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리


조선의 추존 국왕
목조 이안사익조 이행리도조 이춘환조 이자춘덕종 이장원종 이부진종 이행장종 이선익종 이영
원의 천호(千戶)
이안사이행리이춘
묘호익조(翼祖)
시호강혜성익대왕(康惠聖翼大王)
본관전주(全州)
능묘지릉(智陵)
이(李)
행리(行里)
배우자정숙왕후(貞淑王后)
아버지이안사(李安社)
어머니효공왕후(孝恭王后)
생몰기간? ~ ?


李行里
?~?

1 소개

조선추존왕이자 태조 이성계증조부이다. 묘호는 익조.

2 일생

목조와 효공왕후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네번째 아들로 목조가 죽은 다음 해인 1275년 3월에 천호 벼슬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여진족 천호들에게 쫓겨나는데 당시 두만강 주변의 천호들은 모두 여진족이었지만 이행리만 고려 출신이었다. 그래서 두만강 북쪽에 있던 동족들과 이행리를 습격해 죽이기로 하고 이를 모르는 이행리에게 사냥간다는 핑계로 거사를 하면 도망갈 도주로를 차단하려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르는 이행리는 돌아오는 길에 한 노파를 만났는데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두만강 하류에 있는 적도라는 섬에서 가솔들과 만나기로 하고 도주로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여진족으로 가득차 있었고 겨우 적도 기슭에 다다랐지만 두만강 물이 깊고 강폭이 넓어 건널 수가 없었다. 추격병까지 쫒았지만 그 때 갑자기 썰물 덕분에 물이 빠져 물이 얕아졌고 건널 수가 있었다. 나중에 추격병들이 왔을 때는 밀물이 밀려와 다시 수심이 깊어 건널 수가 없었다.

이행리는 적도에서 움집을 짓고 잠시 살다가 배를 10척 정도 만들어 가솔과 남아 있던 고려인들과 함께 의주, 즉 원산으로 향했다. 의주는 아버지 목조가 병마사로 선정을 베풀던 곳이라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았고 경흥에 살던 고려인들도 대거 오는 바람에 쉽게 세력이 다시 커졌다. 이행리는 얼마 후에 나라의 일본 원정 때 참가 했는데 여기서 충렬왕을 만났다. 충렬왕은 접견 자리에서

'그대는 본국(고려) 벼슬을 하던 집안이니 어찌 근본을 잊을 것인가? 지금 그대의 거동을 보니 마음이 본국에 있음을 알겠다.'

라고 말했다. 행리는 9월 10일에 죽었지만 연도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태조가 왕위에 오른 뒤 익조로 추존되었고[1] 능은 안변 서쪽 서곡현 봉릉역 뒷골(광복 당시 안변군 서곡면 능리)에 있는 지릉(智陵)이다.

익조에게는 2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첫 부인은 손씨, 두 번째 부인은 등주, 즉 안변의 호장 최기열의 딸 최씨였다. 원래 첫 부인인 손씨가 정비로 추존받아야 했지만 익조의 뒤를 이은 것은 최씨가 낳은 서자 이춘이었기에[2] 이춘의 손자였던 이성계는 최씨를 정숙왕후로 추존했다. 정숙왕후 최씨의 무덤은 문천군 문천면 능전리에 있는 숙릉(淑陵)이다.

3 가계

  • 아버지 : 조선 추존국왕 목조 이안사
  • 어머니 : 효공왕후 이씨
    • 익조 이행리
    • 정실: 손씨
      • 함녕대군(咸寧大君) 이안(李安) 또는 이규수(李嬀水)
      • 함창대군(咸昌大君) 이장(李長) 또는 이복(李福)
    • 왕비 : 정숙왕후 최씨
      • 함원대군(咸原大君) 이송(李松)
      • 도조(度祖) 이춘(李椿)
      • 함천대군(咸川大君) 이원(李源)
      • 함릉대군(咸陵大君) 이고태(李古泰)
      • 함양대군(咸陽大君) 이전(李腆)
      • 함성대군(咸城大君) 이응거(李應巨)
      • 안의공주(安懿公主) 이씨
  1. 익조(翼祖) 강혜성익대왕(康惠聖度大王)
  2. 이 때까지는 적자, 서자 구별이 없었다. 나중에 태종 때 만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