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로 자작 작위를 가졌던 은하제국의 귀족이다.
인명 및 지명에 대한 오역이 많은 을지서적판에서 율겐 오파 폰 페크니츠란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이타카판에서는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로 번역했다.
어떻게 보자면 양 웬리가 그토록 원하던 삶을 거머쥐게된 인물.
골덴바움 왕가의 방계 후손으로 작중에서 언급되는 정보를 정리하면 어머니가 루트비히 3세(소설판)/오토프리트 5세(애니판)[1]의 황녀였다. 부인은 보덴도르프 백작부인의 조카딸이고, 태어난지 얼마 안된 딸을 두고 있었다. 이런 혈통으로 인하여 작중에서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고 마는데…….
당시 페잔 자치령이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의 납치를 추진하면서 제국에 은밀히 거래를 위한 교섭을 시도했고, 이러한 페잔의 계획을 묵인하기로 결정한 제국재상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공작과 그의 모사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이 차기 황제후보를 논의 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다만 페크니츠 자작이 아닌, 자작의 생후 8개월에 불과한 딸(…)이 황제 후보로 거론됐다.
그런데 페크니츠 자작은 여타 다른 귀족들과는 전혀 달랐다. 수많은 귀족들이 립슈타트 동맹에 참여했다가 모조리 몰락하는 비극을 맞았음에도 페크니츠 자작은 상아 세공품 수집 이외에는 정치를 포함한 그 어떠한 세상사에 아무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기에 립슈타트 전역과 전혀 연루되지 않은 몇 안 되는 귀족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마침 라인하르트측으로써는 정치적인 부담없이 꼭두각시로 세워두기 딱 좋은 인물인 셈이었다.
다만 페크니츠 자작에게는 사소한 골치거리가 있었다. 바로 상아세공 대금의 일부인 75,000 제국마르크를 체불하여[2] 상대가 민사소송을 걸어놓은 상태였다. 이 분쟁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황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나 일단 상대가 민사를 제기했다는 점을 보면 페크니츠 자작에게서 대금을 회수할 가망이 있다는 의미이고, 무엇보다 페크니츠 자작은 립슈타트 동맹에 가담하지 않은 인물이므로 보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은 귀족이다. 따라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다른 유형의 재산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으며, 상대도 이걸 노리고 압박용으로 민사를 제기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 현물과 같은 형태의 자산이 아무리 많아도 이걸 바로 돈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체불된 것도 상아세금 대금의 전부가 아닌 일부이다. 즉, 덕질하시다가 잔고가 갑자기 빵구나서 생긴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전해들은 라인하르트는 그래도 명색이 다음 황제의 아버지 되실 분인데 그래서야 되겠냐면서 궁내성 예비비에서 소송에서 제기된 비용을 지급하도록 명령했고 큰 마찰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은하제국 정통정부의 발표와 함께 에르빈 요제프 2세의 소재가 명확해지자 라인하르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폐위를 선언하고, 페크니츠 자작의 여식이 다음 황제로 옹립됐다. 이에 따라 페크니츠 자작도 황제의 아버지가 된 만큼 자작에서 공작으로 단숨에 승격됐고 섭정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물론 실권은 라인하르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역할은 그냥 얼굴마담.
하루아침에 공작이 되고 딸이 황제가 되었으나 원래부터 이런 일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았고, 공작이 된 것도 딸이 황제가 된 것도 타의에 의한 일이었기에 남이 멋대로 쥐어준 드높은 지위에 되려 불안감에 떨며 지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라인하르트가 자유행성동맹을 정복하자 은하제국의 황제직을 라인하르트에게 선양해버렸다. 황제 자리를 넘겨준 대가로 페크니츠 공작은 작위, 재산을 포함한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았으며 전임 황제인 딸이 사망하기 전까지 매년 150만 제국마르크의 종신연금을 수령하게 되었다. 오베르슈타인이 참석한 선양선언서에 사인하는 자리에서 그때까지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공작은 연신 손수건으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야만 했고 필요한 절차가 끝나자 비로소 마음을 놓고 자택으로 귀가했다. 이후 언급, 등장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