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성명 | 제프리 프레스턴 베조스(Jeffrey Preston Bezos) |
생년월일 | 1964년 1월 12일 |
출생지 |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 |
국적 | 미국 |
학력 | 프린스턴 대학교 졸업 |
배우자 | 매킨지 터틀 |
소속 | 아마존닷컴 |
직위 | CEO |
자산 | 2016년 9월 기준 669억 달러(한국 원으로 75조 4백억원) |
1999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Time Person of the Year 199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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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케네스 스타 1998 | → | 제프 베조스 1999 | → | 조지 워커 부시 2000 |
미국의 대기업 아마존닷컴의 창업자이자 CEO, 세계 최초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닷컴을 1994년에 창립하였으며 2016년 현재까지 CEO로 재직중인 인물.
2 생애
제프 베조스는 1964년 1월 12일 미국 뉴멕시코주 엘버커키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제클린 베조스는 17세에 결혼 후 제프 베조스를 낳았다. 생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생부 역시 재클린과 결혼 시 10대였고 제프 베조스의 생후 18개월 때 제클린 베조스는 제프 베조스의 생부와 이혼했다. 이후 제클린 베조스는 쿠바출신 미겔 베조스(Bezos)와 재혼했다. 미겔은 재클린이 제프 베조스를 임신했을 때 처음 만났으며 제프 베조스가 4살 때 둘이 결혼해서 제프 베조스를 양아들로 삼았다고 한다.
제프 베조스는 방학마다 외할아버지 프레스턴 기스[1]의 목장에서 생활하며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어릴 때부터 차고에서 각종 전자제품을 만들거나 실험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세 살 때 어른 침대를 사용하겠다며 자신의 아기 침대를 분리해서 어른 침대로 바꾸려고 드라이버를 들었던 일화도 있다.
이후 그는 휴스턴의 리버 오크스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그곳에서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컴퓨터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컴퓨터 사용시간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스타트렉 게임을 하면서 보냈다고 한다.흔한 게임 폐인 한편으로는 초등학생 시절에 자기 방 출입문에 사이렌 경보장치를 달아서 동생들이 들어오면 알람이 켜지게 하는 등 아이디어와 기술에 뛰어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평가는 대단히 총명하나 리더의 자질은 없다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플로리다 대학에서 주최한 과학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실버기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이후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해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이후 컴퓨터공학과 전기공학에 더 애착을 보여 결국 전공을 전기공학으로 바꾸어 수석 졸업을 했다.[2]
졸업 후 제프 베조스는 유명 대기업인 인텔, AT&T의 벨연구소, 앤더슨컨설팅의 오퍼를 거절하고 무명의 벤쳐기업 피텔[3]에 입사하여 통신 프로토콜 프로그래밍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입사 1년 후 기술 및 사업개발담당 부책임자로 승진하였으나 입사 2년 후 퇴사한다. 제프 베조스는 그 이후 뱅커스 트러스트에 컴퓨터 관리자로 입사한다.[4] 그는 뱅커스 트러스트 입사 10개월 만에 회사내 최연소 부사장으로 승진하게 된다.
그 이후 제프 베조스는 금융사 D.E. Shaw의 펀드매니저로 전직하게 되고 D.E. Shaw 입사 1년 후 26세의 최연소 부사장, 몇 해 후 수석 부사장이 된다 그리고 그때 D. E. Shaw에서 같은 회사 연구원인 매킨지 터틀을 만나 1993년에 결혼을 하게 된다.
그렇게 잘 나가던 그는 1994년 돌연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애틀로 향하게 되는데…….
2.1 아마존닷컴 창업
파일:Kuzsy3G.jpg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닷컴 창업을 준비할 때 냅킨에 그렸던 다이어그램 참 쉽죠?
1994년 7월 그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애틀로 출발하게 된다. 그의 동행은 아내와 인터넷 서점[5]이라는 창업 아이템이었다. 그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200만 달러의 창업자금을 투자받았뜯어냈는데 그 중에는 제프 베조스의 아버지인 미겔 베조스의 투자금도 있었다. 제프 베조스는 자신의 아버지 미겔 베조스에게 사업 성공 가능성을 30%라고 이야기한 후 아마존닷컴의 주식 58만 2,528주를 팔아 10만 달러 상당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한다.[6][7]
그 이후 1995년 7월. 제프 베조스는 시애틀 자신의 집 창고에서 3대의 워크스테이션을 가지고 아마존닷컴을 창업했다.[8][9][10] 그리고 마침내 1995년 7월 16일에 사업을 개시한 아마존닷컴은 창업 일주일 만에 미국 전역과 전세계 45개 도시에 서적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1996년 5월에는 월스트리트지가 Amazon.com을 일면에 대서 특필하기도 했다. 물품 없이 온라인 카탈로그만 존재하는 순수 전자상거래 업체로 출발한 아마존닷컴은[11] 1997년 5월 주당 18달러에 상장됐고 이후 주당 100달러까지 상승하게 된다.
