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카즈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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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음악계의 거장이자 일본의 국민가수
최고령 5대돔 투어를 기록한 레전드 뮤지션

小田和正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1947년 9월 20일 생. 쿠와타 케이스케와 함께 일본 음악계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뮤지션.[1]

2 이력

2.1 오프코스(Off C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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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팀을 한국 밴드에 대입을 하자면, 일본의 들국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2]

학창 시절이었던 1960년대부터 음악에 뜻을 두고 음악 활동을 시작. 후에 오프코스 멤버가 되는 동료들과 학교 축제에서 매년 공연을 했다. 1969년 토호쿠대학 재학 시절, 아마추어 음악 생활에 끝을 맺기 위해 '오프코스' 명의로 야마하 뮤직 콘테스트에 토호쿠 지역 예선으로 출전. 도쿄가 아닌 지역 예선으로 출전한 이유는 도쿄라면 레벨이 높을 것이라 생각하여 지방에서 출전하는게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한 이유에서였는데 지역 예선도 레벨이 굉장히 높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예선 1위로 통과하여 전국 대회에 진출. 라이벌 상대는 작곡가 겸 가수인 자이츠 카즈오와 '날개를 주세요'로 유명한 '붉은 새'였다고 한다. 자면서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맹렬히 연습했으나 '붉은 새'가 1위를 차지하고 오프코스는 2위로 밀려나게 되었는데 우승을 하면 음악 활동을 그만 두려 했지만 2위를 하니 오기가 생겨 프로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는 각자의 길을 가게된 멤버도 있어, 몇 번의 멤버 교체를 걸쳐 1972년 기타리스트 스즈키 야스히로와 함께 '오프코스'로 메이저 데뷔를 한다.

약 1973년부터 77년까지는 사실 Rock 그룹이라기 보다는 포크송 듀오에 가까웠다. 음악들이 쎄시봉 느낌이 상당히 난다고 할까. 사실 이 듀오 시절에는 거의 무명 수준이었다 봐도 좋다. 1976년부터 세션으로 자리잡던 드러머 오오 지로, 베이시스트 시미즈 히토시, 그리고 서브 기타리스트 마츠오 카즈히코가 1978년도부터 밴드의 정식멤버가 되었고, 이때부터 그들의 음악스타일이 포크에서 록으로 갈아타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이 5인조 밴드의 호흡은 그야말로 미래에도 다시 없을 환상의 호흡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다의 호소력 짙은 보컬, 스즈키의 시원한 기타 연주, 마츠오의 미친 존재감을 선보이는 하모니카 연주와 보조 기타 연주, 시미즈의 감칠맛 나는 베이스, 그리고 지로의 강렬한 사운드의 드럼까지, 그말로 이 시절의 오프코스는 진수성찬이었다.

1979년도에 그 유명한 '愛を止めないで(사랑을 멈추지 마요)'가 수록된 정규앨범 'Three And Two' 부터 상당한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같은해 12월 낸 싱글 'さよなら(안녕)'로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일본 발라드가 사잔 올 스타즈Tsunami라면, 1980년대의 일본의 대표 발라드는 이 노래라 봐도 무방하다. 오리콘 1위는 못했으나, 무려 4개월 넘게 월간차트 10위 안에 들었던 곡이다. 이후 1980년도에 낸 'Yes-No', 1981년도에 낸 '言葉にできない(말로 표현 할 수 없어), 'I Love You', 1982년도에 낸 'Yes-Yes-Yes'를 포함해 그들이 내는 싱글, 정규 앨범은 하나같이 히트를 쳤으며[3], 하는 공연마다 거의 매진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오프코스는 명실상부 198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인기를 이끌었던 오프 코스 역시 주 축이 되었던 오다와 기타리스트 스즈키가 사이가 틀어지면서 조금씩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4]왜 밴드들은 하나같이 이럴까? 사실 이 그룹이 5인조가 되면서 부터 앨범내에서의 반반씩이었던 오다와 스즈키의 곡 분배가 오다의 곡의 비율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스즈키가 이에 대한 불만이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라는 건 짐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5인조가 되면서 부터 오다와 스즈키는 의견 불일치로 인한 충돌도 종종 있었고, 스즈키는 이 때문인지 그룹 내에서 상당한 위화감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1982년도 6월 30일에 있었던 그 전설의 라이브, 부도칸에서의 라이브를 끝으로 5인조로서의 활동은 사실상 끝이었고, 결국 1983년에 스즈키는 소속사와의 계약이 만료 되자마자 팀을 탈퇴하고 말았다. 계약 만료 후 스즈키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약 1년간 활동을 중단하고, 해체를 심각하게 고려하던 중이었으나, 1984년에 새 소속사와 계약후 4인조로 활동을 재개했다. 이때부터 그들의 음악은 여러부분에서 굉장히 실험적인 도전을 하였고, 대중들 역시 그들이 도전을 어느정도 인정해 주어, 그들은 예전과 다름없는 인기를 구가하였다. 그리고 1987년도에는 미국 진출을 위한 영어 노래들만을 실은 음반 'Back Street of Tokyo'를 발매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앨범에 수록된 노래들만 보면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노래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이 당시 노래들의 비중은 다소 적은 것이 사실. 정규앨범들 또한 주간 1위를 하긴 했었으나 대부분 단발성이었다. 절정에 달했던 이 밴드의 호흡은 1982년을 거쳐 스즈키가 탈퇴한 후 그 시너지가 많이 떨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상 이 시기는 영국 밴드 Hot Space 이후 4~5년간 저조했던 것과 대응되는 시기라고 보면 된다. 그나마 베스트엘범에 계속 실리는 건 1988년에 낸 그들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노래였던 '君住む街へ(네가 있는 거리에)'.

