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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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아모레퍼시픽(당시 태평양화학)의 샴푸 CM에 출연한 모습.

대한민국의 코미디언이자 대학교수. 1950년 4월 7일 전라남도 장성군 출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75년 TBC의 코미디 프로그램 '살짜기 웃어예'를 통하여 데뷔하였다. 1980년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 MC를 맡았다. 이 프로그램이 훗날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이어진다. 일요일 밤의 대행진은 우리나라 최초로 시사 개그를 TV에서 선보이면서 콩트와 슬랩스틱 위주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아닌 뉴스 보도 형식의 코미디로 일요일 프라임 타임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당시 앵커 역을 맡은 김병조는 독특한 헤어 스타일 덕분에 배추머리로 유명했으며[1], 극중 천태만상을 보이는 이뭐병들에게 일침을 놓는 "지구를 떠나거라~","인간아, 인간아 왜 사니?", "안녕~ 오지마~ 와봤자 주민등록 말소야~", "인도코끼리 방구끼는 소리 하네~" 등 유행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말하자면 최일구 앵커의 롤모델 그 밖에 MBC 아동 프로그램인 뽀뽀뽀에서 뽀식이로 나온 이용식과 같이 뽀병이로도 활동했기 때문에, 성인 시청자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공처가 컨셉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막연한 프로필만 봐서는 감이 잘 안올 텐데, 1990년대 후반의 김국진이나 2010년대 유재석에 비견할만한 인지도와 파워를 가진 개그맨이었다. 당시로 쳐도 역대 시사 개그의 1인자로 꼽히는 KBS의 故김형곤보다도 먼저 시사개그를 시도했고 인기를 끌었으며 당시 CF도 많이 찍던 잘나가던 코미디언이었다. 김병조의 리즈 시절케이블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SBS조차 개국하기 이전이라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이라곤 KBS 아니면 MBC였다. 더구나 일요일 밤의 대행진은 제목 그대로 일요일 저녁 편성이었는데, 경쟁사 KBS의 대표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일번지는 토요일 저녁 편성이었다. 1980년대 말 KBS 쇼 비디오 쟈키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두 프로그램이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정면으로 격돌한 것에 비한다면 탄탄대로를 달렸던 셈이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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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는 민주정의당 애널써킹 사건으로 국민들의 원성을 사서 한 방에 연예인 생명이 끝나게 되었다. 민주정의당 사건이란, 과거 민주정의당 전당대회 사회자로 참석해서 진행하던 중 "대본"에 있던 "민정당은 국민에게 정을 주는 당이고 통일민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다."라는 문구를 그대로 읽은 것이 문제가 되어 국민들의 원성을 사서 강제로 출연정지를 당한 사건이다. 정확하게는 MBC가 주도적으로 막간행사를 진행했고, 소속 코미디언 중 김병조가 동원된 것이었다. 즉, MBC가 책임져야할 일을 김병조가 뒤집어 쓴 꼴. 관련 기사 보기. ,MBC도 이런 점을 알고 있었기에 형식적인 출연정지만 하고 당년 7월 9일에 방송에 복귀시키려고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바로 6월 항쟁이 시작된 1987년 6월 10일이었다. 그래서 김병조의 저 말은 6월 항쟁의 배경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1987년은 4월의 4.13 호헌조치, 5월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민주화에 대한 열기가 상당히 뜨거운 시점이었다. 당시 정태원 로이터 통신 한국지부 사진부장은 이러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내셔널 지오그래픽뉴욕 타임스 1면 등에 실을 목적으로 피를 흘리는 이한열의 사진을 찍었고 중앙일보 사진부장 이창성은 문제의 사진이 아직 정부에 입수되지 않고 로이터 통신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정태원 사진부장에게 연락하여 몰래 사진을 받아서 신문의 양식에 맞게 편집하여 다음날 아침에 발매되는 신문의 사회면에 그대로 실어버렸다. 그리고 이것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역시 그대로 가져다 실으면서 조중동 지면에 모조리 올라간 이한열의 사진을 6월 10일 각 가정에서 보게되어 6월 항쟁이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태우가 사실상 다음 대통령으로 임명된 것이 바로 이 6월 10일의 전당대회였다. 그리고 이 전당대회를 시작으로 6월 29일, 6.29 선언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에 시사 개그를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것을 자부하며 시사 개그로 국민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던 사람이 TV 생방송에서 저 발언을 하였으니...

