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


조선의 추존 국왕
목조 이안사익조 이행리도조 이춘환조 이자춘덕종 이장원종 이부진종 이행장종 이선익종 이영
원의 천호(千戶)
이행리이춘이자흥
묘호도조(度祖)
시호공의성도대왕(恭毅聖度大王)
본관전주(全州)
능묘의릉(義陵)
이(李)
춘(椿)
배우자경순왕후(敬順王后)
아버지이행리(李行里)
어머니정숙왕후(貞淑王后)
생몰기간? ~ 1342년

李椿
?~1342

1 소개

조선추존왕이자 태조 이성계의 할아버지. 아명은 선래(善來), 몽골식 이름은 발안첩목아(孛顔帖木兒)이다. 묘호는 도조(度祖). '度'자는 '(헤아릴) 탁'이라는 음도 있기 때문에[1], 탁조라 부르기도 한다.

2 일생

익조와 정숙왕후 최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번째 아들로 전체에서는 네 번째 아들이다. 익조가 죽자 천호 벼슬을 물려 받았는데 익조가 함주, 즉 함흥으로 이주해서 낳은 아들이다. 익조는 위기에서 탈출해 의주, 지금의 원산으로 돌아와 최씨와의 사이에서 늘그막에 낳은 아들이다. 아이가 안 생겨서 강원도 양양군에 있는 낙산 관음굴에 가서 정성스럽게 기도를 드리니 낳은 아들이라고 한다. 익조의 벼슬이 정실의 큰 아들인 함녕대군 이규수에게 세습되지 않고 측실의 아들인 이춘이 세습한 것은 여기서의 세력 형성에 최씨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원래 터전에서 밀려난 익조는 안변의 호족이자 장인인 최기열의 힘에 의해 세력을 재건했고 그 힘을 기반으로 천호 벼슬을 다시 찾았기 때문에 최씨 사이에서 태어난 이춘을 후계자로 삼았다. 이춘은 별 기록은 없으나, 늙어 중풍에 걸려 1342년 7월 24일에 죽었다. 죽기 전에 중풍으로 천호 벼슬을 수행할 수 없어서 정실인 박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들 완창대군 이자홍에게 넘겨줄려고 했지만 측실인 조씨는 자기 소생에게 넘겨주기를 바랬다. 그 일로 이자홍과 조씨 사이에 다툼이 생기자 이자홍은 나라에 직접 가서 자신이 적장자임을 밝히고 천호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는 2달도 채 안되어 9월에 죽어버렸다. 이자홍에게는 영성대군 이천계(아명은 교주)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렸다. 이에 조씨는 자기 소생에게 물려주길 바랬는데 사실 조씨는 당시 쌍성총관부의 수장인 총관의 딸이었기에[2] 으로 밀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이자홍의 친동생인 이자춘이 물려받는다.

이춘은 2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첫 부인은 알동 백호를 지낸 박광의 딸 박씨와 박씨가 죽고 새로 맞아들인 쌍성 총관의 딸 조씨가 있다.
이춘은 나중에 이성계가 왕에 오르자 도조[3]로 추증되었고 박씨의 아들인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가 조선을 세웠기에 박씨가 정비로 인정되어 경순왕후(敬順王后)로 추증되었다.
도조는 함흥 동쪽 운전사 주변에 마련된 의릉(義陵)에 안장되었고 경순왕후는 함흥 동쪽 동명사 근처, 지금의 흥남에 있는 순릉(純陵)에 안장되었다.

3 자식

  • 아버지 : 조선 추존국왕 익조 이행리
  • 어머니 : 정숙왕후
    • 조선 추존국왕 도조 이춘
    • 왕비: 경순왕후 박씨
      • 완창대군(完昌大君) 이자흥(李子興), 이탑사불화(李塔思不花)[4]
      • 환조(桓祖) 이자춘 (李子春)
    • 계실: 조씨
      • 완원대군(完原大君) 이자선(李子宣), 완자불화(完者不花)
      • 완천대군(完川大君) 이평(李平), 나해(那海)[5]
      • 완성대군(完城大君) 이종(李宗)
      • 문혜공주(文惠公主) / 대장군 문인영(文仁永)에게 출가
      • 문숙공주(文淑公主) / 다루가치 금마분(金方卦)에게 출가
      • 문의공주(文懿公主) / 허중(許重)에게 출가
  1. 구한말 오늘날의 기획재정부(재무부)에 해당되는 부서를 '탁지부(度支部)'라 하였다.
  2. 참고로 이 조씨는 조광조의 가문인 한양 조씨이다. 위에서 나온 것처럼 천호 벼슬 계승 문제로 이성계 집안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어찌어찌해서 후손 중 하나가 환조를 돕게되고 그 와중에 그 사람의 후손만 대가 이어지게 되면서 개국공신 집안이 된다.
  3. 도조(度祖) 공의성도대왕(恭毅聖度大王)
  4. ,뒤에 있는 이름은 몽골식 이름이다.
  5. 완천대군은 나중에 외가인 조씨 가문을 믿고 이춘의 뒤를 이어 천호직을 계승하기 위해 난을 일으켰으나 이자춘에 의해서 제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