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1 개요

實驗(Experiment). 어떤 대상에 일정한 조건을 인위적으로 설정하여 그 결과를 조사하는 것으로, 과학의 연구에 있어서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이자 과학 발전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과학적 방법론의 세번째 단계이기도 하다. 상관관계를 통계적 방법이 "검증" 한다면, 인과관계는 실험이 "입증" 한다.

실험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재현성이며, 인위적으로 재현이 불가능한 여러 가지 초자연현상 등은 실험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어떤 대상을 보다 깊게 알기 위해 하는 행위로 인식되며,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의 현상을 분석하는 데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보통 같은 대상을 두 개 이상의 복수의 집단으로 나누어 하나의 실험군으로 설정해 놓고, 한 쪽 대상에 설정된 조건을 바꾸어 그 결과를 서로 대조해보는 방법을 이용하며, 이 때 인위적으로 바꾸어 놓은 특정 조건 이외의 다른 조건들은 모두 같게 설정해 최대한 변인을 줄인다. 하지만 모든 조건을 같게 설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실험이건 그 결과가 무조건 100% 완벽하다고는 볼 수는 없다.

사회과학에서 실험법은 이론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대략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1) 연구비가 부족하다거나 하는 등의 어른의 사정이 있는 경우,[1] 2)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심각한 연구윤리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3) 변인의 조작과 처치, 통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이다. 이 중에서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그야말로 거의 모든 사회과학 연구주제들에 공통적으로 해당되기에, 실험이 좋다는 걸 알고 있어도 써먹기가 무척 힘들다.

실험을 행하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도 여러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실험이 실행되며, 주로 요리게임취미 분야에서 이용한다.

비슷한 용어로 시험(테스트)가 있다.

실험의 연구방법론적 과정이나 관련 용어들에 대해서는 연구방법론 관련 정보 항목을 볼 것.

2 특이한 실험들

이 단락의 출처는 이 사이트이 사이트로, 각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여 요약한 것이다. 이 중 일부는 레토 슈나이더(R.U.Schneider)에 의해 《The Mad Science Book》 에도 언급되었다.

어찌 보면 현실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들.(…) 현실은 창작물을 뛰어넘는다 일부는 실제로 인류의 지성에 큰 도움을 주었지만, 일부는 읽는 이를 아연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것은 저도 모르게 "잘도 이런 미치광이 실험을!" 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대부분은 20세기 초엽에, 혹은 제대로 된 연구윤리위원회가 없던 상황에서 수행되었던 것들.

  • 사형수의 심박수 체크 (1938)
책임자는 스티븐 베즐리(S.Besley). 총살형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에게 심박수 측정기를 부착했으며, 총살당한 후 심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사형수 존 디어링(J.Deering)의 머리에 후드가 씌워졌을 때 심박은 분당 120으로 나타났지만, 사형 집행관이 "사격 준비... 발사!" 를 외쳤을 때 심박은 분당 180까지 폭증하였다.[2] 발사 후, 총 4발이 디어링의 흉부에 명중하였고, 그 중 하나는 우심실을 관통했다. 심장은 즉각적으로 불안정하고 발작적인 경련(spasm)을 일으켰으며, 4초 정도 유지되다가 다시 강하게 경련했다. 그러면서 심박은 천천히 약해졌고, 최초 피격으로부터 15.4초[3]가 지났을 때 심장은 완전히 멎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책임자는 찰스 셰리던(C.Sheridan)과 리처드 킹(R.King). 이들은 밀그램의 복종 실험에서 사람들이 그처럼 쉽사리 복종한 이유를 놓고 고민하다가, 당시 거짓 전기충격을 받는 역할을 맡았던 공모자에게서 이유를 찾았다. 쉽게 말해서 "공모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에 대해, 참가자들이 그것이 가짜라고 쉽사리 눈치채서가 아니었을까?" 의 의심을 품었던 것. 문제는, 이를 해결하려면 레알 누군가가 전기충격을 당해야 했다. 물론 연구윤리도 그렇고 도의적으로도 그렇고 정말로 450볼트를 격중당할 사람을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새디스트적인 고민을 하던 이 연구자들은 마침내 작은 강아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4]

굳이 말할 것도 없이, 실험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비극적이었다. 약한 자극을 받은 강아지는 캥 하고 비명을 질렀다. 자극이 강해지면서 강아지는 펄쩍 뛰어올랐고, 나중에는 고통에 못 이겨 길게 울부짖었다. 괴로워한 것은 말 못 하는 동물뿐만이 아니었다. 참가자로 지원한 대학생들의 많은 수가 공공연히 눈물을 흘렸고, 공포에 질렸으며, 초조하게 왔다갔다했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일부는 강아지가 이동해야 할 방향을 미친 듯이 손짓하며 가리켜 주기도 했다. 그러나 놀란 것은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6명의 남성들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연구자들에게 저항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최고 충격 강도까지 복종했던 것이다. 밀그램이 옳았던 것이다.
 

