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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사고 개괄
583명의 목숨을 앗아간 희대의 충돌사고
1977년 3월 27일 오후 5시 6분 56초경 KLM 소속의 암스테르담발 그란카나리아 섬행 747-206B(식별번호는 PH-BUF)와 팬암 소속의 로스앤젤레스발 그란카나리아 섬행 747-121(식별번호는 N736PA)[1]이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 섬에 있는 로스 로데오 공항의 활주로에서 충돌하여 탑승객 614명(KLM 234명, 팬암 380명)과 승무원 30명(KLM 14명, 팬암 16명) 중 총 583명이 사망하고 60명이 부상당한 항공 사고 사상 최악의 인명 사고다. 실제로는 살아남은 사람이 1명 더 있다. KLM의 742에서 내린 승객 1명이다. 이 승객은 그냥 로스 로데오에 있다가 다음날 원래 목적지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부상도 경상도 아니고, 충돌과 관계 없이 그냥 살았다.
단일 사고에서 가장 많은 항공기 탑승객이 사망한 사고다. 항공기 탑승객 사망순위 1등. 참고로 단일 항공기 사고로 최악의 인명 사고는 일본 항공 123편 추락 사고이며(항공기 탑승객 사망 순위 2등), 항공기가 유발한 최악의 인명 피해는 9.11 테러에서 발생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의 사상 최악의 참사와 항공 사고 수사대도 방영되었다. 단, 항공 사고 수사대 쪽은 한국에는 방영되지 않았다. 현지 시즌 3-14에서 세기의 충돌"Crash of the Century"으로 방영.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국내 유수 언론에서도 1977년 해외 10대 뉴스로 꼽히는 매우 큰 사건이었다. 1977년 당시에는 요즘처럼 신문이 두껍지 않고 겨우 8면(두 장)만 나오며 또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외국 소식을 1면은 물론 신문 속에도 많은 기사를 할애할 정도로 그 비중이 엄청났으니, 대한민국의 국제 교류가 활발해진 최근에 발생한 해외 항공사고들 중에 비유하자면 9.11 테러 수준의 충격이었다고 볼 수 있다.
Crash of the Century
Seconds From Disaster
테네리페섬은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의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제주도보다 좀더 크고 인구 90만으로 스페인에서 상주인구가 많은 섬이고 연간 5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인기있는 관광휴양지이다. 섬 중앙에는 3718미터 높이의 큰 활화산이 있는데 스페인과 대서양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1.1 사고기
1.1.1 팬암 1736편
1975년 7월 17일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찍힌 사고기
테일 넘버 N736PA. 1969년 12월 24일 첫 비행을 하였고, 1970년 1월 20일에 인도되었다. 보잉 747-100 기종이다. 10번째 보잉 747로, 최초 상용운항 시작 기재이다.[2] 상용 서비스를 첫 시작한 기종이기도 하며, 상당히 의미 있는 기종이다. 이 사고만 아니었으면 항공 박물관에 분명히 귀한 몸으로 모셔졌을 터인데...
팬암에서 붙여 준 별칭은 Clipper Victor. Victor는 Victory의 준말로 승리라는 뜻이다. 사람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3]
1.1.2 KLM 4805편
1973년 10월 호주 멜버른 툴라마린 공항에서 이륙하는 사고기
테일 넘버 PH-BUF. 157번째 보잉 747이자 25번째 보잉 747-200 기종. KLM 내에서는 6번째 보잉 747 기재였으며, 1971년 9월 14일 첫 비행을 하였고, 10월 19일 인도되었다.
2 사고 진행
2.1 출발
KLM 4805편의 기체는 보잉에서 1971년에 제작한 747-206B였으며, 등록번호는 PH-BUF였다. 이 항공기는 사고 4시간 전, 네덜란드에서 14명의 승무원과 234명의 휴양객(대다수가 젊은이였다)을 싣고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을 이륙했다.