그래도 김병조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가진 코미디언이었고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에 그들 앞에서 제대로 말한 사람 얼마나 있나?"는 동정론도 있어서 꾸준히 이런저런 행사에 초청받으며 희극인 생활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김병조 본인은 리허설때 대본을 보고 굉장히 당황스러워서 얼버무렸고 이런 김병조를 본 여당 관계자들은 김병조에게 "곤란하면 그 부분은 빼도 된다. 물론 그 뒤의 일은 알아서 하라."는 협박을 했다고 한다. 곧 후술할 사건도 그렇고, 무엇보다 김병조의 출신지부터가 제5공화국과는 담을 쌓은 지역이기 때문에 그 때 발언이 김병조 본인의 자발적 멘트라고 보기는 더더욱 어렵다. 불과 얼마 후를 생각하면 걍 똥배짱으로 여당의 협박을 쌩깠어야.....[2]

이후 1991년 개국한 SBS로 옮겨가서 <웃으며 삽시다>, <코미디 전망대>에 출연하며 방송활동을 계속 했지만 이번에는 망한나라당 사건이 터지게 된다. 1997년 <코미디 전망대>라는 프로그램에서 뉴스 앵커 역으로 출연한 김병조가 의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는 소식을 보도하면서 멘트 끝에 살짝 "망한나라당"이라는 단어를 덧붙여서 이를 풍자하였는데 당시 이미지가 안좋아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는 정국이었기 때문에[3] 이 발언을 들은 높으신 분들이 대노, 김병조 씨는 하루 아침에 방송에서 강판되었고, 그나마 갖고 있던 방송가와의 끈이 완전히 끊기다시피 하게 되어, 결국 희극인으로서의 경력이 사실상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그렇게 검열할 시간에 경제 현안이나 좀 챙기지

코미디를 하기 전에 한문을 이수하였던 적이 있어서 한학 실력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며[4][5] 또한 명심보감과 고전류 등에도 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카투사 출신으로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고 있다.[6] 1990년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토크쇼 방식으로 바뀐 후 "한 권의 책" 코너에 박미선과 함께 고정 출연하였는데, 한 번은 미국인이 출연했을 때 박미선에게 대화를 하도록 분위기를 띄운 후, 박미선이 말문이 막혀 데꿀멍 상태가 되자 김병조가 미국인에게 영어로 조리있게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BBS 불교방송의 "김병조의 이야기쇼"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7] 참고로, 이 사람은 실제로 불교 신자이며, 혜성이라는 법명도 있다.

현재는 18년째 매주 수요일 조선대학교 평생교육 대학원에서 명심보감을 강의하고 있으며 인기 연예인 출신을 이용해 평생교육원 인기를 높이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했지만 지역학계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인기있고 강의 질이 높은 교육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아버지가 장성의 훈장선생님이셨다고. 본격 의도는 나빴는데 결과물이 너무 좋아진 역전 사례

매년 두 번 길벗과 JTS(불교 봉사단체다!J는 Joint. 아프가니스탄까지 봉사했다! 개신교 측봉사라고 하고 선교단체 똥배짱과 달리 현지 사정을 잘 새겨듣고 활동하니 문제도 없다..)에서 주최하는 명동 거리모금 성금 사회자로 아들 뮤지컬 배우 김형주씨와 함여하고 있다.
  1. 이런 이유로 본인이 했던 일화 중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한다. 한번은 동료 코미디언 이용식과 같이 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자신들을 보고는 말하기를. "에그머니나, 돼지보쌈 지나가네."
  2. 만약 김병조가 정말 이랬다면 지금도 전설의 원로 개그맨으로 존경받았을 것이다.
  3. 신한국당에 대한 당시 국민들의 분노는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비정규직법, 정리해고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과 기아사태한보그룹 부도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 및 비리까지 겹쳐, 국회청문회가 생방송될만큼 이미 민심이 떠난 상태. 그러나 한나라당은 대통령 선거 막판에 야당을 35만표, 즉 1개 시군 차이로까지 추격하였다. 그만큼 그간 구축한 기반이 단단하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4. 김병조의 별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배추머리로 인한 배추였지만, 가끔씩 불리던 별명중에는 서당훈장도 있었다. 실제로 훈장 캐릭터로 자주 출연하기도 했다.
  5. 이것으로 개그소재를 내놓기도 하는데 그 예로 자신이 잘 아는 지인을 만나 안부를 묻자 지인이 말하기를 요즘 주식회사 하느라 바쁘다고 답하자 그럼 큰 사업하시네 하고 감탄했더니 상대가 그게 아니라며 보여준 한자가 술 주(酒), 먹을 식(喰), 모일 회(會), 일 사(事),자였다고(...)...
  6. 그러나 전역은 한국군에서 했다. 2000년대 초반 카투사 교육 강연에서 본인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군 물자를 빼돌리다 걸려서 백마부대로 원대복귀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웃기는 재주로 지금의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에 해당하는 문선대에 뽑히면서 코메디언의 길로 들어섰으니 전화위복.
  7. TV, 라디오 모두 방송하는 프로그램이다. TV는 토크쇼 형태로 진행되지만 라디오의 경우는 사실상 성인가요 전문 프로그램이다. 트로트만 주구장창 나온다. 1주일에 한번 가수들(물론 트로트가수다!)를 초청해서 대화를 나누는 코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