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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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현대문학상 수상
김용운
산행
(1981)
조정래
유형의 땅
(1982)
윤흥길
완장
(1983)

1 소개

대한민국소설가. 1943년 8월 17일 전라남도 순천군 쌍암면 죽학리(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에서 출생. 종교불교이며, 법명은 인천이다. 등단작은 '누명'. 대표작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 등이 있다. 소설이 하도 잘 나가서 서울특별시에 빌딩을 산 경력이 있으며 운전기사까지 따로 뒀다.

서정주의 제자이지만, 그의 친일 경력을 조사하는데도 큰 노력을 했다(조정래는 친일파인명사전을 만들 때 문학계의 친일 행각을 정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서정주는 그가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자 굉장히 화를 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서정주 항목 참조. 제자야 이게 무슨 짓이냐 친일을 심판하는 중입니다, 스승님 이와 같은 일들도 그렇고 '반일'이라는 코드는 그의 소설에서 흔하게 등장한다.

저작들의 경우 대부분 평은 괜찮으나 문제는 용두사미를 보여주는 필력. 태백산맥은 그나마 후반부부터 늘어지지만 아리랑-한강으로 갈수록 힘이 다하는 시기가 더욱 빨라진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소설이 없을 지경이므로[1] 이 정도의 업적도 대단한 것이다.

용자스럽게도 빨치산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던 시절에는 보수 세력의 지탄을 받았으나, 개발독재를 옹호했다하여 진보 세력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작가 자신은 '이익을 얻은 자들과 노력한 사람들은 구분해야 한다'고 했지만, 작가 개인의 호불호로 인해 역사를 보는 안목이 흐려졌다는 비판을 면키는 어려워 보인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한 가지 빼고 전혀 겹치지 않는다. 유일하게 하나 겹치는데 이건 작가도 모르고 있다가 독자가 알려주었다("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강’에 비중있게 등장하는 허진이라는 이름이 ‘아리랑’에 한 줄 스쳐 지나간 걸 어느 독자가 지적해줬습니다."). #

자신의 사후에 작가의 아들과 며느리가 자신의 저작으로 먹고 살거라면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원고지에다가 일일이 손으로 베껴쓰게 한 일도 유명하다. 그리고 며느리는 한 달 정도 만의 기간에 1권을 끝냈다! 작가 본인이 날림으로 쓴게 아닌가 검사해봤지만 깨끗하게 완성해놨다고...

21세기 현재에도 컴퓨터를 쓰지 않고 항상 육필(肉筆)을 고집, 일일이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쓴단다.

대하소설같이 묵직한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무라카미 하루키 류의 소설에 대해선 별로 좋게 보지 않고 있고 한국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잘 팔리는 것에 대해 옳지 않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추리 소설도 별로 안 좋아하는지 태백산맥에서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까기도 했다. 워낙 집필한 분량이 많아서 소설 원고를 쌓아놓으면 사람의 키보다 높고, 소설에 등장한 인물만 수백 명에 달한다. 더군다나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한 명만 빼고 다 다르니, 이름 짓는 것만 해도 고생이었다고 회고하신다.

그리고 벌교읍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일등 공신. 알다시피 조정래의 대표작인 태백산맥이 벌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라, 태백산맥의 배경지를 답사하려는 사람들이 벌교를 많이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원래 벌교 주민들은 태백산맥 타령 하는 방문객들을 별로 안 좋아했으며, 태백산맥 때문에 외지인들 눈에 벌교가 빨갱이 동네로 보인다고 불평하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태백산맥을 통해 증가한 관광 수요에 호응하여 태백산맥 문학관도 건립하고 현부자집, 보성여관 등을 복원하는 등 태백산맥 문학기행을 주제로 읍내를 단장하게 되었다. 또한 벌교 인근 해역에서 생산되는 꼬막도 같이 유명세를 타면서 그 유명한 '꼬막정식'이 생겨났고 벌교 꼬막이 수산물 지리적 표시제 1호로 등록되었다. 꼬막은 원래 '고막'이 표준어였는데, 태백산맥에 '꼬막'이라고 쓴 것이 널리 퍼져서 표준어가 '꼬막'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공처가로 유명한 분이다. 공처가를 넘어서 '경처가'를 자처한다.

2016년, 한국의 교육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풀꽃도 꽃이다》를 출간한다. 그리고 나향욱개돼지 발언에 대해 '국민의 99.9%가 개와 돼지라면 그는 진딧물이나 기생충이다.'라는 말로 일축했다.

2 생애

선암사에서 한 대처승의 차남으로 태어났다.[2] 아버지 철운 스님은 선암사 부주지 출신의 진보적 관점을 지닌 스님으로, 해방 후 절 사유지를 소작인들에게 무상분배 하자고 주장했다가 좌익으로 몰려 사형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3]

어렸을 때 아버지인 철운 스님을 따라다니며 철운 스님이 흥얼거리던 시조를 읊게 되었다고 하며 그 과정에서 조금씩 시에 대한 매력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학교에서 시조에 대해 배울 때에는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다 아는 내용이었다고. 청년 시절엔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스님이 될 뻔했다고 한다.