책임자는 러셀 클라크(R.Clark).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진행된 실험으로, 대학교 인근의 임의의 행인들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실험 상황에서, 잘 차려입은 매력적인 이성이 똑바로 다가온다. 그리고 교태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이곳을 지나간다는 걸 듣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직접 만나뵙고 보니 과연 매혹적이네요. 어때요... 저랑 같이... 뜨거운 밤을 보내지 않겠어요?"

어지간한 폐급 미연시에서도 안 나올 만큼 막장스러운 상황 설정이지만, 또 어찌보면 뭇 위키러들의 로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로망은 로망이고, 현실은 현실.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곧바로 OK를 한 것은 아니었다. 재미있게도 남성여성 사이에는 차이가 극명했다. 성적인 제의를 받은 남성의 75%가 그 자리에서 주저없이 OK를 했지만, 언제든 번식의 준비가 되어 있는 남성 동지들 특이하게도 여성의 경우 단 한 명도 승낙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저리 꺼지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 "내 손톱 맛은 끔찍하다, 내 손톱 맛은 끔찍하다, ......" (1942)
책임자는 로런스 레샨(L.Leshan). 그는 "수면 중에 들어오는 자극만 가지고도 학습이 가능하다" 는 주장을 펼쳤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어떤 소년을 대상으로 행동 교정을 실시했다. 소년이 자는 동안, 레샨 박사는 끊임없이 "내 손톱 맛은 끔찍하다" 의 한 문장만을 반복해서 읽어 주었다. 사실 처음에는 녹음기를 재생시켜서 간단히 실험하려 했는데, 이게 300회 즈음에 고장나 버리는 바람에(…) 나머지 치료 세션 동안 레샨 박사가 대신 꼼짝없이 눈이 시뻘개진 채로 밤새워 읽어주어야 했다고. 실험 후에 그는 이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했지만, 그의 모든 수고와 고생과는 별개로, 오늘날 학계에서 이와 같은 방식의 학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되고 있다.

 

  • 침팬지를 사람처럼 키우면 어떻게 될까? (1931)
책임자는 루엘라 켈로그(L.Kellogg)와 윈스롭 켈로그(W.Kellogg) 부부. 그는 "침팬지를 사람처럼 키우고, 먹이고, 가르치고, 대우한다면 침팬지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의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구아(Gua)라는 이름의 한 아기 침팬지를 그의 집으로 데려왔고, 기존에 키우고 있던 10개월 된 아들 도널드 켈로그(D.Kellogg)의 동생으로 삼아 주었다. 이들 부부는 구아를 완전히 인간처럼 대우했으며,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게 하고, 도널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방법으로 양육했다. 그렇게 9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이 침팬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흥미로웠다. 이 침팬지는 도널드에 비하여 각 영역들에서 매우 높은 수행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이들 부부가 아무리 애를 써도 구아의 언어 능력은 거의 향상되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또 다른 뜻밖의 현상이 나타났는데, 구아와 함께 놀며 함께 지낸 도널드조차 언어적인 진전을 보이지 못했던 것이다. 애초에 이 실험을 9개월만에 종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도널드가 배가 고플 때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침팬지들이 흔히 음식을 달라고 짖는 소리를 냈던 것이다.(…) 결국 구아는 동물원으로 보내졌고, 도널드는 인간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이는 환경의 영향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타고난 유전 요인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 흔한_비위_좋은_신대륙_의학자의_무모한_도전.txt (1804)
책임자는 스터빈스 퍼스(S.Ffirth). 1793년 미국에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황열병이 발병했을 때, 퍼스는 이것이 전염병이 아니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황열이 유독 여름에 자주 발병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것이 겨울에는 줄고 여름에는 늘어나는 자연스러운 계절성 증상이라고 믿었다.[5] 아이스크림 판매량도 여름에 높고 익사사고도 여름에 많으니, 익사사고의 원인은 다름아닌 아이스크림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몸을 직접 실험체로 삼아서 자신의 가설을 입증해 보이고자 했다. 비위 약한 사람은 이 이후로는 건너뛸 것

