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리 선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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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적지를 발견한 전설적인 인물 그렉 보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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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주먹도끼이다.

공식홈페이지

1 개요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에 있는 사적 268호 문화재.

2 우연한 발견

1977년 그렉 보웬(Greg Bowen)이라는 주한미군 공군 상병[1]이 동두천 군부대의 여가수인 한국인 애인과 1월에 한탄강으로 데이트하러 나가서 여친커피를 마시려고 코펠에 물을 끓이기 위해 주변에서 돌을 모은다. 그 때 여친이 주워온 '이상한 '을 보고 보웬은 뭔가를 알아차리고는 서울대 교수에게 조사 요청을 했는데, 그 돌이 약 3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인 '전곡리 주먹도끼'였던 것. # 관련 글 이 것으로 서울대학교 박물관은 전곡리 일대에서 4500여점의 유물을 획득할 수 있었다. 득템!!

우연히 나간 데이트 장소가 구석기 유적지였다는 것과, 데이트를 나가 그걸 처음 발견한 사람이 고고학 전공자라는 점. 이건 우연과 행운이라는 말밖에는...

3 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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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견은 당시 고고학 학계를 완전히 뒤엎은 대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는 아슐리안형 뗀석기(흔히 양면핵석기라 부른다)가 발견되지 않아 대표적으로 모비우스(Movius) 같은 학자들의 '구석기 문화 이원론'이 주장되고 있었다. 이는 모비우스 라인이라는 가상의 선으로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는 지역과 발견되지 않는 지역을 나누어, 인류의 이동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는 이론으로 한동안은 인도 동부에서부터 이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인류의 동아시아 진출이 (이 석기를 이미 가지고 들어간)유럽보다 늦게 이뤄지지 않았나 추정했다.[2]

그런데 전기 구석기의 전곡리 선사유적지의 아슐리안 석기 발견으로 정설로 인정받았던 모비우스 학설이 한순간에 부정되어 버린 것. 이 일은 세계를 놀라게 했고, 데즈먼드 클라크 같은 세계적인 학자들까지 한국에 와서 석기들을 감정하고 진품임을 인정했다.[3] 특히 옛날부터 한국에는 구석기 시대 유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일본은 이 사건으로 열폭해 버린다. 특히 식민지배하던 1930년대 함경북도 종성군 동관진에서 동물 뼈와 석기 등 후기 구석기 유적을 발견했으나 무시하던 사건 등도 소용없게 아예 아슐리안식 주먹도끼가 발견돼 버린 것.[4] 이렇게 열등감에 빠진 일본은 한국에 역사적으로 뒤쳐질리 없다며 자기들도 있을 것이라며 열폭하다가, 결국 몇 년 안가 후지무라 신이치1981년 석기 유물 조작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이로서 일본은 세계적으로 개망신 당하는 것은 물론, 일본의 고대 석기 시대 연구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된다. 자세한 것은 후지무라 신이치 참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아슐리안형 석기보다 이전의 원시적인 석기를 올도완(Oldowan) 석기라고 부르는데 아프리카에서 260만년 전부터 발견된다. 그런데 아프리카로 부터 호모 에렉투스가 약 190만년 전쯤 아프리카를 나와서 아시아 쪽으로 진출했는데 이때 조악한 올도완 석기기술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그 이후 160만년 전쯤 아프리카에 남아 있던 고인류가 보다 발전된 방식의 석기를 만드는데 이를 아슐리안형 석기라고 부른다. 따라서 중국 및 인도네시아의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 유적에서는 당연히 올도완 석기만이 발견된다. 위에 나온 모비우스 라인은 이런 증거를 잘 설명하는 이론으로 오랫동안 고인류학자들에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아슐리안 석기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79년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석기와 상당히 닮은 손도끼가 발견되어서 학계의 논란이 된 것. 이 유적이 30만년 전의 것이라면 새로운 호모 에렉투스가 아슐리안 석기 기술을 가지고 아프리카로부터 아시아의 끝까지 왔다는 얘기이거나, 최소한 아슐리안 기술이 그 먼 거리의 고인류사이에 전파되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지나간 자리에 다른 아슐리안 석기 유적이 발견되어야 한다. 전곡리 유적 발견 당시에는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그런 증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비우스 라인이라는 가설이 나왔었던 것이다. 만약 이 유적이 4만년 전의 것이라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유골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의 지질학적 상황으로만 연대를 추정해야 하기 때문에 둘 중 어떤 것이 맞다고 정확하게 말하기 힘든 점이 있다.

4 과연 30만년 전 것인가?

