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시

가나다순 / 밑줄은 도청#s-1 소재지 / 별표는 특례시
경기도 기초자치단체
자치시고양시*과천시광명시광주시
구리시군포시김포시남양주시*
동두천시부천시*성남시*수원시*
시흥시안산시*안성시안양시*
양주시여주시오산시용인시*
의왕시의정부시이천시파주시
평택시포천시하남시화성시*
자치군가평군양평군연천군


구리시법정동
법정동갈매동교문동사노동
수택동아천동인창동토평동
구리시행정동
행정동갈매동교문1동교문2동수택1동
수택2동수택3동인창동동구동

틀 내용이 같아보이지만 그냥 넘어가자

九里市 / Guri City


구리시청 전경. 주소는 구리시 아차산로 439(舊 교문동 390-1번지). [구리시청 홈페이지]. 앞쪽에 있는 호수는 이문안 저수지통일교가 60퍼센트를 소유 중이다.


구리시
九里市 / Guri City
국가대한민국
면적33.30km2
광역시도경기도
하위 행정구역8
시간대UTC+9
인구191,200명
(2016년 9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5,652.22명/km2
시장백경현
초선 (2016년 재보궐선거)
국회의원윤호중 (더불어민주당)
3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홈페이지

1 개요

guri.jpg
구리시의 위치. 화성시가 이상해 보이는 건 기분탓이다

경기도 중동부에 위치한 . 위치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상 서울의 위성도시다. 인구는 2016년 기준 약 18만6천여명으로 인구가 늘지 않고 있다. 동쪽과 북쪽은 남양주시, 남서쪽은 한강을 끼고 서울특별시 강동구, 남동쪽은 경기도 하남시, 서쪽은 서울특별시 중랑구광진구 광장동, 노원구에 접한다. 구리시의 면적은 33.30㎢로, 전국의 , 중에서 면적이 가장 좁은 기초자치단체이다.[1][2]


2 유래

구리시 행정구역 변천사
양주군 구지면
(楊州郡 九旨面)
양주군 구리면
(九里面, 1914)
양주군 구리면(남)양주군 구리읍
(九里邑, 1973)
구리시
(九里市, 1986)
양주군 망우리면
(楊州郡 忘憂里面)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東大門區, 1963)
서울특별시 중랑구
(中浪區, 1988)

본래 양주군에 속하였으며 구지(龜旨, 九旨)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면이었는데, 한강왕숙천이 맞대고 있는 뾰족한 형상이 과 같다고 하여 '곶이'라 불렸는데, 이후 고지→구지로 변하였다. 한자 표기는 음차이며 원래 전자(龜)를 쓰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조선 후기로 오면서 후자(九)도 널리 쓰이게 된 것. 비슷한 사례로는 안산시고잔동(곶 안→고잔)을 들 수 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4년 조선총독부의 대대적인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면(旨面, 현 구리시)과 옆 망우면(忘憂面, 현 서울특별시 중랑구, 단 구한말에 한성부 성저십리로 편입된 면목동은 제외)을 통폐합해 구리면(九里面)을 설치한 것이 시 이름의 시초이다. 부천, 의왕과 더불어 일제가 임의로 만들어 낸 지명. 참고로 망우리면은 용마산 넘어 있는 동네였다. 그러다가 1963년 서울특별시의 시역 확장으로 옛 망우리면 일대가 동대문구에 편입되었는데, 이게 지금의 중랑구이다. 이후 인구 증가와 도시화로 1973년 구리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 양주군이 양주군과 남양주군으로 분리되면서 남양주군 구리읍이 되었으며, 1986년 구리읍이 구리시로 승격되었다.
구리읍~구리시 승격 초창기 시절에는 읍소재지인 '교문리'가 구리읍→구리시 전체를 가리키는 별칭이기도 했으며, 21세기 들어서 이렇게 부르는 경향은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오래 거주한 사람들은 구리시를 '교문리'라 부르기도 한다.[3]

다만 갈매동은 예외인데, 원래는 양주군 노원면(지금의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속했다가 1914년 개편으로 구리면에 편입되었다. 갈매동은 구리시에서 유일하게 서울시 도시계획구역에 속한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구리'에서 '리'에 해당되는 망우리면 지역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사실상 옛 구지면 지역만이 남은 셈이니 구리시가 아니라 구지시로 개칭해도 될 것 같지만, 그대로 구리라는 지명을 유지하고 있다.[4]


3 교통

시의 동서로 수도권 전철 중앙선 철도가 지나고, 북서쪽을 경춘선 철도가 살짝 긁으면서 지나간다. 역은 중앙선 구리역[5]과 경춘선 갈매역[6]이 있다. 구리역이 개통되기 이전에는 청량리역 방면이나 강변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주 교통편으로 이용했었으며, 지금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강변역과 망우역 및 청량리역 방면이 서울로 가는 핵심 동선이다. 구리시·남양주시 버스 목록에서 이 시내버스들을 열람할 수 있다. 시간 나면 광주시 버스 목록도 참고하도록 또한 구리시에는 구리, 남양주시를 책임지는 버스 201번이 있다. 비록 교통 요충지인 구리역에는 가지 않지만, 돌다리사거리 앞에서 남양주시 환승수요까지 챙기는 구리시 최고의 효자 노선.[7]

2011년 6월 20일부터 기존에 안양역강변역 사이를 오가던 1650번이 수택동까지 연장되었다.[8] 이외에도 구리에서 잠실권으로 가는 버스 노선으로는 1115-6번이 있다. 2012년 11월 22일에 시내버스 파업이 예정되면서 대체버스를 투입하기도 했다. [구리시 공지사항]. 2013년 8월 1일에 6-2, 6-3번 마을버스가 5번 마을버스로 통합되었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의 경우 구리역 앞, 롯데백화점 정류장에 중간정차하는 노선을 이용하거나 동서울터미널까지 가서 탑승한다. 도로 교통의 경우, 고속도로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있다. 국도6번 국도, 43번 국도, 46번 국도, 47번 국도가 있으며, 구리암사대교를 통해 한강 이남으로 건너갈 수 있다.

현재 계획 중인 철도노선으로는 서울 지하철 8호선의 연장구간인 별내선이 있다. 구리시내에는 3개역(구리도매시장역, 구리역[9], 토평역)이 개설될 예정이며, 개통후 기존 철도노선으로 미흡하였던 구리-강남 구간[10] 승객 수송을 담당하게 된다.