퍼스는 우선 황열병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로부터 온갖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수집했다. 그런 다음, 그는 환자들의 혈액이 섞인 시커먼 구토물을 팔에 주사하고, 피부에 문질러 바르고, 눈에 몇 방울씩 흘려 넣고, 불에 구워서 연기를 들이마시고, 물에 희석하지 않은 엑기스(…)를 고스란히 들이마셨다! 으아악 퍼스는 환자들의 침과 혈액, 땀, 소변을 가지고도 이 짓을 똑같이 했다. 헌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게도, 이런 막장짓을 저지르는데도 퍼스는 황열에 감염되지 않았다.(…)[6] 자신만만해진 그는 이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죽었다.
 

책임자는 필립 짐바르도(P.Zimbardo). 특이한 실험을 거론할 때 가히 전설의 레전드로 취급할 수 있는 사례다. 아무튼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 유기체의 소생에 관한 실험(Эксперименты по оживлению организма) (1940)
책임자는 세르게이 브류호넨코(S.Brukhonenko). 멀쩡히 살아있는 개의 목을 자른 뒤 오토젝터(autojector; Аутожектор)라고 불리는 기계에 연결해서 죽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게 성공했다는 것 자체가 더 충격과 공포. 잘린 개의 목에 강한 빛을 비추면 개가 눈이 부셔서 깜박이는 모습을 보이는 등, 자극에 반응할 수 있음을 소련 관료들 앞에서 증명해 보였다. 심지어 개에게 치즈 조각을 먹이기까지 했다!(…) 이게 어찌나 거짓말 같았는지, 냉전 이후로 한동안 서구에서는 소련에 관련된 도시전설처럼 받아들여졌었다. 물론 브류호넨코가 실험에 동원한 실험 도구들은 지금도 박물관에 멀쩡히 남아있다.(…)

여하튼 이 실험에 대한 이미지나 영상, 자세한 설명 등은 상당한 심리적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이미지 검색 등을 하지 않는 쪽을 권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가히 실험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진 동물학대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책임자는 워런 토머스(W.Thomas). 그는 오클라호마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에게 297mg의 LSD를 주사하였다. 이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양보다 3,000배 많은 양이며, 살아 있는 생물에게 주사한 가장 많은 양의 LSD라는 기록을 세웠다. 연구자들도 양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까짓거 기왕 하는 거 사나이답게 크고 아름다운 주사를 놓아야지!" 비슷한 마인드로 냅다 찔렀다고.(…)[7] 아무튼 이 연구의 목적은 LSD의 투여가 코끼리 수컷의 발정기에 미치는 영향을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뜻밖에 무지막지한 마약 주사를 맞은 이 가련한 코끼리는 마치 벌에 쏘인 것처럼 화들짝 튀어올랐다.(…) 코끼리는 몇 분 동안 뿌우욱 하는 소리를 질러대며 난리를 쳤고, 이후 자리에 쓰러져서 1시간 가량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공포에 질린 연구자들이 녀석을 깨우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 그대로 죽었다. 망연자실한 연구자들은 논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아마도 코끼리는 LSD가 작용하는 효과에 극도의 민감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코끼리의 죽음에 LSD가 영향을 주었는지는 아직도 불명으로 남아 있다.
 

