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루

홋카이도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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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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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別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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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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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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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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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로
(釧路市)
네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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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町)과 촌(村)은 그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진흥국 청사 소재지 혹은 이미 문서가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표기하지 않는다.
2. 밑줄은 진흥국 청사 소재지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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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樽市(おたるし)

오타루 시 / Otaru City

시기(市旗)
문장(紋章)
국가일본
지방홋카이도
도도부현홋카이도
면적243.83km²
인구121,727명[1]
상징
시화철쭉(ツツジ)
시목자작나무(シラカンバ)
시조녹색비둘기(アオバト)
홈페이지


小樽市 / おたるし

1 개요

일본 홋카이도 서부에 있는 . 시리베시 종합진흥국(後志総合振興局)에 속한다. 시리베시 종합진흥국의 유일한 시(市)이다.[2] 오타루는 아이누어로 '모래사장 사이의 강'이라는 뜻의 '오타 오르 나이'가 줄어 '오타루나이'가 된 것에서 '나이'를 생략한 것이다.

2015년 국세조사를 기준으로 홋카이도에서 7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대도시 주변에 소재한 중소도시가 대부분 그렇듯이, 경제적으로는 삿포로의 베드타운으로서의 성향이 강하다. 오타루의 학생들도 주로 삿포로의 대학에 진학하는 편.

시내에는 오타루상과대학이 소재하고 있는데 문과 기준으로 애당초 상학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도내에서 홋카이도 대학 다음 가는 순위의 대학이다. 전국적으로 봤을 때는 편차치 55의 평범한 지방 국립대이지만, 도내에서만큼의 인지도는 상당히 높아서 나름대로 명문으로 취급받고 있다. 타 지역의 대학에 진학하기를 꺼리는 학생들 중 홋카이도 대학에 이은 차선책으로 진학하는 경우도 많아서 학생들의 수준 또한 준수한 편. 다만, 학교가 작은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학생들은 종종 있다.

또한 홋카이도에서 3번째로 오래된 고등학교오타루초료고등학교가 소재하고 있다. 오타루 시내에서는 제일 명문으로 취급되는 고등학교이며, 현재는 편차치 60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의 중상위권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저명한 동문으로는 일본의 배우인 가토 코지나 소설가 이토 세이[3]등이 있다.

러시아나홋카(Нахо́дка), 뉴질랜드의 카와더니든(Dunedin), 그리고 대한민국서울특별시 강서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2 역사

1596년에 오시마노쿠니(渡島国; 현재 하코다테 인근)에 살던 일본인이 처음으로 이주한 것이 기원이 되어 마을이 생겨났고, 1869년에 시리베시노쿠니(後志国)가 설치되어 오타루군(小樽郡), 타카시마군(高島郡), 오쇼로군(忍路郡)으로 나뉘었다. 이 세 군은 이후 행정체계가 대폭 개편되면서 삿포로현(札幌県)에 속하게 되었고, 1897년에 다시 오타루 지청(小樽支庁) 관할로 변경되었다.(1910년에 시리베시 지청(後志支庁)으로 개칭된다) 1922년에 오타루군의 일부가 떨어져나가 시로 승격되고 세 군의 모든 행정구역을 조금씩 병합하여 1958년에 완전 병합이 완료되었다. 이후에도 70년대에 이시카리정(石狩町; 현재는 시로 승격)의 관할지를 일부 편입하여 현재에 이른다.

지금이야 삿포로의 위성도시 내지 외항 정도로 전락했지만, 홋카이도 개척이 시작되던 무렵에는 하코다테에 이은 홋카이도 제2의 도시였다. 하코다테가 홋카이도의 다른 도시에 비해 일찍부터 내지의 영향권에 들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홋카이도 개척의 근원지이자, 홋카이도 최초의 중심 도시였다. 이 후, 삿포로에 도시 개발이 시작되고 삿포로에 인구를 추월당하기까지 했지만, 적어도 2차대전 이전까지 오타루는 삿포로에 이은 홋카이도 제3의 도시였다. 시정촌 코드가 삿포로와 하코다테에 이은 01203번[4]인 점, 홋카이도 제2의 대학인 오타루상과대학이 소재하고 있는 점, 현재 오타루에 남아 있는 구일본은행 지점과 시내를 가로지르는 운하 등은, 과거 오타루가 번성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3 산업

개척 당시에는 바다 가까이에 탄광이 있다는 어마어마한 장점 덕분에 홋카이도의 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타루항을 통한 무역이 줄어들고, 광산이 사라지면서 과거의 경제력을 많이 상실했다. 현재는 삿포로의 위성도시로 전락해 경제의 대부분을 삿포로에 의존하고 있으며, 역내 산업도 관광을 제외하면 사실상 이렇다 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

특산물로는 토산의 수산 가공품이나 과자, 술 등도 있긴 하지만, 그거야 전국에 널리고 널려서 크게 경쟁력이 있지도 않고, 굳이 하나 꼽자면 유리 공예 만큼은 지금까지도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4 관광

홋카이도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며 삿포로역에서 하코다테 본선등의 열차를 타면 30~45분 정도로 도착한다. 하지만 산지가 많아, 실제 관광할 수 있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은 오타루만 따로 관광하기 보다는 삿포로 여행 코스에 하루를 빼서 방문하는 정도이다.

