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우(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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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No.3
박철우(朴哲佑)
생년월일1985년 7월 25일
출신지경상북도 구미시
가족관계배우자 신혜인, 장인 신치용
출신학교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명지대학교[1]
포지션라이트윙
신체사이즈신장 199cm[2], 체중 89kg
점프 높이스파이크 높이 332cm, 블로킹 높이 319cm
소속팀현대캐피탈/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2004~2010)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2010~현재)
응원가DJ DOC - 나 이런사람이야[3]
2008-09 V-리그 MVP
안젤코 추크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박철우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가빈 슈미트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2006 KOVO컵 프로배구 MVP
대회창설박철우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장광균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2008 KOVO컵 프로배구 MVP
장광균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박철우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장병철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1 소개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라이트윙. 배구판 트리플 H 1호기[4] 현재는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왼손잡이 공격수로 김세진의 뒤를 이을 거포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별명은 기린, 땡칠이, 사위.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서 2004년 데뷔해 2010년 삼성화재로 FA 이적을 했는데 그 배경에 전 신세계 쿨캣농구 선수 신혜인[5]과 연인 관계였던 것이 드러나서 유명하다.

국내 날개공격수중에서는 탑클래스인 199cm의 장신에 높은 타점을 이용한 공격이 특기인 거포형 스파이커. 위 짤방에도 나와있고 박철우의 경기중 스파이크 장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스파이크때 항시 몸이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어지고 팔이 최대한 높은쪽으로 가는 극단적으로 위로 뻗는 타법임을 알 수 있다. 거의 투수 김광현을 보는 듯한 오버핸드 스파이크 타법. 이런 스파이크 스타일때문에 높은볼 처리능력이 좋다. 다른 선수면 타점을 맞추지 못해서 강제로 스파이크가 밀리면서 홈런볼이 될 토스를 억지로 코트 안으로 내려꽂을 수 있다는 것. 이때문에 토스가 높은 편이었던 현캐시절 송병일과 호흡이 꽤 좋았던 편으로 송병일과 호흡을 맞춘 삼성화재전에서 신들린 강타로 역전승을 일구어낸 적도 있다.

이런 극단적 오버핸드 스파이크 타법때문에 약점도 있는데 토스가 낮거나 너무 빨리와서 타점에서 좌우로 흔들리면 되려 처리하기 어렵게 되는 자세문제와 함께, 극단적 오버 핸드 특성상 좌우로 비틀어서 터치아웃을 노리는 손목 스킬이 떨어지기 때문에 스파이크 코스를 읽히거나 토스가 낮으면 그대로 블로킹에다 벽치기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대표적 별명인 벽철우가 이것때문에 붙은 것. 또한 스파이크 서브 올리는 토스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뻘미스나 똥볼서브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국가대표 선배인 김세진에 비하면 세세한 테크닉이 부족하고 건강문제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점이 조금 아쉽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토종 공격수중 1명이다. 특히 국내 공격수중 최고수준의 사이드블로킹 높이덕에 중요한 순간 블로킹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점은 보너스.

2 선수 생활

2.1 현대캐피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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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생으로 김요한과 나이상 동기지만, 프로 데뷔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그가 고졸 자격으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판에서는 20년 전 경북사대부고에서 럭키금성(현 KB손해보험)으로 직행한 김찬호 현 경희대 배구부 감독에 이어 2번째인 고졸 현역 데뷔 선수. 가난한 집안 사정과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대학-실업 간 선수 수급에 대한 합의 등이 없던 상황을 이용해 당시 현대캐피탈 감독이자 주로 부정적인 쪽으로스카우트의 귀재인 송만덕의 아이디어로 프로행을 선언, 초고교급 대어였던 박철우를 잡기 위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모두 계약을 시도했고, 경쟁의 승리자는 현대캐피탈이 되었다. 학교 지원금(공식적으로 명지대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케이스)을 포함해 총 계약금 8억 원을 받고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이것이 대학연맹과 실업연맹 간 갈등 악화를 부채질했고, 결국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정상화되었을 때 대학배구연맹은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프로 연맹에 요청해 공식적으로 명문화되었다.[6]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주도한 당시 현대캐피탈 송만덕 감독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방신봉의 항명 파동으로 인해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사실상 해임되었다는 것.[7]

데뷔 시절 후인정의 백업으로 시작하였으나 생각보다 빨리 팀의 주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2007년에 기흉을 3번이나 앓으면서 폼을 잃었다.[8] 국가대표 발탁 기회도 은근 운이 따르지 않아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때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요한, 문성민대한민국 배구계의 미래를 이끌 재목으로 등장하며 금메달 획득으로 일찌감치 군 문제를 해결했으나, 박철우는 그 기회를 놓쳤다.

