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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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경제사학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하였고,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서 현재는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이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있다.

80년대까지 마르크스 학파였다가 지금은 뉴라이트로 전향한 안병직 교수[1]의 제자이다. 근현대 한국 경제사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경제사, 특히 조선후기의 사회경제사를 논하는 데 있어서 이영훈 교수의 연구를 배제하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는 조선후기의 고문서, 사료들을 발굴하고 이를 통계화하여 기존의 한국사학계의 내재적 발전론, 자본주의 맹아론, 경영형 부농론을 반박하였다.

이영훈 교수의 조선후기의 발전양상은 농민층이 부농과 빈농 임노동자로 분리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소농의 사회라고 설명한다. 조선사회가 서구에서 말하는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에 따라서 자생적인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현재는 한국사학계에서 원색적인 내재적 발전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드문 실정이며, 식민지 근대화론과 19세기 위기설은 역사학계에서도 어느정도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그는 기존에 일제강점기를 착취와 단절 만의 시대가 아니라, 제국주의의 식민지 억압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 속에서 조선인들이 근대적인 자본주의의 생산 방식, 제도, 학문, 기술 등을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해가는 모습에 주목한다. 이러한 경험적 축적이 해방 이후의 고도 성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또한 평균수명, 평균신장, 인구증가, 식량섭취비의 변화 등 지표를 토대로 일제강점기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일방적인 수탈과 착취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 역시도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자본주의적 개혁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었음을 인정하며, 식민지 조선에서 전개된 자본주의의 발전은 시민사회적 발전이 배제된 왜곡된 과정을 밟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2 상세

일제강점기에 근대 문물의 유입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한 한반도 경제의 양적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대표 학자이다. 기본적인 주장은 자본주의 맹아론은 허상이며, 직접적인 근대 문물의 유입 시기-실질적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것이 본래 일제의 의도는 아니었으나 한국이 근대를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논리이다. “법률, 건축, 직물, 의류업 및 화학, 실용 학문, 경제, 산업 등이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것은 사실이고, 이 때 억지로라도 도입된 근대적 시스템을 겪은 것을 실증적으로 부정할 수 있겠냐?”는 것인데, 주로 이영훈의 연구는 안병직의 뒤를 이어 해방 이후 죽 90년대 국내에서 주류를 점하던 사회경제사학계와 민족주의 사학계를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주로 식민지 근대화론일지라도 '정치-법사회-문화' 부문 보다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경제사, 특히 농경제사 부문에서 기존의 연구에 이론을 제기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60년대 등장한 자본주의 맹아론의 하나인 경영형 부농론에 반론으로 '소농 사회론'을 제시한 것이다. 이후 조선후기 경제사에서 수량경제지표를 만들어 연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많은 관심을 얻었다.

그러나 문제점도 제기된다. 허수열 교수는 이영훈 이하 학자들이 수집한 경제적 지표들은 일관적이지 않은데다가 이런 부족한 근거로 비약을 너무 심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이영훈은 스스로 공동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지표를 가지고서 그중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을 취사선택해서 특정한 결론을 내놓는 다는 것으로, 공동연구이면 같은 수치자료를 사용해야 하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을 강화할 A지표를 사용하고, 불리한 지점에선 그것을 약화시킬 B지표를 사용하는게 주된 수법이라는 것이다.[2][3]

그밖에 2004년 기점으로 이영훈은 연구실을 벗어난 행보를 보인다, 경제사학, 그것도 자기의 주력하던 농경제사학 논문집필이나 연구보단 농경제사학은 커녕 경제사학이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근현대사 역사서 집필활동’이나 ‘방송 출연’ 등을 때때로 하면서 자신이 앞에 나서기보단 공저자의 저작에 참여하여 자신이 학계로부터 지적받은 부분을 보완 및 반론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하던 주장을 반복하고 저작의 맺음말을 통해 상대 학자들을 비난을 하다 빈축을 샀다.(출처요망) 이후 뉴라이트 활동에 참여하며 안병직과 함께 일제 강점기상에 있었던 각종 수탈사실을 부인하였다.

