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제

명의 역대 황제
15대 광종 태창제 주상락16대 희종 천계제 주유교17대 의종 숭정제 주유검
묘호희종(熹宗)
시호달천천도돈효독우장문양무정목장근철황제
(達天闡道敦孝篤友章文襄武靖穆莊勤悊皇帝)
연호천계(天啓)
주(朱)
유교(由校).
생몰기간1605년 12월 23일 ~ 1627년 9월 30일(23세)
재위기간1620년 10월 1일 ~ 1627년 9월 30일

1 소개


중국 명나라의 15대 황제. 태창제의 장남. 묘호는 희종(熹宗), 연호는 천계(天啓).

시호는 달천천도돈효독우장문양무정목장근철황제(達天闡道敦孝篤友章文襄武靖穆莊勤悊皇帝).

F4 중 가장 짧게 재위했는데, 7년 동안 목수질만 하다 죽었다. 목수로서의 실력은 수준급이어서 건청궁의 미니어처를 정원에 완벽하게 재현할 정도였다고 하나, 중요한 건 그는 마에스트로가 아니라 명나라의 황제였다는데 있다.[1] 21세기로 대충 비약하자면 젊은 사람이 재벌 총수 자리에 올랐는데 하라는 경영은 안하고 하루 종일 스팀 도전과제 달성하겠다고 컴퓨터 게임에 붙어 있거나 위키에 자신의 철학을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수정전쟁에 몰두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쉽다.

이렇게 된 것에는 가정사 탓이 크다. 어머니 왕재인(王才人)을 죽인 새어머니 이선시(李選侍)가 연루된 이궁안이 벌어진 것.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고. 여하간 만력제 시대의 각목 테러사건인 정격안, 태창제 의문사 사건인 약물 오남용 홍환안, 그리고 이 막장 집안싸움 이궁안이 명말 3대 의안이다. 역시 사극도 막장 드라마가 트렌드

재위 이후에는 환관 위충현(魏忠賢)에게 정치를 모두 넘겼고, 위충현에게 정치를 떠맡긴뒤 취미 생활인 목공일을 하였다. 이후 위충현은 전횡을 일삼아 뇌물이 끊이지 않고 별에 별 막장 짓을 일삼았다, 그렇게 이선시와 결탁한 그 유명한 환관 위충현이 그의 무능함을 이용해 난동을 부리고, 여진족은 요동을 다 장악하고, 농민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그러던 중 천계제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는 데 천계제의 사인은 어쩌다 뱃놀이에서 물에 빠졌는데, 과거정덕제의 죽음을 너무 염두에 둔 나머지 생긴 노이로제.[2]

또한 방사(방술사)의 말을 믿고 옛 금나라 황릉 일대를 파괴했다. 천계제는 누르하치가 저렇기 잘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금나라 황릉의 왕기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여진족의 용운이 아직 끊이지 않았다는 것을 믿어, 풍수를 파괴하고 용맥을 자르며, 왕기를 없앤다는 "신묘한 묘책"을 받아들였다. 그는 군대를 보내 금나라 황릉 지역[3]을 파괴하고 불지르고 뽑은 다음 그 일대 산도 마구잡이로 파헤쳤다.[4] 게다가 천계제는 두 차례에 걸쳐 사람을 보내어 구룡산의 능원을 파괴했는데, 지상, 지하,바깥, 내부까지 금나라 황릉은 모두 파헤쳐지고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지상의 모든 건축물을 철거한 후에, 다시 각 황릉의 지궁을 파헤쳤고, 땅바닥에 흩어진 석주나 난간 같은 건축부자재와 돌멩이로 묘실을 메워버렸다. 이런 방식으로 여진의 왕기를 단절시키려 했으며, 풍수사의 조언대로 금태조의 예릉이 있던 용두에 있는 흙을 파헤쳐서 용머리를 자르고, 용머리 아래에 있는 목부위에도 큰 구멍을 파놓았다. 이것으로도 부족할 것이라 생각하여, 더욱 철저하게 하기 위해 각 황릉이 있던 자리에 관제묘(關帝廟)를 세워 여진의 왕기를 제압하려 했다. 고만해 미친놈들아

또 예릉이 있던 자리에는 고탑(皐塔)을 세웠는데, 그 이유는 관우(關羽)와 남송(南宋)의 명장 우고(牛皐)의 영혼을 불러내서, 명나라누르하치에 대항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염원 때문이었다고 하며, 이는 당시 후금()이 강성해지자 그들의 조상들인 금나라 황제들이 묻혀 있는 곳을 파괴하여 막아보려는 주술적인 의미였다. 물론 이는 같은 여진족인 후금을 빡치게 만들어 침략 원인을 제공하는 최악의 병크였다. 게다가 이 때 건립한 관제묘와 탑은 지금도 남아있는데, 이를 '천계굴릉' 사건이라고 부르며, 이사건은 후세의 고고학자들에겐 큰 골칫덩이를 안겨준 셈이 되었다.근데 문화대혁명 때 어차피 파괴되었을 것 같다.