KLM 4805편의 기장 야콥 벨드휴젠 반 잔텐은 비행경력 12,000시간의 베테랑 기장으로 위 이미지처럼 KLM의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회사로부터 신망받던 스타 파일럿이었다.
PAA1736편의 기체는 보잉에서 1969년에 제작한 747-121이였으며, 등록번호는 N736PA였다. 이 항공기는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승무원 18명과 승객 382명(승객의 대부분은 은퇴한 노인이었다)을 태우고 이륙하여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기항했다. PAA1736편의 기장 빅터 그룹스 역시 비행경력 21,000시간의 노련한 기장이었다.
이 두 대의 비행기 모두 크루즈선 오디세이호에 탑승하려는 승객이 대부분이었고, 최종 목적지인 그란카나리아 섬의 라스 팔마스 공항까지 순조롭게 가고 있었다. 그런데...
2.2 테러 위협
사고 당일 오후 1시경, 카나리아 제도 분리독립파 조직에게서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은 '15분 후 공항 어딘가에 설치된 폭탄이 터질 것이다'. 예고대로 오후 1시 15분 경, 공항 근처에 있던 꽃집의 화분에 숨겨진 폭탄이 폭발했으나, 피해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다만 만약을 위해서 라스 팔마스 공항은 임시 폐쇄되었다.
2.3 회항
라스 팔마스 공항이 임시 폐쇄된 후, 거기에 이착륙하려던 모든 비행기들은 발이 묶였다. 이륙하려던 비행기는 가만히 있으면 되지만 착륙하려던 비행기들은 언젠가는 착륙을 해야 되기에 KLM기와 팬암기를 포함한 모든 비행기들에게는 임시 방편으로 근처에 있던 테네리페 섬의 로스 로데오 공항으로 회항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었다. 그 와중에 팬암기는 2시간 가량 여분의 연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관제탑에 선회대기를 희망했지만 묵살당했다.
2.4 로스 로데오 공항
문제의 로스 로데오 공항은 말 그대로 시골 변두리에 있는 조그마한 공항이었기에 공항 규모도 작고 시설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원주공항이나 양양국제공항 정도 크기를 생각하면 쉽다. 활주로는 단 하나, 레이더는 아예 없는 이런 공항에 대형급 보잉 747 2대를 비롯한 온갖 비행기들이 있을 만한 공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주기장은 물론 유도로까지 비행기를 채우게 되고 활주로를 유도로까지 이용하게 되었다. 일이 잘못되려면 모든 게 꼬인다더니, 하필 이 날이 주말인 탓에 관제사는 단 2명밖에 없었다. 즉, 이 두 사람은 평소와는 비교도 안되는 수많은 비행기들의 접근, 착륙, 유도, 이륙까지 몽땅 떠맡게 됐다는 이야기다.
2.5 KLM기의 급유
일단 어쩔 수 없이 머무르게 된 KLM기와 팬암기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데 KLM기는 승객들을 기체에서 내려서 터미널에서 쉬게 해주었지만 팬암기는 문을 열어서 공기를 환기시키고 원하는 승객은 아스팔트 위에서 스트레칭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선에서 끝났다.
약 2시간 후 라스 팔마스 공항의 폐쇄가 해제되면서 승객들이 남아있었던 팬암기는 이륙 준비가 되었으나 KLM기는 라스 팔마스 공항은 물론 심지어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까지 갈 수 있는 연료 5만 5천 리터를 급유받고 있었다. 자동차로 치자면 만땅을 외친 셈. 나중에 사고의 불운에 한 몫 하는 결정이다. 이는 반 잔텐 기장의 즉흥적이고 독단적인 결정으로 부조종사 및 항공기관사가 여기보다는 기존 계획대로 라스 팔마스에서 급유하는 게 좋다고 설득했으나 반 잔텐 기장은 어차피 여기서 시간 보내니까 겸사겸사 좋다며 거기 가면 다른 비행기들도 많이 와서 급유 받는데 시간도 걸리고 그 공항이 언제 또 폐쇄될 지 모른다고 이유를 대면서 내가 기장으로서 모든 것을 결정하니 이에 토 달지 말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이는 부조종사 및 항공기관사가 참사의 결정타를 가한 기장의 독단적인 행동에 마땅히 제지를 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만다. 이때 많은 기름을 급유한 것을 두고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나중에 다시 기름 채워넣으려면 귀찮아질 거 같으니 이왕 급유한 겸 미리 다 채우고 가자는 건 절대 나쁜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비행기에 민폐를 주면서까지 독한 성격으로 나 기름 다 채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뻐팅긴 건 과실이라 할 수 있다. 이로인한 운항 문제는 기장 책임이기 때문.
