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일본의 국민 여가수이자 J-POP의 여왕
松任谷由実. 1954년 1월 19일 생. 일본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일본 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최고의 여가수. 애칭은 유밍(ユーミン)[1], 작곡시의 예명은 쿠레타 카루호(呉田 軽穂).[2] 원래의 성은 아라이(荒井)이며 결혼 후 마츠토야 유미로 활동.
도쿄 하치오지시 출신이며 타마미술대학 회화학과 일본화 전공을 졸업했다. 2015년 8월 뮤직 스테이션 발표 기준 총판매량 3912만장으로 역대 6위에 해당하는 기록. 역대 솔로 여가수중에서는 2위이다.
2 아라이 유미 시대
도쿄 하치오지시의 '아라이 오복점(기모노를 파는 가게)'에서 태어나 6세엔 피아노, 11세엔 샤미센, 14세엔 베이스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14세에 처음으로 프로로써 데뷔, 15세엔 작사가, 17세 땐 작곡가로 차례차례 데뷔하였다. 중학 시절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자주 출입하였는데 그 곳에서 모인 아티스트들과의 인연이 데뷔의 계기가 되었다. The Fingers[3]의 사생팬이었다고도 한다. 1972년 18세의 나이로 '返事はいらない'를 발매하며 아라이 유미 이름으로 데뷔. 이 앨범은 300장 밖에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희귀 앨범이 되어있다. 1975년 'あの日にかえりたい'가 첫 오리콘차트 1위를 하며 제 1차 붐을 맞는다.
이 시절 아라이 유미는 맑고 고운 캐롤 킹 풍의 맑고 고운 팝 스타일의 음악을 하면서 핫피 엔도의 멤버 호소노 하루오미[4]의 지원을 힘입어 많은 인기를 얻었다. 첫 앨범 <ひこうき雲>은 일본 대중음악사의 걸작으로 아직도 회자되는 중.
3 마츠토야 유미 시대
1975년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마츠토야 마사타카와 결혼.[5]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자신의 앨범을 릴리즈함과 동시에 타 가수들에게도 곡을 제공하며 빠른 페이스로 음악을 만들어 낸다. 또한 리조트 등지에서 여는 콘서트라는 것도 이 시기에 처음 도입. 이 분야에서도 황무지를 개척한 여성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1981년에 '守ってあげたい'(지켜주고 싶어)[6]가 연간 매상 차트 10위를 기록하며 제 2차 붐이 도래. 이 후의 오리지날 앨범은 17곡 연속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하고 88년 앨범 'Delight Slight Light KISS' 이후엔 8장 연속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는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게 된다.
그녀가 처음 선보인 보여주는 무대는 78년 자동차를 타고 등장하는 무대를 시작으로 무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 30미터나 되는 용 위에 올라타는 등 갖가지 퍼포먼스로 콘서트라는 영역을 벗어난, 당시로써 획기적인 무대를 보여주며 음악과 무대와 기획력에서 모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당시엔 '젊은이들의 카리스마', '연애의 교주'라 불리며 1980년대는 그야말로 유밍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실연"이라는 소재를 깊은 감정으로 부르며 시대의 파도를 탄 유밍이었으나 1990년대부터는 민속적인 음악에 심취하여 '真夏の夜の夢(한 여름 밤의 꿈)', '春よ、来い(봄이여, 오라), '輪舞曲(윤무곡)', 'Weaver of Love~ORIHIME'[7] 등의 음악을 만들어 낸다.
CM,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인 곡은 셀 수가 없이 많으며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곡 뿐만 아니라 타 가수들에게 만들어 준 많고 많은 곡들마저도 초히트시킨 천재. 특히 80년대 전설의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에게 곡을 많이 주었는데 그 모든 곡들이 전부 히트를 쳤다.
2011년 홍백가합전에 출장해 (겨우 두번째!) 春よ、来い를 불렀다. 이 무대가 엔딩이 아닌데도 전 출연진이 후반부에 같이 나와 장식해 그녀의 위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대에 라이벌로 평가되는 가수가 있다면, 역시 나카지마 미유키였다. 실제로도 친한 사이라고 한다.
3.1 기행?
이러한 천재성을 가진 만큼 그녀가 말하는 언행이나 행동도 기묘한데 마츠토야 유미의 어록은 그녀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게 해준다.(…)
마츠토야 유미의 어록 모음.
