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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승준 (Eric Lee Sandrin) |
생년월일 | 1978년 3월 18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미국 |
학력 | 시애틀퍼시픽대학교[1] |
포지션 | 파워포워드/센터 |
신체사이즈 | 205Cm, 100Kg |
프로입단 | 2009년 혼혈 드래프트 2번 (삼성) |
소속팀 |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7)[2] 서울 삼성 썬더스 (2009~2012) 원주 동부 프로미 (2012~2015) 서울 SK 나이츠 (2015~2016) |
국가대표팀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 은메달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3] 2013 마닐라 ABC - 3위 |
가족관계 | 동생 이동준 |
2009~2010 한국프로농구 올스타전 MVP | |||||
이동준(대구 오리온스) | → | 이승준(서울 삼성 썬더스) | → | 김효범(서울 SK 나이츠) |
1 소개
주한 미군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 이름은 에릭 산드린(Eric Lee Sandrin). 동생인 이동준과 함께 형제 농구 선수로 유명하다. 시애틀퍼시픽 대학교에서 선수로서 뛴 후, 여러 차례 NBA 무대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2005년 NBA 프리시즌 당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뛰면서 NBA 진출을 모색했지만, 불발로 끝났다. 그 뒤 해외 여러 리그를 돌아다니다가, KBL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도 응시했다. 하지만, 이 또한 실패.
그래도 대체 외국인 선수로 2007~2008 시즌 도중에 모비스에 합류했지만, 입단 당시 발목 골절 후유증으로 발에 철심을 박은 것이 문제가 되며, 경기 출전이 어려워졌다. 이는 모비스가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어서 계약 위반은 되지 않았고, 잠시 쉰 후, 출전했지만 이 당시에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결국 재계약에 실패한 후,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유일한 화제거리는 동생인 이동준과의 골밑 맞대결 정도.
2 기록
3 서울 삼성 썬더스 시절
그러나 2009년 귀화혼혈 선수를 받아들이기로 한 KBL의 결정에 따라 귀화를 전제로 드래프트에 응시, 2009년 귀화혼혈 선수 중 전체 2번으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귀화 시험에 합격하면서 이름을 이승준으로 개명했다. 당시 삼성은 최강의 외국인 선수이던 테런스 레더와 이승준의 트윈타워를 내심 기대했으나 두 사람의 호흡은 전혀 맞지않았고 결국 레더는 여러가지 잡음속에서 09-10시즌 도중 트레이드 되고만다. 10-11시즌 1라운드 외국인선수인 노엘 펠릭스가 부상으로 교체되면서 삼성은 에런 헤인즈를 선택했고, 이승준은 센터포지션으로 무난한 활약을 펼친다. 외국인 선수 보유가 1명으로 바뀐 11-12시즌은 223cm의 피터 존 라모스와 괜찮은 호흡을 보였으나, 김상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속에 6강 진출에 실패한다.
4 원주 동부 프로미 시절
혼혈 선수 규정에 따라 2012년에 다시 드래프트를 하게 되었고, 이승준의 영입을 두고 동부와 SK가 서로 입찰했다. 그리고 추첨 결과는 원주 동부의 승리. 동부는 이로서 노쇠 기미가 보이는 김주성과 짝을 이룰 파트너 + 군에 입대한 윤호영의 공백을 메울 자원이라 표면적으로 평가받았지만 윤호영과 전혀 다른 스타일이란 우려가 현실화되었다. 12월 기준 동부 프로미는 예전에 동부산성으로 불리던 강력한 골밑수비가 급격히 약화되어 성적은 9위에 머무르고 있다.[6] 강동희 감독도 인터뷰를 통해 이승준의 플레이상의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했다.#
그러나 시즌 중반에 접어들며 부상중이던 용병 센슬리가 복귀하고 강동희 감독이 간단하면서도 이승준의 최대한 살릴수 있는 롤을 부여하자 이승준이 점점 살아나기 시작한다.수비와 리바운드에 집중하고, 공격에서는 무리한 1대1과 외곽슛보다 김주성, 센슬리, 박지현 등 패싱력 좋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쉬운 득점올리는데 주력했다. 이승준이 살아나자 동부도 11승 2패의 상승세를 보이며 6위까지 치고 올라갔다.언론에서는 이승준이 동부에 완전히 자리를 잡했다 평했고,월간 MVP도 이승준의 몫이었다.