2006년엔 몇몇 학자들과 공동으로 1979년도에 발간된 해방 전후사의 인식를 반박하는 서적인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집필했고, 08년에 발간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집필에 같은 해 주역으로 참여했다. 이후 2014년엔 한국경제[4]의 팟캐스트 정규재TV나 자유경제원의 자유티비에 출연하며 08년엔 대안교과서 지면紙面을 빌어 다수의 공저자와 함께 공개적으로 주장을 소개했다. 졍규재TV의 ‘대한민국의 나라만들기 역사’ 에 출연한 이영훈은 여기서 이승만과 박정희을 재평가 하고 그밖에 4.19와 5.16을 재평가 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유튜브에 그의 방송특강이 있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 교과서 출판사들이 4.19혁명을 (사회주의적)민족통일운동의 상징으로 교육하고 있는것에 대하여 강한 반발심을 나타내고 있다

3 기타

  • 2004년 이영훈은 100분 토론 및 저서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견해를 표명했다가 언론의 왜곡으로 인해 심한 비난을 받았다. 언론은 이영훈의 토론 내용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위안부가 조선인들의 자발적 참여고 매춘과 동일하다”#는 발언을 한 것처럼 기사를 써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연구실이 계란투척을 당하기도 했으며 자신이 위안부 피해여성들에게 찾아가서 큰절까지 하며 사죄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 토론 논지를 살펴보면 이영훈은 해당 발언을 전혀 한 일이 없으며, 이는 사회자 손석희 교수가 해당 논지를 다시 정리하도록 한 것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 이영훈과 같은 부류의 계량경제학을 도입한 경제사학자들은 실증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때문에 종군위안부 연구의 근거인 '구술'증언을 크게 의심한다. 이러한 실증주의에 대해 반발하는 의견도 많다.
  • 민족주의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20세기 일제강점기때 생긴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민족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민족'개념 까지 부정하였는데#, 그것으로 반박을 받았다.#
  • 2006년에 이영훈ㆍ안병직ㆍ유영익 등 뉴라이트 조직원들이 참가한 《교과서포럼》[5]에서 역시 4.19혁명 격하 및 5.16을 격상했다는 논란이 일어 회장에 쳐들어온 4.19 기념단체 및 유족회 회원들에게 폭행당하였다.###
  • 2007년에 이영훈이 뉴라이트 계간지 시대정신에서 조정래의 '아리랑'을 광기로 가득 찬 역사 왜곡 소설이라며 비난#했고 조정래는 이영훈을 "이영훈 교수는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진실만을 말한다. 난 근거 없는 건 절대 쓰지 않는다”# 라고 비판했는데.. 그런데 반전은...... 아리랑이 역사를 왜곡했다며 이영훈이 태클을 건 부분이 조사 결과 완전 이영훈의 쌩구라였던 것으로 밝혀졌던 것이다. 이영훈은 일본육군이 강점기 당시 만든 <옥구도엽>을 근거로 조정래 작가가 일본이 행했던 조선농업 근대화를 악의적으로 왜곡했다고 호소했는데, 소설로 다큐찍길 바랐나? 이 이영훈은 1917년도판 옥구도엽에 일제가 그 과정중 건설한 방조제가 나와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옥구도엽은 1910년 1판이 나와 이후 해방까지 4번 갱신됐는데 1917년판 옥구도엽은 존재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차후 갱신판에는 이영훈이 어느 지역에 건조됐다고 설명한 방조제가 없다. 이영훈은 가짜 자료를 가지고 거짓 비난을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은 허수열 교수가 2014년 6월 경제사학회에 낸 논문에서 밝히고 있는데 2년이 지나도록 이영훈 교수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일제 초기 만경강 및 동진강 유역의 방조제와 하천의 제방, 허수열