4 정치

14대15대16대17대18대19대20대
정주일/초선
통일국민당
전용원/재선
신한국당
전용원/3선
한나라당
윤호중/초선
열린우리당
주광덕/초선
한나라당
윤호중/재선
민주통합당
윤호중/3선
더불어민주당

인구가 적은 편이라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경기도 북부 시/군들 중에선 그래도 민주당계 지지 성향이 꽤 강한 편으로 알려져있다. 일단 경기 북부라고 하지만 말이 북부지 사실은 최전방지역이 아닌 서울에 붙어있는 위성도시이긴 하다. 2006년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 특히 수도권에서 참패했을 당시에도 당선자를 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 당선자가 바로 박영순 전 시장. 다만 이는 구리가 민주당 강세지역이라기보다는 당시 시장인 박영순의 평가가 좋아서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역대 선거를 봐도 구리시가 민주당계에 몰표를 날린 적은 별로 없었는데, 이런 연장선상인지 2008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주광덕 후보가 당선됐다. 허나 2012년 총선에서는 다시 민주통합당 윤호중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후보가 당선되며 3선에 성공하였다.

과거 박영순 시장이 오랫동안 시장으로 재직했다. 관선 출신이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총 5선에 3연임까지 성공했다.[11] 재임기간 주민들에게 일은 잘한다는 소릴 제법 들었지만, 고구려를 내세운 환빠스러운 역사 홍보와 태극기의 도시(...)라는 생뚱맞은 슬로건으로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 12월 10일 박영순 시장이 [자신의 선거 사무실에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로 공직선거법 위반에 걸려 당선무효 처리되고 시장직을 잃게 되었고, 이로 인해 2016년 4월 13일 실시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16년 재보궐선거를 통하여 국회의원시장 재선거가 동시에 시행되었다. 그동안 박 시장의 영향으로 지방선거 때마다 민주당계 정당이 전반적으로 강세를 보였으나, 하필이면 더불어민주당이 시장 재선거 후보로 박영순 시장의 아내(...)를 공천하는 병크를 저지르는 바람에 지지율이 깎여나가 버렸다. 결국 투표 결과, 30여년간 구리에서 주민생활국장과 행정지원국장을 비롯한 여러 요직들을 거친 새누리당의 백경현 후보가 [시장직에 당선되었다]. 그러게 박수칠 때 떠나야지

여담으로 코미디언 故 이주일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역구가 이 곳이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정주영통일국민당 소속으로 이주일이 아닌 본명인 정주일로 출마했다. 정주영과 이름이 닮기도 했네 이후 정주영이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자 민주자유당으로 당적을 변경하였다. 하지만 이후 그는 정치판에 환멸을 느껴 '정치는 코미디', '코미디 많이 배우고 간다'는 뉘앙스의 웃픈 말을 남기며 국회의원 1번만 하고 정치판에서 떠난다.



2014년 시의회에서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사업을 두고 벌어진 몸싸움으로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다. "미친X"이나 "또라이X" 등 온갖 욕설이 난무한다. 그리고 의사봉을 뺏기니까 주먹으로 세번 쳐서 통과시켰다.(...) 창피하다


5 문화

옆동네 남양주시와 함께 문화예술이 취약한 지역이었으나 2013년 4월 구리문화예술회관(구리아트홀)이 개관했다. 개관 전 2012년 연말 프롤로그 시리즈 공연을 선보였다.

또한 '거실을 서재로'[12]라는 캠페인 사업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데, 여러모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듯. 일단 태극기 갑툭튀(...)에 비하면 훨씬 정상적으로 보인다. 구리시민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시립도서관에 가면 꾸준히 추진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파트에서 거주해 지내다보면 간간히 찾아와서 국기게양을 권하는 공무원을 만날 수 있다 카더라. 연립주택이나 단독주택은 그런 거 없는 듯.

인구가 20만도 안 되는 도시에 영화관만 2개인데, 공교롭게도 한동안 두 영화관 모두 롯데시네마에서 운영했다. 2014년 말 롯데시네마 구리아울렛점이 문을 열었는데, 미어터지고 낡은 롯데시네마 구리점[13]을 효과적으로 보완하나 워낙 구석진 데 있어선지 교통편이 별로 좋지는 않다. 사실 2개가 있어도 감당이 안되는 이유는 구리뿐만 아니라 인근 덕소, 도농, 금곡, 퇴계원 수요도 같이 빨아들여 엄청난 밀집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리아울렛점은 평일 저녁에는 마치 개인극장 하나를 통째로 전세라도 낸 것마냥 한산한 편이다. 애초에 워낙 외진 데 있는데다가 근처 롯데마트와 롯데아울렛의 주차장 사정이 썩 좋지 못하다 보니 사람이 몰리지 않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러다가 6월 22일부로 롯데시네마 구리점이 영업 종료하게 되었다. 그리고 7월 28일에 CGV 구리점으로 다시 개관했다.[오픈 전 채용공고1] [오픈 전 채용공고2]


6 상권

작은 고추가 맵다

중심 번화가로 돌다리사거리 서쪽의 돌다리[14]와 사거리 동쪽의 롯데백화점 앞이 있다. 이 중 돌다리는 구리시에서 나름 유서깊은 상권이며 돌다리시장[15]과 바로 연결된 남양시장이 포함돼 있다. 1998년 백화점 개장과 2010년 버스중앙차로 개통[16] 등 타격을 받아 예전보단 포스가 덜하지만 그래도 구리/남양주 10~20대 젊은이들의 주요 약속 장소로 건재하다.

프랜차이즈가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롯데리아만 해도 5개(...)나 있고, 맥도날드는 토평지구와 돌다리[17]에 각각 하나씩 해서 2개, KFC는 1개가 있다. 게다가 TGIF, 애슐리, 빕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자연별곡, 계절밥상, 설빙 등 대형 프랜차이즈도 상당히 많은편. 게다가 롯데백화점, 롯데시네마, 롯데마트, 롯데아울렛 등 롯데 관련 체인이 많아 모르고 보면 꼭 롯데가 먹여살리는(...) 도시처럼 보인다. 구리 롯데백화점은 원래 LG백화점으로 개업했다가 2005년 유통사업을 GS그룹으로 넘김에 따라 GS스퀘어로 간판을 갈았고, 2010년 GS에서 백화점과 마트 부문 사업을 정리함에 따라 이를 롯데가 인수했다. 버거킹은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다가 2015년 12월 24일 드디어 구리에 상륙했다! 프랜차이즈로 갈락티코하는 동네 맘스터치도 들어왔다.

