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1 대한민국프로게이머

이종석(프로게이머) 항목 참고.

2 대한민국의 배우

배우 이종석(배우) 항목 참고.

3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종석(야구선수) 항목 참고.

4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영화감독 L.잭슨 이종석(영화감독) 항목 참고.

5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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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출생했다. 1984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북한지도집단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 <조선노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각각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종석은 이미 대학원 재학 시절에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논문이 포함될 정도로 북한 연구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김일성 가짜설을 반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1] 을 담당하기도 했다.

1994년부터 세종연구소에 본격적으로 북한 관련 연구에 나섰으며, 특히 대북 화해협력 정책의 당위성을 옹호하는 대표적 인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수행원의 일원에 포함되기도 했다.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에서 외교안보분야의 실력자로 급부상했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외교통일안보 분과 인수위원에 포함된 것을 시작으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사무차장으로 재직했다. 외견상으로는 NSC의 2인자였지만, 실제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의 수립, 집행을 실질적으로 설계 및 주도한 주역이었다는 것이 대내외의 중론. 동북아균형자론 떡밥도 이 사람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라크 전쟁 추가파병 규모를 3천명 이내로 제한, 대북 포용정책의 옹호, 수평적 한미관계에 입각한 대미 자주외교 등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논란의 한가운데에 위치했으며, '자주파 대 동맹파'에서 자주파의 간판주자로 알려져 왔다.[2]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는 '대표적인 친북/반미인사'라는 비난의 표적이 되어왔다.

2006년에는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외교안보 정책에 관한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을 더욱 확인받았다. 그러나 북한이 같은해 6자 회담을 깨트리고 7월 미사일 시험발사, 10월 북핵문제를 한단계 막장화 시키는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더욱 거센 비판과 책임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그 해 12월 외교, 국방장관과 함께 교체되어 공직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세종연구소로 복귀하여 연구활동에 전념 중.
  1. 김일성에 관해서는 크게 3가지 학설이 제시되어있다. 김일성가짜론과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인정하되 그것이 과장되어있다는 김일성왜소론, 그리고 항일무장투쟁과정에서 김일성의 지도적 권위를 인정하는 김일성인정론이 있다. 이종석은 바로 이 김일성인정론을 견지했다.
  2. 물론 참여정부에서는 실체가 없는 구도라고 반박했지만, 잘 믿지 않는다(...). 실제 양쪽이 반목했었다는 얘기는 이런저런 소스들을 통해 제법 나온 편. 대략 소속을 통해 나눌 수 있는데, 보통 이종석을 위시한 청와대 외교 안보 라인이 자주파, 윤영관, 반기문을 위시한 전통적인 외교부 관료들이 동맹파로 분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