천계제가 암군이 된 데는 똑같은 암군인 할아버지 만력제의 책임이 가장 큰데, 앞에서도 썼듯이 만력제는 후궁 정귀비를 총애한 나머지 정귀비의 아들인 복왕 주상순을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고 대신들은 장자승계의 원칙을 들어 반대했다. 그런 알력 와중에 태창제가 되는 장자 주상락의 아들인 천계제는 만력제의 관심 밖이었고, 만력제가 죽고 황태손에 봉해지는 16세까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문맹에 가까웠다. 어쨌든 천계제가 이렇게 문맹이 된 것은 결국 만악의 근원 만력제 때문이다. 괜히 명나라는 만력제 때 망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결국 태창제가 재위 29일만에 죽자 천계제는 그 상태에서 황제가 된 것이다. 지못미. 그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인지 나중에 숭정제가 되는 5살 어린 동생의 교육에는 무척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냥 니가 잘하지 그랬냐... 죽으면서 "너는 나보다 재능이 많으니 나라를 잘 다스릴 거다."라고 숭정제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뭐, 보는 눈이야 있었지만, 이미 숭정제가 땜빵해 보려고 하기엔 억만 년이나 늦어버린 상황이라 명은 숭정제 대에서 멸망했다.

그의 황후였던 장황후는 항상 환관의 횡포를 견제한 덕에 숭정제 때 일어난 이자성의 난 때도 끌려나가지 않고 오히려 보호되었다. 하지만 결국 자결했다.

2 기타

  • 중국드라마 <강산풍우정>에서는 영화 <영웅>의 진시황과 <강희왕조>에서 강희제를 맡았던 명배우 진도명이 천계제 역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또 다른 중국드라마 <대명천하>는 천계제 때 위충현과 봉성부인, 천계제의 동생 주유검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암투를 다루고 있다.
  • 희종 천계제의 재위기간은 조선 광해군(재위 1608~1623)과 인조(재위 1623~1649)의 재위기간과 겹친다. 인조도 천계제만큼은 아니지만 무능하긴 매한가지.
  • 로마 제국의 콤모두스와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황제로서는 부적합하지만 이들이 했으면 매우 적합한 직업이 있었다는 점이다. 천계제는 황제로서는 부적합했으나, 목수로 태어났으면 대성했을 인물이고 콤모두스 역시 황제로서는 부적합했지만 검투사로 태어났으면 대성했을 인물이었다. 다만 인간말종이자 로마사 최악의 암군이자 폭군에 이름을 올린 명성높은 콤모두스와 달리 천계제는 인간으로서는 괜찮았기에 대우가 좋은 편이다.
  1. 송휘종과 함께 천부의 재능이 있었으되 재능을 살리는 직업 대신 엄한 직위를 갖게 돼서 자신과 나라를 함께 망쳐버린 케이스. 당시 시대적으로 목공일은 시시한 취미가 아니라 돈벌이가 잘 되며 젊은이들 사이의 유행이고 높은 평가를 받던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황제가 할 일은 아니긴 하다. 자세한 건 이 글을 참조. 루이 16세 항목도 함께 참고.
  2. 왕공창 대폭발 후유증으로 병사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때는 유일한 아들인 헌화태자가 요절했고 본인도 거의 기절초풍한 상황이었다.
  3. 여담이지만 이것을 만든 사람은 해릉양왕. 해당 항목 참고. 이쪽은 명나라 F4 개개인을 능가하는 훌륭한 막장이다. 연속으로 4명씩이나 나오는 일이 없어서 망정이지.
  4. 물론 예전에 이 멸망할 때 몽골군들이 마구잡이로 도굴했기 때문에 딱히 남아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중국 통일 후에는 같은 민족으로 보고 복구를 해서 원나라 때는 명소 중의 하나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