그런데 인구 18만에 불과한 구리시에 이렇게 있을 거 없을 거 다 있는 거대 상권이 형성된 이유는 재미있게도 인근 남양주시의 도시 구조 덕분이다. 남양주시가 면적도 크고 인구가 65만 명에 달하는 대도시지만, 도시 내에 단일한 중심 상권이 없고 별내, 퇴계원, 금곡, 평내, 호평, 마석, 진접, 오남 등 주거지를 중심으로 한 중소 시가지가 산발적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나마 구심점이 되는 구리시 지역에 남양주시 일대의 상업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양주시 문서의 도시구조 문단 참고. 롯데백화점은 예로부터 남양주 전 지역에서 오기로 유명했고, 아직도 구리시내 영화관은 구리 수요에다가 퇴계원, 덕소, 도농 수요는 기본으로 쫙 빨아먹는 중이며 돌다리시장 또한 건재하다. 심지어 그 숫자만 구리역 쪽에 CGV(구.롯데시네마) 하나, 롯데아울렛에 롯데시네마 하나, 즉 이 좁고 좁은 도시에 2개나 된다. 애초에 18만이면 1개로 커버가 간신히 되지만 구리는 18만의 2배정도되는 수요를 커버해야하기 때문이다. 남양주시에 자체 상권(호평동 등)이 형성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구리로 나가는 남양주시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7 음식

돼지곱창으로 유명한 곱창골목이 돌다리시장에 있다. 요즘엔 거의 사라져서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토평동이 개발되기전, 파밭 투성이일때 토평는 개고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인근 서울에서 개고기를 먹으러 사람들이 꽤 몰려왔을 정도. 아직도 동네 상권에 비해 많은 개고기 집들이 있고 교문초등학교 근처에 여러개가 남아 있다.


8 스포츠

LG 트윈스 2군 연습장이었고, 현재는 FC 서울 2군 연습장인 GS 챔피언스 파크가 위치해 있는데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를 사이에 두고 광진구 광장동과 맞닿는 엄청나게 뛰어난(!) 서울과의 접근성을 보여주고 있다.[18] 선수단 숙소 역시 구리시에 있었는데, 아파트촌 안[19]에 있어서 숙소에서 나와서 딱 2분만 걸으면 강변역, 청량리역 등으로 가는 버스가 줄을 지어 다닌다. 지금이야 크보판의 동네북으로 전락한 지 오래지만 90년대 LG 트윈스가 한창 신바람 야구 잘 나가던 시절에는 동네 거의 모든 초등학생들이 LG 트윈스 숙소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카더라.

사실 LG 트윈스의 야구 연습장은 원래 축구 연습장 1면을 관청 허가 없이 개조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천 LG 챔피언스 파크 항목 참조. 간단히 요약하자면 1987년에 럭키금성그룹이 4면짜리 축구전용 연습장을 건설했는데, 1990년에 MBC 청룡을 인수하며 LG 트윈스를 만들면서 2군 연습장이 필요했고 자사 사유 축구전용 연습장이었던 LG 챔피언스 파크의 4면 축구장중 1면을 야구장으로 개조한것.

그러나 이 지역은 개발제한구역이라 용도 변경이 사실상 불가능한 지역이었고, 구리시도 이 사실을 2011년 10월 경기도의 명령으로 당시 행위 문서를 검색하다 알게 되었다. 그 후 이 연습장의 용도 복원 명령을 LG스포츠에 내렸다. LG 스포츠는 행정소송을 냈지만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고, 2014년에 이천시이천 LG 챔피언스 파크를 건설해 그곳으로 완전히 이전하였다. 어차피 2군 구장이 서울과 너무 가까운 바람에 6668587667 시절 LG 2군이 분위기가 해이하다는 얘기가 많아서 팬들은 딱히 반대하지는 않는 모양. 여담이지만 사실 연습구장이 있는 것 빼고는 구리시 리틀야구와 중학야구, 고교야구두산 베어스와 관계가 깊은 편이다.

또한 한국여자프로농구KDB생명 위너스 여자농구단이 이 곳을 연고지로 하고 있다.


9 행정구역 통합 논란

위에서 봤듯이 남양주시와는 떼려야 뗄수 없는 각별한 사이로, 구리-남양주의 웬만한 관공서는 두 도시중 한군데 있다. 예를 들자면 경찰서와 교육청은 남양주에 있고 소방서와 세무서(하지만 기관명은 남양주 세무서)는 구리에 있다. 예전엔 남양주에 불나면 구리 소방서 소속 소방관들이 출동하고, 구리에 사고나면 남양주 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출동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구리 경찰서와 남양주 소방서가 생기면서 미묘하게 전통(?)이 깨어지고 있는 중. 교육청 이름도 기존 남양주 교육청에서 구리남양주교육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더불어 고등학교의 경우 구리-남양주가 하나의 학군인지라 서로 도시를 오가며 통학하기도 한다.

외부인들 입장에서는 교육청, 세무서, 소방서도 같은데 그냥 두 도시 합치면 되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시로 출범된 이후 신도시가 개발된 뒤 이주한 사람들은 반대입장이 크고, 구리시 출범 이전에 구리에 살던 사람들도 다시 합치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다만, 새로 이주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합치는데 반대한다면, 원래 살던 사람들 중에는 '합치든 말든 별 상관은 없다'라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는 정도. 아무튼, 적극적으로 나서서 '합치자'라는 의견은 거의 없다.

한때 1995년 도농 통합 당시 남양주군 - 구리시 - 미금시간의 3개 지역 통합론이 나오기도 하였지만 결과는 남양주군과 미금시만 통합하여 지금의 남양주시가 되었고 구리시는 그대로 독립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미금시는 구리시와 마찬가지로 1989년에 남양주군 읍에 속했다가 독립하였던 시로 독립한지 6년만에 다시 남양주군과 통합하면서 남양주시로 바뀌게 되었다. 남양주 입장에서는 미금과 구리 모두 통합하려고도 했지만 미금시와의 통합만 이루게 되어서 지금의 남양주와 구리로 나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2010년 지역 통합 붐에 편승해 구리-남양주 통합안이 나와 도시가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이 통합 문제는 미금시[20]-남양주군 통합(1995년) 때 한번 나온 떡밥이다.[21] 근데 아직도 화제의 효과가 크다.

위에도 나오듯이 행정구역으로서의 역사는 짧지만 시의 역사는 꽤 긴편이라 토박이들의 경우 구리시라는 이름보단 교문리[22], 토평리 등으로 부른다. 다만 유입인구가 늘면서 많이 희석되었을 뿐.

서울특별시 동부 지역에서 서울과 가장 가까운 위성도시로, 이 지역 사람 대부분이 서울로 출퇴근한다. 이 때문에 구리시에서는 서울편입 떡밥(특히 광진구)이 나돌았고 그렇지 않아도 구리 혼자서도 충분히 먹고 살만하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어서 시 자체에서 남양주와의 통합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서울로 편입되기에는 용마산과 아차산이라는 커다란 지리적 장벽이 있고, 시가지도 어느정도 분절되어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안양과는 분절성이 약간이라도 있는 과천과는 다르게 구리는 남양주(옛 미금시 지역)와 같은 생활권을 공유하기에 설령 서울시 면적이 추가확장 되더라도 광명, 과천보다 더더욱 서울 편입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과천시와 광명시는 생활권이 주변 경기도 도시와 분절되어있지만, 구리시는 남양주시와 동일 생활권이다. 더군다나 이쪽은 아까 두 도시처럼 서울 국번을 쓰지도 않는다.