  • 목매달아 죽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1905)
책임자는 니콜라스 미노비치(N.Minovici). 법의학자로서 그는 수많은 자살 사례들을 연구하였고, 그의 문헌의 마지막에 자기 스스로 목매달아 보는 실험을 추가하였다. 우선 그는 목매다는 느낌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2주 동안 스스로 목을 매달고 4~5초 정도 자신의 목에 체중이 가해지는 것을 6~7회씩 반복했다. 이것이 익숙해진 느낌이 들자,[8] 그는 이제 그의 조수를 시켜서 밧줄을 도르래에 연결, 조수가 잠깐 동안 밧줄을 붙잡아 당겨서 미노비치의 몸이 1m 정도 떠오르도록 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좋은 경험이 아니었던 것 같다.(…) 후에 미노비치는 자신의 문헌에서 "아무리 용기백배하여 시도해 봐도, 3~4초 정도 매달리는 것 이상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고 회고했다. 그의 언급들로 미루어 보면 그는 적어도 실험의 위험성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그 방식은 상당히 대담하고 무모한 것이었다. 다행히 이 실험에서는 아무도 실수하지 않았고,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 침대에서 보낸 370일 (1986)
책임자는 보리스 모루코프(B.Morukov). 이 실험의 지원자들은 1년 내내 침대에서만 머무르면서 기본적인 수면 외에도 식사, 독서, 세면, 샤워, 여가 등을 모두 해결해야 했다. 그 어떤 이유에서도 그들은 침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대신 실험을 잘 마치기만 하면 연방 당국에서 새 차도 하나 뽑아준다는 약속도 받았다. 히키코모리들이 이 실험을 좋아합니다 실험 종료 후에는 회전 장치를 활용하여 침대에 누운 채로 1G의 중력을 경험하게 하고, 다시 2달 동안 재활 훈련을 받도록 했다.[9] 물론 신체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은 다름아닌 정신적인 괴로움, 즉 지루함이었다. 이들은 외국어를 공부하고, 종이배를 접고, 모루코프를 위한 선물을 만들고,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고, 매주 일요일마다 가족과 만나고, 국경일과 공휴일을 챙기면서 지루함을 떨치려고 몸부림쳤다. 그래도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황인지라 연구원 중 하나가 지원자와 불화를 일으켜 교체되는 일도 겪었다.[10] 석 달 만에 한 사람이 포기하고 나간 뒤, 나머지 10명의 지원자들은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실험을 마쳤다.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이는 우주 개발 초기에 무중력 상태를 최대한 모사하기 위하여 조성한 환경이었다. 특수 제작한 침대에 누울 경우 신체에는 마치 무중력 상태에 빠진 듯한 영향이 가게 되는데, 이 상태로 수 개월 이상을 보내야 하는 우주비행사들의 신체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이들이 지구로 복귀하고 나서 어떻게 중력에 다시 적응할지, 어떻게 훈련을 시켜야 할지에 대해서도 당시에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소련이 우주로 진출하고 우주 생활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어찌보면 이 실험의 공로가 상당히 컸던 것이다.
 

책임자는 밀튼 로키치(M.Rokeach). 디트로이트 인근의 입실란티(Ypsilanti) 지역의 정신병원에서, 그는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하는 세 명의 환자들, 조세프 캐젤(J.Cassel), 클라이드 벤슨(C.Benson), 그리고 레온 가버(L.Gabor)를 한자리에 모아서 대질신문(…)을 시켜 보았다. 이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정신질환자들이 자신과 정확히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타인과 만날 경우 과연 서로의 존재로 인해 서로의 믿음이 교정됨으로써 증세가 완화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심리학자로서 로키치는 개인이 갖고 있는 정체성은 개인의 가장 확고한 내적인 신념이라고 보았고, 이것이 위협받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될지 알고 싶어했다.

몇 번 서로를 만난 후, 이들은 나름대로의 설명을 시도했다. 벤슨은 "저 두 사람 속에 기계가 들어있다" 고 주장했으며, 캐젤은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주제에 무슨 예수냐" 고 주장했고, 남 뭐라 할 입장이 아닐 텐데 가버는 "명망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계속해서 만나며 대화하는 세션을 가졌는데,[11] 종종 격렬한 논쟁으로 비화되기 십상이었다. 한번은 "아담은 원래 흑인이었다" 는 주장이 나와서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이후로 두 차례의 추가적인 "신체적인" 언쟁 끝에, 세 분의 예수님들은 마침내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2년 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 로키치는 개선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여 실험을 종료해야만 했다. 와중에 한 환자가 자신의 이름을 바꿔 불러 달라고 하기는 했지만, 이는 정체성이 바뀌는 개선의 징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세상 속에서 성스럽고 신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었고, 자신을 모방하는 두 명의 귀찮은 상대방과 함께 매일같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상대방에 대해서 "정말 한심한 시간낭비입니다. 왜 구태여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내려고 하는 걸까요? 제발 좀, 자신으로 태어났으면 자신답게 살면 안 되는 걸까요?" 와 같이 매우 정확한 지적을 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예수라고 믿는 신념에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 약 빨고 예배에 참석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까? (1962)
책임자는 왈터 판케(W.Pahnke). 그는 종교적 무아지경(trance)과 같은 신비체험이 과연 환각 버섯이나 LSD에 의해서 유도될 수 있는지 확인하였다. 보스턴 대학교의 마쉬 채플(Marsh Chapel)에서, 연구자들은 20명의 신학생들로 하여금 10명은 마약을 투여하고 나머지 10명은 플라시보로 둔 채 성 금요일 예배에 참석하게 했다. 누가 마약을 투여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막상 예배가 시작되자, 반응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갈렸다. 얌전하게 신도석에 앉아 있는 10명의 신학생, 그리고 차마 웃지 못할 반응을 보이는 10명의 신학생. 마약을 투여받은 사람들은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뜻모를 말을 중얼거리거나, 바닥에 벌렁 드러눕거나, 신도석들 위를 기어다니는 등의 괴기스러운 행동을 보였다. 한 사람은 제멋대로 오르간 앞에 앉더니, 완전히 심취한 듯한 표정으로 차마 들어주기 힘든 불협화음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가장 심각한 증상을 보였는데[12] 당시 설교 주제였던 "너희는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를 듣고는 그대로 채플에서 나가서 차들이 돌아다니는 도로로 걸어가다가 다시 붙잡혀 끌려왔다![13] 예배가 끝나고 계획대로 인터뷰를 시행하려 했지만, 이 학생들은 미처 마약에서 깨지 못한 나머지 고개를 끄덕이며 "와우!"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다.(…)