이렇게 10년 넘게 국민적 인기를 구가하던 그들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1988년에 마지막 정규앨범 'Still a Long Way to Go'를 내고 해체를 선언하고야 말았다. 이후 오다와 스즈키는 솔로 활동으로 커리어를 쌓았고, 오다는 이후 한 음악활동들이 족족 성공하면서 일본의 국민가수로 자리 잡았다. 오다와 스즈키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90년대 중반 들어 비틀즈 카피밴드로 재결성을 해서 활동을 하기도 했으나, 어째서인지 오다와 스즈키를 포함한 완전체로는 해체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번도 재결성이 된 적이 없다. 오다와 스즈키 역시 그시절 노래들을 부르면서도 재결성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재결성 언급을 아예 안 하는 오다와는 달리, 스즈키는 재결성에 어느 정도는 관심이 있는 듯 한지 가끔 라디오나 TV에 나와서 재결성에 관해서 진지하게 얘기를 하곤 한다. 실제로도 오다와 스즈키는 갈등이 어느정도 해소가 되었는지 서로 가끔씩 편지를 주고받고 한다고 한다. 스즈키는 이미 약 30년 전 오프코스 해체 직후 낸 자서전에서 '오다에 관한 악감정은 이제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체된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베스트 앨범이 나올 때 마다 몇십 만장 넘게 팔려나가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2.2 솔로 활동

오브코스 시절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했으나 89년 그룹의 해산 이후 솔로로서의 활동이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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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일본 트렌디 드라마의 대표작인 도쿄 러브스토리의 주제곡 'ラブ・ストーリーは突然に(러브스토리는 갑자기)'가 270만장이 넘는 폭발적인 판매량과 함께 91년 연간 순위 1위를 달성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5]

이후론 히트 메이커로써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며 곡들이 차례로 히트. 초로의 나이임에도 나이가 믿어지지않는 섬세하고 감정적인 목소리로 현재까지 끊임없는 활동을 하며 젊은 세대와 중장년층 세대를 아울러 국민적으로 폭 넓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사람을 국보급, 인간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돌 만큼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

CM의 타이업이나 타 아티스트들에게 악곡을 제공, 콜라보레이션하는 일도 하고 있다. 많은 가수들이 오다의 곡을 리메이크 하고있다. 동방신기가 리메이크한 '言葉にできない'도 유명하다. 라이브 시 환갑이 넘은 영감님이 청춘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가수들의 트리뷰트에서 'lalala 말로 할 수 없어요' 부분에서 어떻게든 감정을 넣으려 테크닉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시도하지만 원곡의 감성을 아무도 따라오질 못한다. 라이브 시 눈물 흘리는 사람이 속출하는 곡[6]. 기술이 다가 아니라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미디어에 불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브코스 시절부터 음악 방송을 비롯한 방송 매체의 출연 자체를 극히 꺼렸으나 오다가 메인으로 출연하여 제작되는 음악방송인 TBS의 '크리스마스의 약속'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와 2001년부터 매년 방송되고 있다.

