

감정이 가라앉고 편집제한이 풀린 현대 가톨릭에서의 공식 입장은 '하느님의 은총에 따라 구원을 받지만 이에 자유롭게 응답하는 인간의 의지가 뒤따라야 하며, 이 하느님의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대가 없이 주어진다'는 것에서 대부분이 합의에 도달하고 있다. [15]

여담으로 이 논쟁의 두 축인 도미니코회예수회는 현대 가톨릭 신학에서 쌍벽을 이룬다. 어찌보면 이때부터 라이벌 관계의 싹수가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논쟁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 조상제사문제와 Deus(하느님)의 번역 문제를 두고 예수회와 도미니코회는 또 충돌한다. 이를 중국의례논쟁이라 하는데, 이 부분은 천주 항목을 참고해보자.

개신교 설교에서 간간히 나오는 '우리는 하느님 선택을 받아 이곳에 나와 구원을 받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바로 예정설에 근거한다. 하지만 위에 쭉 설명한 바와 같이 예정설은 개신교에서만 발달한 것이 아니다. 이에 반대로, 비슷한 시기에 영향을 받은 가톨릭교회의 '루뱅(Louvain)학파' 내지는 '얀센주의(Jansenism)'는 장로교와 거의 동일한 형태의 은총론, 구원론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는 인노첸시오 10세에 의해 1653년 다시 짤없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다만 이 문제는 순수 신학적인면은 아니었다. 가톨릭 국가 프랑스는 물론이고 네덜란드쪽에 영토를 가진 오스트리아에도 얀센주의가 많이 퍼졌고 얀센주의자들은 예수회가 얀센주의를 곡해하여 비방했다고 반발했기 때문에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에서 예수회가 축출되고 일시적으로 교황청에선 예수회를 해산시키기도 한다.

3.2 정교회의 구원론

원죄관, 인간관, 은총론 등 신학적인 면에서 완전하게 다른 데다가 이런 논쟁도 거의 없는 정교회는 이 문제를 잘 다루지 않는다. 실제로 정교회 신학에서는 예정설에 대한 비판은 애초에 논하지도 않는다. 정교회의 구원론은 원죄의 개념부터 아우구스티노의 원죄교리와 다르다. 선하신 하나님은 완전하고 반대로 죄는 완전하지 못한, 무언가 결핍된 상태로 보기에, 정교회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인간관까지 상당히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들은 10세기경 그리스어로 역번역 되어 동방교회에 소개되었으나 이미 그 시기엔 동서 교회 분열이 심각해진 상태였다. 또한 구원의 과정과 궁극적인 상태를 가톨릭교회와 유사하지만 뉘앙스적으로 다르게 보고 있다. 가톨릭과도 미묘하게 강조점이 다른데 하물며 개신교는... 넘사벽이다.

흔히 하는 일반화로 서방 신학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인간의 죄에 집중한 반면, 동방 신학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인간의 신화(神化, deification)에 중점을 두었다. 여기서 '신화'를 그리스어로 테오시스(θεοσις)라고 한다. 인간은 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으되, 형상은 죄로 인해 파괴되지 않으나 모양은 죄로 인해 파괴된다고 본다. 신자들은 삶을 통해 다시금 신의 모양으로 돌아가가 "하느님과 연합되어가는" 운동에 속해있다고 가르치는데, 이것이 '테오시스'인 것이다. 정교회 신자들은 현세의 삶에서 도덕적인 삶, 7성사 참여, 기도 등을 통해 신화에 이르고자 한다. 정교회에서 말하는 구원은 이러한 테오시스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16][17]]

정교회에서는 전적으로 타락하여 자유 의지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교회는 자유 의지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하며, 하느님 은총에 대한 인간 자유 의지의 응답을 매우 강조한다. 물론 구원은 은총의 선물이되, 구원을 향해서는 인간의 협력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시네르기아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교회가 자유의지를 은총보다 강조하지는 않는다. 국내에 출간된 소티리오스 대주교의 저서인 정교회 교리서에서는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신화에 도달할 수 없다고 쓰고 있다. 또한 교회는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서술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서술과 함께 있다.

