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 Valle de los Caídos(바예 데 로스 카이도스)
1 개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북서쪽 산로렌소데엘에스코리알의 화강암 바위산에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만든 무덤, 성당, 수도원 등의 복합건축군. 스페인 내전 기간에 사망한 전몰자 4만여 명의 무덤이 조영되었으며, 프랑코가 좌우 화합을 내세워 1940년 착공해 1958년 완공했다. 152.4m 높이의 초대형 십자가가 바위산 꼭대기에 세워졌고, 바위산 내부를 굴착해 '전몰자의 계곡 성 십자가 대성당(Basílica de la Santa Cruz del Valle de los Caídos)'을 건설했으며 프랑코 자신의 무덤도 이곳 성당 지하에 있다.
2 역사
1936년에 발생한 스페인 내전 동안 공화파를 진압하고 권력을 장악한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좌우로 나뉘어 대립한 스페인 국민의 화해를 도모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좌파와 우파 전몰자 모두를 안장할 무덤을 만들기로 결정하고는 엘 에스코리알이 위치한 산로렌소데엘에스코리알을 선정했다. 이에 따라 내전이 종식된 직후인 1940년부터 공사에 들어갔는데, 공사에 필요한 노동력은 이틀 노동에 하루씩 형기를 감해준다는 조건으로 공화파 전쟁 포로를 연 인원 2천여 명 이상씩 18년간 투입했다.
3 건축
20세기 스페인 건축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전몰자의 계곡은 인근에 자리한 엘 에스코리알을 본떠 네오 에레리안 양식으로 설계되었다. 산 정상에는 32km 바깥에서도 보이는 높이 152.4m짜리 십자가가 세워져 있으며, 산 내부에는 260m 길이로 화강암 암반을 굴착해 건설한 성당과 수도원이 들어섰다. 산 지하에 자리한 이 성당의 정식 명칭은 전몰자의 계곡 성 십자가 대성당으로, 전체 넓이는 축구장 크기와 맞먹고 전체 길이가 가톨릭교회에서 이보다 더 크게 지을 수 없다고 정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길이 260m보다 40m나 더 길자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1m 짧은 지점에 격벽과 중문을 만들어 '이곳부터 성당'이라고 주장하는 꼼수를 썼다. 그 때문에 1960년 교황 요한 23세가 축성 미사를 거행했을 때, 중문 너머부터만 성당으로서 축성받았다.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의 무덤 |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무덤 |
4만여명의 무덤이 조영되었다고는 하나, 정식으로 이름이 새겨진 무덤(묘비)이 조영된 사람은 단 두 명이다. 한명은 최초로 안치된 팔랑헤 운동[1]의 창시자이자 내전중 공화당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한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 또 한명은 마지막으로 안치된 프랑코 본인. 나머지 4만여명의 유골은 바위산 내부 동굴(정문에서 성당으로 이어지는 대형 홀)의 바닥 타일 밑에 매장했는데, 정작 시설 자체에는 묘비는 커녕 하다못해 명단도 없어서 흔히 생각하는 "국립묘지"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고, 성당과 수도원이 사실상 메인이다.
4 논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던 좌파-우파 전몰자들을 합장하는 과정에서 프랑코에 대항하던 공화정부측 전몰자들을 유족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이장해서 프랑코 사후 욕을 엄청나게 쳐먹었다고 한다. 심지어 프랑코에 의해 처형된 공화주의자들도 안장했다고... 본격 고인능욕 이 매장 작업을 얼마나 주먹구구로 했는지 추정 전몰자 안치 수도 적게는 4만에서 많게는 5만까지 잡을 정도이다.5만으로 추산한 더 가디언지 기사(영어) 다만 이는 막 피비린내나는 내전을 마쳤고, 주변국들에서는 세기말급의 막장 전쟁이 한창이던 착공 당시의 시대상과, 평생 자국민을 열심히(...) 학살하고 다닌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특성도 감안해야 한다.
- ↑ 후에 프랑코의 팔랑헤 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