2007년에 싱글 こころ(마음)로 오리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최고령 아티스트가 되었지만 1년 만에 아키모토 쥰코에게 그 자리를 내줬다.[7]

3 목소리에 대하여

남성이지만 가성을 전혀 쓰지않고 여성의 음역대까지 낼 수 있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가장 큰 특징이다. 오브코스 활동 초기에는 보컬이 여성이라고 착각했다는 사람이 꽤 있었다고. 평소 때는 노래할 때보다 상당히 저음의 목소리라 커다란 갭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고음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나"라는 질문에 "나는 그저 샤우트하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고음의 늘어짐과 목소리의 질량이 그의 천성적인 매력이다. 음의 흔들림(비브라토)과 음정의 명확함도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높혀주고 있다. 그리고 오다의 나이는 이미 60대 후반이다. 철저한 자기관리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축복 받은 성대라고 할 밖에.

4 에피소드

  • 가라오케에서 자주 부르는 곡은 미소라 히바리의 '港町十三番地'(1957년 발매).
  • 배우 마츠 타카코와의 콜라보 녹음 때 그녀를 울린 적이 있다고 한다. 엄격한 지도 때문인듯.[8]
  • 2008년 콘서트를 보러 온 아무로 나미에와 생일이 똑같은 이유로 생일 당일 날 서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교환했다.
  • 2005년 홍백가합전에 출장의뢰를 받았으나 거절. 콘서트에서 홍백에 대해 "큰 편견을 갖고 있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 도호쿠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인텔리다. 원래 부친이 약사여서 치바대학 의학부를 지원하려 했으나 실습실의 더러운 커튼과 소독약 냄새가 너무 싫어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한다. 실제로 오프코스 멤버들도 같은 대학 출신이다.

5 레코드 및 판매 기록

  • 1985년 싱글 '今だから(지금이니까)' <마츠토야 유미, 오다 카즈마사, 자이츠 카즈오> 작. - 오리콘 싱글 차트 1위
  • 1991년 싱글 'Oh! Yeah!/ラブ・ストーリーは突然に(러브스토리는 갑자기)' - 오리콘 싱글 차트 주간 1위, 연간 싱글 차트 1위 (44세)
  • 2001년 앨범 - 'LOOKING BACK 2' - 오리콘 앨범 차트 주간 1위, 최장년 기록 (53세)
  • 2002년 앨범 '自己ベスト(자기베스트)' - 오리콘 앨범 차트 주간 1위 (54세)
  • 2005년 앨범 'そうかな(그럴까)' - 오리콘 앨범 차트 주간 1위 (57세)
  • 2007년 싱글 'こころ(마음)' - 오리콘 싱글 차트 주간 1위 (59세)
  • 2007년 12월 앨범 '自己ベスト-2(자기베스트-2)' - 오리콘 앨범 차트 주간 1위 (60세)
  • 2010년 앨범 '自己ベスト(자기베스트)' - 오리콘 앨범 랭킹 통상 400주째 랭크인
  • 2016년 앨범 '自己ベスト(자기베스트)' - 앨범 출하량 300만 돌파
  • 2016년 4월 26일 앨범 'あの日 あの時 (그 날 그 때)' - 오리콘 앨범 차트 주간 1위, 최장년 기록 (68세)
  • 2016년 5월 10일 'あの日 あの時 (그 날 그 때)' - 오리콘 앨범 차트 주간 1위 복귀, 최장년 기록, 60대 최초 (68세)
  • 2016년 6월 28일 'あの日 あの時 (그 날 그 때)' - 2016년 상반기 앨범 랭킹 2위, 최장년 기록 (68세)

6 음반

6.1 싱글

발매일제목순위판매량비고
1986.11.01198515위42,390장
1988.03.05僕の贈りもの37위14,080장
1989.10.18Little Toky3위220,340장
1989.12.01君にMerry Xmas6위160,330장
1990.02.21恋は大騒ぎ5위96,410장
1991.02.06Oh!Yeah!/「ラブ・ストーリーは突然に」1위2,587,840장
1991.11.20あなたを見つめて6위208,800장
1992.01.25いつかどこかで5위359,910장
1993.03.05緑の日々19위91,030장
1993.09.22風の坂道9위90,930장
1994.07.16真夏の恋10위168,580장
1995.01.25so long my love10위88,490장
1995.11.22君との思い出23위79,230장
1997.05.21遠い海辺24위27,220장
1997.07.24伝えたいことがあるんだ8위280,080장
1997.08.29緑の街7위223,670장
1999.10.21こんな日だったね23위27,510장
2000.03.23woh woh18위51,560장
2001.03.07風の街22위32,450장
2002.02.27キラキラ3위280,080장
2004.02.25まっ白4위84,467장
2005.05.25たしかなこと8위62,007장
2007.04.25ダイジョウブ6위76,738장
2007.08.15こころ1위113,803장
2008.11.05今日も どこかで4위52,407장
2009.02.25さよならは 言わない5위44,352장
2010.11.17グッバイ15위25,463장