6개월 후에 실시한 설문지 연구에서는, 10명 중 7명이 그때 그 순간에 신비체험을 했었다고 보고했다. 실제로 환각 버섯을 포함한 어떤 종류의 마약들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초기 종교의 역사에서부터 신비체험을 불러일으키는 용도로 자주 쓰여 왔기에 일리가 있었다. 25년이 지난 후 릭 도블린(R.Doblin)이라는 다른 심리학자가 이 당시의 참가자 신학생들을 추적해서[14] 다시 회상을 요청했는데 여전히 일관된 답변을 얻었다. 실험 당시의 부정적인 보고들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성 금요일의 그 일은 내 평생의 신앙에 있어서 상당히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고 회상했다. 통제집단의 한 참가자는 약간은 다른 의미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는데, 그게 다름이 아니라 마약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게 손을 댈 용기를 얻었다는 이유.(…)

3 나무위키에 등재된 실험

4 가공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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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항목

  1. 특히 국내의 현실이 더욱 그런 편이다.
  2. 당장 실금을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의 심박수다.
  3. 베즐리 박사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현대에 들어 각종 총격 사건 및 총기난사 사고가 밥 먹듯 벌어지는 미국에서는 경찰관 훈련교범에까지 수록될 가치가 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데이브 그로스먼(D.Grossman)의 《전투의 심리학》 에서는 총기 살인마를 상대할 때 경찰들에게 겁먹지 말 것을 조언하면서, "설령 심장을 맞아도 10여 초는 버틴다. 한 걸음 더 가서 한 발 더 응사하기에는 충분하다!" 고 강조하고 있다.
  4. 실험은 전구 두 개를 강아지 앞에 놓고, 불빛 단서가 들어오는 쪽으로 강아지가 이동하지 않으면 참가자가 직접 전기충격을 가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통제관의 지시에 따라 점차 충격의 강도를 높여 가는 것은 기존 실험과 똑같았다.
  5. 물론 퍼스의 학자적 소신과는 무관하게, 오늘날 황열은 모기가 옮기는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이는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쿠바의 카를로스 핀레이(C.Finlay)가 발견했다.
  6. 현대에는 그가 만성 환자들의 전염성 없는 샘플을 채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7.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조금 주사했다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8. 그럼에도 이미 미노비치는 이 과정에서 "참지 못할 정도의 고통" 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9. 러시아에서 있었던 실험 이외에도 일본 등지에서도 이런 비슷한 실험이 있었는데, 러시아의 사례는 가장 극명한 결과로 나타났다.
  10.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한 지원자와 한 연구원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11. 서로의 정체성을 건드리는 것은 금지되어서, 누가 상대방이 예수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라도 하면 곧바로 제지시키고 화제를 돌렸다.
  12. 사후에 이 사람에 한해서는 해독제를 투여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13. 이는 현대의 종교적 체험이 단순히 마약의 UP 효과와 다를 바가 없다는 일부 반종교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14. 추적하는 데만 4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