다만 1980년대 초반에 서울특별시가 올림픽 조정 경기장 건설 문제로 당시 토평리 지역의 서울 편입을 검토한 적은 있었다. [기사]

당시에 구리시에서는 남양주(민)을 촌동네로 비하하면서 통합 반대하는 현수막을 온 동네에 도배하여[관련 기사] 안그래도 구리시와 통합을 하여 도시의 발전을 더욱 도모하려던 남양주의 감정을 제대로 건드렸고, 남양주에서 구리시 상권에 대한 불매 여론까지 일어났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몇몇 남양주 사람들이 '코딱지만한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까분다'라면서 매우 불쾌했을 정도니.. 설상가상으로 구리시 (주민들 - 특히 토평/수택)의 짝사랑의 대상인 서울 광진구 주민들도 '구리 촌놈들이 서울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한다'며 골갑지 않게 바라보았다. 당시 관련 뉴스기사에 남양주, 광진구 주민이 도배해놓은 댓글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서울 편입을 위한 구리시민의 열망에 대한 광진구 주민들의 여론이 광명, 과천의 경우보다 더 안 좋은 것은 사실이다. 과천과 광명의 경우는 그들 지역의 서울 편입론에 대한 인근 지역 주민의 여론이 구리시의 경우처럼 적대적이거나 적어도 관심이 없지는 않다. 광명의 경우 백재현 의원(광명갑)이 서울편입 법안을 제출할 때 박영선(구로을) 등 몇몇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참여했다. 반대로 남양주시에 들어서면 구리시 통합을 적극 지지 한다느니, 통합해야 잘산다느니 하는 플랜카드로 도배가 되어 있다. 돌다리부근에서 남양주 경찰서가는 구간을 지나가면 플랜카드가 정말 몇미터 거리만에 반대로 뒤바뀐다. 동시에 물론 구리시 주민과 시 당국의 강력한 반발로 남양주와의 통합은 무산되었다. 구리시장까지 직접 나서서 남양주와의 통합을 적극 저지하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23]

다만 시장까지 나서서 반대했다는 점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도 다소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들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새누리당이 약간 강세 성향인 남양주와 달리, 구리쪽은 민주당 계열쪽과 새누리당이 비교적 접전을 이루는 지역인데, 만약 둘이 통합하게되면 아무래도 인구가 많은 남양주쪽이 비교적 새누리당이 강세이니, 새누리당쪽 당선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허나 현실은 남양주시 17대 총선부터 20대 총선까지 보수정당 4연속 패배... 다만 이에 대해 당시 박영순 구리시장의 '정치적 이유'를 단순히 여당vs야당 구도 차원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견해도 있다. 선거란 것은 여야 붙기 전에 일단 당 내부에서 경선을 거쳐서 후보를 내놓는게 당연한데, 그렇다면 민주당내 경선에서 남양주시가 인구가 더 많으니 여기서 구리시쪽 인물이 배제당할 수도 있는 결과를 박 시장이 두려워했다고 보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고, 실제 당시 양 시민들의 통합 찬/반은 정치성향을 딱히 가리지 않았다.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이석우 남양주시장을 공격했던 주요한 레파토리가 '통합을 입으로는 떠들어댔으면서 소득은 없고 지역감정만 키웠다'였을 정도니...

이는 1995년 남양주군과 옛 미금시 통합 때도 마찬가지로 미금시 일부에서는 독립한지 5~6년만에(1989년 남양주군에서 시 승격으로 분리독립) 또 남양주로 들어가야 하는가, 그럴려면 독립은 왜 했냐, 또다시 남양주군의 개가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거나 이사를 가겠다는 등 지역 내에서도 말이 많았다. 다만 대다수의 주민들은 경기 동부권의 발전을 위해서는 남양주와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여 1995년 행정구역 통합 당시 두 시군이 통합하여 남양주시로 승격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이 때 구리시도 같이 통합시에 합류를 못하게 된 것이 남양주의 엉망인 도시구조를 본다면 불완전한 통합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24]

구리시의 행정구역 개편 논의에 관해서는 행정구역 개편/경기권 참조할 것.

2015년에 들어서면서 남양주시쪽에서 구리-남양주 통합을 재추진하는 분위기다.[기사] 남양주시쪽 인사 뿐만 아니라 구리시쪽 일부 유지들도 통합준비위원회 구성에 참여하였다. 2009년 당시에는 남양주시청이 일방적으로 통합을 추진했다면, 이번에는 양 지역 유지들이 지역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자발적으로 통합을 추진하는 분위기라는 점이 다르다. 구리시에서 이번에 통합에 참여한 가장 큰 이유는 구리시장의 성원이라는 구리 월드디자인시티 유치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구리시 자체의 크기가 워낙 작은지라, 신도시를 유치하기도 힘들뿐더러, 성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남양주와 구리가 통합되고 월드디자인시티 유치에 성공한다면, 남양주가 여기저기에서 유치하고 있는 신도시 개발의 시너지 효과로 수원처럼 광역시급으로 성장이 가능할 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 편이다.

...라고 했으나 현재 구리시 소속 공무원들에게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얘기에 가깝다. 위 보도에 따르면 양쪽 기초자치단체장이 통합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고 하나, 정작 최근 기사[[1]]에서 남양주시장은 “갑자기 통합 문제가 왜 거론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통합이 재추진되려면 구리시민들의 뜻을 모으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전(前) 구리시장도 이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을 한 적이 없으며, 시 자체에서의 움직임도 찾을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이 나옴에 따라 수정을 하기바라며 아직까지 바로 윗문단의 내용은 '상상'에 가깝다.


10 교육

도시의 규모는 작지만 학군 자체가 예전부터 남양주시와 하나의 학군이었고 서울의 베드타운이기 때문인지 취학 연령이 많아 숫자도 많다. 수택 - 교문 - 토평동의 경우엔 근처에 학교가 많이 몰려 있고, 특히 부양초, 구리중, 구리고, 토평중, 토평고의 경우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다만 시의 역사가 그렇게 깊은 편은 아닌지라 79년에 개교한 구리여중 을 제외한 구리여고, 구리중고교나 몇몇 초등학교들 또한 80년 중반에 개교하였고[25], 1990년대 후반 이후 구리시가 개발됨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생긴 것이다. [26] 공립학교 중에는 무려 1921년에 개교한 인창초가 가장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고, 토평초, 구리여고, 구리중, 남고 스타일로 유명한 구리고도 꽤 오래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몇 안남은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지만 도시 규모 자체가 작고 역사가 깊지 않아서인지 특별히 명문이라 부를만한 학교는 없다고 봐도 된다. 평준화 안 되는 이유로 동화고등학교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낭설일 뿐 그냥 남양주가 학생 인원보다 고등학교 수용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삼육고, 와부고, 그리고 올해 4년째 자율형 공립고로 전환 된 청학고를 포함해서 (설사 포함하지 않는다고 해도) 평준화로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된다.

