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용 공금횡령 누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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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1996년 11월 뽀빠이 아저씨군대 위문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로 널리 알려진 코미디언 겸 MC 이상용정치보복의 일환으로 심장병 어린이 수술기금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구속된 사건.

2 사건개요

당시 이상용은 군인 위문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로 전국민적 인기를 얻으면서 그와 동시에 사회봉사와 모금활동에 꽤나 열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한 연예인이었다. 아마 2000년대로 치면 김장훈 정도는 될 것이다. 1996년 당시 이상용은 심장병 어린이 치료를 위한 기금을 모금받으면서 방송활동을 하고 있었다. 아마 80년대 세대라면 95~6년쯤 TV에 심장병 어린이 모금 광고가 자주 나왔다고 알 것이다. 사실 이 사업은 80년대부터 또한 이순자가 했던 일이긴 한데, 아무래도 하던 사람이 사람[1]인지라 퇴임후 사그라들뻔한 걸 이상용씨가 계승한 것이다.

그러나 96년 11월 우정의 무대 녹화 도중 갑작스럽게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들이닥치면서 불 꺼 라고 외쳤다고 한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일단 녹화는 중단되었는데, 갑작스럽게 경찰이라면서 심장병 어린이 기금 횡령 혐의로 수사를 한다는 것이었다.[2] 이 사건은 KBS에서도 떠들썩하게 나와서 나중에는 방송, 전 언론이 "뽀빠이 아저씨 횡령" 을 주제로 뉴스가 나오고 기사를 쓰고 불이 붙을 지경이었다.

사실 이상용씨가 주로 하던 공연 행사때 저질개그...[3]일이 좀 있어서 저 사건이 나자 그런 일화까지 들먹이면서 사회적으로 매장된 것. 지금같으면 당장 인터넷 논객들이 벌떼처럼 몰려들만큼의 일이긴 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우정의 무대는 김병조로 진행자를 바꾸어 근근히 유지되다가 1997년 3월을 끝으로 중단, 이상용은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하고 방송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후에는 몇년정도를 방송에도 못 나오고 관광버스 가이드 등 일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때 크나큰 상심으로 시력을 잠시 상실하신적도 있다고 한다 이때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스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한편, 김병조는 <우정의 무대> 이상용 후임 진행자로 발탁되어 95년 2월 28일부터 메인 MC를 맡았던 SBS 코미디 전망대에서 96년 가을개편 때 하차했다[4].

