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계철선

1 개요

引繼鐵線, tripwire.

트립 와이어. 장력식 격발장치를 사용할 때 쓰는 철선. 특히 부비트랩을 설치할 때 많이 쓰이는 물건. 좀 심하게 튼튼한 철사로 무광 코팅이 되어 있다. 속칭 '피아노줄'이라고 부르는데, 실제의 피아노줄과는 약간 다른 물건이지만 인계철선의 기본원리가 피아노줄에서 출발한 물건이라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 실패에 둘둘 말아놓은 형태로 보급되며, 매우 튼튼하기 때문에 사용처가 많다. 대부분의 폭발물은 신관을 교체해도 인계철선으로 잡아당기면 즉시 폭발하도록 만들 수 있으며, 폭발물 외에도 전차 장애물에 보조로 깔아놔서 전차가 걸리면 무한궤도와 보기륜등에 얽혀서 진격속도를 느리게 만들거나 아예 멈추게 만들수도 있다. 이외에도 빨랫줄로 쓰거나 하는 등 일상적인 용도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자체로도 의외로 쓸 만한 무기가 된다. 적절한 길이를 손에 말아쥐면 대검에 버금가는 교살무성무기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주둔지 경계용의 조명지뢰에 이리저리 얽어서 침투 경로를 대비하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부비트랩의 핵심 부품이기도 하다. 격발장치, 충격신관과 여기 연결된 폭발물과 함께 적절히 조합하여 사용하며, 피해자가 고무줄놀이(?)를 실패할 경우 시밤쾅하며 주변을 날려버린다. 고무줄놀이를 하기 싫어서 인계철선을 끊을 때를 대비해 대상으로 신관을 교체해서 인계철선이 끊어지면 터지도록 만들거나, 아예 인계철선이 잡아당겨지건 끊어지던간에 무조건 작동하게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인계철선을 발견하면 폭발물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냥 안 건드리는 것이 상책이다.

2 의미의 확장

동맹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하기 위한 인질과 같은 성격을 지닌 주둔군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주한미군 등 해외주둔 미군. 인계철선을 건드는 순간 부비트랩이 터지는 것처럼 공격을 받는 것과 동시에 자동개입을 이끈다는 유사성 때문에 쓰이는 용어인 듯.

각종 조약 등으로 군사협력 관계를 맺는다고 하더라도 실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보호국은 국익에 따라 피보호국을 버릴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 각종 조약으로 엮여 있었지만 자신들이 보장하고 있던 벨기에의 중립이 깨어지기 전까지 개입을 망설이고 있었으며,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소규모 중립 폴리스였던 멜로스는 자신들의 모식민시였던 스파르타와의 친분을 믿고 아테네의 위협에 저항했지만 스파르타는 개입하지 않았고 결국 성인 남자는 모두 죽고 여자와 아이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버리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따라서 보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하기 위해 각종 수단이 강구되는데, 이 중 가장 확실한 방안이 보호국의 군대를 자국에 주둔시키는 것이다. 자국의 군대가 공격받는다면 이는 곧 자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니까. 따라서 적국이 선택적으로 보호국의 군대를 타격에서 배제할 수 없도록 가급적이면 전방에 피해를 무시할 수 없도록 대규모의 군대를 주둔시키게 된다. 합동/연합 지휘체계까지 구성된다면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더할 나위없는 체제가 구축됐다고 볼 수 있다. 다 알다시피 이 체제가 완벽하게 구성된 것이 한국이다. 동두천, 의정부 등 전방에 주둔한 주한미군한미연합사령부 체제는 대규모 도발 시 미국이 한국에서 발을 빼고 도망갈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즉 북한군대한민국을 침공하거나 타격했을 때 대한민국 주둔 미군이 타격을 입으면 자동적으로 미군 50만이 한반도전쟁에 반드시 참전한다는 의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작전권 환수와 주한미군 평택 이전배치에 군 내외에서 거세게 반발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계철선이라는 말 자체가 염치가 없지 않습니까? 남의 나라 군대를 왜 우리 안보를 위해서 인계철선으로 써야합니까?" 연설이 대표적으로, 동맹국 군인을 인질로 삼는다는 것이냐는 반발이 나올 만한 표현이지만 한국인들은 좌우 가릴것 없이 이 표현을 정말 스스럼없이 사용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중파 TV 뉴스에서 "주한미군 재편으로 인한 인계철선의 후퇴가 우려됩니다"란 멘트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다.

2010년대에 접어든 현재도 '인계철선 역할을 한다'라는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할 뿐,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주한미군들에게 이 말은 절대로 쓰면 안된다. 농담이라도 정말로 기분 나빠한다. 자신들이 그저 본토 주둔 미군을 한반도의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희생되는 장치 정도로 취급받는데 어떻게 좋아하겠는가? 고건 전 총리의 경우도 전선 협력관계(front partnership)란 표현으로 순화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