그런데 이 30만년전이라는 수치는 아직 확실한 연대로 보기 힘들다. 사실 전곡리 유적은 한양대 배기동 교수와 서울대 이선복 교수의 연대관이 나눠져 30만년인지 10만년도 안되는지 논쟁이 많았고 확실한 연대측정 자료를 얻을 수 있는게 없었다.[5] 그나마 2009년도 연천 전곡리 중2-5호 도로 공사 구제발굴현장에서 채취한 샘플로 OSL연대측정 결과는 12~6만년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2010년 이선복 교수는 전곡리 선사유적지 토층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용암이 삼킨 나무>의 탄화목의 시료를 채취해서 미국, 뉴질랜드 등등의 AMS연대측정 기관에 의뢰하여 맡긴 결과 4만년이라는 지질-지형학 입장에서도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즉 중기구석기 유적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 구석기 연대측정의 경우 한국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도 제대로 신뢰할만한 값을 얻기가 매우 힘들다. 일단 시료의 제한과 더불어 재퇴적 등의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아 신뢰할만한 연대를 가진 유적은 극히 일부다.

그럼 어째서 이렇게 큰 연대차를 가지게 된 것인가? 이는 현무암 기반암과 AT화산재 사이의 구석기 문화층이 지질학적으로 빠른 시간에 쌓인 것인지 아니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쌓여서 형성된 것인지 확신을 못하기 때문이다.

즉 현무암 기반암은 포타슘/아르곤(K/Ar) 연대 측정법으로 측정해서 어느 정도 연대가 나왔고, 문화층 상부에서 발견된 AT(아이라-탄자와)화산재의 연대를 통해 구석기 문화층의 상한과 하한은 결정되었다.(이거 외에도 뢰스 즉 풍성층 연대 등도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간적 사이에 지질 형성이 얼마나 걸렸냐인데... 문제는 90년대 들어서 이선복 교수의 경우 용암댐이 형성되면서 급격해 퇴적되어 현재의 지층이 생겼다고 보고 있다. 즉 가장 큰 문제는 이 용암댐이라는 것이 실제로 어떤 작용을 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단순히 구석기 고고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가장 특이한 지질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추가령 구조곡에 관한 지질학적 문제도 얽혀있기 때문에 쉽게 결론나기 힘들다.

또한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약 20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후에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 현재의 학설이다. 다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직계 선조는 아프리카에서 약 20만년 전에 진화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다. 대략 10만년 ~ 6만년 전 무렵에 어떤 계기로 인해 아프리카를 떠나기 시작한 현생인류는 중동지역을 거쳐 유라시아 전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현생인류는 대략 4만년 전쯤에 한반도에 도착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다만 전곡리 유적의 경우 아슐리안형으로 보이는 석기만 발굴이 된 상태이고 이 유적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의 유골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석기만으로 정확한 연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현생인류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돌의 양면을 깨서 쓴 석기가 있으므로 유적의 시대를 정확히 단정짓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다.

5 그렉 보웬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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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있는 사람이 그렉 보웬이다. 오른쪽 중년여성은 부인인 상미 보웬(이상미).

이런 중요한 도끼를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운 좋게도 보웬이 마침 애리조나 주립대학[6]의 고고학 전공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7] 군대에 갔던 것도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졸업하고 입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보웬에게도 이 유적지 발견은 크나큰 명예였으며 이 공로로 해외 고고학계로부터 알려져서 이후 제대해서 석사학위까지 따고 각종 유적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나바호 인디언 역사보존부에 근무하였다. 2005년에는 1988년 이후 17년만에 연천 구석기 축제에 초청받아 방한하기도 했다. # 당시 여친이었던 아내와의 사진 방한 당시 이선복교수는 "당신이 아니었으면 전곡리의 역사는 지금도 잠들어 있을 것" 이라며 유적이름을 보웬 유적지로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보웬은 1978년에 제대 후 한국인 애인이었던 이상미씨를 데리고 미국 애리조나로 가서 결혼, 딸을 하나 두었고, 2009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

6 여담

이 항목에 정작 선사 유적지 관련 내용은 공식홈페이지밖에 없다.
석기시대 유물 중 양날주먹도끼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출토된 게 한반도이기 때문에 한반도 사람들의 DNA가 온순하다는 평화의 민족설에 대한 반박 자료로 쓰이기도 한다(…). 이럴 수가 주먹도끼만해도 무서운데 양날이라니! 물론 이건 농담에 가깝고, 주먹도끼 같은 양면가공석기는 한반도 말고도 남중국의 백색 유적에서도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고, 몽골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전곡리에서 발견된 이후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주먹도끼와 같은 양면가공석기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주먹도끼의 큰 특징은 양날이 아니라 양면으로 가공했다는 것이다. 양날은 이미 훨씬 구식인 찍개에서도 양날찍개가 존재한다.