이후 광주에서 중학교 3년을 보내게 되었는데 이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뒤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다시한번 광주를 방문한다. 이때의 광주는 흡사 죽은 도시같았다고 한다. 심지어 건물에 들어가자 벽 곳곳에 들러붙은 핏자국과 머리카락 등이 보였다고.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2.1 태백산맥 관련 논란

조정래는 태백산맥을 집필한 이후 보수 관련 단체나 인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야 했는데, 대표적으로 이승만의 양자는 태백산맥을 이적표현물이라고 국보법 위반으로 고소하기도 하였다. 태백산맥 소설이 끝나고 말미에 (아마 2000년을 전후해 쓰여진) 고생담이 적혀있는데, 읽어보면 이 사람이 어떻게 버텼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벌교에 위치한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을 가 보면, 하루에 몇 통씩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왔다고한다. 직접 펜으로 쓰기를 고집하는 작가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신체적 고통도 만만찮게 겪었는데 하도 좌식 생활을 하다보니 여러 번 탈장이 찾아와 입퇴원을 반복했다.

하지만 작가 본인이 마음고생과 몸고생을 했던 것과는 별개로, 실제 태백산맥은 당연히 논란거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역사왜곡 수준인 묘사가 '매우' 많다. 자세한 것은 태백산맥 참조. 물론 거의 모든 소설에 역사왜곡이 포함된 소설가도 존재한다.

사실 태백산맥뿐만 아니라 아리랑도 그렇고 조정래의 소설 전반에서 근거없는 묘사가 굉장히 많다. 작가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적당히 뒷배경을 만들고 본인은 그걸 진실이라 믿는다. 조정래 본인이 좀 반일에 대한 집착을 하는 면이 있어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300~400만 학살론을 줄곧 밀고 있으며 이것이 공론화되지 않은 것은 한국을 친일파들이 장악해서 그렇다고 <글감옥에서 가출옥>에서 주장하는데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대목들이다.

3 박태준 포항제철 명예회장과의 관계

박태준 포철 명예회장과 관계가 있다. 그는 90년대 중반에 쓴 "한강"에서부터 포철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를 서술했다. 2007년에는 (이 해는 박태준의 팔순 해이기도 했다) 신채호, 김구, 안중근, 한용운과 함께 15권으로 예정된 자신의 아동용 위인전의 위인으로 박태준을 선정했다.

박태준은 "민족주의자, 그것도 투철한 민족주의자"라며 몇차례 조정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94년 태백산맥 이적성 고소에도 친분이 있는 몇몇 보수들과 달리 반대 의견을 표했다. 또한 2000년대 들어서는 태백산맥 기념관 등의 사업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조정래 또한 "박태준이라는 인물은 한국 사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에요. 우리 근현대사에서 그처럼 뒷모습이 깨끗한 기업인이 있었나요"라든지, "모르는 사람들은 박태준 회장을 개발독재의 주역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개발독재의 주역은 독재로 인해 권력을 누리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독재를 행사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거예요. 박 회장은 순수한 기업인일 뿐이었어요."라고 말하는 등의 평가를 했다. # 관련기사 1 # 관련기사 2

반면 이에 대한 비판으로 박태준이 10월 유신에 반대한건 사실이나 제5공화국 민주정의당제6공화국 삼당야합의 결과문인 민주자유당 대표를 지내는 등 정계의 중심에 있었으며, DJP연합의 결과로 국무총리에 임명된 이후에도 세무 스캔들로 4개월만에 물러난 점 등을 지적하면서 변절, 야합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4 대표작

  1. 선우휘의 '불꽃'과 같은 책들은 다루는 범위가 국한적이고, 최인훈의 광장은 시대적 한계에 좌절하였으며, 장용학의 '요한시집' 같은 경우는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노벨상 언제 나오나 기다릴게 아니라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현대사를 제대로 정리한 소설 하나가 더 시급한게 우리나라의 현실.
  2. 참고로 작가 본인은 자신의 출생 배경에 대해 복잡한 심정인 듯. 덧붙여 선암사는 현대에도 대처승 제도를 인정하는 태고종의 종찰이다.
  3. 부친에 대한 이미지와 일화는 소설 태백산맥의 법일스님으로 구현된다.
  4. 1989년 단행본 완간되었다.
  5. 1995년 단행본 완간되었다.
  6. 2002년 단행본 완간되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세 작품은 한국 근현대사 삼부작으로 엮인다.
  7. 원래 오 하느님으로 출판되었다가 개정판에서 제목이 바뀌었다. 내용은 노르망디의 한국인을 다룬 것으로, 초판 '오 하느님'을 기준으로 영화 마이웨이보다 4년 빨랐으며 개정판 출간을 기준으로 해도 2년 정도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