KLM기가 급유를 받으면서 단순히 이륙 지연만 일으킨 게 아니었다. 덩치 큰 비행기가 기름 넣는답시고 계속 그 자리에서 길을 막았고, 뒤에 있었던 팬암기는 KLM기와 같은 덩치 큰 747인 까닭에 아슬아슬하게 지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팬암기의 기장 빅터 그룹스는 KLM기의 기장 야콥 벨드휴젠 반 잔텐에게 대략 몇 분 정도 걸릴 것인가 무전으로 물어보았으나 대답은 시크하게 "35분" 한 마디만 하고 바로 연결을 끊었다(...) 자신들 뒤에 있었지만 덩치는 작았던 10대의 비행기들이 먼저 빠져나가 이륙하는 장면을 보며 승무원들과 승객들의 분노는 먼저 이륙한 비행기처럼 하늘로 뻗쳤다.
KLM기의 이륙은 급유 후에도 더 지연되었는데 승객 중에 어린이 2명이 타지 않아 승무원과 지상요원들이 이들을 공항에서 찾는다고 시간을 보냈기 때문. 이로 인해 이륙이 지체되어 승객들이 이곳에서 숙박을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야 했기에 이때부터 KLM 반 잔텐 기장은 극도로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빡센 초과근무규정에 저촉될까 하는 문제도 있었을뿐 더러, 탑승이 예정된 승객들이 사라진 경우 절대 이륙이 불가하기 때문인 데다, 이들이 어딨는지 찾기 어려우면 경우에 따라서 수십 시간이 걸릴 수 있으므로 결국 승객들은 해당 기착지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하는 최악의 수까지 생길 수 있게 되기 때문. 뒤에 또 나오지만 연착 원인에 상관 없이 연착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기장에게 지워지는 게 기장으로선 큰 부담이었다. 더구나 기장 말대로 수백 명의 승객들이 숙박까지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 책임은 커지는 데다, 독단적인 결정으로 급유한답시고 이륙을 고의적으로 30분 이상 지체했기 때문에 개인 과실까지 추궁받을 수 있다.
때문에 해당 참사를 재연한 프로그램인 'Crash Of The Century'에서는 KLM 반 잔텐 기장이 승객 미탑승을 보고하던 스튜어디스에게 '지금 이륙하지 못하면 수백 명의 승객들을 여기서 하룻밤 재워야 하는 상황이니, 재수 없지 않으려면 당장 너도 나가서 걔네들 끌고 오라'고 독설을 퍼붓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결국 KLM 스튜어디스와 테네리페 공항 지상요원이 아이들을 찾아 서둘러 KLM기에 탑승시키게 되고 곧바로 택싱에 들어간다. 테네리페 공항 지상요원은 당시 택싱 직전 스튜어디스가 문을 닫기 전에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는 때를 절대로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하면서, "내가 아이들을 못 찾았다면 KLM기 탑승객들은 죽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게 운명이었나 보다" 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영상[4]
2.6 유도
느긋하게 급유를 완료한 KLM기는 급유가 끝나고 어린이 승객도 찾아 태우고서 이륙을 준비했다. 관제탑은 우선 KLM기를 활주로로 내보내고 끝까지 가서 180도 유턴하라고 지시하였다. 전문용어로 턴백. 747 같은 대형기에게는 매우 힘든 작업이지만 KLM기의 베테랑 반 잔텐 기장은 성공했다.
