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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삼성 블루팡스 No.7 | |
유광우(柳光祐) | |
생년월일 | 1985년 4월 22일 |
출신학교 | 서울인창고등학교 - 인하대학교 |
포지션 | 세터 |
신체사이즈 | 신장 184cm, 체중 86kg |
소속팀 | 대전 삼성 블루팡스 (2007~) |
응원가 | 이전 : 장윤정 - 올래[1][2] 현재 : FT아일랜드 - 멋쟁이 vs 예쁜이[3][4] |
11-12, 12-13, 13-14시즌 V리그 세트 1위 | |||||
한선수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 → | 유광우 (대전 삼성 블루팡스) | → | 베스트 7으로 변경 |
14-15 KOVO V-리그 남자부 베스트7 세터 | |||||
최초 시행 | → | 유광우 (대전 삼성 블루팡스) | → | 한선수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
삼성화재를 이끄는 남자 vs 용병한테 올리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뻥광우
1 소개
대한민국의 남자 프로배구 선수이다. 소속 팀은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이며, 포지션은 세터이다.
2 프로 입단 전
서울인창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동기인 임시형과 함께 인하대학교에 입학했다. 인하대 입학 직전에 열린 2003-04 V-투어 대학부에서는 뛰지 못했는데, 이는 예전 슈퍼리그때도 그랬지만 일반적으로 3월 개강인 학교와 달리 11월 즈음에 개막하던 슈퍼리그때 대학 입학 예정인 고교 졸업반 선수를 원소속팀의 동의하에 미리 뛰게 해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유광우는 당시 경기대학교 라인인 인창고 출신 선수였음에도 경기대 진학을 거부하고 인하대로 갔기 때문에 인창고로부터 이적동의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5]
이렇게 2003-04 V투어를 쉬고 2004년 봄에 정식으로 인하대학교에 입학한 유광우는, 권영민이 졸업 후 현대캐피탈로 입단한 후 다소 취약했던[6] 인하대 주전 세터 자리를 꿰차고 선배인 구상윤, 김민욱, 최귀동, 동기인 김요한, 임시형, 후배인 최귀엽, 정기혁, 김태진(개명 후 김시훈) 등 쟁쟁한 멤버들과 함께 인하대학교를 대학부 최강으로 이끌었다. 인하대학교의 강력한 대항마는 하현용, 임동규, 문성민, 신영석, 황동일, 강영준, 한상길, 곽승석 등이 있었던 경기대학교 정도. 당시는 성균관대와 한양대의 위세가 예전만 못했기 때문에 김요한과 문성민이 버틴 경기대와 인하대가 양강구도를 형성했고 유광우 재학 때는 인하대가 우위를 차지했었다.
3 프로 시절
남자부 드래프트는 2006-07시즌 입단 선수들부터 확률 추첨제를 시행하였는데 유광우가 참가한 2007-08시즌 드래프트까지는 우승 팀을 제외한 세 팀에게 확률 추첨권을 부여하였다.(4위 50%, 3위 35%, 2위 15%)[7] 확률 추첨에 따라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김요한을 지명했고, 삼성화재가 2순위를 잡는 행운을 얻어 유광우를 지명하는 데 성공했다. 문용관 당시 대한항공 감독은 인하대학교 배구부 감독으로 재임하던 때 세터로 키워 왔던 유광우를 지명하고 싶어했지만, 결국 삼성화재의 지명을 받게 되면서 그 차선책으로 한양대학교의 세터 한선수를 지명하게 됐다.
그러나 유광우는 초반 두 시즌 동안 코트에서 볼 수 없었다. 물론 최태웅의 백업으로 뛰어야했기도 하지만 이 무렵 발목 상태가 좋지 않아서 수술을 받았는데 오진이 나오는 바람에 여러 차례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선배인 최태웅도 똑같이 고생한 그 발목이라서[8] 자칫 선수 생활이 끝날 위기를 맞았지만 뼈를 깎는 재활 끝에 유광우는 2009-10 시즌에 코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편으로 이때의 수술 때문에 병역이 면제됐다.
2009-10 시즌이 끝난 뒤 주전 세터였던 최태웅이 박철우의 FA 보상 선수로 지명되어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 이적하면서 유광우는 주전 세터가 되었다. 그러나 2010-11시즌 삼성화재는 석진욱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는 등 흔들리면서 한때 최하위까지 추락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유광우도 그 중심에 서서 많은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가빈 슈미트와 찰떡 궁합을 과시하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후로도 변함없는 활약을 이어가면서 연속 우승에 큰 몫을 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과는 인연이 먼 편.