2008-2009 시즌에 기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폼을 잠시 잃긴 했지만, 중요한 경기에서는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소속 팀이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당시 현대캐피탈로서는 박철우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맡겨서 현대캐피탈을 '철우캐피탈'로 불리기도 했었다. 이 시즌 정규리그에서 역대 최고의 공격 성공률인 55.32%를 기록하며 공격상과 함께 정규 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2009년 9월,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이상열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했던 흑역사가 있다. 이례적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선수 구타 관행이 재조명되며 대한체육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하지만 실효성은(...) 그 때 배구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났고, 이상열 코치는 '무기한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 이상열 코치는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없으나 KOVO 경기 감독관으로는 활동할 수 있었는데, 징계가 슬그머니 풀려서 경기대 배구부 감독으로 복귀했다. 하긴 전임 이경석 감독도 비리 문제로 물러났다가 은근슬쩍 복귀한 전례가 있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2010 시즌 중이었던 2010년 1월 30일에 LIG와의 천안 홈 경기에서 무려 50득점을 올리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는 2014년 현재도 국내선수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 문제는 이 날 경기가 5세트 도중 방송이 끝났다는 안습함이 ㅠㅠ

이렇게 현대캐피탈 시절에는 경기당 20~30점을 올려주며 팀의 주공격수로 활약, 원체 센터진이 좋았던 팀에 2000년대 들어 뭔가 아쉬웠던 날개 공격수 한 자리를 든든히 지켜 주며 팀의 간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2.2 삼성화재 시절

2010 오프 시즌 때 FA를 선언하여 삼성화재로 이적했다.아버님!!! 현대캐피탈은 세터 최태웅을 박철우의 보상 선수로 지명했고, 최태웅은 5년 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현대캐피탈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0년 12월 4일 V리그 개막전에서 친정 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주전으로 나왔다. 포지션은 현대에서 뛰었을 때처럼 라이트. 가빈이 레프트[9]로 옮겼지만 정작 몰빵이 중요한 순간에 신치용 감독은 박철우를 교체시키고 가빈을 중용했다. 몰빵에서 라이트가 레프트에게 밀리다니!! 안습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거나 정줄 놓는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어서 비록 개막전 경기에서는 현대캐피탈이 완패를 당했지만, '경기 중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박철우가 정줄을 놔버려서 현대캐피탈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진 현대 팬들이 많아졌다.

다만, 신치용 감독은 선수들이 서브 실수할 때 김호철 감독과는 다르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감독이라서 그런지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서브는 마음 편하게 하는 듯.

단순히 4일 개막전 경기만 보면 오로지 가빈에게만 공격이 가면서 리그 후반에 체력부족에 시달렸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에는 박철우가 있기 때문에 초반 1,2세트에는 박철우와 가빈이 공동으로 공격을 맡고 중요한 순간에는 박철우를 빼고 수비에 능한 레프트를 투입, 가빈을 라이트로 전환시켜 닥치고 가빈 모드로 돌릴지도 모른다. 박철우는 단순히 가빈 체력보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박철우는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기흉을 앓아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었고, 특히 2007년에는 3번이나 기흉 수술을 받아 폐활량이 많이 떨어진다. 이를 반영하는지 가빈 몰빵 모드는 2009-2010 시즌에 이어 2010-2011 시즌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무, LIG와의 경기에서 완벽하게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상무와의 경기에선 범실도 많고 가빈에 비해 안정감을 실어 주진 못했지만 어쨌든 27점이나 올려 줬다. 하지만 LIG경기에선 6득점에 그쳤고 아예 2세트에는 나오지 못했다. 더욱 안습인 것은 작전타임 때 장인어른 신치용 감독에게 이름도 제대로 못불리고 '야 임마!!'라고 불리며 유광우와 함께 뒤지게 까였다. 여담으로 그 상황에서 신치용 감독은 세터 유광우에게 "아마추어나 하는 플레이를 하냐?" 라며 깠다.

2라운드에서 다시 LIG를 만났는데 이 때 그가 얻은 점수는 1점! 3억 연봉을 받는 선수가 한 경기에서 이런 점수를 낸다면 이건 잘못되어도 보통 잘못된 게 아니다. 한 마디로 배구 FA 최초의 먹튀 사례를 만들었다는 것 말고 할 말이 없다. 더 기가 막힌 건 그나마 얻은 1점도 다이렉트 킬이기 때문에 공격 성공률은 0%이었다는 것! 2010년 1월 25일 열린 우리캐피탈전에서도 또 한 번 1경기 1점을 올렸다. 정규 시즌에 1점을 기록한 경기가 두 번이 되었다. 이거 해결사 맞아?