이미 심기가 불편해질 대로 불편해진 KLM기의 반 잔텐 기장은 택싱 중 내내 지상 택싱 스피드를 왜 이렇게 느리게 잡았냐는 둥, 생각치도 않은 곳에 왜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이건 완전 악몽이라며 빨리 여길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등의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고, 택싱 체크리스트를 시작하려는 메우스 부기장과 슈뢰더 항공기관사의 만류에 겨우 진정되기도 했다.
KLM기가 C2 유도로를 지날 때쯤 관제탑은 팬암기에게 활주로로 나가서 C3 유도로에서 빠진 다음 활주로로 다시 들어오라고 지시하였다.
2.7 날씨
로스 로데오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는 아주 화창했던 날씨가 막상 이륙을 하려고 보니 화산재로 인해 안개가 심해지고 있었다. KLM기가 활주로에 도착했을 때쯤 시야는 벌써 300m 이하로 내려가 있었다. 규정상 최저 시야는 700m였다. 이 이하로 내려가면 이륙을 단념해야 한다. KLM기가 똥줄 타고 있을 때 팬암기는 안개 탓에 출구를 쉽게 찾지 못 하고 있었다. 팬암기는 C3 출구로 활주로를 빠져나와 평행유도로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C3 활주로로 빠져나기 위해서는 135도 턴을 해야 하기 때문에 C3 유도로를 단순히 관제탑의 실수로 단정하고 C4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때문에 팬암기는 속도를 줄이게 된다. 747급에게 135도 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라고 여겨졌는데 사고 후 이런 주장에 KLM이 747기 1대를 해당 공항에 보내서 135도 턴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 냈다. 흠좀무.
2.8 이륙, 그리고 충돌
이륙 허가를 받기도 전에 KLM기의 반 잔텐 기장은 스로틀을 올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메우스 부기장은 반 잔텐 기장에게 아직 허가를 안 받았다며 기장을 제지한다. 메우스 부기장이 명백한 이륙 절차에 대해 지적한 것이기에 반 잔텐 기장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시크하게 "나도 알아. 자네가 물어봐"라고 멋쩍은 답변을 하며 일단은 물러섰다.
사실 KLM기는 관제탑으로부터 이륙 후 절차에 대해 설명을 받았으나 이륙허가는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KLM기 반 잔텐 기장은 갑자기 독단적으로 스로틀을 당기며 이륙을 위한 활주로 질주를 시작하고 메우스 부기장은 역시 당황스러운 상태로 급하게 관제탑에게 리드백(Read Back, 관제탑의 말을 잘 알아들었는지 복창하는 절차)으로 이륙하고 있다고 보고했고, 관제탑은 "OK"라고 외치고 이륙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였다. 메우스 부기장이 기장의 행동에 간섭하지 못한 이유는 이미 급유시에 자신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기장의 강압적인 태도에 한 풀 꺾인 데다, 기장 못지 않게 시간적으로도 급박했던 데다 이륙 준비시에도 기장에게 이륙 허가와 관련해 한 번 제지를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장이 독단적으로 나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하급자로서 더 이상 간섭하기 어려운 것이라 봐야 한다. 더 이상 간섭했다간 자신이 정말 찍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찍히는게 죽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한 번만 더 해줬더라면...
한편, KLM기의 교신을 들은 팬암기에서는 자기들이 아직 활주로 위에 있다고 외치는데 하필이면 관제탑의 응답 교신과 같은 타이밍에 동시에 하는 바람에, 복수의 교신이 같은 주파수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며 발생하는 전파 간섭(Half Duplex의 특성)으로 전파신호가 잡음으로 변환되어 실제 내용이 전달되지 않는 헤테로다인 현상으로 KLM기에 전달되는 관제탑의 교신 내용이 잡음으로만 들리다가 오직 "OK"만이 들리게 되었다. 이로 인해 KLM기는 이륙 절차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이어가기 시작했으며, 관제탑에서는 이를 모른 채 팬암기에게 활주로를 비우면 연락하라고 지시했고 팬암기는 알았다고 대답하였다.