6.2 앨범

발매일제목순위판매량비고
1986.12.03K.ODA--
1988.03.05BETWEEN THE WORD & THE HEART3위-
1990.05.09Far East Cafe1위312,660장
1992.01.25sometime somewhere1위650,610장
1993.10.27MY HOME TOWN2위174,940장
2000.04.19個人主義4위292,790장
2005.06.15そうかな1위581,465장
2011.04.20どーも1위261,606장
2014.07.02小田日和3위186,620장

6.3 베스트 앨범

발매일제목순위판매량비고
1991.05.18Oh!Yeah!1위1,221,730장
1997.11.21伝えたいことがあるんだ7위223,670장
1996.02.01LOOKING BACK1위597,350장셀프 커버 앨범
2001.05.16LOOKING BACK 21위607,150장셀프 커버 앨범
2002.04.24自己ベスト[9]1위2,604,872장
2007.11.28自己ベスト-21위616,235장
2016.07.02あの日 あの時1위405,360장[10]
  1. 비록 오다 카즈마사가 Mr.Children이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쿠와타 케이스케가 이끄는 사잔 올 스타즈 등에 비해 음반 판매량은 훨씬 적을 지 모르나, 일본 가요계 내에서 이 사람이 끼치는 영향력 자체는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절대 뒤지지 않는다. 일본 가요계 후배들이 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우리나라 가수들이 조용필에게 깍듯한 그것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송보다는 공연 위주로 활동하는 사람이 저 정도 음반 판매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어마어마한 일.
  2. 비슷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두 밴드 모두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 포크 송을 기반한 록 위주의 노래들이었고, 주축이 되었던 두 멤버들이 오랫동안 애증관계(...)였다는 것 까지도 공통점.
  3. 사실 이들의 명성과 인기에 비해 이들의 음반 판매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편인데, 이는 이들이 방송보다는 공연위주로 활동한 것이 크다. 뭐 사잔이나 미스치루도 방송 출연을 거의 안하는 마당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 이들은 뮤직 스테이션같은 프로그램에 단발성 게스트로도 출연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실상 짧은 인터뷰를 제외하면 이들을 TV에서 보는건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봐도 좋다. 이런 밴드가 1980년부터 1985년까지 내는 정규 앨범마다 주간 1위에다 연간 톱10안에 항상 들었던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4. 후에 스즈키의 말에 의하면 1980년에 낸 정규앨범 'We Are'과 이듬해에 낸 'Over'를 합치면 We Are Over, 즉 우리는 끝났다라는 얘기가 되는데 이게 말 그대로 해체를 암시하는 제목이었다고 한다. 정작 그 두 앨범은 오프 코스 불후의 명반으로 꼽히는 음반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 하다. 그후 1983년도에 계약이 만료 되자 마자 스즈키는 탈퇴했고, 팀은 해체 위기까지 가나 어떻게 1988년까지 유지가 되었다.
  5. 이때까지의 드라마 주제곡은 드라마 속에서는 사용되는 일이 없었으며 삽입이 되어도 목소리는 빠진 브금으로 흘러나오는 식으로만 사용되었으나 이 곡은 드라마의 진행 도중에 흘러나오는 방식으로, 이후 같은 방법을 사용한 곡들이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차용됨과 함께 드라마+주제가가 함께 히트하는 방식이 널리 쓰였다.
  6. 라이브 영상을 보면 양 옆의 관객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35년이 넘은 노래가 아직까지도 이런 감동을 준다는 것이 대단할 따름.
  7. 참고로 아키모토 쥰코의 당시 나이는 61세 7개월(···) 아무리 엔카 가수라고 해도 솔로 가수 한정으로 최고령인 것은 사실이다.
  8. 이런 인연 때문인지 오다 카즈마사가 메인 출연하는 크리스마스의 약속에서 매년 단골 게스트로 출연중이다.
  9. 2016년 1월 기준으로 출하량이 3밀리언을 달성했다!
  10. 진행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