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李鎭洙
1900년 08월 07일 ~ 1968년 12월 9일
1900년 함경남도 이원군에서 태어났다. 북청보통학교, 경성오성중학교, 니혼 대학 전문부 공과 전수과, 동 대학교 상과 및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교토제국대학 경제학과 및 사회학과를 수료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세화당제약주식회사, 세화산업, 세화상사, 세화토건주식회사 등에서 대표취체(대표이사)를 지내고 조선변리사회 회장, 조선웅변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8.15 광복 후 한국민족대표자대회 대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기도 양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강승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6년 자유당을 탈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강성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강승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