새로 생긴 학교 대부분은 자칭 신흥명문이라 부르며 자랑을 하지만 아웃풋을 보면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 인창고[27]는 구리시의 고등학교들 중에서만 따졌을 때 가장 입결이 높고 201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웃 남양주[28]의 동화고 다음 가는 학교였다. 그래서 구리, 남양주 지역에서 서열 3위 동화고개신교 미션스쿨이라 종교적 행사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일부 중3 학생들이 선호하기도 해서 공립고 중에서는 입결이 가장 셌는데 자공고와부고의 등장으로 기세가 한풀 꺾였다. 거기다 청학고[29] 도 자공고로 전환해버려 이제는 예전만 못한 상황. 그래서 현재 순위는 와부>청학>>동화. 특히 최근에는 동화고가 미달나서 일진 나부랭이들도 다 들어오는 일이 흔하다고(...) 사실상 망한거나 다름없다. 이에 동화고도 타격을 받긴 했는데 인창고는 한술 더 떠 잘 가르치는 교사들이 와부고로 빠져나가기까지 해서... 리즈시절인 2000년대 초중반에는 동화를 앞지른다는 얘기가 헛소리가 아니였다. 안습. 이쪽이랑 엇비슷한 토평고도 초창기에는 그 소리 나왔지 [30]

동네가 좁긴 해도 의외로 학교에 운동부는 많다. 인창고등학교가 고교야구로 유명하며 여기 출신 현역 프로야구 선수가 김종찬, 김태훈, 넥센 윤석민, KIA 윤석민[31]. 인창고 졸업은 아니지만 인창중을 졸업한 윤희상도 있다. 구리중의 경우 축구가 또 전국적으로 유명하다.[32] 구리고 또한 축구부가 있다. 비인기 종목이긴 하지만... 구리여고 카누부는 전국 최고 수준. 전국제패를 밥먹듯이 한다. 더불어 토평중고교의 경우 볼링부로 나름 유명하다

지역의 이름을 딴 학교가 남자/여자 학교로 구리초등학교를 빼면 구리중, 구리고, 구리여중, 구리여고가 있다. 간혹 두 학교가 통합해 남녀공학으로 바뀐다는 항상 남학생들을 설레게 하는 소문들이 있지만 이미 쉬어버릴 대로 쉰 떡밥으로 1990년대부터 돌던 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거 없다[33]

구리고등학교의 경우 최근이 언젠데 과학중점고로 지정이 되었고, 과학중점과(이과와는 별도)와 약간의 이과가 국가에서 나오는 예산 덕을 봤으나 문과는 그런거 없었다. 오히려 차츰 문,이과(과학중점포함)의 차이가 벌어지는 추세이다.[34]

앞서 서술한 인창고서울 서대문구의 인창고와 이름이 같은데, 대략 2011년 이후로 수능 시즌만 되면 이 두 학교를 헷갈린 수험생에 관한 기사가 매해 쏟아져 나온다(...).[35] 2012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선 서울 인창고를 구리 인창고로 착각해 서울 인창고로 가야할 수험생이 구리 인창고로 잘못 찾아온 경우가 있었으며, 2013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선 반대로 구리 인창고를 서울 인창고로 착각해 구리 인창고로 가야 할 수험생이 서울 인창고로 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가수 린, 인피니트 장동우, EXO 시우민이 이 구리 인창고 졸업생이다.

그 외에 런닝맨에서 유명한 이광수토평고등학교 1회 졸업생으로 아마 토평고등학교 출신중에선 가장 유명할 듯 하다. 그 전엔 토평고등학교 4회 졸업생인 루저의 난 이모씨가 가장 유명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그리고 배우 김소은 또한 수택고등학교 4회 졸업생이다.

재림교 재단의 서울삼육중/고등학교가 이 곳에 있다.다들 이름만 듣고 서울에 있는줄 안다 진심으로 공감 by 졸업생 중학교는 공부를 상당히 잘하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중학교 상위권이 그렇게까지는 많이 안 가고, 다들 왕숙천 너머 동화고, 일부는 와부고, 양서고, 또는 영재학교(주로 한국과학영재학교)나 외고, 국제고 등 특목고나 자사고(외대부고, 북일고, 상산고 등)로 빠져서 중학교만큼 명성을 누리지는 못한다. 콩고기와 등굣길의 언덕이 싫어서 다른 학교로 도망간다 카더라 중학교의 경우 67회(2014년 졸업), 68회(2015년 졸업)의 경우 상당히 특목고나 자사고에 많이 진학했다. (두 해 모두 40명을 넘겼고, 전교생은 230명 남짓.) 하지만 이 숫자는 66회부터 68회까지 3년에 걸쳐 허용된 이른바 "비교내신"의 영향이 커, 비교내신을 적용받지 못하고 2016년에 졸업하는 69회의 경우를 잘 보면 이 학교의 저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66회는 특목고에 많이 진학한 기수는 아니다) 고등학교의 경우는 지금 학생들 실력으로 정시는 망했어요 수준이라 판단하여 현 교장이 수시위주의 전략을 시행하면서 어느정도 성과가 나오고있다. 하지만 17학년도에 삼육대 SDA전형이 사라진다면?


10.1 관내 학교 목록


11 출신인물

12 하위 행정구역

  • 갈매동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하는 유일한 동이다.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는 구리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동네이다.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펼쳐지며 여기가 남양주인 줄 아는 사람들도 꽤 있을 정도로 이질적이다. 경춘선 갈매역이 있다. 보금자리주택지구가 들어올 예정이고 바로 위에는 별내신도시가 있다. 47번 국도를 통해 서울특별시 중랑구와 연결된다. 역사적으로는 구한말까지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노원구인 옛 양주군 노원면 지역이었고, 1995년까지는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에 속했다.

  • 교문1동, 교문2동

관할 법정동은 교문동(일부)이며, 1동은 추가로 아천동을 관할한다. 구리시의 중심부 역할을 하는 동네이다. 시의 서쪽을 많이 차지하고 있으며 행정적으로는 교문1동과 교문2동으로 나누어진다. 1동의 서쪽에는 구리시청, 시의회와 소방서 등 행정 기관이 밀집해 있고 동쪽에는 소규모 단독주택들과 구리 최대 번화가인 돌다리가 있다.[39]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인창동 롯데백화점에 밀리는 모양새인데, 2005년 12월 중앙선 구리역이 개통된데다가 2010년대 들어서는 중앙버스전용차로가 개통되면서 정류장 위치가 애매하게 되어버린 탓이 크다. 시청 옆에 2013년 5월 문화예술회관(구리아트홀)이 개관했는데, 구리, 남양주에 처음 생기는 문화공간이다. 사람들이 구리시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딸기원 또한 교문동이다. 6번 국도 망우고개, 92번 서울특별시도 용마터널을 통해 서울특별시 중랑구와 연결되며, 강변북로43번 국도 워커힐고개로 광진구와, 구리암사대교강동구로 이동할 수 있다. 아천동은 FC 서울의 연습구장인 구리 GS 챔피언스 파크가 있다. LG 트윈스 2군 구장구리식물원도 있었으나, 개발제한구역 무단 용도변경으로 인해 이천시로 이전하였다. 태왕사신기를 촬영한 장소였던 고구려 대장간 마을도 여기에 있다. 아천동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구리시 소속이지만 학군은 서울특별시 광진구에 편입되어 있다.

