魏忠賢[간체자:魏忠贤](? ~ 1627년) 심히 간신배다운 모습이다..
1 소개
명을 멸망테크로 몰아넣은 역사상 최강최흉의 환관이자 동시기에 활약한 김자점보다 더한 놈.
명나라 최악의 奸臣
명 4대 암군 시기의 무수한 간신배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존재로, 단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도 제국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산 증인이다. 심지어 조고조차도 그 앞에서 감히 명함을 내밀기 어려워 보인다는 평도 있다. 이름하고 딱 반대로 놀았다고 보면 된다.
몇몇 사람들은 명나라를 망국의 지름길로 이끈 공로(?)에 있어서 만력제가 그냥 커피라면 위충현은 단언하건데 T.O.P라는 말까지 나돈다.
2 권력을 움켜쥐다
풋풋했던(...) 시절의 위충현
본명은 위사(魏四)였다가 이진충(李進忠)[1], 위충현 순서로 개명한다. 하북에 살면서 음주와 도박을 일삼다 결국 처자식마저 내팽개치듯 버리고 고자가 되어 자금성에 환관으로 입성한 막장 인생이었고 일개 필부였기에 궁성에서 살아가는 환관이라는 직책이 요구하는 기본 교양 및 덕목이나 기본지식 따위가 있을리 만무했다. 그러나 아첨 스킬이 만렙을 찍은 까닭에 궁정 인물들로부터 호감을 샀고, 급기야 황태자의 가정교사로 초빙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천계제는 목수질이나 하게 납두고 자신이 직접 정치를 하겠다고 설득한다.
천계제: "쌤, 요즘따라 정치고 뭐고 다 하기 싫고 망치질이나 하고 싶네요."위충현: "그렇다면 정치는 소신에게 맡기소서."
마침내 황태자가 명의 16대 황제 천계제[2]로 즉위했는데, 그는 천계제의 치세 7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온갖 전횡을 휘둘러 명을 급속도로 쇠락시켰다. 학식이라고는 없는 일자무식의 위충현은 그저 황제가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대해온 환관이라는 계기로 벼락출세를 맞은 것이다. 고구도 그렇고 역시 출세는 인맥빨
3 황제위에 내가 있다.
위충현이 본격적으로 명나라 정치에 개입한 시기는 장거정의 후예인 동림당이 천계제의 비호로 대권을 쥐고 전 분야에서 한창 개혁을 펼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에 위충현은 이때부터 동림당을 몰아낼 궁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황제 천계제의 신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야 자신이 무슨 짓거리를 하더라도 황제가 눈감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위충현은 천계제에게 접근해 살살 꼬드기니 대번에 '사례병필태감(司禮秉筆太監)'이라고 하는, 황제를 보좌하며 황제를 대신하여 올라온 상소문에 회답하고 그 의사를 전달하는 역할의 관직을 하사받는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대통령 비서실장 격이랄까. 황제의 측근 중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원하는대로 황제의 최측근이 된 위충현은 본격적으로 동림당 몰아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위충현이 제아무리 혼자 온갖 중상모략을 꾸며도 황제가 명을 하달하여 동림당을 실질적으로 몰아내지 않는 이상은 동림당의 입지는 굳건했다.
그래서 위충현은 천계제의 유모, 객씨(客氏)에게 접근한다. 그녀는 천계제에게 젖을 먹여 키운 일개 유모(乳母)로, 천계제가 어느정도 나이가 차면 더는 필요가 없어지는 팔자였지만 천계제는 어린시절 유모 객씨에 대한 기억이 좋았는지 성인이 되고 황제가 되어도 객씨를 총애하여 그대로 자금성에 머무르게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위충현과 객씨는 나중에 가면 무슨 불륜관계로 발전해버려 둘은 천계제 몰래 간통까지 서슴치 않고 벌인다. 천계제는 이것도 모르고 그저 자신을 키워준 유모랍시고 떠받들고 있었으니... 그런데 위충현은 고자인데 대체 무슨 수로 객씨와 간통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한때 천계제를 키웠다는 공로를 제외하면 그저 한낱 유모에 불과했지만 객씨는 천계제가 총애하는 귀비(貴妃)였다. 이에 위충현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 객씨에게 뇌물을 갖다바치며 천계제에게 말해서 동림당을 음해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객씨는 뇌물 받아먹은 값을 톡톡히 해내어 천계제로 하여금 동림당을 멀리 하도록 하는데에 성공한다.