활주로를 비우면 연락하라는 관제탑의 교신 내용을 들은 KLM기의 슈뢰더 항공기관사는 반 잔텐 기장과 메우스 부기장에게 "활주로가 비워진 게 아니지 않나요?"라고 말했고, 반 잔텐 기장이 "뭐라고?"라고 재차 묻자, "팬암기가 아직 활주로 위에 있는 것 아니에요?"라고 상세하게 다시 물었지만 반 잔텐 기장은 이에 시크하게 "응, 그래!"라고 간단히 말하고 씹어버렸다. 실제 CVR에 해당하는 대사는 네덜란드어로 "Jawel!"이며, 영어로는 "Oh~ Yes!"로 강한 어조로 말하는 것으로 번역되었다.
특히 슈뢰더 항공기관사는 조종실에서 가장 막내였던데다 급유시에 반 잔텐 기장이 '기장인 내 결정에 토 달지 말라'는 윽박지름도 있었고 이륙 직전의 준비절차에서 반 잔텐 기장의 '와이퍼 켜라(Wipers On)'는 명령을 잘못 듣고, 라이트를 켜는(Lights On) 실수까지 저질러 반 잔텐 기장에게 구박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종합적인 상황에서 스스로도 확신이 들지 않아 반 잔텐 기장에게 더 이상 간섭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안개만 끼고 비도 오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보통 라이트를 켜는 게 일반적이지 와이퍼를 켜는 게 예상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팬암기는 드디어 소원하던 C4를 발견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승무원들은 계속되는 급유로 자신들의 이륙을 막았던 KLM기의 승무원을 대차게 까고 있었다. 그런데 그순간, 앞에서 달려오는 KLM기를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룹스 기장은 "니미럴. 저 개X끼가 박으려고 작정했어![5]"라고 흥분하며 비행기를 최고속도로 올렸고 부기장은 "나가! 나가! 나가!"를 끊임없이 외쳤다.
KLM기 역시 팬암기를 발견하고 경악해서 비행기를 띄우려고 애썼다. 다만 막 이륙결심속도(V1)[6]을 넘긴 KLM기로서는 별로 희망이 없어 보였다. 무리하게 띄우려 노력한 결과 테일 스트라이크가 일어나게 되고 충돌 직전에 간신히 뜨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고, 무려 290km/h의 속도로 KLM기의 동체 밑바닥과 메인기어가 팬암기의 동체를 강타하고, 4번 엔진은 팬암기의 어퍼데크를 날려버렸다. 조종실 뒤쪽이었기 때문에 팬암기 조종사들은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두 비행기는 불길에 휩싸였고 이후 KLM기는 150m를 난 뒤 뒤집혀서 추락하고 활주로 위를 300m 정도 미끄러진 후 대폭발을 일으켰다. 재급유하여 가득 찬 연료에 불이 붙었고 이로 인해 KLM기는 완전히 불타버렸고 승무원과 탑승객 포함 248명 전원이 사망했다.
KLM기의 오른쪽 윙이 2층에 충돌하였기 때문에 2층은 박살이 났다.
팬암기는 충돌 후 화재가 발생했고 부기장이 엔진 전원을 끊고 연료 공급을 막았지만 이미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있었다. 팬암기 조종사와 일부 승객들은 다행히 탈출에 성공했지만 9명의 승무원과 317명의 승객은 불길 속에서 사망했다. [7]
이후 간신히 살아남은 70명 중 부상으로 병원에서 추가로 사망한 10명[8]을 포함, 총 583명이 사망하는 사상 최악의 항공 대참사가 되어버렸다.