  • 동구동

관할 법정동은 사노동·인창동(일부)이다. 행정동명은 동구릉에서 동명을 따왔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포함해 조선왕조의 왕릉 9개가 있는 곳이다. 사노동은 이웃 갈매동처럼 한적한 농촌 풍경을 볼 수 있는 동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퇴계원IC가 여기에 있고 퇴계원이 바로 위에 있다. 행정 업무는 갈매주민센터에서 맡는다.

  • 수택1동, 수택2동, 수택3동

관할 법정동은 수택동이며 1동과 2동은 추가로 교문동(일부), 3동은 토평동을 관할한다. 1동에는 곱창골목으로 유명한 남양시장[40]이 있다. 2동은 일화 본사가 있다. 3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평동은 구리시의 아파트 촌. 구리타워, 장자못호수공원, 목장과 비닐하우스[41] 이 있다. 행정 업무는 수택3동주민센터에서 맡는다. 구리, 남양주를 통틀어 아파트 평당가가 가장 비싸기로 유명하다. 구리시 전체 토지 평당가도 의외로 높은 수준인데, 이 동네 땅 주인들의 자부심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광진구: 재미있네, 계속해봐. 인창수택뉴타운이 추진중이다.

  • 인창동

관할 법정동은 교문동(일부)·인창동(일부)이다. 시의 북쪽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42]중앙선 구리역[43]이 있다. 인창수택뉴타운이 추진 중이다.

13 기타

크기가 웬만한 서울의 한 구보다 작은 수준이라, 시 한가운데의 번화가인 돌다리에서 만나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밤새 달려도 아무도 집에 택시를 타지 않고 30분만에 걸어서 돌아간다. 거기에 서울 근교 위성도시의 특성상 근처에 버스 차고지를 여럿 끼고 있어 막차시간 또한 매우 늦다. 돌다리에서 수택고등학교 종점 쪽으로 향하는 201번 버스가 무려 새벽 2시까지 다닐 정도. 다만 갈매동만큼은 여기서 제외된다.

더불어 서울 주변도시인지라 서울과 접경 지역에 그린벨트가 있어 개발 바람에서 소외된 지역이 몇 군데 있다. 게다가 지금은 철거되었지만 한때 교문사거리에는 대전차 방호벽까지 있었다. 그린벨트로 인해 원래 그 지역에 있던 마을은 구리시의 발전 확장에 소외되어 사실상 고립된 채로 구리시 중심가와 떨어져 외딴 마을로 한동안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일단 구리시 소속인지라 학교는 구리시에 있는 학교를 가지만, 워낙 외딴곳에 있어 초등학생들까지도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닌다. 이런 마을로는 구리에서 광진구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한다리마을, 구리에서 중랑구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딸기원이 있다.

구리시를 외부에 나름 널리 알린 역사 마케팅(?) 이력은 바로 아래에 자세히 나와 있다.(...)


13.1 역사 홍보

역사상 고구려와 크게 연관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및 광개토대왕을 대대적으로 띄우고 있다.[44] 아예 쌩뚱맞은 건 아니고 구리시 아차산에서 고구려 보루 및 산성유적이 발견되긴 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아단성이 아차산에 있던 산성으로 추정된다. 단(旦)과 차(且)의 글자의 생김새가 비슷하기 때문. 보루등은 그 일부로 여겨진다.

아차산성의 위치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풍납토성을 바라보고 있으며 풍납토성 이나 몽촌토성도 보일 정도로 시야가 좋기 때문에, 고구려 기준에선 백제나 및 한강 이남지역을 감시,견제하는 꽤 중요한 국경요새였을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고구려 땅은 아니고 원래는 한강유역을 가장 먼저 차지한 백제의 보루나 산성[45] 등이 있었지만 개로왕 시절 한성이 털릴 때 아차산 또한 고구려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신라 진흥왕 대에 신락 한강유역을 차지하면서 아차산성 또한 신라에게 빼앗긴듯 하다. 고구려의 온달이 신라로 부터 다시 빼앗으려 왔지만 실패하고 전사(...). 결과적으로 보자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골고루 차지한 지역이고, 시기적으로도 길지 않지만, 남한의 고구려 유적이 워낙 적기에 고구려 땅처럼 알려졌다. 아차산과 용마산에는 전방위 적으로 보루등 요새가 있는데, 고구려 기준에선 한강이남[46]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한강을 바라보는 아차산성은 고구려가 지은것으로 보이며 고구려 유적도 많이 나오는편.


아차산과 산성 및 보루의 위치. 바로 강만 건너면 풍납토성이 나온다.

더불어 그동안 남한에선 고구려 관련 연구나 유적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어[47], 거기에 아차산 고구려 유적은 남한에서 발견 조사된 최초의 보루성 및 산성유적이며 규모도 상당해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다만 시에서 지겨울 정도로 푸쉬하는 광개토대왕이랑은 의외로 큰 연관이 없다. 광개토대왕 당시엔 아직 풍납토성과 아단성 및 한강 유역은 백제의 권역이었고 광개토대왕이 아신왕을 수군으로 털어먹을때의 루트인 관미성 - 미추성 - 아단성 - 한성 중 하나였다. 이후 나제동맹때 빼앗긴 한강유역을 되찾으려 영양왕때 온달이 야심차게 내려왔지만 아차산에서 전사했기에 온달과 더 관련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차산을 사이로 이웃한 광진구가 온달과 평강공주를 선점해버려서 광개토대왕으로 밀고 나간 듯 하다.[48]

고구려와 연관짓기는 생각보다 오래되어 90년대에 이미 시립도서관에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이 액자에 담겨 걸려있었다. 광개토대왕릉비의 6m가 넘는 크고 아름다운 사이즈 덕분에 눈에는 잘 띄는 편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환빠짓과 병크로 욕을 먹고 있지만 2000년대 초중반 고구려 붐이 일기 전에 고구려나 광개토대왕 관련 컨텐츠를 선점(...)해서 한동안은 선견지명으로 보아 구리시 내에선 어느정도 호의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다. 위의 2006년 박영순 시장의 61:1스코어 당선도 당시 고구려붐으로 인한 점도 약간 있다. 현재 광개토태왕상, 고구려 유적공원(예정), 고구려 대장간 마을을 2008년에 조성 온달 장군과 아차산 관련 문제로 서울 광진구와 대립하고 있다. 다만 이런 사업의 일환으로 삼족오 소년단 같은 병크도 일어나기도 했다.[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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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동의 광개토태왕상

2010년부터는 태극기의 도시 구리시란 컨셉을 밀고 있다. 버스정류장 LCD/LED에 '태극기의 도시 구리시'란 문구를 띄우고 있으며 LED는 태극기 3개를 표시하고 있다. 이 역시 태극기나 창안자인 박영효와는 전혀 관계없이 광복 65주년을 맞아 구리시가 그냥 '대한민국 최초 태극기의 도시'란 기믹을 선점한 것 뿐이다.