- "내 음악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듣지 말았으면 한다."
- 팬이 아이를 데려와서 "악수해주세요"라고 말하자 "나 애들 진짜 싫어한다고!"
- "내가 팔리지 않는다는 건 은행이 망하는 일만큼 있을 수 없다."
- "저는 천재라구요. 싼 가격으로 내 음반을 살 수 있는 걸 감사히 여기세요."
- "내 음악은 부르주아용 음악.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하지않는다."
- "섹스를 하고 있으면 원시적인 동물이 된 느낌이다."
박진영?! - "오늘 내 옷은 27만엔이야. 이딴 게 말이지."
- "단기 대학을 다닌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다."(단기대에 다니는 학생이 학교 축제에 출연 요청을 하자 거절한 대답.)
- "학력도 없이 노가다 일을 하고있는 사람이 내 라이브에 오면 질이 떨어진다."
- 점술가에게 코 모양이 부자는 될 수 없는 사주라고 듣자 "벌써 부자거든요!!"
하긴… 태어났을 때 이미 부자였으니까… - 오자와 켄지[8]가 싱글 '春よ、来い'의 가격이 왜 500엔인지를 묻자 "이제 돈따위 필요없어요." [9]
- "아직도 물 안 가져왔어? 빨랑 가져와! 목 마르단말야! 진짜 여기 도움 안되는 스탭뿐이구만!"(ANN의 생방송 중 녹음에 목소리가 들어가서 음성이 전국적으로 방송을 탐.)
물론 이 어록들이 전부 실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평소에 라디오에서 독설적인 발언도 많이 뱉는 걸로 유명하며,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굉장히 높아 성격은 매우 좋지 않은 편이라는 소문이 많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옛날보다는 둥글해진 듯.
사실 마츠토야 유미 본인부터가 음악 활동을 하기 전부터 이미 집안이 기모노집을 운영하는 부자인데다[10] 사회 명사들과 교류하는 등 엄청난 상류층 사람이다. 남편쪽도 한끝발 날리는 뮤지션에 자동차 평론가이니 만만치 않고. 타케우치 나오코? 그야말로 고생 모르고 자랐기에 저런 콧대높은 성격이 된 듯.
무대에서의 매너도 엄청 기묘하고 가히 변태적이라 할수 있다. 과연 성진국 열도의 위엄 애먼 관중 정신도 관광시켜버리는 유밍의 패기 OME 내 음악은 마약중독자용 음악. 선량한 시민을 상대로 하지않는다 근데 검열삭제하면 짐승이 된다시는 분이 이런 센스 안보이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니코동의 코멘트를 보면 서큐버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파일:Attachment/마츠토야 유미/4c.gif
이미지 문제로 일단 삭제
여담으로 마츠토야 유미와 친분이 깊은 오다 카즈마사는 마츠토야 유미의 정면에서 "여전히 노래 못부르는구나"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 보컬 자체는 음색이 좋긴 하지만 기교 자체는 특출나진 않고 염소 창법이라 까이기도 한다 작곡 능력이 워낙 천재적이여서 뜬 케이스다.
4 히트곡
- 1974.04.20. 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ら(상냥함에 감싸이면) 마녀 배달부 키키의 주제가
- 1975.02.20. ルージュの伝言(루즈의 전언) - 마녀 배달부 키키의 삽입곡.
- 1975.08.01. 『いちご白書』をもう一度('딸기백서'를 다시 한번)
- 1976.10.05. あの日にかえりたい(그 날로 돌아가고싶어)
- 1977.05.05. 潮風にちぎれて(갯바람에 부딪혀서)
- 1979.12.01. 悲しいほどお天気(슬플 만큼 밝음)
- 1981.11.01. 守ってあげたい(지켜주고싶어) - 80년대 유밍 최대의 히트곡.
- 1983.12.01. ガールフレンズ(걸 프렌즈)/時をかける少女(시간을 달리는 소녀) - 하라다 토모요에게 제공.
- 1984.12.01. NO SIDE/DOWNTOWN BOY
- 1985.08.01. 今だから(지금이니까) <오다 카즈마사, 자이츠 카즈오와의 콜라보>
- 1987.12.05. 月曜日のロボット(월요일의 로봇)/ダイアモンドダストが消えぬまに(다이아몬드 더스트가 사라지기 전에)
- 1988.11.30. リフレインが叫んでる(리플레인이 소리치고있어) - 유밍의 곡중에서도 영향력이 강렬한 곡이라 일컬어짐.