3 여러가지 원인이 겹친 인재
우선 테러 협박 전화에 대한 라스 팔마스 공항의 대처는 나쁜 것이 아니었지만, 대피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항공기를 조그마한 테네리페 공항에 모조리 임시 착륙시킨 것은 매우 무식한 대처였다. 특히 사고기였던 팬암기의 경우 그란카나리안 섬에 착륙을 위해 접근하려다 회항 지시를 받았을때 사실 2시간 정도 더 비행할 수 있는 연료가 있었다. 팬암기의 그룹스 기장이 일단 상황을 지켜보며 섬 주변을 맴도는 게 좋겠다고 라스팔마스 공항의 관제사에게 제안했다. 그런데도 고지식한 관제사가 무조건 테네리페의 로스로데오 공항에 착륙하라고 명령하였으며, 결국 팬암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착륙을 하였는데, 라스팔마스 공항은 테러 발생 후 겨우 1시간 만에 다시 공항 문을 열었다. 역사에 '만약'이란건 존재할수가 없지만, 로스로데오 공항이 팬암이 요구한대로 선회대기를 하게했다면 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다.
3.1 드러난 원인들
- KLM의 경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운행 스케줄을 어길 경우 조종사에게 벌금과 불이익을 주었다. 그 불이익에는 면장 박탈도 있다. 이로 인해 KLM기의 반 잔텐 기장은 매우 조바심을 내게 되었다. 관제 문제, 날씨 문제, 정비문제, 심지어 테러리스트에게 기체를 장악당했더라도 벌금은 기장이 내야만 했다!
앓느니 죽지그리고 아무리 근무 규정이 개선됐다지만 여전히 많은 항공사의 정책은 자사의 이익을 위해 승무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한심한 규정은 결국 무리한 이륙을 시도하게 만들어 이 사건을 일어나게 만들었고, 이 규정은 사고가 일어난 후에 개선된다.
- KLM기의 반 잔텐 기장은 분명히 홍보책자의 모델로 나올 정도의 베테랑이었지만 비행경력의 대부분은 DC-8 기종이었고 747 기종의 비행경력은 불과 1,500시간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시뮬레이터에서 비행한 시간이었고 실제 747 비행경력은 겨우 95시간 뿐이라서 747 조종 경험이 부족했다. 반 잔텐 기장이 무리하게 테일 스트라이크까지 일으키면서도 이륙을 급하게 한 이유는 물론 정지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저 위로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평소에 몰았던 DC-8이나 다른 비행기였다면 그 판단은 나쁘진 않았고 충분히 이륙이 가능했을 것이나 반 잔텐이 조종하는 기종은 무거운 747에다가 연료까지 가득 채운 상태였다. 만일 사고기종이 DC-8이었거나 혹은 747이 급유만 안했어도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다. 급유를 하지 않았더라면 급히 이륙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 KLM 반 잔텐 기장은 수 년 동안 수석교관으로 일하면서 실제 비행에서 제외되었고 시뮬레이터에서 새로운 파일럿 육성에 집중된 상태였다. 이 시뮬레이션 경험이 실제 기체 운용의 감을 떨어뜨림과 동시에 관제탑과의 연계 중요도를 잊게 했다는 추정이 있다.
- KLM의 747이 비행 직전 연료를 가득 채웠는데, 이 무게로 인해 이륙이 더더욱 늦어졌고 충돌시 연료로 인한 대폭발이 일어나 사실상 대부분의 사망자가 불에 타 죽었다. 사건 당시 한치 앞도 분간을 못하는 짙은 안개 속이었음에도 충돌 지점으로부터 500m 거리에 위치했던 관제탑에서도 대규모 폭발 화염을 볼 수 있었다는 데서 폭발 규모가 엄청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개가 없었다면 최소한 2~3km 밖에서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안개가 없었으면 안일어났을거아냐KLM기에 탑승했던 248명(승무원 14명, 승객 234명)은 비행기에 타지 않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다.