광개토태왕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사실 광개토태왕이 알고 보면 영토 확장 이외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으니 꽤나 적절한 일이지만, 왜 구리가 그런걸 굳이 세우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 편이다.

그런데 구리시의 동구릉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묻혀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묘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버스정류장마다 "조선왕조의 숨결이 살아 있는 구리시" 슬로건이 적힌 걸개가 걸려있는 등 나름대로 조선의 역사에도 신경을 쓴 듯 보이나 2006~7년 전국을 고구려 열풍에 빠지게 한 드라마들이 연이어 방영된 이후로는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구리시가 고구려 마케팅에만 신경쓰느라 조선왕조를 외면하던 사이 동구릉을 비롯한 전국의 조선 왕릉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이러니. 그런데 동구릉 정류장 버스안내방송에 우리나라최대왕릉군인동구릉 이라는 거창한 미사여구를 집어넣은 거 보면 아주 뒷전은 아닌듯하다?

그나저나 구한말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도 홍보에 충분히 써먹을 만 한데 인지도가 바닥을 기는 편이다.(…)

2016년 백경현 시장 취임 이후로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전임 시장이 남겨놓은 환빠적 색채가 서서히 지워져 나가고 있다. 당장 '고구려의 기상'과 '태극기의 도시' 운운하던, 쓸데없이 거창했던 슬로건부터가 "즐거운 변화, 더 행복한 구리시"라는 꽤나 평범한 문구로 교체된 상태.


13.2 통일교 관련

통일교가평군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에 상당한 부동산[50]을 갖고 있다. 맥콜로 유명한 일화 공장과 본사가 수택동에 있고,[51]. 아차산엔 성지랍시고 울타리를 따로 쳐논 구역이 있으며, 교문동 주택가의 이문안 저수지의 지분 상당수(총면적의 50%를 약간 넘는 수치라고 하며 나머지는 구리시 소유)를 가지고 있다.

이 이문안 저수지는 구리시청 맞은편 주택가에 쌩뚱맞게 있는 저수지로, 구리시 개발이 한창일때 통일교의 소유인지라 개발이 안된 저수지이다. 덕분에 환경, 생태에 관심이 높아진 요즘에 와선 도심내 생태습지로 나름 자리를 잡은 듯. 하나, 고인 물에서 나는 냄새와 모기 만큼은 참기 힘들다. 다만 통일교가 이곳을 메우고 주차장을 지으려고 해서, 구리시 입장에선 그동안 가꾼 노력도 있고 해서 통일교로부터 땅을 구입하려고 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듯. 주차장을 지으려는 이유는 근처에 엄청나게 큰 통일교 교회가 있어서라고. 그냥 있는 정도면 넘어가겠지만, 밤에 불켜놓고 통일교 신자들이 음악과 행사를 치르는 경우도 있다보니 주민들 입장에선 나름 골칫거리이자 소음공해.

참고로 바로 아래에 있는 광진구에는 선화예중/고가 있다. 원래 수도권 동북부 지역에 통일교 부동산이 정말 많다.