2011년 9월 3일, 신치용 감독의 딸로 알려진 신혜인과 결혼하게 됐다. 스포츠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해피엔딩으로 결말졌다. 하지만 시즌 중에는 장인어른한테 주구장창 깨지겠지. 그런데 신치용 감독에게 장인을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감독님이라 부르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적어도 박철우가 은퇴하기 전까지 아니면 신치용이 삼성 감독을 그만둘 때까지는... 그런데 그렇게 된 건 신치용 감독이 박철우에게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서 그런다고. 사실 이건 신치용 감독이 잘 한 것이다. 사석에서야 장인-사위지만, 선수단에서 있을 때는 공적인 자리인만큼 되도록이면 서로의 지위에 맞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10]

그런데 박철우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문제가 있으니 바로 군 문제. 기흉장동건 때는 면제 사유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아닌지라 병역 의무를 필해야 한다. 군대 문제 때문에 늦은 나이에 입대한 후 사그라든 선수들의 예를 봤을 때[11] 염려가 되는 게 사실이다. 본인이 건강 문제에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이가 태어났으니 한선수처럼 상근예비역으로 빠질 확률이 높긴 하다.

게다가 가빈 슈미트와 레오나르도 '레오' 마르티네스로 이어지는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을 많이 내준 탓인지 공격감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정규시즌에도 박철우의 비중은 적어졌고, 설령 공격을 해도 벽치기가 잦아서 벽철우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2013 KOVO컵에서도 그 현상은 여전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팀 공헌도가 박철우보다 객관적으로 높은 여오현보다 많은 돈으로 FA 재계약을 했는데, 연봉이 무려 3억 3,000만 원이었다.[12]

또한 소속 팀에서의 안습한 위치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에서도 서서히 발탁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2011년 박기원 감독이 국가대표를 맡은 이후 박철우보다 더 젊고 더 유용한 김정환이 발탁되는 경우가 많아졌고[13] 현재는 아예 김정환이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윙으로 고정된 상태나 다름없다. 아니 사위가 어찌 그렇게 됐는고?

2013-2014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올린 점수에 비해 인상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여줬다. 특히 4차전에서 1세트에 팀 동료 이선규와의 충돌을 가지고 신경질을 내던 아가메즈와 언쟁을 벌인 다음 아가메즈의 스파이크를 단독 블로킹으로 깨끗하게 막아낸 장면과, 3세트 23:22로 앞서는 상황에서 아가메즈의 공격을 두 번 연속 블로킹해 내 결승점을 딴 장면은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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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대결에서 아가메즈의 공격을 깨끗하게 막아내는 장면.

이렇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 우려가 많았지만, 2014년 월드리그 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주포로 자리잡게 됐다. 박철우 이외의 날개 포지션에는 서재덕, 전광인, 송명근 등 후배들이 리시브를 잘 받아 주며 박철우는 공격에 전념할 수 있게 되면서 20점대 중후반 대의 득점을 올리는 경기가 많아졌다. 몰빵으로 영원히 고통받는 전광인에 이어 147점으로 팀 내에서 2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이걸 보고 다수의 배구팬들은 박철우의 활용을 제대로 안 하는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과 유광우 세터를 까고 있기도 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지만, 준결승 일본전에서 패해 결국 군대 확정.... 2014년 10월 23일로 입소일이 찍힌 입대 영장이 아시안 게임 이후 통지됐다고 한다. 삼성화재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런데 행정절차 때문에 입소일이 2014년 11월 27일로 연기된 상태. 이유인즉슨 박철우가 오프 시즌 동안 주소지를 팀 숙소와 전용 체육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근처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주소지 변경 때문에 관할 병무청이 변경되어 박철우의 입소 날짜를 다시 세팅하게 되었으며, 일과를 마치고 팀 훈련장에서 훈련하기 위한 취지로 추측된다. 2014년 11월 25일 대전 홈 경기를 끝으로 입대했다. 이후 기초 훈련을 마치고 수원 권선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한편 박철우가 입대한 후에도 삼성화재의 2014-2015 시즌은 그럭저럭 굴러갔다. 김명진, 황동일 등이 돌아가면서 공격 부분을 메워주고는 있다.[14]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화재가 OK저축은행에게 속절없이 시리즈 스윕 패배를 당하면서 박철우의 능력이 재평가되었다. 이제는 벽철우, 사위라고 놀리지 않겠습니다. 제발 돌아와 주세요. ㅠㅠ 국방부 시계가 빨리 돌아갈거라고 생각하냐? 더구나 오랜만에 국대에 복귀한 소속 팀 주전 세터 유광우의 라이트 백 토스가 충격적일 정도로 엉망이어서 그 토스를 받고 공격했다며 다시 재평가. 리그 상위권의 사이드 블락 능력에, 많이 죽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좋은 박철우의 공격력은 그가 사라지자 그 공백을 충분히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2015-2016 시즌, 세계 최고 소리를 듣던 그로저가 라이트 자리에서 뛰면서 식물소리를 들을 정도로 폼이 올라오지 않자 역시 다시 박철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 지고 있다. 단 주의할 점은, 그로저의 명성에 비해 효율이 안나오는 것이지 객관적인 성적이 나쁜 것은 아니다. 몇경기만에 득점 1위를 할 정도로 점유율도 높고, 공격 성공률또한 용병 중 3위정도를 할 정도로 괜찮은 편이다. 서브는 현재 1위를 기록중.