개척의 역사가 짧은 홋카이도의 특성상, 전통이나 역사적인 관광지보다는 현대적인 느낌의 관광지가 대부분이다.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고 야경이 아름다운 오타루 운하나 오타루 오르골당(1,2호점이 있음)이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또한 영화 러브레터의 실제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더불어 이영애가 출연했던 조성모가시나무 뮤직비디오 속 장면이 오타루 오르골당에서 촬영되었다.

5 교통

JR 홋카이도하코다테 본선이 유일한 철도 노선이며 란시마역~오타루역~제니바코역 구간이 이 시에 속한다. 이 노선을 이용해 주변의 대도시인 삿포로와는 30~45분 정도로 오갈 수 있다.[5] 또한 삿손 자동차도(札樽自動車道)와 국도 5호, 337호, 393호가 지나간다.

그 외에 항만을 통해 마이즈루니이가타 등과도 연결되어 있다. 단, 인적 수송보다는 주로 물적 수송에 이용된다.

과거에는 러시아의 바니노-홀름스크-오타루로 이어지는 페리를 월 1회 정도 운항하고 있었지만, 연료비 상승과 수요 문제로 적자가 지속되자 2005년부터 운휴 중에 있다. 애당초 바니노는 인구가 2만명도 되지 않는 시골 도시이고, 홀름스크와 오타루는 둘 다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운항을 재개할 일은 없을 전망이다.

6 인구 감소 문제

현재 오타루에 닥친 제일 큰 문제

상술했듯이 오타루는 과거 홋카이도 제2의 도시로서 번창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광산의 성행, 탄광과 가까운 항구의 존재, 항구를 통한 가라후토나 내지와의 교류, 많은 어획량 등이 있었다. 그러나 삿포로가 국가의 주도 하에 급속도로 개발됨에 따라 점차 주도권을 빼앗겨 갔고, 거기에 광산의 폐광, 어획량의 감소, 종전 후 가라후토와의 교역 감소 등이 맞물려 점차 세력을 잃어 갔다. 그렇다고 산업을 유치하려고 해도, 산지가 많은 지형 때문에 도시 확장에도 한계가 있었으며, 공업에도 농업에도 불리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약해졌을 뿐,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가 20만을 넘고 있었다. 하지만 홋카이도의 개발은 오타루에게 점점 더 불리하게만 작용했다. 내륙 운송의 발달은 오타루의 운하를 쓸모 없게 만들었고, 홋카이도 남쪽의 도시인 토마코마이가 개발되면서 항구 도시로서의 역할도 이전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타루가 위성도시로서 경쟁력이 높은 것도 아닌데, 삿포로까지 40분 남짓으로 진입할 수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오타루 역에 한정하는 이야기. 철도역에 버스를 타고 접근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삿포로까지는 평균 1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문제는 삿포로 자체가 그렇게 인력이 크지 않다는 것에 있다. 도쿄오사카등의 세계 순위권의 대도시에서는 2시간 걸려서 통근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이것은 그만큼 대도시의 지가가 비싼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삿포로의 경우, 도시 자체의 경제력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삿포로 외곽에서도 충분히 싼 집을 구할 수 있으며[6], 시내가 아니더라도 오타루보다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위성도시는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신치토세 공항이 건설되면서 오타루는 직격탄을 맞았다. 오타루에는 유감스럽게도 정반대편인 치토세에 위치하고 있어, 경쟁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에니와키타히로시마 등에 인구가 몰리게 되었다. 삿포로와의 거리도 멀고, 교통도 불편하고, 경제력이 큰 것도 아닌 오타루에 굳이 남아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

그래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가 20만을 넘고 있었던 오타루는 매년 빠른 속도로 인구가 감소해 현재는 12만명 남짓에 이르렀다. 오타루보다 개척의 역사가 훨씬 늦었던 에베츠는 같은 기간동안 약 6만명에서 12만명으로, 키타히로시마는 8천명에서 6만명 정도로 크게 늘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금도 오타루는 인구 감소율이 연간 1%를 넘는 빠른 감소세에 있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인구 유출 뿐이 아니라 출산율 저하와 사망자 수 증가로 인한 자연 감소까지 더해졌다. 물론 일본의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 다른 도시도 대부분 감소세에 들어가기 시작해 당분간은 인구 순위가 유지될 듯 싶지만, 감소 속도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 정도 추세라면 2040년에는 인구가 7만명대로 떨어져 홋카이도내 10위로 전락할 전망이다. 시에서는 수십년 전부터 인구 격감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을 내어 놓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과거의 위엄에 비하면 그야말로 안습 그 자체...
  1. 주민기본대장, 2016년 6월 30일 기준
  2. 다만 진흥국 청사는 쿳찬초에 있다.
  3. 오타루상과대학의 동문이기도 하다.
  4. 삿포로와 그 소속 구는 정부 주도하에 의도적으로 홋카이도의 중심지로 키워졌기 때문에 01100번대, 대화재 이전까지 홋카이도의 제1도시였던 하코다테는 01202번을 부여받았다. 참고로, 아사히카와는 오타루에 이은 01204번이다.
  5. 철도 뿐이 아니라 버스도 꽤 많이 운행하고 있다. 출퇴근이나 통학 수요도 있고, 관광수요도 꽤 있는 편.
  6. 단순히 비교해서, 비슷한 경제 규모의 도시인 후쿠오카의 평균 지가가 2015년을 기준으로 26万1852円/m2이지만, 삿포로는 10万1410円/m2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