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선(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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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敎善
1905년 4월 23일 ~ 1970년 2월 14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송암(松巖)이다.

1905년 경기도 안성군에서 태어났다. 5년제 중동중학교, 일본 도쿄 릿쿄대학 경제학부 상학과, 미국 뉴욕대학교 상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경성법학전문학교(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강사를 역임하였다.

8.15 광복미군정 장관비서, 민정장관 보좌관을 역임하였다. 1948년 서울대학교 부총장이 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기도 안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2년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자유당에 입당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오재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자유당을 탈당해 민주국민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자유당 오재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참의원(경기도)에 당선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인 1963년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경기도 안성군-용인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서상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서울 중동고등학교 재단이사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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