- KLM에서는 기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했다. 당시 KLM기의 메우스 부기장과 슈뢰더 항공관제사는 관제탑에서 이륙허가를 받지않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반 잔텐 기장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반 잔텐 기장이 슈뢰더 항공관제사의 질문을 묵살했고, 이 부분에 의심을 가졌더라면 바로 비행기를 정지시켰을 것이고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9년 후에 비슷한 참사가 발생했다.
- KLM기와 관제탑은 서로 비표준 용어로 교신했다. 이후 비록 뜻이 통하더라도 반드시 서로 표준 용어로 교신을 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었다.
- 팬암기의 승무원들은 분명히 관제탑에 재확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C4 유도로로 진행하였다. 비록 C3 자체가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출구이기는 했지만 반드시 관제탑에 통보했어야 했다.
- 사건 경위를 읽어보면 각 비행기의 승무원들이 이상할 정도로 관제탑에 확인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짐작해서 결정하는 부분이 많은데, 이는 관제사들의 영어 실력 부족으로 승무원들이 관제탑과의 통신에 피로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위에 언급된 유도로 문제도 이런 의사소통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관제탑에서 지시한 세 번째(third) 유도로(즉 C3)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팬암기의 승무원들이 third 가 맞느냐고 확인하자 관제탑에서는 "One, two, three. Third!" 라고 대답했는데, 이를 들은 팬암기의 승무원들은 관제사들이 말하는 'third 비슷하게 들리는 단어'가 four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원어민이었다면 상식적으로 "first, second, third"고 대답했을 가능성이 높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four가 맞는지를 관제탑에 재차 확인했을 것이다.
- 관제사들의 대형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일반적으로 로스로데오 공항은 소규모 비행기들만 이용하는 공항이다보니 747 같은 대형기를 관제해본 경험이 없었다. 이것이 문제의 C3로 유도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 관제사들은 사고 당일에 있었던 축구 경기를 라디오로 듣고 있었을 정도로 관제업무 집중도도 떨어진 상태였다. 관제 무선교신과 동일하게 청각만으로 모든 정보를 집중하는 라디오 방송을 틀어놨으니 실질적인 관제업무 방해도는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 안개 때문에 관제탑이나 양쪽 비행기 모두 서로의 위치는커녕 자신의 위치도 알지 못했다. 더구나 지상 레이더도 없던 탓에 관제탑은 서로의 교신에 모든 것을 의존했다. 하필 사고날은 유도등까지 나가 있었다. 양쪽 비행기 모두 켤 것을 요청했으나 작동되지 않았다.
- 당연히 한적한 시골 공항이었던 로스 로데오 공항의 시설은 이런 대규모 사건에 대처하기엔 기반 시설이 좋지 못했다. 화재 진압은 고사하고 인명 구조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사망자가 더욱 증가했다.
- 소방대와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잔해는 KLM기였다. 10m 앞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안개로 소방대와 구조대는 팬암기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런 악재로 인해 그나마 생존자가 있었던 팬암기의 구조는 매우 많이 늦어졌다.
- ↑ 상용 운항을 시작한 첫 보잉 747 기종이다.
- ↑ 앞의 프로토타입 10기 중 1기(N7470, 최초의 보잉 747이다)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팬암으로 팔려갔다.
- ↑ 당장 이 비행기 기장 이름도 빅터 그룹스다(…)
뭐지 우연인가 운명인가. - ↑ 해당영상 39분부터 관련내용이 나온다.
- ↑ Goddamn, that son-of-a-bitch is coming straight at us!, 위의 동영상에서도 나옴
- ↑ 항공기가 오버런을 했을 때 예상되는 피해보다 이륙을 했을 때 예상되는 피해가 더 크지 않는 이상 반드시 이륙해야 하는 속도.
- ↑ [1]
- ↑ 출처가 필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