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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載瀅
1914년 11월 07일 - 1992년 01월 30일
본관은 전주 이씨 인성군의 후손이며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운경(雲耕)이다.
1914년 경기도 시흥군에서 태어났다. 1938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제1대~제2대, 제4대~제5대 국회까지는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있었다. 이 때, 1952년에서 1953년까지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제4대 국회 말기인 1960년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어 잠시 일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68년 신민당 부총재가 되었다. 그러나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된 김대중과의 갈등으로 신민당을 탈당하여 군소정당 국민당에 몸담다가 1981년까지 정계를 떠났다. 정작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박정희 정권이 동생 이재준이 경영하는 대림산업에 압력을 넣겠다고 해서 자신을 따르는 대의원들에게 김영삼 대신 김대중을 지지하게 했다는 지적이 있다.
1981년 민주정의당 창당발기인으로 정계에 복귀했으며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여당인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민주정의당 초대 대표위원으로 임명되어 1983년까지 역임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그 해부터 1988년까지 국회의장을 지냈다. 1986년 유성환 국시론 파동 때 신한민주당 유성환 국회의원의 마이크를 꺼버렸다.
1988년 노태우가 집권하자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정의당 공천에서 탈락하고 정계에서 은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