파일:3YmjJpb.jpg
↑최초의 아마존닷컴 사이트 모습
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던 것도 잠시, 리먼 브라더스는 아마존닷컴이 일년 안에 파산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게 된다. 결국 망한 건... 이 보고서 발표 후 아마존닷컴은 1주일만에 주가가 19%나 급락하게 된다. 게다가 뒤이은 2001년 초 닷컴 버블 붕괴의 파장으로 자금 경색이 심화된 아마존닷컴은 최고 100달러였던 주가가 2002년에는 6달러로 추락할 정도의 경영 위기를 겪게 된다.
결국 아마존닷컴은 2001년 직원 1,300명을 해고한 후 사업 다각화를 실시하게 되는데 우리가 아는 종합쇼핑몰로서의 아마존닷컴이 바로 이 때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닷컴 버블 붕괴와 경영 위기를 종합쇼핑몰 변신이라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타개한 제프 베조스는 이후 이북 단말기 킨들 시리즈와 킨들 파이어, 그리고 파이어 폰 등의 제품과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계속해서 내놓으며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하는 경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2 워싱턴 포스트 인수
2013년 8월에 미국 3대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가 경영난에 허덕이다가 제프 베조스가 개인 돈 2억5천만 달러로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하였다.
인수 이후 워싱턴 포스트는 제프 베조스의 지휘 아래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한다. 엔지니어를 대거 고용하고 온라인 컨텐츠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년만에 워싱턴 포스트 웹사이트 방문자가 3배가 증가 했다고 한다.
2.3 블루 오리진
비슷한 삶을 살아온 경쟁자 엘론 머스크가 스페이스 X를 세워 우주산업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베조스도 블루 오리진을 세워 자체 로켓 및 우주선 개발, 로켓 재사용 등을 이루고 있다. ULA에 로켓엔진을 납품하는 등 건실한 행보를 이루고 있지만 묘하게 스페이스 X에 항상 한발 뒤지는 콩라인이라는 인식이 생겨있다.
추가바람
3 관련항목
- ↑ 프레스턴 기스는 미 국방과학고등연구원의 우주공학 및 미사일방어시스템 전문가였다.
- ↑ 그는 Phi Beta Kappa Club회원이라고 한다.
- ↑ 컴퓨터 네트웍 주식거래 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 ↑ 뱅커스 트러스트는 제프 베조스의 표현에 의하면 “컴퓨터와 금융의 교차점에 있는 회사”라고 한다.
- ↑ 제프 베조스는 인터넷 서점 창업 준비를 위해 1994년 9월 2일까지 미국서점협회에서 주관하는 서점 운영을 위한 재정, 고객서비스, 재고관리 등의 강좌를 모두 수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강좌에서 스퀘어북스의 운영자 리처드 호워스의 강의에 감명받은 제프 베조스는 훗날 호워스가 중요시하는 대면접촉을 통한 고객서비스를 자신 나름대로 아마존닷컴에 적용하여 오늘날의 아마존닷컴을 만들었다고 한다.
- ↑ 당시 주식 매입가는 1주당 17.17센트, 이 주식은 아마존닷컴 주식 공개 후 가격이 매입가의 582배나 뛰어오르게 된다.
- ↑ 이 이야기에는 한 가지 더 반전이 있는데, 사실 제프 베조스 본인이 생각하던 사업 성공 가능성은 10%(!)였다는 것, 그는 말 그대로 도박을 한 셈이다.
가족도 믿지 말라 - ↑ 시애틀은 미국 최대규모 서적 공급업체인 Ingram의 본거지이다.
- ↑ 아마존닷컴의 공동창업자는 컴퓨터 전문가인 셸 카판과, 폴 바튼-데이비스, 그리고 아내인 매킨지 터틀이었다.
- ↑ 최초의 회사 이름은 아마존닷컴이 아닌 cadabra.com이었다.
- ↑ 서적의 배송은 Ingram이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