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본공수 61편 납치 사건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1999년 7월 23일
유형하이재킹
발생 위치일본 간토 치바 현 상공
탑승인원승객 : 503명
승무원 : 14명
사망자1명
생존자516명
기종Boeing 747-481D
항공사전일본공수
테일넘버JA8966
출발지일본 도쿄 도 오타 구 하네다 국제공항
도착지일본 홋카이도 치토세 시 신치토세 공항

1 개요

꿈과 현실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의 한계[1]

1999년 7월 23일, 일본의 어느 청년이 보잉 747을 조종하려 했던 비행기 납치 사건이다.

2 사고기/사고기편

사고기의 테일넘버는 JA8966. 보잉 747-400D 항공기로, -400D 계열은 일본 국내선용 항공기였다. 바로 그 전설의 올 이코노미 클래스. 승객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시리얼 넘버는 27442/1066. 최초 비행은 1995년 7월 이루어졌으며, 전일본공수에는 동년 12월 11일 인도되었다.
이후 2014년 1월 17일 퇴역 처리, 지금은 투펄로 르널이라는 비행기 무덤[2]에서 쉬고 있다.

사고기편인 NH061/062편은 삿포로-도쿄 간 정기 항공편이다. 2016년 10월 현재 지금도 똑같이 운행되고 있다.

3 납치범 인적

범인인 니시자와 유지(사건 당시 29세)는 1970년생으로, 사건 당시 도쿄 도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JR에서 화물 하역을 담당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원래 철도 매니아였지만, 대학생활을 하면서 항공 매니아로 전향했다.

그는 의사소통 능력의 부족으로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결국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게다가 자취생활과 직장에서의 잦은 실수 등으로 인해 결국 1996년 가을 무단 결근하고 회사를 뛰쳐나갔다가, 6개월 간 방황하다 집으로 돌아갔다.
취직 실패 이후로 그는 집에서 게임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주로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98 등이었다고 한다.

1998년, 니시자와 유지는 결국 정신분열증 판정을 받았다. 그는 그해 여름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경찰과 가족의 권유로 2개월 간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4 사건

4.1 납치 계획

1999년 6월, 니시자와 유지는 하네다 국제공항의 보안상 허점[3]을 발견하고 국토교통성, 일본항공전일본공수, 언론 등에 알리면서 자신을 하네다 공항의 경비원으로 고용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심지어 허점 지적도 무시당하자 범행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는 하네다 국제공항에서 자신이 발견한 허점을 토대로 납치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당초 7월 22일로 예정되었던 범행은 날씨가 좋지 않아 그 다음 날로 연기되었다.

4.2 전개

4.2.1 납치 개시

니시자와 유지는 7월 22일 집을 나가, 하네다행 전철 부근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다음 날 하네다 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허점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먼저 일본항공 JL101편을 탑승하여 오사카 이타미 공항까지 갔다가 JL102편으로 다시 하네다 국제공항으로 돌아왔다. 이 때가 오전 11시를 막 넘긴 시각이었다.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니시자와는 흉기를 수화물로 넣어서 검문을 피하는 예리함을 보여주었다.[4]

이후 니시자와는 1층 터미널에서 수화물을 찾은 후, 곧바로 아무런 제지 없이 2층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한다. 그 후 그는 전일본공수 NH061편에 탑승하였다.[5]

4.2.2 납치

pilot.jpg
사진은, 이 사건으로 사망한 유일한 사망자, 나가지마 나오유키 기장의 사진이다.

11시 21분 52초, , NH061편은 이륙 허가를 받았고, 22분 하네다 국제공항을 이륙하였다.

이륙 2분 후. 비행기 2층에 앉아 있었던 니시자와 유지는 범행을 개시한다. 그는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후 괴성을 지르며 식칼을 든 채 승무원에게 달려들었다. 니시자와는 승무원에게 조종실 문을 열라고 위협하였고, 겁에 질린 승무원은 조종석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니시자와는 조종석에 난입하였다. 깜짝 놀란 나가지마 나오유키 기장은 11시 25분 도쿄 출발관제소에 비행기 납치를 알렸으며, 니시자와는 요코스카로 기수를 돌릴 것을 강요하였다. 관제소는 이것을 승인하였다. 하지만 니시자와는 비행기가 기수를 돌린 후, 이번에는 오오시마로의 비행을 요구한다.

11시 37분, 니시자와는 마음이 변해 이번에는 요코타 공군기지로 가겠다고 한다. 요코타 공군기지는 주일미군 소유였다. 그리고는 부기장에게 나가라고 지시하였다. 부기장은 니시자와를 자극하지 않으려면 나가야 했고, 니시자와는 문을 잠근다.
11시 39분부터 45분까지 기장이 납치범과 한 대화 내용이 관제탑으로 그대로 전송되었다. 그리고 45분에는 전일본공수 본사에서 NH061편 납치 대책본부가 설치되었다. 11시 47분 비행기는 미우라 반도를 지났다. 기장은 목적지를 요코타로 변경하겠다고 알린다.