결국 동림당은 천계제의 배척으로 여러 중요인사들이 실권했고 그 자리는 위충현을 비롯한 엄당(閹黨, '내시당'이란 의미로 동림당 측의 표현) 세력이 대신하여 꿰차게 된다.
이후 그의 전횡은 이루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 일종의 비밀경찰인 동창을 지휘하여 자신의 기반을 탄탄히 굳혀나갔으며, 어리석기 그지없는 황제의 신임을 바탕으로 반대파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다. 또 그는 배운 것은 없어도 상황을 이용할 줄 아는 지모는 뛰어났는데, 당시 조정이 동림당과 엄당으로 분열되어 대립하는 붕당 형국을 아주 기가 막히게 이용해 권력을 강화했다. 그러다 동림당이 정신을 차리고 위충현을 탄핵하자 위충현은 잠깐 물러서는 듯 싶더니 곧 피의 보복을 펼쳐 동림당측 주요 인사 태반을 잡아다 고문하고 죽였다.
동림당을 숙청하여 조정 중신들까지 무릎꿇린 그는 명실상부 독재자로 올라섰다. 황제가 만세 소리를 들으니 자신더러는 구천세 또는 구천구백세라 불러달라고 요구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불렸다(…).[3]
자뻑이 넘치는 나머지 자기 자신을 요순임금에 견준다는 의미로 '요천순덕지성지신'이라는 이명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사당인 생사당(生祠堂)을 세워놓고 세인들로 하여금 참배하도록 했으며, 절하지 않으면 죽였다고 한다.
절강순무로 있는 반여정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위충현의 사당을 세웠는데, 살아 있는 사람을 사당에 모신 생사당이었다! 이것이 삽시간에 번져 북경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위충현의 사당이 세워졌고, 또 어떤 사람은 "공자는 소정묘를 없애고 위충현은 동림당을 없앤다"라고 해서 그를 공자처럼 모셔야 한다고 떠들어 댔다.
4 말년
그 밖에도 수 년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명을 얼마나 말아먹었는지 열거하기 밑도 끝도 없지만 결국 황제의 죽음과 함께 그의 명줄도 끝나게 되었다. 황제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그는 필사적으로 태아 상태인 황제의 아이를 황제에 옹립하려 안간힘을 썼지만,[4] 천계제도 그렇게 무뇌는 아니었는지라 그나마 똑똑해보이는 동생에게 황위를 넘기고 세상을 떴다. 새로 황위에 오른 천계제의 동생 숭정제는 당연히 위충현을 적대했고, 결국 그를 처형하기로 결정한다.
위충현은 유배 도중 도주하려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결국 유배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살했다. 그나마 직접 처형하기는 꺼림칙했던 숭정제가 자살을 명령한 덕분으로, 그 시체는 그를 증오하던 사람들한테 오체분시도 아니고 그냥 생살을 회뜨는 능지형도 아닌 수천 수만 조각 단위로 거의 나노분해되었다. 하지만 이미 명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막장으로 치달아 있었고, 결국 숭정제 재위 도중 농민 반란을 당하면서 명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5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중국드라마 천하에서는 역사상의 사실대로 권력을 쥐고 흔들면서 동창이라는 조직을 이용해 반대파들을 코렁탕을 먹이면서 고문하고 죽이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면서 천계제 앞에선 노비가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오만 아첨을 떠는 건 보너스. 천계제가 죽어가면서 권력을 장악하려다가 함께 짝짜꿍하던 객파파의 배신으로 몰락해 자신의 거세한 생식기가 든 항아리를 들고 조용히 리타이어 하면서 사라진다. 실제 역사에서 나노 단위로 분해된걸 생각하면 너무 편하게 보내준 것 같은 느낌. 그렇다고 드라마 상에서 나노 단위 분해를 보여줄 수도 없었으려나?
- ↑ 대조영(드라마)로 유명해진 거란족장 이진충(李盡忠)과는 중간 글자가 다르다! 이진충과는!
- ↑ 다들 알다시피 바로 이 다음 대에서 명은 멸망한다(…).
- ↑ 전근대까지 누군가를 경축할 때 황제에게만 만세를 불렀고 제후, 왕은 천세, 일반인들은 백세를 불렀다. 위충현이 구천세라고 불린 것은 제후, 왕보다 그 위세가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중국의 책봉을 받았다고는 해도 엄연한 한 나라의 군주였던 조선 왕보다도 높았다고 선언한 셈이 된다.
이보시오 의사양반 고자가 왕보다도 9.9배나 높다니! - ↑ 만약 서양의 경우였다면 위충현의 계획이 먹혔을 것이다. 알폰소 13세 및 샤푸르 2세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