3 밝혀진 진실

체포 이후 1997년 2월에 바로 무혐의 판결이 나왔다. 단 3달만에 검찰에서 혐의점을 찾을 수가 없어서 기소도 하지 않고 무혐의로 풀려났다. 결국 이상용씨의 횡령혐의는 누명을 쓴 것이지만 신문이나 뉴스 등에서 정작 뽀빠이 아저씨 횡령기사는 수도 없이 썼으면서 무죄판결 기사는 별로 쓰질 않았고 어처구니 없게도 누명의 원인인 추적 60분은 후술할 이상용씨가 자신의 누명은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에 추적 60분이 이상용을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을 걸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상용이 소송을 건것이 아니라 추적 60분이 명예훼손소송을 걸었다 거기에 제작진은 "이씨의 주장은 최근의 정치사회적 상황[5] 을 교묘히 이용해 재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망언을 퍼부었다. 재벌들도 집행유예 판결에 수년씩 걸리는걸 생각해보면 이상용은 빌 게이츠급 대부호인가 보다 이 때문에 죄는 없지만 평판이 생명인 방송계에서 이상용씨는 방송 활동이 사실상 금지되었다. 당장 이상용씨가 출연하던 우정의 무대는 무혐의로 풀려날 즘에는 마지막 방송을 녹화하고 있었고 이상용씨의 아버지는 이상용의 무고함을 알리려고 무죄판결문 돌리다가 돌아가셨고, 이상용씨 자신도 방송출연을 못해서 미국에서 가이드로 일하다가 일시적으로 실명까지 겪고 자살시도도 하는 등 공중파 방송의 메인MC라고는 믿기 힘들정도로 처절하게 몰락했었다. 그 후 10년이 지난 2008년에 공중파에 복귀했지만 현재까지도 이상용이 횡령을 저질러서 방송에 못 나오는 줄 아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이상용은 이것 때문에 여전히 무죄판결문을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이 횡령누명을 씌운 사람이 누군지 논란이 되었는데 일단 추적 60분은 부산에 사는 K씨의 제보로 방송을 내보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도 의혹이 없어서 3개월만에 무혐의를 내렸는데 추적 60분이 한사람의 제보만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누명방송을 내보냈는지 논란이 되었다. 이상용씨는 이를 두고 정치보복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상용씨는 무혐의선고 직후인 97년 3월 24일에 대전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이상용씨는 당시 대통령 김영삼의 아들인 김현철측에서[6] 이상용에게 대전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도록 권유했는데, 원래 이상용은 정치계에 관심이 없었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7]인 이상용이 1980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할 때 교황에게서 받은 "어린이를 도우며 어린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라. 단, 정치에는 절대 관심을 두지 말라."는 조언에 따르기 위해 이상용은 이 출마 제안을 거절했는데. 이에 김현철이 자기 말을 무시한 것에 화가 났는지 마침 이상용씨가 심장병 어린이 기금도 모으고 있겠다 해서 추적 60분에 공금횡령누명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게 하고 방송 3일전에는 김현철의 최측근인 박태중[8] 협박전화까지 했다는게 이상용씨의 주장이다[9]. 실제 김현철은 97년 3월12일 국회 문화체육공보위원회에서 KBS와 MBC의 사장 인사에 개입하고 방송국의 막후로 활동한다는 추궁을 받았고 누명방송 당시의 추적 60분의 담당 프로듀서는 김현철의 친구였다고 본인입으로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김현철이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고, 만약 김현철이 누명을 씌웠다 하더라도 당시 권력의 핵심이던 김현철이 일개 방송인 하나 매장하는 사소한(?) 일을 직접 벌였을리는 만무하고[10],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 공소기간이 지나서 소송을 거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니, 김현철의 사주였든 이상용의 오해 혹은 거짓말이였든 누가 양심고백이라도 하지않는 한 진실은 저너머에 가버렸다. 김현철 본인도 이 사건에 대해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그나마 2010년 8월 24일 KBS에 나와서 이야기를 한 덕분에 이후로는 이상용의 억울한 이야기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2012년 3월 30일에 토크쇼 노코멘트에 게스트로 등장해 방송 후반부분에 해당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567명의 심장병 어린이를 치료하는데 든 비용이 총 74여억 원으로 그중 상당금액을 이상용이 부담했다고 한다. 당시 수술비용은 1800만 원이었는데, 이상용의 집은 1/3밖에 안되는 600만 원이었다 한다. 안타깝게도 그중 현재까지 연락되는 이는 2명 뿐이라고 한다. 이상용 본인도 서운해 하며 연락을 바란다고 이야기 했다.
  1. 이순자가 좋은 의도로 그랬으면 얼마냐 좋겠냐만 장영자, 이철희 사건을 통해 드러났듯이 새세대육영회와 새세대심장재단 등의 이순자가 세운 복지단체는 온갖 검은 돈의 온상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으며, 6월항쟁 이후 5공비리 조사 과정에서 모두 실제로 드러났다. 전두환이 현역 장군이던 1970년대부터 각종 개발정보를 사전에 빼내서 땅투기로 막대한 재산을 불린 복부인 1세대, 연희동 빨간 바지다운 행적(이순자는 연희동 빨간 잠바). 그외의 추문도 상당해서 심지어 영화배우 장미희를 남편이 노린다는 걸 알고 그녀를 검열삭제시켜버리게 했다는 소문까지 돌았고 이 소문을 각색한 영화 서울무지개가 1989년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한 적도 있다.
  2. 이후, 당시 이상용은 전 재산을 재단에 기부해서 남은 재산은 42만원뿐이었다고 밝혔다.
  3. 후술 할때 나오지만 관광버스 가이드나 군 관련 행사 때 어르신을 위한 19금 개그는 필수적인 일이다. 사실 저질개그는 이상용만 행사때 하는게 아니지만 평소 이미지와 다른 모습이라서 말이 많았다. 사실 이상용뿐 아니라 대부분 방송인들이 소위 행사뛸때는 분위기 띄우기 위해서 이런 비방용 19금 개그를 많이 한다. 동시대에 주병진도 방송에선 개그계의 신사라는 이미지였지만, 행사무대에선 19금 개그의 달인이었다.
  4. '코미디 전망대'는 김병조 하차 과정에서 보조 MC인 개그우먼 김미화 방송인 이매리 등이 빠졌고 여자 진행자가 결정되기 전까지 개그맨 정재환이 97년 3월 18일까지 단독 진행을 맡았다
  5. 당시 삼미그룹 부도를 두고 여기에 개입한 김현철에 대한 비판과 조사가 이루어지던 상황이다
  6. 인터뷰상에서는 청와대 측근
  7. 세례명은 헨리코이다.
  8. 김현철과는 국민학교때 부터 친구였고 훗날 김현철과 엮여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9. 출처 동아일보 1997년 3월 26일 기사
  10. 김현철 본인이 고의로 지시하지는 않았더라도 아랫사람들이 심기를 알아채고 '알아서' 이상용에게 누명을 씌웠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또한 물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