11시 50분 도쿄 접근관제소는 요코타 접근관제소로 비행기를 이관한다. 같은 시각부터 기장과 납치범의 대화가 다시 관제소로 전송되었으며, 니시자와가 전문용어를 쓰는 게 들리기도 했다.

4.2.3 제압

11시 54분, 니시자와는 기장에게 조종간을 넘기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기장은 "고도가 높아 산에 부딪칠 수 있다"고 조종간을 주지 않았다. 니시자와는 화가 나서 들고 있던 흉기로 기장의 어깨와 목을 찌른다.

11시 55분, 니시자와는 기장을 끌어내리고 비행기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나가 있던 부기장은 기장의 비명소리를 들었고, 비행기가 곡예비행을 하자 비번이었던 다른 기장과 승객 여러 명을 규합해 조종석으로 달려가 문을 열려고 시도하지만... 이미 범인이 잠근 상태였다.

기장 피습 2분 후, 부기장은 결국 문을 여는 데 성공했고, 납치범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비행기는 계속 하강중이었고, 분당 1천 피트씩 강하중이었다. 부기장은 조종석에 앉아 침착하게 비행기를 조종하기 시작했고, 기수를 최대로 올려 고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6] 한편 승객들 중 의사에게 기장의 응급 조치를 하게 하였다.

오후 12시 3분, 부기장은 하네다 국제공항으로의 회항을 알리고, 12시 14분 하네다 국제공항 22번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범인은 체포되었고, 기장은 응급조치를 했음에도 골든 타임을 놓쳐서 과다출혈로 기내에서 사망하였다.

4.3 대응과 사건처리, 조사


사건 직후 하네다 국제공항으로 회항한 사건기.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11시 40분 텔레비전에서 일제히 속보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NHK는 12시 40분을 넘어서까지 정오 뉴스를 연장, 사건을 생중계하였다.
다음 날 산케이 신문에서는 용의자의 실명을 1면에 실어 보도하였다.

사망한 나가지마 기장에 대해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운수성 대신 가와사키 지로는 각각 표창을 하였으며, 기타 별도의 서훈이 이루어졌다. 2000년 1월 일본 정부는 기장에 대한 산업재해를 인정하였다. 이는 납치 사건 피해자에 대한 첫 산재 인정 사례이다.

운수성 교통국에서는 급히 임시예산을 투입, 하네다 국제공항과 기타 공항에 대한 보안을 강화하는 한편 다른 공항에서도 보안상 문제점이 있는지 면밀히 조사하였다. 이후 보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2년 요미우리 신문은 "범인이 범행 이전 문제점을 지적하였음에도 교통국은 이 문제점을 수용/보강하지 않았다"라고 폭로하였다.


범인 니시자와는 조사 당시 사진의 도쿄 레인보우 브릿지 아래를 비행해 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 큰 다리라도 점보 제트기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는 안 되기 때문에 비행기 납치 당시 이 계획을 실행했다면 비행기가 다리에 충돌하거나 다리가 붕괴하면서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한편 니시자와는 요코타 공군기지로 가려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플심에서만 보던 요코타 기지의 긴 활주로에 착륙해 보고 싶었다"고 처음 말했으나 이어 "거기서 자살하려 했다"는 등 횡설수설한 모습을 보였다.

도쿄 검찰청은 니시자와를 조사한 후 항우울제로 인한 정신불안을 가졌다고 밝힌다. 실제 그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항우울제를 다량 처방받았지만, 1998년에는 그런데도 정신분열증까지 발전한 것이었다. 체포 상태로 인해 항우울제를 먹지 못하자 처음의 들뜬 분위기가 점점 차분해졌다고 한다. 해당 판결문을 인용한 일본 정신과 의사 HP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감정서도 있으나, 증거부족으로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1999년 12월 첫 공판이 열렸고, 2005년 도쿄 지방 재판소는 4개의 혐의[7]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 확정하였다. 니시자와는 현재 수감중이다.
  1. 그러나 당시버전은 98(7.0) 버전이었으니 당시에도 지금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그래픽이 떨어지고 또한 조종에 필요한 버튼들이 지금에 비해서는 많이 없다.
  2. 비행기 무덤이라고 모하비 공항만 있는 건 아니고, 미국 내에 몇 군데 있다. 당장 국내 항덕들에게 친숙한 마라나 파이널 에어파크도 있고...
  3. 1층 터미널에서 제한 없이 바로 2층 출발구로 들어갈 수 있었다.
  4. 사실 당시 수화물 운송에도 허점이 있었다. 모든 수화물은(폭탄을 제외하고) 검사 없이 목적지까지 수송되는 점을 범인은 악용한 것이다.
  5. 사실 범행 대상기는 나하행 NH083편이었는데, 환승 도중 비행기를 놓쳐 급하게 NH061편으로 변경한 것이다.
  6. 이 때 부기장이 몇 분만 늦었어도 비행기는 하치오지 시내에 들이박았을 것이며, 이 사건은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때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테네리페 참사를 뛰어넘는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참고로 둘 다 항공사상 최악의 참사이다.
  7. 항공기 강취/치사, 살인, 총도법 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