하지만 올스타 휴식기에 김주성이 부상을 당하면서 동부는 추락하기 시작한다. 이승준은 김주성의 역할까지 맡으며 동부의 공수를 홀로 이끌다시피 했지만 동부의 추락을 막을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강동희 감독의 승부조작파문까지 일어나 동부는 6강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2013-2014 시즌도 시즌 초반에는 허버트 힐과 김주성과 공존문제로 포지션에서 혼란을 겪었고, 잦은 턴오버와 수비에서 다시 약점을 드러내는 등, 작년초반으로 다시 되돌아간것 아니냐 비판받았지만, 결국 김주성의 부상으로 인한 이탈과 허버트 힐의 태업 의혹이후 부상으로 퇴출된 이후 거의 혼자서 동부의 골밑을 책임지고 있다. 게다가 나이도 김주성보다 1살 더 많고 작년과 같이 긴 시간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승준까지도 탈이 날까 걱정중이다. 결국 1월 17일 안양 KGC 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결국 시즌아웃 위기까지 처했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감안했을때 선수생활에도 큰 타격을 받은 셈이다.
부상 다음주에 수술을 받았으며 동부구단이 밝힌바에 따르면 굉장히 회복속도가 빠르다고한다. 8월쯤 되면 훈련에 합류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14년 6월 12일에 전격 웨이버 공시되었다. 김주성에 한정원까지 영입하면서 빅맨만 3명이라 포지션 문제로 트레이드 카드로 내놓을려 했지만 5억이라는 고액 연봉탓에 수지가 맞지않아 어쩔수 없이 웨이버 공시로 풀었다고 한다. 영입 가능 대상 구단은 울산 모비스 피버스, 서울 SK 나이츠, 부산 KT 소닉붐을 제외한 6개 구단이라고 한다.[7]
그리고 이 기사 에서 나온바에 따르면 이승준은 계약한 2년 동안 동부 구단의 속을 꽤나 썩인걸로 드러났다. 고연봉 보장임에도 불구하고 팀훈련 참가하라는 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도미니카 리그를 뛰었던 걸로 드러났다. 이건 계약 첫해때 네이버 라디오 바스켓카운트에서도 나온 사실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다른 리그에서 뛰는걸 구단이 허락해서 도미니카 리그에서 뛰었는데, 도미니카 리그 도중에 갑자기 무리하게 팀합류를 요청했다는 말도 있다. 아킬레스건 부상이후 동부는 이승준을 트레이드 추진하다 별로 성과가 없자 김영만 감독이 구단에 직접 요청해서 조기 방출을 요청한것으로 드러났다. 팀에 빅맨이 많다는 이유로 이승준을 웨이버 공시한 것. 그 이후 이승준을 영입하려는 팀이 없자 선수 등록 마감일인 30일에 웨이버공시를 철회하고 보수총액 1억7천만원에 재계약 했다. 그러나 2014-15시즌 개막 후 아킬레스건 부상 여파로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면서 전력에서 사실상 배제된 상황. 간간히 경기장에 농구를 관람하러 등장하는게 전부이다.
5 서울 SK 나이츠 시절
2015년 5월 20일 영입 의향서 접수 결과 1년 3억 6200만원을 제시한 SK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이로서 동생 이동준과 한 팀에서 뛰게 되었다. 모비스등 여러팀이 입찰하긴 했지만 아킬레스건 부상이라는 심한 부상을 입고 1시즌 반이상 개점휴업 상태였던 이승준에게 3억 6천은 오버페이 아니냐는 소리가 이때부터 나왔다.
2015-16 미디어데이때 문경은 감독과 참가했다. 그 땐 설마 팀이 이 꼴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영입 후 제대로 된 활약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출장 시간도 굉장히 짧아 몇몇 SK나이츠팬들은 자전거타러왔냐고 까고 있는 중이다.
10월 10일 문경은 감독이 직접 이승준, 이동준 형제의 활용법에 대한 인터뷰를 하였는데 부상이 있는 이동준은 벤치에서 대기시키고, 이승준은 김선형이 복귀할 때까지 조커로 쓸 생각이라고 밝혔다. 기사
10월 11일 삼성전에서 김민수가 부상을 당하며 출전하였는데 역시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4쿼터 마지막에는 덩크까지 실패하면서 더 이상 예전의 폼이 아니다라는 사실만 재확인시켰다. [8] 창원 엘지와의 경기에서 12득점 5리바운드, 부산 kt와의 경기에서 13득점 3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등 슛감각은 꽤 올라왔으나 수비에서는 여전히 제 몫을 못하고있다
최근들어 머리를 삭발했다. 팀의 위기에 심기일전하고 있는....것 같았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삭발에도 불구하고 최근엔 경기에도 나오지 못하면서 벤치와 자전거만 달구고 있다.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가는 팀마다 팀을 망쳐놓는 놈이 되어버렸다. 학생체육관 홈경기에 약혼녀가 가끔 직관하러 온다.