<국문초록>
이영훈 교수는 1917년까지 일본인 지주들에 의해 만경강 하구 및 김제군 연안에 수 많은 방조제가 축조되어 간척이 이루어짐으로써 농업 생산이 급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1921년 지형도에서 나타나는 하천의 제방에 대해서도 그것이 일본인 지주들에 의해 축조 혹은 보강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일본인 지주들에 의해 1910년대에 이미 농업 개발이 왕성하게 이루어졌음을 주장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5』에서 1918년까지 농업 생산이 급증했다는 추계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 논문에서는 이영훈 교수가 1921년 지형도를 1917년 지형도로 오인하여 사용하면서, 1920년 이후 일본인에 의해 축조된 방조제가 1917년에 이미 축조된 것으로 단정하고 모든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그의 글 전체가 원천적으로 잘못되었음을 밝히고, 1910년대 만경강 및 동진강 유역의 방조제와 하천의 제방이 거의 대부분 조선 재래의 것들이었음을 밝혔다. 즉, 1918년까지 방조제와 하천의 제방이라는 측면에서 농업 생산이 급증할 이유가 없음을 밝힘으로써,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5』의 농업 생산의 급증이라는 추계가 방조제와 하천의 제방이라는 측면에 국한하여 보았을 때 과대평가된 것임을 입증하였다.

핵심주제어: 방조제, 하천의 제방, 농업 생산, 김제 만경평야, 1910년대
경제학문헌목록 주제분류: N35, N55
http://www.kehs.or.kr/xe/journal/15410 ]

  • 화랑세기에 대해서, 화랑세기속에서 묘사되는 삼국시대의 노비가 조선시대의 노비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며, 이러한 것은 필사자가 위서로 꾸며낼 수 없다며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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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식민통치가 정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서울대 교수가 일제 강점기때 인구가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라는 언급을 했는데 아마 이영훈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칭한걸로 해석한다. 아베 신조는 아예 공정한 동북아시아 역사 연구라는 미명하에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미국 학자를 초빙할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 2015년 9월 8일 이영훈은 아베 신조가 자민당 총재 3선 기념을 겸해 한 담화의 내용을 옹호하며 한국의 민족주의에 책임을 돌리는 발언들을 연달아 쏟아냈다.#
  • 이영훈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일본 오사카대학 교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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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사항은 출처불분명으로 확실한 설명이 필요한 것들. 토론을 거쳐 처리를 요한다.

  • 또한 3.1 운동은 그 실체가 없는 역사적 신화이자 환상(출처불분명. 규명필요)이라고까지 규정하고 있는데 다이쇼 덴노 연간에 일본에서 벌어진 쌀 파동의 한 연장선으로 파악하고 있다. 즉 3.1 독립선언이라는 사건이 전반적인 민중운동으로 발전한 것은 그저 독립뿐이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불황에 따른 소요도 중요한 원인이며 이것이 어른의 사정으로 이러한 요인은 생략되었다는 것. 사실 3.1 운동을 전후해서 일본에서 일어난 쌀파동에 대한 공권력의 처리 방식이나 초기에 3.1 운동을 보던 일본의 시각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 앞뒷말이 다르다. 상기『해방 전후사의 재인식』,『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이영훈은 일제와 같이 3.1 운동이 허구라고 주장한 바, 3.1운동의 의의와 1919년 3.1운동에 기인한 임시정부 수립운동[6], 3.1운동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정부 통합운동, 임시정부 통합운동으로 탄생한 상해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08년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선 김구를 테러리스트라 지칭한 바 있는데 2013년엔 『대한민국 역사』[7]라는 책을 내면서 다시 상해 임시정부와 김구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다가# 번번히 4.19를 재평가 하자는 뉴라이트 특유의 망발[8]을 떨며 정부의 법통을 상해 임시정부에서 찾는 대한민국 헌법에 배치되는 주장을 펼친다.