2013-14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은 그가 삼성화재에 남을 지 다른 팀으로 이적할 것인지에 배구 팬들은 주목했으나 1차 협상에서 일찌감치 재계약했다. 심각한 부상을 당해 선수 생활의 기로에 선 자신을 끝까지 기다려 준 구단에 대한 고마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여기에 다른 팀으로 갈 경우 철저한 몸 관리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계산도 있었다. 유광우가 지금까지 뛰고 있는 것은 삼성 트레이닝 센터의 힘이 크다고 할 정도이니.
2014~2015 시즌을 준우승으로 마친 후, 국대 감독이 된 문용관의 부름을 받고 오랜만에 대표팀에 승선하였다. 그리고 월드리그에서 허리 부상이 있던 이민규의 대타로 프랑스전에 주전 출전하였지만 라이트 백토스는 공격이 불가능할 정도로 춤을 췄고 세팅이 잘된 다른 토스들도 속도가 느린 관계로 상대 팀 블로커들을 따돌리지 못하여 국내에서의 이름값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배구 팬들은 유광우의 백토스를 받으면서도 큰 불만을 드러내지 않던 박철우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그나마 차출도 고질적인 발목 문제로 인하여 전체 12경기 중 8경기에 그쳤다.[9]
4 그의 별명 뻥광우
몰빵배구로 악명이 높은 삼성의 주전세터이니만큼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70~80%가 넘어가는 외국인 선수의 점유율을 위해 계속해서 토스를 뻥뻥 올려대는 그 모습을 빗대어 뻥광우라는 별명이 붙었다. 외국인 선수가 지친 모습이 역력한대도 계속해서 토스를 올리고 경기 후에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015-16시즌 11월 1일 한국전력전에서 11-14로 앞선 상황에서 그로저한테 내내 뻥토스를 올리다가 역전당해 져버렸다. 보통 저 상황에서 속공이나 페인트 하나만 섞었어도 경기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미 외국인 선수에게 올리는 것 이외에는 머릿 속에 없었던 듯하다. 당연하게도 경기 이후 배구 갤러리는 터졌다.
좋은 선수가 되었어야 할 그가 외국인 선수한테 토스밖에 할 줄 모르는 거세된 반쪽자리 선수가 되버렸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팬들이 많다.
반삼성화재성향이 강한 배구갤러리에서의 별명은 광우병,[10] 기생충,[11] 싸이코패스[12] 등 좋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 올~려 올~려! 유광우 입맛대로 올~려올~려! 유!광!우!
- ↑ 삼성 라이온즈의 배영섭 응원가도 동일.
- ↑ 너무나 멋져! 멋져! 멋져! 최~강삼성 유광우 멋져~! (X2) 너무나 설래! 설래! 설래! 최~강삼성 유광우 설래~! (X2)
- ↑ kt wiz 이대형 선수와 응원가가 같다. 응원단장이 같은 팀이여서 그런 듯.
- ↑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은 2년 전 인창고 리베로 곽동혁이 경기대학교가 아닌 한양대학교로 진학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인창고와 경기대의 연결 고리는 사실상 끊어진 상태.
- ↑ 2003년의 주전 세터는 김영래였다.
- ↑ 확률 추첨제는 2008-09시즌부터 참여한 신생팀 우리캐피탈(현 우리카드)에게 두 시즌 우선 지명권을, 준프로화한 한국전력에게는 한 시즌 우선 지명권을 부여한 뒤 우승 팀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에게 확률 추첨권을 주었고, 2010-11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한 팀들만을 대상으로 확률 추첨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2011-12시즌 드래프트부터는 그대로 성적 역순에 따라 지명권을 주었으며 2014-15시즌 드래프트에서 다시 확률 추첨이 부활했다.
- ↑ 이 때문에 최태웅과 똑같이 발목 부상으로 퀵니스를 잃어버리고 토스 자세가 흔들리면서 오픈토스 구질도 나빠지는 등 기대만큼 성장하진 못한 케이스.
- ↑ 모든 홈경기와 그나마 가까운 일본 원정만 나갔으며, 마지막 4경기가 프랑스, 체코 원정이라는 장시간 비행이라 빠진 듯 하다. 그리고 그 대타는...
- ↑ 외국인 선수에게만 토스를 올리는 병에 걸렸다는 뜻이다.
- ↑ 외국인 선수에게 기생해서 우승했다는 뜻이다.
- ↑ 외국인 선수가 주저앉아도 그 위로 공을 올리는 모습에서 생긴 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