7 파급효과(?)

[8]과 율무, 콩[9] 같은 작물 그리고 군대 빼고는 볼 것도 없던 동네 연천은 구석기를 컨셉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그 일환으로 수많은 공공시설에 원시인 캐릭터와 리얼한 원시인 모형을 박아넣게 되었다. 당장 연천군 마스코트구석기인이고 청산면의 초성리에서 전곡읍으로 진입하는 3번 국도 구간에 크고 아름다운 장식을 해 놓았다[10]. 행사라고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연천군이지만, 연천 전곡리 구석기 축제는 지자체의 지원 속에 큰 규모를 자랑하며 연천 군민이라면 동네에서 연예인을 볼 수 있는 정말 드문 기회 중 하나이다. 박현빈이라든가 포미닛이라든가

시행 초기만 해도 허접한 수준이라 공무원들이 원시인 코스프레하고 불피우던 수준(…예?!)이었는데 지금은 어엿하게 알바를 고용하고 있다. 일년중 유일하게 연천에 사람이 붐비는 시기라고 봐도 좋다. 보웬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2011년 4월 25일 이 유적지에 전곡선사박물관이 개관했다. 근데 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게 동네 사람들은 이미 볼거 다 봐서 말이지...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석인골모형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이며 연천에 간다면 한탄강 위에 지렁이(…)같이 생긴 은빛 구조물이 보일텐데 그것이 바로 이 박물관. 개관 초기에는 밤에는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걸 볼 수 있었는데 2015년 기준으론 밝히지 않는듯. 내부 컨셉은 동굴인데 프랑스의 유명한 디자이너 니콜라스 데마르지에르가 설계했다고 한다. 흠좀무. 근처 학교 학생들이 주말마다 청소년 문화해설사로도 활동한다고 하니 여기 들르는 일이 있다면 꼭 한번 가보자. 노란 조끼를 입은 도슨트가 바로 이들이다.

  1. 보직은 기상관측. 땡보직이었다고 한다.
  2. 물론 이 석기에 맞는 재료의 부족이나, 유행 때문에 바뀌었을 수도 있다.
  3. 다만 모비우스 라인 자체는 아직 완벽하게 깨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동아시아의 주먹도끼가 아슐리안이라고 보기에는 두께도 두껍고, 재타격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가공도가 너무 낮아서이다. 이는 플린트와 달리 매우 단단한 규암과 석영, 석영맥암을 석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배기동 교수는 전곡리안으로 따로 분류하며, 유용욱 교수는 비아슐리안으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때문에 동아시아계 주먹도끼를 아슐리안으로 보는 시각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비우스 라인 자체가 맞다고 하기는 뭐한 것이 일명 모비우스 라인 서쪽 지역도 전체를 아슐리안으로 분류하기에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4. 사실 한반도에는 중기 구석기의 함북 웅기 굴포리(60년), 전기~후기 구석기 공주 석장리(64년), 전기 구석기 유적인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66년)등 곳곳에 전곡리 10여년 전에 발견된 60, 70년대 구석기 유적이 널려 있었다. 전곡리는 모비우스 학설을 뒤집는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어 임팩트가 컸던 것이다.
  5. 참고로 두 사람은 삼불 김원룡 선생의 제자로 배기동 교수가 한참 선배다. 하지만 연대관 문제로 가장 큰 라이벌이기도 하다.
  6. 이 대학부터 고고학으로 알아주는 대학이다.
  7. 전공이 아니고 교양수업에서 고고학 관련 수업만을 들었다는 소문도 있으나 본인이 고고학 전문이라고 밝혔다.
  8. 접경지역인 백학면에 펼쳐진 평야에서 생산하는 백학쌀이 유명하다. 듣보잡이라 그렇지 맛은 여주시 같은 유명한 동네보다도 맛있다.
  9. 비무장 지대 근처의 장단콩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이 콩으로 벌어먹는 곳은 옆동네 파주로, 콩 축제도 파주가 챙겨갔다. 파주에서 열리는 주제에 정작 쓰는건 죄다 연천산 콩이다! 사업도 뺏겨, 인구도 뺏겨.. 망했어요
  10. 이 구간은 경원선 철도와 병주하는 구간이라 열차 안에서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