4 주요 저서[9]

  • 조선후기사회경제사(1989) :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정리한 책.
  • 근대조선수리조합연구(일조각, 1992), 공저로 참여
  • 한국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역사적 특질(2000)
  • 맛질의 농민들-한국근세촌락생활사(2001), 공저로 참여
  • 한국경제사(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2002), 장시원과 공저
  •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2004), 공저로 참여
  • 한국의 은행 100년사(2004), 공저로 참여
  •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 후기(2004), 공저로 참여
  • 식민지 시대의 視座-조선과 일본(2004), 공저로 참여
  • 한국의 유가증권 100년사(2005), 공저로 참여
  • 경제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2005), 김승욱과 공저
  • 새로운 한국경제 발전사(2005), 공저로 참여
  • 동아시아 근대경제의 형성과 발전(2005), 공저로 참여
  • 東亞近代經濟的形成與發展(2005), 공저로 참여
  • 고종황제 역사청문회(2005) : 이태진, 김재호, 이영훈 등의 대담내용을 엮은 책
  • 동아시아근세사회의 비교-신분,촌락,토지소유관계(2006), 공저로 참여
  •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2006), 공저로 참여. 초반부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를 적었다.
  • 박정희 시대와 한국 현대사(2006), 공저로 참여
  • 조선시대 생활사3 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2006), 공저로 참여
  • 대한민국 이야기(2007)  :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구어체로 술술 풀어 대중 친화적으로 쓴 책.
  •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2007) : 안병직과 이영훈의 대담내용을 엮은책
  • 근대 동아시아 경제의 역사적 구조(2007), 공저로 참여
  • 한국의 경제발전과 경제정책(2008), 공저로 참여
  • 한일 역사인식 논쟁의 메타히스토리 : 국사교과서에 그려진 일제의 수탈상과 그 신화성(2008), 공저로 참여
  • 세계시스템과 동아시아(2008), 공저로 참여
  • 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재인식(2008), 공저로 참여
  •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제도개혁 과제(2009) , 공저로 참여
  • 한국현대 정치외교의 주요 쟁점과 논의(2000), 공저로 참여
  •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2010), 공저로 참여
  • 대한민국은 왜 건국을 기념하지 않은가(2011), 공저로 참여
  • 인촌 김성수(2011), 공저로 참여
  • 대한민국역사(2013)
초기에는 단행본을 어느정도 있었으나, 이후 공저로 부분저술하는 편이 많다. 목록중에 4권만이 단행본이고, 3권이 2명이서 공저한 책이다.
  1. 안병직 교수는 80년대 중반 NL그룹의 이론적 토대가 된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의 기초를 만든 사람이다.
  2. 『개발 없는 개발』의 저자 허수열은 서론에서부터 이영훈의 논리를 완전히 반박하고 있다. 허수열은 이영훈의 논리라면 해방 이후에도 근대화가 유지되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음을 밝혔다. 실제로 대한민국이 성장하기 시작한 시점은 1961년이었고 일제가 이룩한 근대화의 산물은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다수가 파괴되었었다. 허수열이 수탈이라는 단어가 어폐가 있다면서 쓰지 않음에도 수탈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일제의 근대화는 철저히 일본에 의한 것이며 조선인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거나 차별적으로 받았기 때문이었고 대한민국의 성장과 관계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3. 이후 논쟁양상은 본글의 토론게시판에서 지적된 바 있다. https://namu.wiki/topic/17531
  4. 우익성향이다.
  5. 초,중,고 국사교과서가 좌파적 성격을 띠고 있고 때문에 이를 교정하겠다는 부류들이 모여서 구성한 뉴라이트의 하부조직, 2005년에 구성되었다.
  6. 대한국민회의(3.21) 상해 임시정부(4.13) 한성정부(4.23)
  7. 여담인데 이 책은 전경련에서 '시장경제부문 저술(역사책이?) 대상작'에 선정한 바 있다. 전경련은 사실 이명박 정권하에서 뉴라이트가 양지로 올라오면서부터 원래의 기능은 잃고 이미 뉴라이트의 소굴이 됐다. 친일파 국영방송 이사장이라는 '이원호' 나 이 '이영훈', 한국경제의 '정규재'같은 극우인사가 공식적으로 박정희 찬양 강연회, 대우 사태의 김우중 옹호, '전쟁도 수출이다' 라는 제목으로 베트남 전쟁 미화 강연을 하는 등... 이미 맛이 간 지 오래다.
  8. 뉴라이트계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9. http://econ.snu.ac.kr/html/procatagory/?temp=v&idx=0024&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