그가 입대한 후 장인은 시즌을 마치고 팀의 단장으로 인사이동하면서, 소집 해제 후에는 더 이상 장인과 경기에 나서지 않게 됐다.
  1.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 데뷔를 했기 때문에 명지대학교 소속으로 뛰지는 않았다.
  2. 이건 착화신장이고 맨발키는 196-7cm정도라한다.
  3. 나 이런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난 박철우야~ 최!강!삼!성!박!철!우!(x 2)
  4. 2호기는 우리카드의 최홍석. 최홍석의 장인은 現 상무 배구단의 감독인 박삼용이다. 고로 두 선수 다 장인이 배구 감독이다.
  5. 이 열애설이 더 유명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혜인의 아버지가 삼성화재의 감독인 신치용이기 때문이었다.(어머니는 농구선수 전미애) 그래서 그가 현대캐피탈 소속이던 시절에 많은 이들이 이들의 연인 사이를 배구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비유하기도 했으며, 배갤에서의 별명이 무려 사위(...)다. 그리고 박철우가 삼성전에서 유난히 부진한 것을 보며, 장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런다고 많이들 깠었다. 박철우가 FA로 이적하면서 사위와 장인이 한 팀으로 뭉쳤다.
  6. 이후 2013년 드래프트부터 이 조항이 삭제되어 고교졸업 예정 선수들도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에 따라 지명된 선수가 송림고등학교 졸업 후 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정지석이다.
  7. 사실 박철우의 고졸 프로 진출보다 더 파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90년대 초반 중학교 졸업 후 럭키화재에 입단했던 이상욱. 그러나 이상욱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1994-1995 슈퍼리그 직전 슬그머니 방출되었다.
  8. 여담으로 훗날 부인이 되는 신혜인부정맥 판정을 받아 심장 수술을 받고 은퇴하고 만다.어째 운동선수 부부끼리 하나씩 부실한 파트가 있냐
  9. 명목상 레프트일 뿐이지 실제로 레프트 공격수가 받아야 할 대부분의 리시브는 가빈의 대각에 서 있는 석진욱이나 신으뜸이 담당했다.
  10. 비슷한 예로, 최고참급 현역선수가 코치보다도 나이가 많으면 코치를 존중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예. 김병지, 박찬호)
  11. 손석범이라든가, 윤관열이라든가, 백승헌이라든가... 이들은 모두 공익으로 복무한 후 복귀했지만 결국 은퇴했다. 여기에 신영수, 김학민, 한선수도 이 리스트에 다행히 신영수는 공익으로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후 예전 감각을 잃지 않았다. 덤으로 팀의 주축으로 2013-14 시즌부터 팀의 주장을 맡았다. 하지만 한선수일본에게 덜미를 잡혀 2015년 전역 확정.
  12. 이것이 화근이 되어 FA가 된 여오현이 삼성화재로부터 2억 6천만원을 연봉으로 제시받았는데, 여오현은 이를 거부하고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연봉 2억 9천만 원에 3년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여오현은 KOVO컵에서 여실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현대캐피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13. 김정환은 소속 팀과 국가대표팀에서 거의 노예급으로 굴리긴 하지만 아직까지 큰 부상이 없다. 다만 V-리그의 대표적인 노안 선수라 얼굴이 폭삭 늙고 있어서 팬들이 안타까워한다 카더라. 또한 라이트 치고 서브 리시브 능력까지 출중해 당장에 리시버가 아쉬운 국가대표팀으로서는 정말 중요한 자원이다.
  14. 다만, 김명진은 시즌 중 부상으로, 그리고 황동일은 변칙적인 더블 세터 시스템이란 옵션으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