3.3 예정설과 유아세례

위의 얀센주의가 나온 곳이 네덜란드어권이란 데서 알 수 있듯[18] 근세 이후로 네덜란드는 한참동안 예정설의 종가(?)처럼 인식되게 되었고 실제로도 네덜란드는 유럽 대륙에서 유일하게 국가 단위로 칼뱅주의를 밀어주던 나라였다.[19]

그런데 19~20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알미니안 다음으로 큰 규모라 할 수 있는 논쟁이 촉발되었다. 바로 세례받은 교인의 자식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택함받은 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가정적 중생론에 관한 것이었다. 그 이전까지 개혁교회에서 유아세례란 부모가 자식을 신자로 키우겠다고 고백하는 상징적 의식에 불과했고, 아무리 어렸을 때 세례를 받았다 해도 '언약'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불택자라는 것이 정설로 통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카이퍼[20]는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교인이 적극적으로 소명 의식을 가질 수 있다 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중생론을 밀어붙였고, 대다수의 화란개혁교회들도 이러한 관점을 지지했으나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부모가 자녀를 교인으로 키우는데 소홀해지며 개혁교회의 정체성이 뿌리채 뒤흔들릴 수 있다며 가정적 중생론을 반대했고, 기어이 2차대전 끝무렵인 1944년에 교단이 분열되는 사태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현재에도 보수적인 개혁주의 교단에서는 카이퍼식 중생론을 인정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인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1. 가톨릭에선 아우구스티노로, 철학계와 개신교에선 아우구스티누스로 불리나 영어권 영향으로 어거스틴으로도 알려져 있다.
  2. 브리튼 섬 출신으로 지금의 스코틀랜드 지방이라고 한다. 사실 그 시절엔 아직 잉글랜드니 스코틀랜드니 하는 국가는 없었다. 그의 주장들은 이단으로 선고되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하는 반박하는 형태의 상당히 부분적인 면만 남아있다.
  3. 선과 악의 개념은 현대의 법적 윤리적 선악 구분과 달리 순수 신학적인 기독교의 선과 악이다.
  4.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성서상 충돌하는 문구를 빼고 해석하는식의 곡해까지 있었다.
  5.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습성을 강조한것. 원죄라는것이 원래 죄라기보단 죄로 향하는 습성이라고 보는것이 이해하기 쉽다.
  6. 자유의지를 긍정적으로 보긴하는데 펠라기우스처럼 인간히 온전히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은 아니다.
  7. 앨리스터 맥그래스<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에 대하여>
  8. 사실 현재 독일농민전쟁은 노임보다는 광부계층이 더 많고 기사, 용병, 몰락 귀족들까지 합세한 다양한 구성이었으며 14~16세기 유럽내 동시 다발적으로 비슷한 민란이 잦았다. 영국의 경우 와트타일러의 난이라는 대규모 농민반란이 있었다.
  9. 뮌처는 자신을 기드온의 검이라 자처했고, 이렇게 선택받은 백성들을 가나안 정복시기 이스라엘 백성으로, 기존 상층민을 타락한 가나안 백성으로 선포하여 죽이는걸 정당화 했다. 또한 가라지와 알곡의 비유를 들어 가라지를 처낼 날카로운 낫을 자처했고 농민들이 지배계급과 지주와 기존 가톨릭 교회와 사제,수도사들을 공격하는데 이용한다.
  10. 일부 칼뱅이 이중예정론을 주장하지 않고, 베자 같은 칼뱅의 제자들이 정립했다고 하기도 하지만, 칼뱅도 엄연히 이중예정론을 주장하였다.
  11. 멜란히톤 주의자들은 칼뱅식 견해를 일부 받아들였다.
  12. 개인의 구원 여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는 칼뱅주의와 달리 개인의 구원 여부는 그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고 보는 알마니안주의는 좀 더 공격적인 전도 행위로 이어질 여지가 있기 때문.
  13. 도리어 이러한 주장은 사회진화론, 우생학과 혼합된 것으로 정통교리와는 당연히 거리가 멀다.
  14. 개신교에서는 은혜의 주입을 의로움의 전가로본다. 내적인 의로움이 있어야 은혜의 주입으로 응답받는데 내적인 의로움이 없고 하나님의 의는 외적으로 인간에게 전가되기만 할뿐이라 본다. 또는 응답을 위한 자세를 행위로 보고 비판한다. 자세한것은 이신칭의 항목
  15. 이것이 바로 가톨릭의 그 의화(justification) 교리이다. 이 용어는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칭의로 번역한다. 로마서 참조
  16. 정교회 소개, 한국정교회대교구
  17. 다만 가톨릭 역시도 의화는 곧 신화(神化)로 보고, 천국을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로 설명하므로 테오시스라는 면에서는 정교회와 같은 교리다. 원죄에 대한 관점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테오시스는 (그리스어로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 뿐) 가톨릭에서도 공유하는 가르침이다. 참조
  18. 루뱅(뢰번, Leuven)도 벨기에에서 네덜란드어를 쓰는 플란데런에 속하는 도시이다
  19. 사실 이게 너무 과해서 결국 가톨릭을 믿는 남부지방 상당수가 벨기에라는 이름으로 독립한 것이다.
  20. 국교회에서 분리하여 독립 교단(아이러니하게도 이 교단은 2004년 국교회와 다시 통합되었다)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VU)도 이 사람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