미디어 데이때 동행하는 등 구단의 큰 기대를 받았으나 그 기대에 단 1%도 부응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농구 커뮤니티의 SK팬들은 구단의 홈페이지나 나이츠샵 홈페이지 등에서 이승준의 얼굴만 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안습
에어컨 리그에서 재계약, 이적등 협상이 이뤄졌으나 결국 은퇴를 결정지었다. #
6 플레이스타일
한국 국적 선수중 역대 최고의 하이라이트 필름. 수차례 슬램덩크 챔피언에 올랐고, 퍼포먼스 덩크뿐만 아니라 인게임에서도 인유어페이스를 수차례 꽃는 등 명실상부한 최고의 덩커라 할 수 있다. 장점이라면 공격력. 큰 키에 운동능력도 좋고, 파워도 꽤나 좋은데다 슛거리까지 길다. 포스트 무브가 약간 단조로운 감은 있지만 빅맨으로써 기본기도 좋은 편. 실속이 없다고 까이긴하지만 리바운드에서도 수차례 상위권을 기록했다.[9]
단점이라면 역시 BQ. 수비에서 헬프 타이밍을 잘 잡지 못한다거나, 블락을 의식하는 탓에 펌프 페이크에 자주 속아 쉬운 득점이나 파울을 내주고 만다. 꽤 턴오버도 잦은 편이고 슛 셀렉션 또한 좋지 못했다. 그리고 농구선수에게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부상 이후[10]에는 운동능력을 오픈 덩크도 놓칠만큼 거의 잃어버렸다.
7 국가대표
- 귀화 이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있던 시절에는 장신 스몰포워드를 꿈꾸는 팬들이 많았으나 귀화 이후에는 빅맨으로 여러차례 대표팀에 승선했다. 높이와 웨이트를 동시에 갖춘 유일한 빅맨으로
유재학의 갈굼속에활약하며 소속팀 팬들을 설레게 했으나, 리그에 복귀하면 BQ가 원상복귀되서 팬들을 한숨짓게했다. 워낙 리그와 국가대표로의 모습이 차이가 나서 이승준의 유니폼에는 태극기를 달아놔야한다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2013년 FIBA아시아 선수권 대회 3위에 공헌했다.
8 기타
- 결혼소식이 들려왔다. 상대는 북미 미스코리아 출신의 최지윤씨. 참고로 두 사람의 나이차이는 15살이며 결혼식을 올린 날짜가 그가 은퇴한 날(...) #
-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팬으로 추정된다. 빅맨을 수행하게 되면서 팀 던컨의 영상을 많이 봤다던가, 12-13시즌 마이애미와 샌안토니오와의 경기에서 마이애미가 이기자 마누 지노빌리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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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래 포틀랜드 대학에 진학했으나 시애틀 퍼시픽 대학교로 편입했다.
- ↑ 이 당시에는 국내 선수가 아닌 외국인 선수 신분이었기 때문에 등록명도 산드린이었다.
- ↑ 단 두경기(러시아, 도미니카)만 치르고 조별예선 탈락.
- ↑ 이동준의 별명인 노머시에서 유래
- ↑ 용병 에릭 산드린으로 왔던 시절 기록이다.
- ↑ 동부의 부진이 모두 이승준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선수의 기량이 전 시즌에 뛰었던 로드 벤슨에 비해 크게 못 미치고 주전 가드진도 부상으로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 탓도 있다.
- ↑ 동생 이동준은 일반대학 이후 드래프트로 입단한 선수로 일반선수 취급이라 이승준이 속해 있는 서울 삼성 썬더스 역시 영입 가능 대상이다. 다만 전주 KCC 이지스는 트레이드로 귀화 혼혈선수 및 비주류대학 출신 선수를 비하한 분이 넘어와서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 ↑ 석주일은 아프리카tv의 방송에서 이승준이 슛을 쏠 때에 손목의 모양이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며 슛폼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 ↑ 29개로 국내선수 리바운드 최다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 ↑ 엘튼 브랜드, 천시 빌럽스, 코비 브라이언트등 기라성 같은 NBA선수들도 이쪽 부상을 입은 후에는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거나 스타일의 변화를 주는 식으로 활로를 모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