- 1989.11.25. LOVE WARS/ANNIVERSARY
- 1992.11.27. Carry on
- 1993.11.27. 真夏の夜の夢(한 여름 밤의 꿈) - TBS드라마 '誰にも言えない(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의 주제곡으로 사용. JASRAC상 금상을 수상한 유명한 곡.
- 1994.11.25. 春よ、来い(봄이여, 오라) - 하마사키 아유미, 마키하라 노리유키, aiko, 우리나라의 임형주, MC 스나이퍼 등이 커버.
5 타 아티스트에게 제공한 히트곡 목록
참고로 아래에 취소선이 처진 것은 작사만 해준 것이다.
- 1975년 아그네스 창 - 白いくつ下は似合わない, 愛を告げ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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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미나미 사오리 - 青春に恥じないように - 1976년 미키 세이코 - まちぶせ - 이시카와 히토미가 81년 커버하여 히트함.
- 1977년 카하시 카츠미 - 愛は突然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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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히로미 - 20才を過ぎたら, 恋のハイウエイ, 宇宙のかなたへ, 君のおやじ, 雨にひとり 등 - 마츠다 세이코 - 赤いスイートピー, 制服, 秘密の花園, 瞳はダイアモンド, 蒼いフォトグラフ, Rock'n Rouge 등
- 1980년 사카키바라 이쿠에[11] - イエ!イエ!お嬢さん
- 1983년 하라다 토모요 - 時をかける少女
- 1984년 야쿠시마루 히로코 - Woman "Wの悲劇"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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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코바야시 아사미[12]- 雨音はショパンの調べ[13] - 1985년 타하라 토시히코 - 銀河の神話
- 1986년 야마세 마미 - メロンのためいき
- 1993년 미즈키 아리사 - 今年いちばん風の強い午後, 君が好きだから
- 1998년 사이조 히데키 - 2Rから始めよう
- 2001년 김윤아 - 봄날은 간다[14]
- 2006년 하지메 치토세 - 春のかたみ
- 2010년 아야세 하루카 - マーガレット
- ↑ 가끔 '유밍'을 '유민'으로 잘못 읽어서 유민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마츠토야 유미의 영어식 표기는 Yuming이 확실하다. 앨범 디자인에도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절대 화이또로 유명한 그분과는 헷갈리지 말도록 하자 - ↑ 왕년의 헐리웃 여배우인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에서 따옴.
- ↑ 60년대 일본에서 인기있던 밴드
- ↑ 훗날 사카모토 류이치, 타카하시 유키히로와 함께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라는 전설적인 일렉트로니카 밴드를 만들게 된다.
- ↑ 사실 이 때 은퇴하려고 했다고.
- ↑ 표적이 된 학원(ねらわれた学園)의 1981년 실사판 주제가이다.
- ↑ 1996년에 제작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녹색나라 삐삐의 모험의 OST로 쓰였다.
- ↑ 1990년대에 활동한 뮤지션으로, 시부야계의 대표 그룹 플리퍼즈 기타의 멤버.
- ↑ 근데 이 싱글. 발매 첫주에 1위를 찍고 밀리언을 달성했다.
- ↑ 기모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한 벌에 몇 백만에서 비싸게는 몇 천만엔에 달하는 굉장히 비싼 품목이다. 일본 관련 미디어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의복형태다 보니 쉽게 생각되기 쉬운데, 평범한 일본인들은 보통 부모로부터 기모노를 물려받거나 아예 기모노를 사기 위한 적금을 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 일본의 옛날 아이돌
- ↑ 마미가 아니고 아사미다!
- ↑ 참고로 이 곡은 이탈로 디스코 그룹 Gazebo의 I like Chopin의 리메이크다.
- ↑
1976년 발표한 あの日にかえりたい(그 날로 돌아가고싶어)를 리메이크함.근데 멜로디와 코드진행이 원곡과 좀 다른편, 김윤아의 버전이 좀 더 느리면서 보사노바 리듬도 아니다. 두 곡이 서로 별개라고 생각해도 좋을듯.라고 잘못알려졌는데 '봄날은 간다'는 OST를 위해 유밍이 새로 쓴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