14 관련 항목

  1. 얼마나 좁냐면 45.58㎢인 인천광역시 계양구보다도 작다! 대략 노원구마카오와 비슷한 크기라고 생각하면 될 듯. 참고로 전국에서 2번째로 좁은 시는 35.81㎢인 과천시이다. 그 외에도 같은 경기도에 있는 광명시, 군포시도 40㎢ 이하인 면적상 소도시로, 구리시 면적과 엇비슷하다.
  2. 단위로 범위를 넓히면 서울특별시 중구의 면적이 9.97㎢, 인천광역시 동구는 6.98㎢, 그리고...이들을 모두 버로우시킬 부산광역시 중구2.82㎢라는 압도적인 면적(...)을 자랑한다.
  3. 유사한 사례로 바로 건너 있는 하남시가 있다. 이 곳 역시 광주군 동부읍 시절 읍소재지인 '신장(리)'가 동부읍 전체를 가리키는 별칭이기도 했으며, 동부읍의 하남시 승격 이후에도 하남시 전체를 '신장(리)'이라 통칭하는 경향이 있었다.
  4. 인창동 구지초등학교라는 학교 이름에 그 흔적이 남아있긴 하다.
  5. 이 역은 복선 전철화때 새로 생긴 역으로, 그 이전에는 중앙선 여객열차는 망우역도농역 사이에 아무런 역이 없어 구리시를 그냥 통과했다! 동교역이라고 있긴 했...나?
  6. 전철 개통 전에는 오랫동안 코렁시설로 간주되어 이 역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일부 철도 동호인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7. 사실상 경희대, 홍릉, 망우로, 구리시의 심야까지 모두 흡수하는 노선이다. 차 상태가 영 좋지 못한 구리, 남양주시 노선 중에서는 차급이 가장 안정적인 노선이기도 하다.
  8. 다만 이쪽은 구리시의 수요를 직접 노렸다기 보다 차고지 문제로 인해 연장된 케이스
  9. 경의중앙선 환승역.
  10. 직접적으로 연결하지는 않지만 잠실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거나, 석촌역에서 9호선으로 환승하여 강남으로 이동할 수 있다.
  11. 관선 7대, 민선 2, 4, 5, 6대(1998~2002, 2006~2018). 하지만 마지막 임기는 다 채우지 못했다. 후술 내용 참조.
  12. 조선일보에서 내건 슬로건으로, 거실에 TV, 컴퓨터를 치우고 책꽂이를 놓자는 것. [사이트].
  13. 지역 향토 극장이었던 구리씨네를 2006년 인수해 개관.
  14. 이름은 돌다리지만 정작 이곳에 현재 돌다리는 커녕 다리를 놓을 냇가조차도 없다. 사실 이곳은 복개하기 전에 작은 냇가가 있던 곳으로 사람들의 왕래를 위해 돌다리를 놓았던 것이 복개 이후로도 지명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성북구의 삼선교와 마찬가지로 복개 이후에도 다리 이름이 지명으로 남아있는 케이스
  15. 구리시장으로도 불린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불리는 표현. 실제로 이 근처의 버스정류장 이름 역시 "돌다리, 구리전통시장"이다.
  16. 인도가 좁아지고 정류장이 도로 한가운데로 가게 되어 접근성이 떨어지게 된다.
  17. 10년 이상 한 자리를 지켜왔던 돌다리점이 없어지고 돌다리사거리 남양상호저축은행 맞은편으로 이전했다. 카더라에 의하면 이전 돌다리점 건물주의 이해할 수 없는 갑질이 한 몫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론 이전하면서 꽤 넓어지고 인테리어나 익스테리어 모두 좋아진 반면, 손님 숫자는 그야말로 반토막이 나 버렸다.
  18. 차로 2분이면 시 경계선이고 7~8분이면 광장동의 광나루역이다.
  19. 위치는 수택동우체국 바로 옆. LG가 이천으로 이사간 후에는 오피스 빌딩으로 리모델링되었다. [2015년 8월 다음 로드뷰]. 리모델링되지 않은 벽돌벽과 유리로 말끔하게 새로 장식된 부분이 상당히 조화가 안 되지만 그냥 넘어가자.
  20. 현 남양주시의 동 지역
  21. 그때 구리-미금-남양주 통합안이 있었다. 원래 구리나 미금이나 크기가 워낙 작은지라. 그리고 구리+남양주 북부(진접읍, 별내면) & 미금+남양주 남부(와부읍, 화도읍) 떡밥도 있었다.
  22. 구리 토박이가 아니더라도 이 이름은 꽤 익숙한 사람들이 많은데 돌다리를 가리킬 때 부르기도 하고, 교문동 아파트단지나 구리시 전체를 가리킬 때 부르기도 한다.
  23. 이에 관해서 가장 큰 이유 중 구리 월드디자인시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남양주-구리가 통합되면 구리시가 계획중인 월드디자인시티는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설사 무산이 않되고 실행된다고 해도 남양주에 건설중인 신도시들이 워낙 많다보니 그대로 묻혀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외에도 구리시 자체의 크기가 작다보니, 남양주와 통합하게되면 자연적으로 남양주쪽에 동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
  24. 평택시의 경우 평택시+송탄시+평택군 이 합쳐진 형태다.
  25. 1982년에 구리여고, 1984년에 구리중, 1986년에 구리고가 각각 개교했다.
  26. 1994년에 백문초, 교문중 1996년에 인창중/고, 1999년에 동구중, 2001년에 장자중, 토평고, 2002년에 토평중, 수택고가 각각 개교했다.
  27.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동명의 학교와는 관련 없다.
  28. 동일 고교 학군이다.
  29.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청학고는 양아치나 공부 더럽게 못하는(...) 애들만 가는 똥통학교(...)로 악명이 높았다. 이러한 악명 때문인지 한때 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명 '청학랜드'라는 별칭으로 통하기도 했다.
  30. 토평고 역시 개교후 3년간은 입결이 수직상승하면서 한때는 인창고에 버금가거나 넘어섰다는 수준까지 갔지만... 짧은 전성기를 뒤로하고 기세가 꺾였다.
  31. KIA 윤석민은 1학년을 마치고 야탑고등학교로 전학했다.
  32. 구리중학교 축구부는 2007년~2008년경 병크로 폐부되었다. 근데 몇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수정을 안했다.
  33. 일설에는 구리여중, 구리여고 동문회에서 반대한다는 소문이 있다. 왜냐하면 남녀공학으로 통합이 되면 구리중, 구리고라는 이름으로 통합이 되기 때문에 자기들 학교가 없어진다는 이유.
  34. 이러한 차이는 2015학년도 입시 결과에도 확연히 드러났는데, 이과(과학중점포함)에서 서울대 합격자를 2명 배출한 반면, 문과는 서울대는 고사하고 중앙대, 경희대서울시립대가 최상(?)이었다. 문송합니다 서강대 성균관대 합격자는 언제쯤 나올라나
  35. 참고로 두 학교는 직선거리로만 무려 16.8km 떨어져 있다.
  36. 공명과 형제 지간이다.
  37. 정확히는 남양주시 출신이다. 초등학교 6학년때 구리시로 이사를 왔기에, 남양주시 항목에도 기재 되어있다.
  38. 심지어 위의 투수 윤석민과는 학교도 중학교때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었다.
  39. 이 돌다리에서 이름을 딴 돌다리시장은 수택1동의 남양시장과도 연결된다.
  40. 돌다리시장과도 연결된다.
  41. 목장이 두 곳이나 있으나 토평동 주민 중에서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42. 과거엔 LG백화점이었다가 LG그룹이 계열 분리되었을 때 GS리테일 산하 GS스퀘어로 바뀌었고, GS리테일 백화점 사업부문이 롯데쇼핑에 인수되면서 롯데백화점으로 바뀌었다. 구리시 유일의 백화점으로 구리시민들과 구리와 같은 생활권인 남양주시민들이 주 이용객이며 중랑구 일대에서도 오는 경우가 있는지라 공장이나 기업이 거의 없는 구리시 특성상 구리시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곳이다. 덕분에 구리시에서 도움을 많이 봐 주는 편으로, 중앙선 구리역이 백화점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백화점에서 바로 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
  43. 위치 자체가 구리시에서 꽤 외곽 쪽으로 벗어나 있는데, 이는 앞 주석에도 써 있듯이 백화점의 입김이 매우 세다 보니 백화점 측에 유리하게 바로 옆에 지은 것. 이 연결통로는 GS스퀘어 시절에 완공됐다. 참고로 중앙선 전철 건설 당시 이 구간 시공사가 다름아닌 GS건설(...)
  44. 구리시내 학교 교가에도 고구려가 들어간 경우가 많다.
  45. 개루왕이 세운 북한산성이 이곳일 가능성도 있다.
  46. 실질적으로 신라나 백제 기준에선 한강 이남을 견제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아차산성처럼 한강 이남 견제를 위한 모양새는 별로 큰 필요가 없다. 다만 아차산이나 용마산 자체는 한강 이북을 경계하는데도 중요한 요충지였을 것이다.
  47.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과거엔 고구려 관련 연구를 하면 빨갱이로 매도되는 시기가 있었다. 아차산이나 일대 고구려 유적들도 풍납토성과 워낙 가까워서 백제 유적인줄 알고 파보니 고구려 유적인 경우가 많다.
  48. 다만 여기서 더 나아가 고구려→고려→구리로 변하여 현재의 구리가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위의 유래 설명에서 보듯이 구리란 지명은 일제가 만든 것이니 신빙성이나 근거는 전혀 없다. 구리빠
  49. 막상 지역 주민들도 대부분 이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오히려 다행인듯
  50. 꽤 예전부터 소유하고 있었는데, 구리시가 개발되고 땅값이 급등하면서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고 매각한듯 하다.
  51. 묘하게도 일화 공장 바로 옆에 가톨릭 구리 성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