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蘭敎
1863.1.23 ~ 1944.12.28
그는 박규수, 오경석, 유대치의 영향을 받아 개화 사상을 갖게 되어 개화파가 되었다. 또한 김옥균, 박영효, 유혁로, 서재필 등과 어울려 지냈다.
1884년에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켜 수구파, 온건개화파 인물들을 제거하고 개화당 내각에 들어갔다가 삼일만에 실패한 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유혁로, 이규완과 함께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개화파 인사들의 암살계획을 알아채고 그들에게 알려 암살을 열심히 막았다. 그러나 결국 김옥균은 홍종우에 의해 청나라로 가다가 암살당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김홍집, 박영효 연립 내각에 들어가 개혁을 이끌었으며 박영효, 이규완, 우범선 등과 명성황후 제거를 모의하다가 실패하였다. 그는 박영효와 달리 일본으로 망명하지 않고 은신해 있다가 을미사변에 가담하였다.
그는 아관파천 이후 체포령이 내려지자 일본으로 또다시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 1907년에 다시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그는 1910년 한일합방 이후 관료로 활동하며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었다.
참고로 그의 창씨개명 이름은 무려 세 개나 있다! 나카하라 유조(中原雄三), 나카하라 헤이키치(中原平吉), 우미히라 난로리(海平蘭敎)이다. 그 중 나카하라 유조는 갑신정변 실패 후 망명길에 치토세마루 선원 츠지 도쥬로(辻藤十郞)가 지어준 이름이다. 츠지 도쥬로는 또한 그의 동료 김옥균, 유혁로에게도 일본식 이름을 지어줬다. 그리고 우미히라 난로리로리는 1940년에 창씨개명령이 떨어졌을 때 개명했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